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둘레길

빈센트 반 고흐, 삶의 열정을 그리다.

마리아 아나빔 2010. 12. 3. 15:49

 

 

 

 

빈센트 반 고흐,

삶의 열정을 그리다.

 

 

 

 

우리의 삶이 순례자의 길이라는 믿음은 매우 오랜된 선한 믿음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땅의 이방인이지만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는 절대 외롭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순례자이고, 지상에서 우리의 삶은 천국으로의 기나긴 여정에 불과 합니다.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의 독실한 개신교 칼뱅주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본인 역시 목사의 꿈을 품었다가 결국 회화가 하느님 예찬과 복음 전파의 수단이라고  믿고 화가의 길을 선택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감동적인 신앙고백이다.

 

 

 

당시 유럽 화단에 출현한 인상주의가 시각적 사실주의와 빛의 표현에 몰두했다면, 고흐의 표현주의적 화풍은 본질적인 정신성을 표출하는 수단이었다. 그는 자신의 독창적이고 강렬한 내적 갈등과 열정을 소용돌이치듯 살아 꿈틀거리는 붓 터치로 담아냈다. 안트베르펜에서 몇 개월간 받은 미술교육을 제외하고는 집요한 독학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이며 개성 넘치는 화풍을 찾아낸 그는 '후기 인상주의', '표현주의' 또는 '모더니즘의 개척자'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예술가로 자리잡고 있다.

 

너무 앞서간 예술 서계를 펼쳐 평생 단한 점의 작은 그림만 팔렸을 뿐이지만 오늘날 미술 시장에서 가장 사랑받고 고가에 판매되는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씁씁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비운의 예술가가 자신의 동생이자 후원자였던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 750여 통이 남아있어서 그의 개인사적인 기록, 내면세계와 철학을 상세히 살펴 볼 수 있다.

 

 

27세의 늦은 나이에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는 가식과 영화가 없는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서 진정한 하느님의 모습을 찾았다. 그래서 그는 가난한 농부나 광부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는 처음에 갈색 계통의 매우 어두운 색조를 사용하다가 새로운 유행의 중심인 프랑스 파리에서 인상주의 의 밝은 색채와 빛, 그리고 일본 목판화의 대담안 구도와 색채 등을 발견한 뒤 이를 바탕으로 그만의 독창적인 표현을 구촉하기에 이르렀다.

 

 

작품 '씨  뿌리는 사람' 속의 화면 밖으로 잘려나가는 대담한 구도와 검은 윤곽선 안에 강렬한 원색이 갇히는 등의 표현에서는 일본 목판화의 영향이 여실히 드러나고, 역광을 받아 짙은 검정색으로 묘사된 굵은 나무와 오른쪽 화면 아래 모서리에 대각선으로 서있는 표현, 그리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대각선으로 치닫는 바이올렛 빛깔의 밭은 화면에 역동성을 부여해 주고 있다.

 

또한 고흐의 정신적 지주이자 '이삭줍기', '만종'으로 널리 알려진 자연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씨 뿌리는 사람'을 여러 차례 그렸는데, 고된 노동의 숭고함과 성실함이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그의 표현이 고흐에게 영감을 주어 그 작품을 모사하게 하였다. 그림은 고흐가 프랑스 남부 아를르에 머물 당시 그린 것으로, 곡물의 씨가 가득 든 큰 자루를 들고 힘차게 앞으로 발을 내딛는 남자의 머리 뒤에는 이글 거리는 거대한 태양이 마치 성인의 후광처럼 강렬하게 빛나고 있다. 이는 가난한 삶 속에서 성실한 땀과 진실성이 묻어나는 사람만이 진정한 성인이라고 믿는 그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고흐의 작품에서 씨뿌리는 사람과 곡식은 '영원성'의 상징으로,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 꽃을 피우고 수확하는 최초의 행위는 씨 뿌리는 데에서 비롯되고 이는 바로 생명의 태동을 의미한다.

