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줍기(창세기)

하느님의 은총의 힘이 얼마나 더 큽니까?(로마서 5, 12-21)

마리아 아나빔 2010. 6. 17. 20:17

 

 

 

                         하느님의 은총의 힘이 얼마나 더 큽니까? (로마 5, 12-21)

 

 

   지금까지 해설 해온 창세기 말씀을 신약성서 특히 바울로 서간을 통하여 제조명해 보기로 합시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바울로 사도의 편지는 창조의 이야기와, 첫 인류의 범죄 이야기,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대한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 주고 있다. 창세기 1장-3장은 역사적 문헌으로서보다는 신학적으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여러 가지 교리들을 배출시켰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원죄교리이다. 아담과 한와가 지은 죄, 곧 하느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따먹음으로써 그분께 불순종한 죄가 출산을 통하여 자자손손 전해져 온다는 내용이다. 이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구원의 길도 막히는데 원죄를 씻어 주는 유일한 성사가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서례성사라는 내용이다.

 

교회는 이 원죄의 교리를 낙원과 범죄 이야기의 가상적인 줄거리에만 연결시켜 설명한 나머지 창세기 저자들이 전하려는 했던 깊은 가르침을 많이 놓쳐 버린 것 같다. 특히 창세기는 성서의 저자들이 그들 근동의 설화적 또는 신화적 요소들을 이용하여 우주의 기원, 인간의 운명, 남녀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등을 하느님께 대한 신앙 안에 설명하려했던 신학적 작품들이다. 따라서 실존 인물도 아닌 아담과 하와에 의해서 한순간의 실수로 저질러진 죄악이 인류 전체에 자동적으로 전수된다는 교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곤란하게 되었다. 나아가 원죄교리에 대한 이런 식의 설명은 창세기 저자의 신학적 의도를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서를 바탕으로 한, 원죄교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우선 원죄 자체가 무엇이냐를 규정해야 하겠다. 창세기 저자가 묘사하는 첫 인류의 범죄는 자신의 분수와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에 대한 구원과 멸망을 하느님을 도외시하고 자기의 주관으로 택하려 한 행위에 있다. 이는 인간을 비롯하여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반역이요 불순종이다. 이 못된 죄는 첫 인류로부터 시작하여 세세대대로 인간의 본성 안에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를 원죄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면 원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 인간에게 지배하고 다스리라고 주셨을 때 그분이 의도하신 바는 창조물 안에 인간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 낼 뿐 아니라, 창조계의 아름다운 본모습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라는 뜻이다.

이것이 원주인 의 뜻이었고, 하느님의 그가 동산을 다스리는데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해 놓으셨으니,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는 따먹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동산지기로서의 신분을 망각하고 동산 주인이 세워 놓은 규칙을 감히 위반한다. 그 결과 하느님과 인간과 자연 사이에 평화롭던 관계가 순식간에 깨져 버리고 만다. 환경오염과 집단적 폭력으로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실낙원의 이야기는 매우 적절한 가르침을 던져 주고 있다.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하고 동료 인간들을 대량으로 살상하고 있는 현대인들은 하느님을 거슬러 정면적인 반역과 불순종의 죄를 짓고 있다. 현대인대의 범죄로 땅뿐 아니라 물과 공기를 비롯하여 지구상의 모든 생태계가 저주를 받고 이제는 역으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바로 로마서 5장 12절의 말씀이 이를 잘 요약해주고 있다. “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들인 것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 미치게 되었습니다.”

 

   집단적 범죄의 결과로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 인류가 구원의 길에 들어설 방법은 하느님께당신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주권을 다시 돌려 드리고 그분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이 일을 위해서 구원자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고 실제로 보내 주셨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출현을 하느님의 넘치는 은총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히뽀의 주교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젊은 시절의 방황 기간 중에 죄의 비참함과 은총의 위대함을 깊이 체험하고서 첫 인류의 범죄를 ‘복된 죄(felix culpa) 불렀단. “오 복된 탓이여”라는 말롤 부활찬송 때 되풀이되는 이 아우구스띠로 성인의 말씀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창세기의 범죄 이야기를 올바로 꿰뚫어본 것이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당신 외아들을 우리에게 구세주로 보내 주실 만큼 하느님의 사랑이 여실히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금단의 열매’는 인류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일부러 만들어 좋으신 함정이 결코 아니다. 처음 창조 이야기에서 줄곧 강조되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착하심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배려이다.

 

사도 바울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이 인간에게 영적인 죽음을 불러들이고 인간을 하느님과 떼어놓은 아담과 모든 인류의 범죄를 훨씬 능가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어떻든 원죄의 치유를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세례성사로 보는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은 넓은 의미에서 구세주를 약속하는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으로 확인된다고 하겠다.

 

 

* 참고문헌: 하느님과 함께 걸으며(창세기 해설서), 정태현, 생활성서사, 1990, P.3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