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헬렛(6, 1-12): 인생의 의미
들어가면서
코헬렛의 6장으로 이 책의 1부가 끝난다. 코헬렛의 1-6장은 설교자의 가르침이 전체로서 요약되어 있다. 이 세상의 행복을 인생의 목적으로 여긴다는 것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이 못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의 인간생활이 전혀 가치가 없다는 것은 속단이다. 단지 세상이 주는 것보다 더 한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자는 말로써 하느님께 대해 언급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 행간에는 하느님의 초월성에 대한 인식이 깔려있다. 코헬렛 6, 1-9절에서는 지칠 줄 모르는 삶의 욕망에 대해서 말한다. 원하는 대로 가진 사람이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허무요 아픔일 뿐이다. 또 아무리 오래 산다해도 죽은 후 제대로 묵히지 못한다면, 그것은 유산된 아이보다 못한 삶이라고 한다. 이것은 그 당시 주변 세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인들도 죽어서 제대로 묻히지 못하는 것을 불행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코헬렛은 사람의 욕심이 채워지지 않음을 알고 있다.
코헬렛 6, 10-12절은 운명과 인간의 무기력에 대하여 설명한다. 이 단락은 코헬렛의 후반부(6,10-12, 14)를 시작하는 서두와 같은 부분이다. 코헬렛은 이제 이어질 단락들에서 논의될 두 가지 주제를 제시한다. 하나는 누가 사람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가 미래를 아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의 답은 물론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 코헬렛은 이 주제를 두 개의 큰 단락 안에서 계속 발전시킬 것이다.
결론적으로 코헬렛 6장 1-12절은 인생의 의미에 대한 설교자의 가르침이다. 1-6절은 영원히 자기 것이 될 수 없는 부와 행복이 없는 장수가 또한 의미가 없는 허무요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것이다. 7-8절은 인간을 만족시키지 못한 수고와 지혜로움의 무의미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9-10절은 돌고 도는 세상 안에 새로울 것이 없고, 좋을 것이 없는 운명과 무기력한 인간의 삶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Text 안에서
1-2절: 채울 수 없는 욕망
설교자는 인생의 헛됨의 하나의 예로 사람이 재산을 한없이 쌓아도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즐길 기회를 주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즐기는 사람은 또한 다른 사람들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부와 재물과 영화를 베푸시지만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태양 아래에서 설교자가 본 불행이다. 이 의미는 재산도 가난함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하느님의 지배 아래에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들에 대해서 채울 수 없다. 그리고 채운다 해도 인간에게 주어지는 욕망은 끝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에 기대를 두어야할지 설교자의 말을 통하여 알 수 있다.
3-6절: 장수와 그 허상
인간이 자식이 백 명이나 되고 그의 수명(그의 날들이)다하도록, 오랜 세월을(수많은 해들을) 산다하여도 그의 갈망이 행복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이 천년을 두 번 산다하더라도 행복을 누리지는 못하는 법이라고 한다. 구약성경의 사고 안에서 장수는 하느님의 선물로 생각하였다(창세 12,12; 2사무 24,3) 당시는 일부다처여서 백 명의 자녀를 두는 것은 반드시 불가능하지 않았다(2열왕 10,1; 2역대 11,21). 또한 제대로 묻히지 못할 신세는 사람에게 버림을 받는 것이고, 더할 나위 없는 불명예이며 하느님의 벌이라고 생각되는 커다란 불행으로 여겼다(2사무 21,10; 1열왕 상 13,21). 그러기에 오히려 그 보다는 ‘유산아가 더 낫다’고 한다. 유산아 역시 나을 것이 없다. 그 만큼 제대로 묻히지 못하는 것의 얼마나 버림받은 것인지를 어필한다.
‘그가 천년을 두 번 산다하더라도’ 이 말은 노아의 홍수 이전의 성조들의 나이를 기준삼아, 그 배수를 생각한 수이다. “모두 한 곳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한곳이란 땅으로 돌아가는 것, 혹은 어둠의 나라(셰올)을 가리킬 수 있다.
