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문학과 잠언서(코헬렛·욥기)

코헬렛 입문

마리아 아나빔 2013. 8. 18. 20:09

 

 

 

 

                                                           코헬렛 입문

 

예전에 전도서라고 불렀던 이 책을 현재는 ‘코헬렛’(1,1)이라 부른다. 이는 신앙의 진리를 전하는 이의 설교를 기록한 책 이란 의미로 이해한 것에 있다. 이러한 코헬렛은 인생의 허무와 인간 안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지혜에 대한 말씀이다.

 

 

I. 코헬렛 입문

 

1. 책의 이름

 

코헬렛은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회중’ 또는 ‘집합시키다’ ․ ‘소집하다’의 의미를 가진 ‘카할’이란 어원에서 나왔다. 또한 확실치 않으나 흔히 공동체에서 가르치는 직책이나 직능을 가킨다고 본다. 이 명칭은 모두 7회나 나오는데 항상 저자와 관련된다.

 

칠십인역에서는 ‘엑클레시아스테스’로 히브리어 코헬렛을 그리스어로 옮긴 것으로 ‘회중, 집회의 구성원’ ․ ‘회중의 일원’을 가리킨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인생의 길을 가르치는”책을 의미하는 중국어 성경 ‘전도서’라는 제목을 그대로 썼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히브리 성경에 따라 ‘코헬렛’으로 이름 지었다.

 

이 책은 히브리 경전에서 성문서에 속해 있으며, 유대교의 ‘축제 두루마리 다섯 개(룻기, 아가, 코헬렛, 애가, 에스테르기)중 하나로 초막절 축제 때 낭독되었다. 가을 추수를 끝내고 벌이는 초막적 축제 때, 유대인들은 이 책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신 풍요로운 수확에 감사하면서 하느님을 떠나서는 결코 풍요의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없으며 인간의 모든 수고와 노고가 헛되다는 것을 되새겼다.

 

 2. 저자

 

전통적으로 이 책의 저자를 솔로몬이라 생각해 왔는데, 이는 첫머리에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임금”(1,1)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상 실존 인물인 솔로몬 임금을 저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익명의 저자가 다만 솔로몬의 권위를 빌어 지혜의 가르침을 전개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 책은 일곱 번씩이나 자신을 ‘코헬렛’이라고 밝히는 저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밝혀 낼 수 없다. 다만 저자가 성전학교에서 지혜를 배운 사제나, 고등교육을 받은 성격이 매우 강한 귀족이나, 평민 출신의 연설가가 아닐까 추측한다. 현재 우리에게 전해진 성경 코헬렛은 그의 제자가운데 한 사람(예루살렘에서 지혜를 가르치던 어느 현자)이나 여럿이 편집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3. 저술연대

 

유배이후부터 마카베오 시대 이전인 기원전 300-200년에 예루살렘에서 편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마카베오기의 박해 분위기를 찾아 볼 수 없으므로 대략 마카베오 항쟁 이전에, 곧 기원전 3세기에 저술되었을 것으로 본다. 코헬렛에서 사용된 언어나 내용이 그 시대를 반영하고, 쿰란에서도 기원전 2세기 중엽에 필사된 코헬렛의 몇 구절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코헬렛의 시대적 배경>

• 죽은 자와 태어나지 않은 자가 더 행복하게 여겨지는 부정의한 세상 (4:1-3)

• 의인이 죄인취급을, 죄인이 의인취급을 받는 세상 (8:10-14)

• 부와 경쟁만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세상 (4:4-6)

• 권력의 남용과 상부기관의 부패 (5:7-8)

 

4. 문학적 특성

 

- 운문으로 되어 있는 ‘잠언 양식’이 기본을 이룬다(1,4-9.15.18; 4,5).

-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 대조법과 비유법도 사용한다.

- 저자는 무엇인가 충고나 경고하기위해서 명령형으로 제시하는 권고 형식도 사용한다 (5,1; 5,2.4; 7,16.17).

