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장들의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하느님
궁켈(H. Gunkel)의 뒤를 이어서 양식 비평 분야와 이스라엘 역사 분야에서
혁혁한 공헌을 이룩한 알트(A.Alt)는
1929년에 매우 특별한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즉 탈출기 의 두 부분 (E 에 속한다고 추정되는 3, 13-15과 p에 속한다고 추정되는 6,2-3)에
등장하는 '하느님을 지칭하는 표현'에
주목하면서 이를 통해 이스라엘 신관의 변화를 추적하였다.
탈출기 3장에서 15절에서 하느님의 정체는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이라고 제시되어 있고,
이 표현을 "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과 동격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의 의미는 본문이 위치하고 있는 보다 큰 문맥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이 본문의 전후 맥락은 모세가 하느님의 이름을 여쭈어 보고 이에 대하여
당신의 이름을 명시하시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알트는 이러한 흐름 안에서 3장 13-15절의 표현은, 모세에게 새롭게 제시된
'야훼'라는 이름과 그들의 '조상들이 섬겨온 하느님'
사이의 동일성 내지 연속성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안된 표현이라 주장하였다.
알트는 탈출기 안에서 이러한 시도가 이루어진 까닭은 모세 이전의 종교(즉 초기 이스라엘, 족장들의 종교)와
모세 시대의 종교(야훼 종교)가 사실은 동일한 것이 아니었음을 역으로 드러내는 단서라고 확신하였다.
즉 원래는 서로 차이를 가지고 있던 초기 이스라엘의 종교와 모세의 종교가
성경 저자들의 신학적 의도하에 상호 조화되고 통합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탈출기 6장 2-3절의 표현을 통해서도 다시금 확인된다.
조상들에게 하느님은 '전능하신 하느님'으로만 계시되었지
'야훼'라는 이름으로는 계시된 적이 없음을 표명하면서 이 두 시대의 사이의 간극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6장의 내용도 잘 읽어 보면, 이 다른 이름(전능하신 하느님/ 야훼)이 사실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님을 제시하는 것이 본문의 궁극적 의도임을 발견하게 된다.
서로 다른 균열을 함께 조합함으로써 '조상들의 하느님'과 '야훼'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그분' 이
서로 다른 분이 아님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탈출기 3장과 6장의 표현은 이스라엘의 종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드러내는 본문으로 간주될 수 있는데,
이 표현들을 통해 모세가 체험한 하느님은
그들 조상 때부터 믿어 온 바로 '그분'임을 강조하는 신학적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아주 초기 단계의 구약 성경 본문들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환경은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과는 매우 다른 세계관, 종교관, 인간관을 가지고 있었다.
성조 시대로부터 거의 4000년이 흘렀음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차이는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자들은 현재 그리스도교에서 믿고 고백하는 하느님과,
아브라함이 믿고 그이 자손들이 고백한 하느님이 동일한 실체였을지에 대하여 수 많은 논쟁을 거쳐왔다.
이 주제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다음 두 가지 입장으로 정리 될 수 있다.
1) 보수적 이해
보수적 노선의 입장들은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하느님' 이 후대 이스라엘이 신앙하고 고백하던 하느님과
동일한 하느님이라고 본다. 즉, 족장들이 믿었던 종교는 후대 이스라엘의 종교와 전혀 다르지 않았으며,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는 모세 종교의 서곡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2) 진보적 이해
진보적 이해는 벨하우젠 이후 톰슨(T..Thompson)과 판 세터스(J. Van. Seters)등에 의해 주장된 견해로서,
이들은 족장 설화의 역사성과 그들의 종교에 대하여 분명한 이의를 제시한다.
족장들의 이야기(대부분이 J전승)는 사실 왕정 시대에 저술된 것이기에
성경에 등장하는 족장들의 하느님은
엄밀한 의미에서 왕정 시대에 널리 알려져 있던 '왕정 시대의 하느님'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요 논지였다.
특별히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알트는,
실제적으로 족장들시대에 섬기던 하느님은 왕정 시대의 하느님과 명백히 구별되는 존재임을 주장하였다.
크로스 (F.M.Cross) 역시 알트의 주장을 기초로 자신의 의견을 심화시키는데,
그는 특히 하느님의 이름 '엘'에 주목하였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주로 '엘', '엘로힘'으로 등장하지만,
'엘 올림'(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느님: 창세 21,33), '엘 엘리욘'(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창세 14,18), '엘로이'(저를 돌보시는 하느님: 창세 16,13), '엘 샤다이'(전능 하신 하느님: 창세 17,1) 등으로 불리고 있다.
크로스는 이 이름들이 각 지역마다 불렸던 엘 신의 다양한 별명들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3) 종합
위에서 간단히 요약한 내용만을 가지고는 이에 대한 학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표현했다고 할 수 없고,
더구나 이 문제는 현재의 신앙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민감한 주제여서 단순하고 섣부른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여기에서는 에대한 학계의 전반적인 입장을 정리하여 제시한 바 있는
클라우스 베스터만(C. Westermann)의 입장을 제시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 최근 학자들 대부분은 족장들의 이야기가 초기 왕정시대, 즉 야훼 종교가 이미 이스라엘
내부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시대에 형성되었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이는 적어도 야훼계 전승의 저자들에게 그들의 하느님은 오래 전부터 '야훼'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은 그들이 저술한 족장들의 이야기에 당연히 반영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성경에 등장하는 족장들의 하느님은 '야훼', 하느님'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둘째, 족장들이 실제적으로 믿었던 하느님은 하나의 모습으로 획일화되어 제시될 수 없다.
고대 족장들은 매우 다양한 형태의 관습과 삶을 배경으로 살고 있었고
매우 산발적인 형태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종교 형태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족장들의 종교를 하나의 통일된 종교 형태로 제시하는 것은
실제 상황을 너무도 단순화시키는 설정일 수 있는 셈이다.
섯째, 이스라엘의 역사는 매우 장구한 시간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고,
따라서 그들 종교의 역사 역시 매우 다양한 것이었다. 이러한 오랜 역사 과정 안에서
왕정 시대 야훼계 저자들이 고백했던 하느님의 기원이 언제 어디에서부터
도래했는지를 명확히 추적해 내는 시도 자체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이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었을 지라도
이 세 족장이 자신들의 하느님으로 섬긴 분은 모세와 그 이후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신앙했던
그분과 다른 분은 아니시라는 점이다.
비록 호칭과 이름은 달랐을 지 모르지만 세상에 절대권을 행사하시는 절대자
'그분'에 대한 표현이었음에는 틀림없었다는 것이다.
- 모세오경, 생활성서,김혜윤, 2005, P. 133-1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