7-9절: 만족할 수 없는 인생
설교자는 인간의 온갖 노고가 제 입을 위한 것에 있지만 그 욕심이 채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 안에서 우리는 인생의 문제가 얼마나 먹는 것과 연관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잘 먹는 일은 일로써 얻은 즐거움과 식욕을 의미한다. 이 말은 ‘배의 만족은 모든 선의 근원이다’ 라고 주장하는 에피쿠로스파의 쾌락주의와 “모든 편견은 위에서 온다.”라고 주장한 니이체나 “의식이 차야 예절을 안다”고 하는 중국 속담 따위에 비유될 수 있다.
따라서 설교자는 진정 지혜로운 이가 어리석은 자보다 나은 것이 없으며, 인생살이(모범적인 삶)를 아는 가난한(겸손한) 이가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즉 지혜로운 이도 사람들 앞에서 생활방법을 알고 있는 가난한 사람도 모두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이의 모범적인 삶도 어리석은 자의 삶보다 나을 게 없다는 뜻인 듯하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것이 욕망을 뒤쫓는 것보다 낫지만 이 또한 허무요 바람을 잡는 일임을 말한다. 가시적이고 현실적인 가능성을 취하는 것이 욕망이 추구하는 환상적인 것보다 낫다는 격언으로 여겨진다.
10-12절: 운명과 무기력한 인간
8-12절에서 설교자는 이 책의 근본개념을 되풀이 한다. 곧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앞서서 결정되어 한계 지어진 것이다(3,14). 그리고 사람은 자기 인생에 대하여 어떤 변경을 가하거나 또 완전히 인생의 의미를 깨닫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지으신 것이며, 무지이기에 인생에 대한 수수께끼를 논의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존재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그 이름으로 불렸고”에서 이름을 짓는 다는 것은 존재를 생기게 하는 행위이다(창세 1,810; 이사 40,26). 존재하거나 생겨나는 것은 모두 그렇게 되도록 사전에 결정되었다는 말이다. 또한 “인간이 어떻게 될지도 이미 알려져 있다”에서 히브리말 아담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일반명사는 ‘땅, 흙’의 뜻을 지진 아다마와의 관계가 있다. 여기서 인간(아담)은 흙에서 빚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을 시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자기보다 힘센 분’과 따질 수 가 없다.” 에서 여기서 ‘힘센 분’은 하느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모든 것을 미리 결정하시는 분과 따질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그림자처럼 보내야 하는 허무하고 한정된 생애에서 자신에게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림자처럼’ 은 하루살이처럼 덧없이 지나가는 짧은 인생, 인생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표현으로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요기, 8,9; 시편 39,7 지혜 2,5 등). 즉 인생은 그림자 같다는 것은 성경의 전통적 이미지이다. “허무하고 한정된 생애”는 ‘그의 허무의 생애의 날들의 수’로 직역된다.
나오면서
코헬렛 6장 역시 우리에게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하게 한다. 태양 아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부와 재물과 영화, 장수 이 모든 것이 만족할 수 없는 것이며 채워지지 않은 갈망이며 욕심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혜로운 이도 어리석은 이도, 잘난이도 못난이도 나을 것 없는 허무요 바람을 잡는 일이라고 한다. 이것이 코헬렛의 설교자가 태양아래에서 본 불행이며 그것이 인간을 무겁게 짓누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허무의 깊은 의미 속에서 허무하지 않는 존재자를 찾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이며, 인간이 생을 통하여 알고 발견하게 되는 허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다. 허무함과 반대되는 영원한 충만으로 채워진 존재와 그분께 대한 신뢰와 의탁, 그분의 경외가 인간이 찾을 수 있는 참된 지혜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의미에 질문하고 또한 의미있는 일을 찾는다. 그 작업은 코헬렛의 설교자 시대에서 비롯하여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까지 주어진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한정된 생애 속에서 유한한 존재로 이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기때문이다. 유한성을 지닌 존재자에게 허무가 자리잡는 일에 어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지어내고 창조한 무한성을 지닌 창조주를 찾는 일은 어쯤 유한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작업이고 최선일 것이다. 코헬렛은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어떻게하면 우리의 인생이 의미있게 되고 영원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그것은 허무와 유한성 안에서 충만과 무한하신 분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 참고문헌: 구약성경 주해서,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2010, pp.1826-1828.
시서와 지혜서, 성서와 함께, 영원한 도움 성서 연구소, 1981, pp.148.
전도서 주해집(시편), 크리스찬출판사, 1986, pp. 27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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