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쿡 예언서 입문
I. 입문
1. 책 이름
하바쿡은 열두 소예언서 중에서 여덟 번째로 나오는 성경이다. ‘하바쿡’은 ‘껴안다’는 뜻의 동사(하박)에서 나왔다고 추정하며, 온갖 폭정에 시달리는 백성을 껴안고 하느님께서 반드시 나아지게 하시리라는 확신을 밝히는 예언서라고 볼 수 있다.
2. 저자
“하바쿡 예언자가 환ㅅ로 본 신탁”(1,1) 내지 “하바쿡 예언자의 기도”(3,1) 라고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예언서의 저자가 하바쿡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알길이 없지만, “나는 내초소에 서서, 성벽 위에 자리 잡고서 살펴보리라”(2,1)는 본문 배경이 유배 이후에 성전에서 거주하던 레위인과 사제들의 처지(느헤 13,30;2역대 7,6) 와 비슷해 성전 예언자로 추정한다.
하바쿡서는 비록 짧지만 장엄한 시편으로 성전에서 자주 읽혔을 뿐아니라 신약성경에도 여러 번 인용되었다(사도 13,40-41;로마 1,17; 갈라 3,11;히브 10,38).
3. 시대배경
하바쿡 예언자가 활동한 시대는 “이제 내가 사납고 격렬한 민족 칼데아인들을 일으키리니”(1,6)란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기원전 7세기 말 바빌로니아 제국이 일어나던 시기로 추정할 수 있다. 그의 예언은 카르크미스 전투(기원전 605) 전후에 있었던 것으로 본다. 그때는 요시아 임금(기원전 640-609) 통치 말기부터 여호야킴 임금(기원전 609-598)의 치세 기간으로, 이스라엘의 하느님에 대한 배신행위가 극에 달하고 바빌로니아의 침략이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예언자 예레미야와 동시대라고 볼 수 있다.
4. 구분
1,1-2,4: 하바쿡의 환시- 예언자의 항변과 하느님의 대답
2,5-20: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침략자들에 대한 저주
3,1-19: 하느님의 승리와 하바쿡의 기도
II. 내용
1. 예언자의 향변과 하느님의 대답(1,1-2,4)
하느님의 대답과 예언자의 항변이 번갈아 제시된다. 이방만족이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도 믿을 수 없지만, 그렇게 선택된 이방민족이 “제 힘을 하느님으로 여겨”(1,11)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함으로 민족들을 짓밟은 다는 것도 경악할 일이기 때문이다(1,6-10). 하느님의 도구로 선택된 그들이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의인마저도 잡아 죽이는 상황이 벌어지자(1,13-16) 예언자는 신앙과 현실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하느님이 즉각 개입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뜻과 정의가 언제 실현될 것인지 묻는다. 하바쿡은 하느님께서 백성의 가슴 아픈 처지를 관심 없이 바라보시는 것만 같은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불의한 자들이 선량한 백성을 함정에 빠뜨리는 현실에서 하느님의 부재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2,4)는 하느님의 대답을 듣는다. 하느님께서 악이 승리하고 의인이 고통을 겪으며 죽어가는 현실을 방관하지 않으신다는 믿음이 담겨있다.
2. 불의한 자에 대한 저주(2,5-20)
2,6: 고리대금- 남의 것을 긁어 모으고 담보로 잡은 것을 쌓아 두는 자
2,9: 부당한 이득 -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재앙의 손길을 벗어나려고 하는 자
2,12: 피, 불의 - 피로 성읍을 세우고 불의로 성을 쌓는 자
2,15: 술 -이웃들에게 술을 먹이고 취할 때까지 화를 퍼붓고는 그들의 알몸을 바라보는 자
2,19: 우상숭배 - 나무에게 “깨어나시오”하고 돌에게 “일어나시오”하는 자
“불행하여라!”는 말로 시작하는 다섯 가지 저주는 남의 것을 긁어모아 치부하는 자, 저만 살겠다고 남을 등쳐먹는 자와 우상 숭배자들이 받게 될 징벌을 묘사하고 있다. 악인이 아무리 막강해 보이고 잘 되어가는 것 같아도 최후는 멸망뿐이고, 모든 물질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으니 어떤 난관이 닥치더라고 성실히 사라고 요구한다.
