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줍기(창세기)

성서와 교회문헌을 통해본 창세기 1-11

마리아 아나빔 2010. 8. 4. 11:05

 

 

창세기 1-11절을 마치면서                                                                                                      

 

 

하느님과 나,

나와 이웃,

나와 사물과의 관계

성서와 교회 문헌을 통하여 간단히 조명해 보자.

 

 

-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

 

  

“성서가 가르치는 대로,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창조주를 알아 사랑할 수 있으며, 창조주로부터 세상 만물의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만물을 다스리고 이용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사목헌장, 12항)

“ 주님께서는 사람을 당신처럼 여겨서 을 주시고... 지능을 나누어주시고... 말을 하게 하시어 당신의 업적을 풀이하게 하셨다. 사람에게 입과 혀와 눈과 귀를 주셨고 마음을 주시어 생각하게 하셨다. 또한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지식과 분별력을 풍성하게 주시고 선과 악을 분간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리고 당신의 위대한 업적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들의 마음속에 눈을 주셨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놀라운 업적을 영원토록 찬미하게 하셨다. 사람들은 거룩하신 분의 이름을 찬양하고 주님의 위대한 업적을 전하리라”(집회 17, 2.5-10)

 

    하느님이 인간에게 선사하신 능력 가운데 지성과 자유는 참으로 놀라운 선물이다. 인간은 이 능력을 발휘하여 하느님과 대화 상대자가 되어 건네시는 말씀을 알아듣고, 그분의 뜻을 따라 참된 행복의 길로 나갈 수 있으며 하느님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 인간이 지성을 가졌기에 하느님의 지혜로부터 빛을 받아 세기를 통한 꾸준한 노력으로 자연과학, 기술, 예술의 발전을 거듭해 왔으며 오늘에 있어서는 특히 물질세계의 탐구와 정복으로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 예지사람의 정신을 부드럽게 인도하여 진리와 선을 탐구하며 사랑하도록 이끌어 주므로 인간은 이 예지를 힘입어 유형한 세계를 통하여 무형한 세계로 옮아가는 것이다.

인간이 발명하는 온갖 새로운 것들을 보다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현대는 과거의 그 어느 시대보다도 이런 예지를 요구하고 있다. 과거의 더 높은 예지를 갖춘 사람들이 출현하지 않는 다면 세계의 미래 운명은 위험을 면치 못할 것이다.(사목헌장, 15항 참조)

    “인간은 오직 자유로써만 선을 지향할 수 있다. 현대인은 이 자유를 높이 평가하고 열심히 추구한다. 그러나 그들은 가끔 자유를 잘못 옹호한다. 자신을 즐겁게만 하는 일이라면 악이라도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는 방종까지도 자유라고 옹호한다. 그러나 참된 자유는 인간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을 말해주는 표지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원으로 창조주를 찾아 창조주를 따르며 자유로이 완전하고 행복한 완성에 이르기를 원하셨다.(사목헌장, 17항 참조)

 

    창세기에 나타난 창조 이야기는 하느님이 인간 창조에 쏟으신 노력이 다른 것에 비할 수도 없을 만큼 크셨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하느님이 이루신 모든 창조 사업의 최고 걸작품은 뭐니뭐니 해도 인간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느님의 입김을 받아 생겨난 인간이 지성과 자유를 갖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흠숭과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살아갈 때 하느님의 영광은 바로 그 삶의 현장에서 빛을 보게 된다.

 

 

- 나와 이웃과의 관계 -

   

오늘날 인류는 역사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특히 과학과 기술의 도움을 받아 어느 세기에도 누릴 수 없었던 편리한 물질적 생활과 경제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사회 홍보매체의 급속한 발전은 국가들 사이에 원활한 정보 제공과 긴밀한 교류를 가능케 하여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서 한 공동체임을 자각하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의 일치와 인간의 행복 추구의 수단이 되어야 할 과학발전과 문명의 이기, 사회홍보 수단이 정치가나 대기업가 등 영향력을 가진 소수에 의해 독점이 되어 권력유지와 상업주의와 그릇된 소비문화와 향락, 폭력을 부추기는 데 사용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위탁받아 가르치고 보살피는 임무를 맡고 있는 교회는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공감하면서 수많은 의혹과 문제에 계시의 빛으로 해답을 주고자 한다.성서인간이 깊은 본성으로부터 사회적 존재로 남과의 관계없이는 생존할 수 없고, 그 자질을 발휘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하느님 안에서 모든 인간은 한 형제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사목헌장 24.32항 참조)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카인에게처럼 우리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창세 4,9)고 이웃에 대한 책임을 묻고 계신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이야기는 오늘 내게 건네시는 예수님이 부르심이기도 하다. 강도를 만난 사람을 지나쳐간 ‘사제’‘레위사람’‘착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인물을 제시하면서 그 중 한 사람을 선택해 나가기를 나의 삶의 자리에서 촉구하고 있다.(루가 10,25-37)

 

 

 

- 나와 사물과의 관계-

 

 

“또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거룩하고 의롭게 다스리게 하시고 정직한 마음으로 통치하게 하셨습니다.”(지혜 9,3)

“과연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의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며 의롭게 성스럽게 우주를 통치하고 하느님을 만물의 창조주로 인식하며 자신과 전우주를 하느님께 바쳐드리라는 명을 받았다. 따라서 인간은 만물을 인간에게 복종시킴으로써 하느님의 이름이 전 우주에 빛나도록 해야 한다.(사목헌장 34항)

 

    인간은 창조주 하느님을 본받아 에덴을 가꾸고 돌보는 일, 곧 이 세계를 아름답게 건설하라는 엄중한 사명을 짊어지게 된 것이. 그러므로 인간 활동의 가치는 자신과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동하면서 동시에 사회에 다양한 모습으로 봉사하고, 이바지하는데 있다. 이렇게 자신의 노동으로 창조주의 일을 계속하고 형제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며 역사 안에서 자기도 모르게 하느님의 계획을 성취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 중 ‘원리와 기초’에서는 인간의 목적과 사물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잘 피력하고 있다.

“ 사람은 우리 주 하느님을 찬미하고 공경하고 그분께 봉사하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다. 땅 위에 있는 모근 것들은 다 사람을 위하여, 즉 사람이 지음 받은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사물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면 그 만큼 그것을 이용할 것이고, 또 방해가 되면 그만큼 배척할 것이다.”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동산을 돌보게 하시었다.(창세 2,15) 하느님은 지구를 인간이 살 만한 곳으로 꾸미시고 그곳에 사람이 살게 하시어, 다스리고 보존해 가도록 맡기셨다. 또 그렇게 해 나갈 수 있는 우주질서와 다스릴 힘을 마련해 주셨다. 하느님으로부터 관리자의 소명을 받은 인간은 과연 얼마만큼 그 의무에 충실했을까? 온갖 공업 페기물과 국가간 야욕과 이기심으로 인한 무기생산과 핵 폐기물, 무분별한 과잉생산과 과소비 등이 지구 환경을 파멸로 몰고 가고 있다. “지구를 살리자”는 범세계 운동을 실천하여 환경을 보존하고 창조주 하느님께 실천적인 찬미를 드리고 우리와 우리 후예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겠다.

 

 

 

※ 참고문헌: 구약성서 입문, 안토니오 지를란다/ 성염, 바오로 딸, 1996, p.171-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