- 스승이 제자들에게 하는 말투인 ‘너’라는 호칭을 자주 쓴다(2,13).

- 자신의 직접 또는 가상 경험을 독백형식으로 말한다.

- 성경 시문학의 특징인 대구법을 비룻한 히브리 시의 특성이 뚜렷하다(12,1-7)

 

<코헬렛의 문학장르>

 

비관적이고 허무적인 어조가 주를 이룬다.

• 이집트 지혜문학에서도 발견됨:

1) 한 사람과 그 영혼과의 논쟁: 삶의 고초를 나열하며, 대안 중의 하나로 자살을 고려하나 결국에는 삶이 죽음보다 낫다고 결론을 맺는다.

2) 수금타는 자의 노래: 무덤에 새겨진 비문으로 죽음의 불가피성을 언급하며 생을 즐길 것을 촉구한다.

3) 카케페레-손베의 불평: 삶의 불안정과 인간의 죄성에서 오는 비참함에 대한 성찰

4) 네페르티의 예언

5) 이푸베르의 권고

 

• 메소포타미아 지혜문학에서도 발견됨:

1) 아트라하시스 : 최고신 엔릴을 무능한 겁쟁이로, 신전회의는 충동적이고 근시안적으로 인간을 대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2) 바빌론 신정론

3) 어떤 비관주의자의 조언과 비관주의에 관한 대화: 인간 삶의 불안정성과 비참함에 대해 언급한다.

4) 길가메쉬 서사시:

문학형식이 코헬렛과 유사. 서문과 후문은 길가메쉬에 대한 전기적 이야기를여줌으로써 위대한 영웅 길가메쉬가 현인과 동일시된다. 인생의 허무함과 죽음에 대해 언급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함. 따라서 코헬렛의 장르는 고대근동 문학에서 낯선 것이 아니다.

 

 

5. 코헬렛의 세계관

 

죽음 이후의 세계 (Sheol)에 대한 불신: 죽음은 인간으로부터 지식, 보상, 기억, 모든 감정 (사랑, 미움, 질투)을 앗아가며 인간세계에서 잊혀지게 만듦 (9:5-6).

동일함의 순환 반복인 세상: 미래는 예측 불가능. 삶의 행로는 철저하게 신비에 가려져 있음.

• 그 안에 존재하는 부정과 잘못을 교정할 수 있는 장치가 부재함;

• 하느님께서 창조하셨지만 하느님께서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은 철저하게 인간에게 감추어져 있음.

 

 

6. 코헬렛의 하느님 이미지

 

• 하느님 (엘로힘)이라는 호칭만 사용;

• 이스라엘의 하느님, 혹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 이미지는 등장하지 않음;

• 인간과 대화를 나누거나 인간의 고통에 직접 응답하는 하느님 이미지는 부재함.

• 인격적인 신이 아님; 인간과는 멀리 있는 존재이며, 무관심하고 때로는 잔인하게 여겨지는 신.

•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인간에게 감추어져 있어서 파악 불가능함. (7:13;8:17)

 

 

<코헬렛 안에 있는 하느님의 전통적 이미지>

 

1) 창조주 하느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시고, 인간에게 한정된 생명을 주신 분(3:11;7:29;12:1,7)

2)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느님: 하느님의 심판이 세상의 부정의를 바로잡는 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함 (3:17,18;5:5;11:9)

3) 인간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허락하시는 분 (2:25-26;3:13;5:18;8:15;9:7,9)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 나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영원히 지속됨을 알았다.

