IV. 시편의 신학적 의미
1. 시편집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모습
시편집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모습은 구약의 다른 곳에서 나타난 모습과 완전히 다르다.
기본적으로 하느님의 모습이 구원자와 창조주로만 나타난다.
그분 홀로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시고, 이집트에서 구원한 이스라엘 백성을 창조하신 분이다.
이러한 행동은 탈출기에 나오는 것처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주시고
약속의 땅으로 그들을 무사히 인도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2. 개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하느님의 모습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하느님의 구원은 질병과 죽음, 원수들에게서 구해주며,
건강과 행복, 장수를 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많은 시편은 창조주 하느님의 역할에 대해 강조한다.
즉 혼돈과 맞서 승리하신 하느님의 힘과,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신 것,
그리고 피조물에 작용하시는 하느님의 왕권을 이야기 한다.
이러한 시편들의 창조주 하느님의 모습 안에서 가시적 형태로 드러나는 하느님의 힘과 섭리를 강조한다.
또한 몇몇 시편은 오경과 같이 하느님의 창조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을 곧바로 연결한다.
3. 히브리 문학 안에서 하느님의 호칭들
히브리 문학, 특히 히브리 시와 관련 있는 시편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른다.
보통 하느님을 가리키는 말은 ‘엘로힘’(86, 15)이다.
그런데 하느님을 나타내는 이름 중 몇 개는 가난안 종교와 신화에서 유래한다.
그 외 유다이즘의 성격을 띈 ‘주님’(2,4;16,2;30,9;35’17.22; 37,13; 38,16.23 등),
‘임금’(5,3;10,16; 24, 7-10; 29,10; 47, 7-8)은 두 이름 모두 야훼께서 신과 인간의 세계에서
최고 주권을 갖고 계심을 강조한다. 그리고 많은 이름이 구원자의 역할을 지닌 야훼 하느님을 묘사하는데,
특히 그분이 ‘안전한 장소’라는 표현이 많다. 그래서 ‘바위’(28,1; 31,3;42‘10; 62,3.7; 71,3;78,35 등)와
피난처’(14,6; 46,2; 57,2; 59, 17; 62,8 등)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4. 성전을 중요시하는 시편집
시편집은 또한 성전의 노래책으로 불려왔다. 시편집에 나타난 신학적 의미를 살펴볼 때
성전의 중요성을 상기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성전은 신의 궁궐이었다. 모든 인간의 임금이 궁궐을 갖고 있었듯이 신도 그러하였다.
이 ‘궁궐’에서 하느님은 땅을 다스리고, 인간에게 해방과 복을 주시며(18,7; 20;2.7; 36,10),
사람을 심판하신다(9,8-9; 11, 4-6; 33, 13-15).
마치 신화가 임금을 만나기 위해 궁궐에 들어가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만나 뵙기를 간절히 희망하며 성전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하느님을 도피처로 생각한 것 못지않게 성전을 안전지대로 생각하였다(
17,8;36, 7-8,57, 2; 61,5; 63,8; 91,4)
궁궐처럼 성전에도 뜰이 있다. 그래서 성전을 ‘주님의 안뜰’이라 불렀다(84,3; 92,14; 100,4; 116, 19; 135,2).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신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성전을 흔히 ‘주님의 산’ 혹은 그이 ‘거룩한 산’ 으로 불렀다(15,1; 24,3). 또한 시편은 성전을 옛말로 ‘천막’이라 표현하는데,
이는 당연히 만남의 천막을 가리키는 것이다(15,1;27, 5;6; 61,5). 성전에 대한 표현은 보통 직접적이지 않다.
‘당신 날개 그늘’(36, 8;57,2;61,5;63,8), ‘생명의 땅 혹은 산 이들의 땅’(27,13; 52,7; 56,14),
‘하느님 앞에서’(56,14;61,8;68,3;96,6) 등으로 표현한다.
왜냐하면 탄원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자 갈망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것’(27,4;8,13; 42,3;63,2;84,8)이라는 표현은 바로 성전을 가리킨다.
그러나 주인의 얼굴을 찾는 이들은 아마도 ‘감춰진 얼굴’ 혹은 ‘고개 돌린 얼굴’만을 만나게 될 것이다(10,11;30,8;44,25;88,15;89,47;143,7).
5. 시편집 안에 나타나는 내세관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 시대가 끝날 때까지 내세에 관한 확신이 없었다.
아직까지 그들은 ‘저승(셰올)’이나 ‘명부’와 같이 죽음 후의 세상에 대해 어럼풋하게 믿고 있었다.
구약은 내세에 대해 정확하게 묘사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현세의 모습과 닮았을 것이라 이야기 한다(이사 14,9).
그곳은 금지의 장소이자, 어둠의 땅이다(시편 74,20; 88,7.13.18; 143,3).
명부는 활기와 건강의 의미를 갖고 있는 ‘삶’과 면밀히 구분된다.
그래서 고대 근동에서는 죽은 자만이 아니라 심각하게 병을 앓고 있는 자도 죽음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병으로 고통받는 시편저자들은 명부로 ‘내려가는 중’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22,30; 28,1;115,17;143,7). 명부로 들어가는 삶을 끝맺는 것인 동시에 하느님의 현존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지상에서 체험하게 되는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행위의 영역이라 생각했다(6,6;88,11-13).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에서 갈라지는 저승에 대한 공포는 죽음이나 질병에 대한 두려움보다 훨씬 컸다
(로마 8ㅡ38-39 참조).
6. 하느님과 시편저자와의 관계
하느님과 시편저자의 속성은 이스라엘 백성의 사상에서 ‘정의’ 혹은 ‘올바름’이라는 관계 개념으로 나타난다.
특별한 관계에서 비롯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행위이다.
그래서 창조주이자 구원자이시고 그들과 특별한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은 세상에 질서를 유지하고
악한 세력에서 사람들을 보호함으로써 그분의 정의를 실현한다.
또한 시편 저자는 계약의 하느님께 충실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명령을 잘 지키고 이웃을 정직하게 대하는 것이다.
시편은 흔히 계약에 근거하여 인간과 자신들을 향한
그분의 충실한 사랑, 변하지 않는 사랑을 ‘헤세드’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한다.
이 단어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지속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참고문헌: 성경 읽기 안내 구약2, 성서와 함께, 2007, p. 23-29.
시서와 지혜서, 성서와 함께, 2007, p 104-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