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란?
우리는 수차례에 걸쳐 ‘신화’ 란는 단어를 접하였는데 이 단어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고대 신화들은 신들, 여신들, 그리고 고대의 영웅들을 무대에 등장시키는 역사처럼 표현된다. 처음 읽게 되면 조금 당황하게 되지만, 곧 거기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 이유는 그 신화들이 전개해 나가고 있는 이야기는 우리들 역시 지니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세상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어째서 죽음과 고통이 생겨나는가? 무슨 이유로 이성 간에는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인간과 신과의 관계는 과연 어떤 것인가?
그러므로 신화란 우리가 우리 안에 지니고 있는 중대한 문제를 취하여,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신들의 시간인, 시간이 생기기 이전의 시간 속으로, 곧 비현실적인 세계 속으로 역사의 형태를 빌려 투영시키는데 있다. 이러한 신들의 역사는 변형된 우리의 역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역사는 인간이 따라야만 하는 모델인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이성 사이의 매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어떻게 다산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한다. 인간은 신들과 여신들이 서로 사랑하
고, 짝이어, 아기를 출산하는,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세계를 상상한다. 신들이란 우리 실존의 비현실적인 정이에 불과한 까닭에, 그들이 그처럼 풍요롭다면 존재하도록 해야만 한다.
의식들은 그래서 그들을 짝짓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바빌론에서, 아니면 가나안 사람들이 말하는 높은 곳에서, 거룩한 창녀들과의 결합은 대향연이 아니라 오히려 땅의 비옥함을 위해 거행된 종교의식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화적 역사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역사들은 인류의 최초의 숙고인 것이다. 우리는 성서가 자신의 고유한 숙고 내용을 표명하기 위해서 이러한 표현들을 취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성서는 그런 표현을 근본적으로 변형시킨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서가 저급한 소설을 심리학적 소설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한편의 멋진 심리학적 소설의 예를 들어 보자: 이 소설은 기쁨과 어려움을 공유하고 있는 한 쌍의 부부를 무대 위에 내세운다. 이것은 얼핏 보면, 저급한 소설과 유사하다고 판단할 수 있으나 그것과는 정반대이다.
이 소설은 우리를 꿈속으로 도피하게 하지 않고,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게 하는데 그것은 이 소설이 상이한 부부들을 수없이 관찰한 저자에게 의해서 씌어졌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존재에 대해 숙고케 하고 그러한 우리의 존재를 우리 자신의 것이 되게 한다.
성서는 이러한 중요한 신화들 - 특히 창조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그러하다-에서 영감을 받아 우리의 역사 안에 개입하시어 인간을 자유롭게 해 주고자 하시는 유일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관점에서 그러한 것들을 다시 숙고한다.
* 참고문헌: 구약성서 길잡이, E. 샤르팡티, 안병철, 성바오로 출판사, 1991,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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