거기에 더 보탤 것도 없고 거기에서 더 뺄 것도 없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시니 그분을 경외할 수밖에.(3,14)

• 정녕 꿈이 많은 곳에 허무가 있고 말도 많다. 그러니 너는 하느님을 경외하여라.(5,6)

• 하나를 붙잡고 있으면서 다른 하나에서도 네 손을 떼지 않는 것이 좋다. 정녕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는 그 둘 다에서 성공을 거둔다.(7,18)

• 나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이 그분 앞에서 경외심을 가지므로 잘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악인은 하느님 앞에서 경외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잘되지 않을뿐더러 그림자 같아

오래 살지 못함도 알고 있다.(8:12-13)

•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좋든 나쁘든 감추어진 온갖 것에 대하여 모든 행동을심판하신다.(12:13-14)

 

 

7. 코헬렛의 신학

 

•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부조리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한계와 파악 불가능한 삶의 신비 앞에서 인간이 체험하는 깊은 절망감을 표현한다.

• 이러한 한계 상황 앞에서 코헬렛은 현실적으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를 권고한다.

• 전통적 신학의 한계를 지적함으로써 새로운 신학의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된다.

 

1) 하느님

 

코헬렛은 인간의 삶을 ‘헛되고 쓸모없는 수고’라고 말하는 반면, 하느님에 관련해서는 절대로 ‘헛되다, 쓸모없다. 허무하다’등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하느님을 지칭하기 위해서 그분께서 직접 계시하신 ‘야훼’라는 이름대신 ‘엘로힘’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이는 코헬렛이 당신의 이름을 직접 계시해 주신 야훼께 대한 신앙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조상들의 신앙을 한층 더 승화시킨다.

 

고대 유대인들은 야훼를 이스라엘 민족만을 다스리는 신으로 이해했지만, 유배 이후에는 온 세상의 주님이시며 하느님으로 섬기는 ‘유일신 신앙’을 갖게 된다. 그러나 야훼의 초월성과 거룩함을 강조한 나머지, 야훼를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는 하느님으로 섬긴다. 따라서 인간에게 더욱 가깝게 존재하며, 곧바로 인간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인간의 바람을 채워주는, 하느님과 인간의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존재인 천사나 그에 버금가는 창조물에 대한 필요성을 대두되기 시작한다. 코헬렛은 이러한 현실에 신앙의 불협화음을 느낀다. 그리고 인간 삶의 문제가 비록 쉽게 풀리지 않고 그 바람이 채워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간과 초월자를 이어줄 중간 단계의 존재를 거부한다. 또한 성공하는 인생을 가르쳐 준다는 지혜의 전통을 거부하고, 비록 그 결과를 예견할 수 없는 불확실한 삶이라 할지라도 인생과 삶의 노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자 주장한다.

 

코헬렛은 3,14에서 “나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영원히 지속됨을 알았다. 거기에 더 보탤 것도 없고 거기에서 더 뺄 것도 없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시니 그분을 경외 할 수밖에.”라고 고백한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분명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간은 허무하고 쓸모없는 수고를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더하거나 뺄 것도 없는 완벽한 일을 하신다. 또한 초월자인(5,1참조)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고 섭리하는 창조주이며(3,11) 모든 인간을 심판하시는 분(3,17)이다. 그리고 인간이 당신 앞에 미천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신다(3,18).

 

인간의 모든 노고는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섭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1,13;3,10).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의 일(뜻, 계획)을 파악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3,11;7,14;8,17;11,5). 인간은 다만 하느님 앞에서 그분의 계획에 순응하며, 주어진 것 안에서 행복을 찾으며 살아야 할 뿐이다.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선물이기 때문이다(2,24; 3,12-13;5,17-19;8,15;9,7). 따라서 주어진 것에 충실한 인간의 삶, 곧 하느님을 경외하는 삶(7,18)이 인생의 성공의 열쇠이다(8,12-13).

 

2) 허무

 

이 책은 “허무로다, 허무!”라는 표현으로 시작하고 끝맺는다(1,2; 12,8). 일반적으로 ‘허무’ 또는 ‘헛됨’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명사 ‘헤벨’은 구약성경에 모두 86회(창세기 4장에서 ‘아벨’이라는 인명으로 8회) 나오는데, 그 중 반 이상을 코헬렛에서 찾을 수 있다(38회). 헤벨은 본래 ‘숨결’ 또는 ‘수증기’라는 뜻을 지녔기만, 관념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작고 하잘 것 없는 일이시적인 상태나 존재’를 가리킨다.

