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카에 대하여
탈출기 12장은 ‘유월절’ 혹은 ‘과월절’ 이라고도 불리는
‘파스카’ 전례를 등장시키고 있다.
이 축제는 원래 유목민들의 축제였는데,
목초지를 떠돌며 생활하던 유목민들이 봄에 목초지를 바꾸기 전,
긴 여정을 떠나기에 앞서 거행한 예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앞으로 마주하게 될 알 수 없는 미래를 신께 의탁하며
재앙을 멀리하고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을 간청하며 이 예식을 거행하였다.
이 예식은 씨족별로 가축을 잡아 피를 천막 입구에 바르는 행위를 포함하고 있었다.
고대인들의 사고에 의하면 피는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악귀’를 막아 주는 위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천막에 피를 바르는 의식은 탈출기 12장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데,
이는 고대 유목민들의 제사가 야훼 신앙 안에 유입되면서
고착된 상황을 성경 저자들(제관계로 추정됨)의 작업을 통해 신학적으로 정리한 결과로 추정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키고 있었던 파스카 예식을 이집트 탈출 전승과 결합시켜 제시함으로써
이 예식이 가지는 절대권을 부각시켜 놓았던 것이다.
유다인들은 이 축제를 ‘페샤흐(חספ)’ 라고 불렀고, 이것을 아람어로 옮기면서
‘Pascha'라는 단어로 음역되었으며,
라틴어 역시 이를 음역하여 ’파스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절기가 이스라엘의 3대 순례 축제에 들어온 것은 요시야 개혁과 관련된다.
요시야는 이스라엘의 정치력을 한곳에 집중시키기 위해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고
무엇보다도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권 체제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요시야의 정치 노선에 맞추어 이스라엘의 모든 성인 남성들은
파스카를 더 이상 거주지에 속해 있던 지방 성소에서 지낼 수 없었고,
모두 예루살렘으로 와서 지내야 했다.
과월절과 비슷한 절기로 ‘무교절’이 있는데,
이는 본래 농경사화의절기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교절은 누룩없는 (무교)빵을 먹는 예식으로서 누룩을 치우고 새 누룩을 먹는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 예식 역시 탈출기 12장에 등장하는데,
시급히 이집트를 탈출해야 했던 이스라엘은 누룩을 넣어 빵을 구울 시간이 없었고(12, 11, 39),
그래서 누룩 없는 빵을쓴나물과 함께 먹는 것으로 되어 있다(12, 8).
이처럼 농경민들의 축제였던 무교절과 유목민의 축제였던 과월절은 서로 구별되는 것이었지만,
‘옛 시대’를 접고 ‘새 시대’를 연다는 의미에서 서로 상통되었기 때문에
후대에는 분명한 구분 없이 서로 쉽게 동화되어 거행되었다.
탈출기 12장에서와 같이 예수님 시대의 기록에서도
이 두 축제는 그 형태가 이미 혼합되어 거행되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마지막 만찬을 지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파스카 양을 잡고(과월절 풍습),
무교병과 포도주를 드심(무교절 풍습)이 함께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 26, 17-30;마르 14, 12-26; 루가 22, 7-20).
이러한 동화의 흔적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기념하는 부활절 축제를
파스카 전승의 토대 위에 수립하기 때문이다.
파스카에 사용되는 흠 없는 어린 양은 죄 없는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로 대치되고,
이로써 인간의 모든 악과 죄는 사함을 받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인류는 새 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즉, 과월절과 무교절이 새로운 시대의 영입을 기념하는 축제였듯이,
그리스도교의 부활절 역시 새 시대의 시작을 경축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상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그리스도교 교회는 과월절에 해당하는
아람어 ‘파스카’를 부활절을 지칭할 때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 모세오경, 생활성서,김혜윤, 2005, P.149-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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