 

 

 

 

고흐가 밀레 작품의 정신을 담아내려고 그의 작품을 많이 모작했듯이, '피에타' 역시 그가 존경하는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외젠느 들라크루아(1798-1863)의  작품을 모사한 것이다. 물론 인물의 구도나 표현은 들라크루아의 그림과 닮았지만, 아카데믹한 갈색의 색조가 지배하는 그림을  그린 들라크루아와 달리 고흐의 표현은 정열적이고 거칠다. 짧게 끊어지는 붓 터치는 살아 꿈틀거리는 느낌과 동시에 화면에 역동성을 부여해 준다. 해질 무렵인지 해 뜨는 시점인지 강렬한 노란 빛을 비추이는 하늘을 배경으로, 천상의 푸른 옷을 입고 두 팔을 뻗어 십자가에 내려진 아들을  감싸 안는 성모 앞에는 벌써 부패가 시작된 듯 죽음을 연상시키는 불쾌한 녹색 붓 터치로 그려진 예수가 있다.

1889년에 그린 이 작품은 그가 자신의 귀 아랫부분을 면도칼로 잘라내는 자해행위를 하고 프랑스 남부 생 레미 정신병원에 수용되었을  당시 그린 것으로, 이 세상 속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삶에 지친 고독한 고흐가 성모의 품에 안겨 평온한 안식을 취하고픈 마음을 표현한 것을 아닐까. 전체적으로 밝은 톤으로 채색되었음에도, 빛깔의 차갑고 우울한 색채는 다음 해에 닥칠 그이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

 

 

 

 

'까마귀 나는 밀밭''폭풍우  구름 아래의 밀밭'은 고흐가 동생 테오를 따라서 프랑스 북부에 있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이주하여 살면서 그린 작품으로, 그는 그의 보호자이자 의사며 미술 애호가인 폴 가셰의 집에 머물며 마지막으로 뜨거운

창작열을 불태웠다.

 

황금빛으로 물든 밀밭 중앙에는 꾸불거리며 이어지는 길이 있고 이는 파란 하늘아래 드 넓은 수평선에 맞닿아있다. 그 위에는 마치 까마귀들이 '깍깍' 울어대는 불길한 소리가 생생하게 드리는 듯 전율이 전해진다. 극도의 불안감과 외로움,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  테오에게 짐이 되는 존재라는 상실감이 극에 달한 고흐는 7월 27일, 바로 이 밀밭에서 가슴에

총을 쏘고 이 틀간 고통스러워하다가 사랑하는 동생 테오가 보는 앞에서 눈을 감는다.

 

 

 

 

'폭풍우 구름 아래의 밀밭'에서는 거센 폭풍우가 방금 지나간 직후의 풍경으로, 왼편의 구름이 걷히고 난 자리에는 화사하고 따스한 햇살이 느껴지는 '편화'가 찾아든 장면이다. 앞의 그림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공포를 느꼈다면, 여기서는 죽음의 두려움 뒤에 영원한 평온의 안식을 찾은 고흐를 발견하게 된다. 위의 두 작품 중 어느 작품이 진정 최후의 작품이었는지 알 길은 없으나 그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세상에 살면서 사랑의 복음을 전파하고자 오로지 진실됨과 선함을 추구하며 외롭게 살다가 간 그의 마지막 작품 '폭풍우 구름 아래의 밀밭'이기를 소망한다.

 

세상은 모두 그를 외면했지만, 따스하고 인자한 대자연, 곧 하느님만은 그를 저버리지 않고 그 한없이 넓은 품 안에 안았다. 고흐가 화가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볼 수 있듯 회화를 통해 자연 속에 묻어있는 '무한', 곧 '하느님'을 만나려 한 고흐의 고백이 깊은 공감과 감동을 준다.

 

 

 

" 나는 모델 없이는 작업을 할 수 없다네. ... 나는 형태에 관한 한, 가능성과 진실에서 벗어날까 봐 두렵네. 10년 더 그림을 공부한 뒤에도 그러겠다는 말은 아니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나는 가능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네. 때문에 추상적인 습작을 통해 이상적인 것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도, 용기도 없네.

 

... 한편 나는 자연과 더욱 친밀해지고 있다네. 나는 과장하고 때로는 동기에 변화를 주지만

 그것을 위해 전체 그림을

 조작하지는 않네. 오히려 나는 그것이 자연 속에 이미 존재하며, 그것은 다만 자연에게서 해방되어야만 함을 안다네."

 

 

 

 

 

-경향잡지 (2010, 10), 빈센트 반 고흐, 삶의 열정을 그리다, 박혜원-

 

 

 

 

p.s: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특히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신의 아름다움을 찾고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하느님을

고독 속에서

자신의 회화세계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했던

열정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