 

칠십인역은 ‘헤벨’을 ‘마타이오테스’라는 말로 옮겼다. 마타이오테스’는 ‘무의미’․ ‘무가치’․ ‘공허’라는 뜻을 지녔다. 이는 칠십인역이 ‘헤벨’의 의미를 풀어서 번역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불가타도 칠십인역처럼 현실과 반대되는 ‘거짓됨’․ ‘무의미’ ‘환영’․ ‘속임수’등을 뜻하는 ‘바니타스(vanitas)’라는 말로 옮겼다. 코헬렛은 이 용어를 통하여 인간 이성으로는 설명하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상태, 곧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무능한 상태를 표현하고 하였다. 또한 이성적으로 또는 마음으로 예측한 결과와 실제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히브리어에서는 최상급을 표현하기 위해 동일한 용어를 두 번 반복하여 ‘완전히 허무한 상태’, 또는 ‘절대적인 허무’를 가리킨다. 코헬렛은 인간의 삶에서 이 ‘절대적 허무함’을 발견했다. 코헬렛은 인간이 ‘애쓰는 모든 노고’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자문하면서(1,3;2,22;3,9;5,15) “모든 것이 허무로다!”하고 외쳤다. 인생의 노고, 그 수고함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뜻이다(2,11.18.19-21. 23;4,4;6,7;10,15).

 

코헬렛이 인생의 수고에 대해 무작정 허무주의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코헬렛이 말하는 ‘애쓰는 모든 노고의 허무’는 인간적인 지혜와 이성만으로 삶을 계획하고 실천하는데서 오는 결과이다. 따라서 코헬렛은 모든 노고의 보상을 세상적 차원에서 찾으려 한다면 분명 허무 자체를 맛볼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그 보상을 하느님에게서 바라는 신앙인은 분명 의미와 가치 있는 삶, 행복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 확신하다(2,24;5,18;9,9).

 

 

II. 구분과 내용

 

1. 구분

 

표제: 1,1

머리말: 1,2-11 - 끝없이 순환하는 세상에서 모든 것이 허무라고 지적

주제어 (1:2):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은 태양 아래에서 인간의 삶이 왜 헛되고 허무한 것인가를 순환하는 자연의 모습과 인간 역사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1,12-2,26 - 코헬렛의 자기반성과 인생에 대한 반성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말함

인간이 아무리 많은 소원을 이룬다 하더라도 인간이라는 한계 조건을 탈 피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허무라고 말한다.

 

본문: (1,12-12,8): 주제어 (12:8): “허무로다, 허무”

3,1-6,12 - 인간의 한계를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임

코헬렛은 인간사의 모든 것은 정해진 때가 있으며 이는 하느님의 섭리이 며 선물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운명의 신비 앞에서, 인간의 현실의 한 계와 부조리를 느끼며 번민에 빠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코헬렛은 진정한 인간의 자세를 찾고자 노력한다.

7,1-12,8 - 일곱가지 생각(인간 실존의 문제들)

코헬렛은 지혜, 정의, 여자, 권력, 운명, 사회적 관계와 같은 인간 실존 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다룬다. 그는 무작정 실존에 투신하라고 부추 기는 현자들을 기회주의자 또는 순응주의자라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가장 현명한 이는 현실과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범 위 안에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다.

 

맺음말: 12-9-14: 코헬렛의 제자가 덧붙인 글

코헬렛의 모든 가르침을 마무리 하는 결론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12,13 ㄴ)말로 요약할 수 있다. 즉 하느님에 대한 경 외가 인간의 분분임을 강조한다.