3. 하느님의 승리와 하바쿡의 기도(3, 1-19)
하바쿡은 1-2장에서 갖가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주님께 탄원하고 응답을 들으며 대화 형식으로 진행한다. 그런데 3장에서는 찬미가 형식으로 하느님께 신앙을 고백한다. 이 기도에서 예언자는 자연의 힘을 지배하시는 하느님의 능력과 주권을 찬미하는데, 이는 하느님께서 자연을 다스릴 때 사용하시는 절대적인 능력으로 인간 역사도 당신 마음대로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예언자는 무서운 재난 앞에서 입술이 떨리며 뼈가 썩어 들어가는 듯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며 재앙이 떨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실에서 아무것도 바뀐것이 없어도 하느님을 찬양하며 기뻐한다고 외친다. 즉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는 것이다(2,4). 이 성실함이란 약속에 충실하신 하느님을 의지하는 인간의 마음과 태도이다. 따라서 의인은 하느님을 향한 신실하고 충실한 마음과 태도를 통해 신앙적 회의나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현재의 시련과 미래의 불투명함 속에서도 하느님만을 신뢰하고 굳건히 믿으며, 그분의 구원의 개입을 기다리는 사람만이 참된 생명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마치 기도하는 사람은 현실이 달라지지 않지만 기도 안에 자신의 시각과 마음을 하느님의 시각과 마음으로 바꾸는 사람이다. 그래서 비참한 현실 안에서도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다.
III. 가르침
예언서들 중에 하바쿡서만 유일하게 이스라엘에 선포된 신탁을 직접 포함하고 있지 않다. 수많은 세계의 역사적 사건에서 하느님의 정의가 과연 어디에 있느냐고 현인들과 예언자들은 묻습니다. 하바쿡서는 강대국의 만행을 고발하면서도 동시에 나의 불의한 삶을 구체적으로 일깨우며, 유다 왕국의 역사적 현실을 예언자의 안목으로 바라보게 한다.
하바쿡이 관심을 집중한 것은 하느님의 정의이다. “왜 하느님께서는 불의를 거슬러 개입하지 않으시는가?” 왜 악한 세력을 제거하지 않으시는가?“라는 고뇌에 찬 물음으로 토로한다. 예언자가 이러한 질문을 다루는 이유는 신앙과 현실이 대치되는 이 상황에서 “의로우신 하느님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라며 회의에 빠진 이들에게 신앙적 해답을 주기위해서이다. 이에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현실이 비록 당신의 정의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당신께 굳건한 믿음을 둔 성실한 의인들을 반드시 구원하리라고 대답하신다(2,3). 또한 지상의 세력과 부와 능력은 하느님 앞에서 가치가 없고 무능한 것이라고 선언한다(2,5). 하느님만이 역사를 주도하신다는 믿음, 악한 것에서도 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 하느님이 아니시면 그 누구도 참된 생명을 줄 수 없다는 믿음을 굳건히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바쿡은 공평하게 세상을 다스리는 하느님 앞에 모든 불의 한 힘의 만행이 결코 길지 않다고 엄중히 경고한다. 그러기에 하바쿡서를 통해, 의인은 멀게 느껴질지라도 ‘진리의 말씀’ 안에서 확실한 구원의 길을 따라 끝까지 항구하게 걸어가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지만 하느님의 정의가 개입될 것이고 주님의 날이 오면 성실한 의인(hesed)인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예언이다. 그래서 그날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파수꾼이 되어 지켜보리라는 것이다.
하바쿡서는 신앙인들이 취해야 할 마음자세를 가르쳐 준다. 그리스도를 향한 성실한 ‘신뢰’와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2,4; 로마1,17; 히브 10,38). 결론적으로 하바쿡은 하느님께서 불의하고 악한 세력을 징벌하시고, 성실하게 믿음을 실천한 의인을 구원하시어 반드시 당신의 정의를 실현한다고 가르친다. 인간의 이성만으로 현실과 신앙의 충돌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깊은 믿음으로 하느님께 의지하고 구원을 간청하는 성실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변의 상황의 좋고 나쁨에 좌우되지 않고, 고통과 시련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는 성실함이 하느님께 인정받는 진정한 믿음이며, 구원으로 향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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