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나눔: 창세 1.3-2,4
시작기도: 이사 40. 8; 기도문
풀은 시들고 꽃은 지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창세기: 창세기는 그리스어의 Genesis 로‘기원’을 뜻하는 말이다. 모세오경 첫 권이며 광범위한 입문으로 우주와 인류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전제로 히브리 민족의 기원을 이야기 한다.
1-11장: 우주와 인간의 기원 및 인류 시조의 사적
12-50장: 히브리 민족의 원조 아브라함 가문의 역사를 다룬다.
하느님을 하늘과 땅의 창조주로 고백하는 신앙이 담겨 있는 ‘이스라엘의 작은 역사적 신앙 고백문’이라 할 수 있다.
1. 창세 1.3-2,4의 말씀의 배경
- 세상 창조에 대한 이 이야기는 기원전 586년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빌론에 패망하여 그 수도 바빌론에 포로로 끌러가서 539년 풀러날 때까지 귀양살이 하는 동안에 사제계급들이 작성한 것이다. 이들은 해이해져가는 안식일 준수정신을 되살릴 목적으로 그리고 하느님의 유일하심을 주장하는 주제(야훼를 유일하신 하느님)와 결부되어 강력하게 이 설화를 작성한다.
- 바빌론 유배시절의 사제들은 모세오경의 최종편집자로 간주되고 있다. 그리고 모세오경의 또 다른 편집자들로서 야휘스트와 엘로히스트와 신명기 저자들을 들 수 있다.
1) 야휘스트(악자 J): 솔로몬 왕궁의 서기관들로서 하느님의 이름을 야훼로 부르고 하느님을 인간의 언어와 행동 양식에 비추어 표현한 의인화의 수법에 능함
2) 엘로히스트(E): 하느님을 엘로힘이라 부르던 북왕국 이스라엘의 문필가들로서 의인화의 수법을 지양하고 그 대신 꿈이나 현시를 통하여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3) 신명기 저자(D): 수사학적인 표현을 삼가면서 메시지를 단도직입적으로 전달하고 하느님께 대한 신실한 복종을 강조한다.
4) 사제계(P):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빌론에 패망하여 그 수도 바빌론에 포로로 끌러가서 539년 풀러날 때까지 귀양살이 하는 동안에 사제계급들이 작성한 것이다. 모세오경의 최종 편집자로 간주된다.
야휘스트 전승과 엘로히스트 전승은 주로 설화를 담고 있고, 신명기계와 제관계 전승은 율법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신명기만을 담고 있는 신명기계 전승을 제외하고 다른 세 전승들은 모세오경의 처음 네 권에 골고루 섞여 있다.
학자들은 이 전승들이 역사이든 율법이든 간에 아주 다양한 상상적 환경에서 수집 집대성하게 된다고 말한다.
- 왕국과 그 측근들
- 예언자와 제자들의 집단
- 사제단 혹은 성소 예배소(예루살렘, 배델, 길갈, 실로) 제 각기 특이한 색채를 띰
이 네 그룹이 저자들이 창세기의 서로 다른 부분을 작성하고 손질했기 때문에 세부사항에서 중복과 충돌, 논리적 단절 등등 문학적 결함들이 발견되고 있다.
2. Text의 내용 안에서
- 한 처름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이 말은 하느님께 드리는 신앙 고백문 이다.
즉 거대한 혼돈(chaos)- 말씀을 타고 신간이 역사 안에 들어옴(시간을 타고 하느님의 개입이 여러 번 가해지면서 - 질서 잡힌 우주가 창조됨(cosmos).
- 하느님께서는 일정한 순서에 입각하여 우주를 창조하신 것으로 기록된다. ex) 무생물- 식물과 동물 그리고 하느님의 모상이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창조함. 여기서 우리는 질서와 체계를 존중하는 사제들의 특징적인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
ex) 첫 째날: 빛과 어둠 나흘날: 해, 달 , 별
둘째 날: 창공 다셋날: 새 물고기
셋째 날: 마른 땅 풀나무 여섯째 날: 육지 동물과 남자와 여자
이 모든 창조는 정확한 상관관계를 가진다. 즉 첫 세 날은 뒤의 세 날들을 위한 공간 내지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된다.
- 하느님은 우선 빛을 창조하신다. 빛과 대조를 이루는 어둠은 부정적 요소로서 하느님의 창조 과정에서 제외된다. 빛과 어둠으로 낮과 밤이 구별되어 이제 하느님의 창조는 날수가 헤아려지는 가운데 진행될 수 있게 된다.
ex) 역사 안에서 시간의 개념이 등장함.
- 하느님께서 먼저 말씀을 하시고 그 다음 하늘과 땅, 인간과 동물을 만드신다.
ex) 말씀에 대한 사제들의 관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남, 즉 성서 저자가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영적인 요소가 말씀이라 생각하였다. 이 말이란 것은 본성상 의사소통과 이해의 수단으로 전형적인 인간관계를 이루게 하는 요소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창조는 명령과 실행 이라는 이중도식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제관계 전승의 전형적인 구도로 이스라엘의 사회 종교적 질서는 이 명령과 실행의 구도로 소급된다. 즉 만사가 명령을 내리시는 하느님의 말씀의 힘으로 존재한다.