 

 2. 내용

 

코헬렛은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깨달은 인간이 지닌 현실적 한계와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생을 허무로 끝내지 않고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준다. 이러한 코헬렛의 가르침을 담은 이 책은 주제와 내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 본문의 첫째부분(1,12-2,26)

 

저자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여러모로 애써 보았지만(큰 공사를 벌여 위업을 이룸, 지혜를 깨치려고 함, 행복을 누림) 헛되게 끝날 뿐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자기의 노고로 먹고 마시며 스스로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인간에게 더 좋은 것은 없다(2,24)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인생살이에서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임을 보면서 긍정적 주제로 옮겨간다. 코헬렛은 인생의 어두운 면과 아름다운 면을 동시에 바라보면서 ‘헛되다’와 ‘즐겨라’를 번갈아 외친다. 그러면서 삶에서는 불공평과 부패가 있고 모든 인간이 죽는다 해도 동의하신 하느님께서는 심판의 때를 정해 두셨으며, 하느님을 떠나서는 참 기쁨이나 참 만족이 있을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2) 본문의 둘째 부분(3,1-6,12)

 

인간은 예정된 자기의 삶의 형태를 바꾸거나, 하느님의 일을 깨달을 수 없으며, 모든 것은 정한 때에 일어나기 마련이라고 하면서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3,11)고 결론짓는다. 인간이 추구하는 권력과 재물, 장수 등이 헛되다고 이야기하며, 하느님을 경외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라고 권고한다. 인간의 온갖 현실이 부정적인 면과 한계를 지니고 있기에, 결국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선물로 맏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일러준다. “인간에게는 살아 있는 동안 즐기며 행복을 마련하는 것밖에는 좋은 것이 없음을”(3,12) 깨달은 저자는, 고생하여 얻은 재산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여러 번 반복하여 강조한다.

 

3) 본문의 셋째 부분(7,1-12,8)

 

지혜와 정의의 관계, 사회의 무질서, 권력의 행사, 운명의 비밀, 불확실한 인생사, 전통적 지혜의 한계 등을 다룬다. 부와 지식, 사랑, 명성, 권세 등 모든 것에서 완전한 행복을 찾지 못한 코헬렛은 인간의 모든 체험을 하나로 묶으면서 인간의 숨은 영역을 뛰언 넘는다. 인간의 마음은 이 세상이 제공할 수 있는 온갖 것보다 더 커서 세상 것에 대해 공허를 느낀다. 모든 것이 죽음으로 끝나고, 인간에게는 아무런 해결 능력이 없다는 데에 허무의 근원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지혜의 한계에 도달할 때, 비로소 하느님 안에서만 흡족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 태양과 자연, 젊음을 즐기라고 하면서 노령과 죽음이 오기 전, 젊었을 때에 창조주 하느님을 기억하라고 이른다.

 

 

III. 가르침

 

코헬렛은 인간의 관계를 세 가지로 구별하여 훈계한다.

 

- 현실과의 관계: 부지런히 씨를 뿌려라(11,1-6)

- 자신과의 관계: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라(11,7-10)

- 하느님과의 관계: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12,1-7)

 

코헬렛은 사람이 비록 온 세상을 얻고 온갖 부귀를 누리면 갖가지 소망을 채울 수 있다 해도 참된 민족이 없으리라고 말한다. 이처럼 모든 것이 유한하고 헛되기만 한 이 세상에서 절대로 헛되지 않으신 분, 유일하신 창조주 하느님을 경외할 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일깨워준다.

 

구약성경의 다른 모든 책과 같이 코헬렛을 최종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하늘 아래 모든 어둠은 빛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완전히 밝혀지며, “길이요 생명”(요한 14,6)이신 분을 통해서만 허무한 인생이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인간의 지혜는 그 얼굴을 빛나게 하고 굳은 얼굴을 변화 시킨다”(8,1)는 말씀대로, 헛된 세상일로 어두워진 마음과 얼굴을 펴고 집착에서 벗어나 영원하신 하느님을 믿는 신앙의 은총을 청해야 한다.

 

 

 

※ 참고문헌: 시서와 지혜서, 김정훈, 바오로딸, 2007, pp.193-200.

                  성경 읽기 안내 구약 2, 성서와 함께, 2007, pp.3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