하느님의 업적은 언제나 말씀이고, 하느님의 말씀이 업적이 되는 것은 그 말씀이 위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의 역사와 살아온 삶을 통해서 하느님 말씀의 위력을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ex)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 낮과 밤을 다스리는 창공의 빛나는 것들 은 해와 달을 가리키는데. 일부러 해와 달이라고 명시하지 않은 것은 주변 민족들이 해신과 달신의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드는 과정 안에서 우리 모습을 닮은 이라는 표현은
1) 남자와 여자의 두 분류로 이루어진 인간은 서로 아무런 차별 없이 하느 님의 모상과 닮은 존재로 창도되었음을 볼 수 있다.
2) 하느님이 말씀을 건네실 수 있는 존재, 대화자, 자유와 지성을 구사하고 더 나아가서 하느님께서 ‘너’라고 부르시며 의사소통을 하는 대상
ex) 여기서 친교와 계약 그리고 예언자들이 말했던 혼인 계약(호세아) 등이 가능하였다.
3) 인간에게 자신의 ‘원형’있다는 것이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기에 인간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면서 하느님이 ‘너’라고 부르는 말 상대임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격적인 관계, 예수님께서 벗이라고 부름)
4) 인간의 자신의 조건과 소명을 재 각성
ex). 우리는 시편 8장 5절에서처럼 하느님이 천상조정의 관리들인 천사들과 상의 하는 것을 뜻 할 수도 있고.
. 히느님의 이름을 가나안의 신“엘”복수로 만들어 엘로힘이라고 부르 는 경우처럼 하느님의 위엄과 충만성을 드러내기 위한 표현일 수 있 다.
두 해석 모두 경신례 안에서 하느님의 천상적 위엄을 최대한 드높이려 했던 사제들의 경건한 태도와 연결된다.
-그러면 '모습을 닮은' 이라는 표현의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닮다는 표현은 모습이라는 말에 내포된 동등함이라는 개념을 배제시키기 위해서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사제들의 태도가 아주 신중했음을 엿볼 수 있다. 우리 모습 곧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이란 동물이 갖추지 못한 인간의 지성, 의지, 위엄을 나타내는 것으로 신학자들은 해석해오고 있다. ex)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신학대전에서 이를 일컬어 하느님의 모상성(Imago Dei)라고 하면서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과 닮은 가에 대하여 특히 인간이 지닌 그의 '지성의 활동'으로 이를 설명하려했다.
결론적으로
사제들의 이 표현으로 하느님께서 인간을 다른 피조물의 관리자로 내세우시기 전에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시고 이 관계를 통하여 마땅한 자격과 권위가 인간에게 주어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 쉬셨다 는 표현은 안식일의 기원을 말해준다.
히브리어로 안식일은 쉬다 라는 뜻의 동사‘사밧(shabat)'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1) 사밧의 인간-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시듯, 쉬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는 우주만물과 달리 멈추어 설줄 알고, 안식일 즉 휴식을 지킬 줄 안다. 이것은 기력을 회복하고 일을 계속함만이 아니라 자기의 ‘원형’이 되시는 분과의 활성화를 위함과 만남을 위한 것이다.
. 우리 존재의 확실성 확인(원형)
. 감사와 찬미를 받치는 날
. 수고와 노동을 쉬고서 자기 삶과 활동에 균형과 중심을 주는 날
.하느님께서 따로 보류하신 시간(안식일을 축복하심- 생명 풍요, 연속성)
2) 후에 안식일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의해서 ‘주님의 날’로 이어받음
-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이 표현은 여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그것은 하느님은 작품을 만드시는 6일 동안 내내 만족해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당신 마음에 꼭 드는 세상을 당신의 모습대로 지으신 사람에게 넘겨주어 다스리고 관리하라고 명하신다. 이로써 창조주의 원초적인 계획이 이루어졌다.
-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근 것은 ‘선하다’ 이것이 당대 저자로서의 근본가르침이었고, 특히 이교들의 환경에 비추어 볼때 기초가 되는 가르침이다.
- 인간은 창조계를 ‘인간화’ 라고 부름을 받았지, 정복 악탈 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선사하신 ‘좋은 것’ 으로 인간도 ‘좋은것’을 하도록 부름받았음 즉 자연의 구원과 인간의 구원이 서로 밀접히 관련됨(히브리성서에서 자연이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 피조물로써 모든 면에서 그 창조주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실제로 자연의 법칙에 ‘페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부단히 개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아름답게 지으셨고 그 세상의 관리자도 선정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엿샛날을 마감하시면서“좋았다”라는 표현을 각별히“참”이라는 부사를 덧붙여 당신이 하신 모든 일에 대해 감탄하기까지 하셨다.
창세기의 다른 부분에서는 낙원을 잃어버린 인간의 처절한 고통과 슬픔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지만 창세기의 저자는 근본적으로 낙관주의자이다. 그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인간 중심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창세기 첫 장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보다 좋은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건설하고 보존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초대이다. 이 초대를 무시하고 거절하면 인류는 동료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태계를 파괴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그분의 아름다운 세상을 건설하는 데 한몫을 다합시다.
마침기도: 시편 8
* 참고문헌:구약성서입문,안토니오 지를란다/성염,바오로딸,2001,p.129-141.
하느님과 함께 걸으며, 정태현, 생활성서사, 1990,p.18-21.
성서의 길을 따른 여정, 생활성서사, 1987,p.26-28.
'창세기 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 2,4b -7 (0) | 2010.06.17 |
---|---|
우리의 이야기들을 담은 설화 - 창세 2, 5-25 (0) | 2010.06.17 |
창세기 입문(1-2장의 말씀 안에서) (0) | 2010.06.17 |
성서를 읽기 전에 바치는 기도 (0) | 2010.06.17 |
성서 나눔 시작 기도문 (0) | 2010.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