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빈센트의 향기를 성경 안에서

요셉의 삶 안에서 만나는 성 빈센트와 그의 영성

마리아 아나빔 2011. 4. 26. 16:55

 

 

 

 

                                              요셉의 삶 안에서 만나는 성 빈센트와 그의 영성

 

 

들어가면서

 

     요셉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큰 전환기를 이룬 사건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해서 이집트로 이주하여 살게 되었는지 또한 아시아의 유목민인 히브리인이 이집트를 벗어나 팔레스티나를 점령하게 된 사실이 설명되기 때문이다. 또한 요셉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섭리를 찬양하고, 후에 욥과 토비트에 나타나는 고통의 문제 해결에, 최초의 빛을 던지는 것이 된다. 야곱의 가족이 이집트에서 성장하고 번영하는 것은 바로 요셉을 통해서이다. 이러한 요셉 이야기는 창세기 후반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37-50장). 그리고 하느님은 요셉을 통하여 야곱과 그의 가족을 구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요셉의 구원 뿐 아니라, 형들의 흉계도 하느님의 계획에 이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요셉의 이야기는 악에서 선을 끌어내시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성서저자들은 요셉 이야기를 사용하여 또 다른 유형의 하느님의 사람을 묘사한다. 우리는 아브라함에게서 유순한 신앙을 발견했고, 야곱에게서는 하느님과 자신의 재능에 의지하는 진취적인 인간을 목격했다면 이제 요셉에게서는 그 생애가 하느님의 지배를 받는 인간, 순수한 재능을 최대의 특징으로 지닌 인간을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요셉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가려는 시도를 결코 하지 않는다. 사실 그에게는 그렇게 할 만한 기회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하느님의 섭리에 온전히 신뢰를 두고 의탁하며 살았던 요셉의 삶은 16C 암흑기의 유럽을 살았던 성 빈센트의 삶과 신앙의 영적 여정의 측면에서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성 빈센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자신의 최고의 규범으로 삼고 그분께 집중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이었던 그의 삶에는 몇 가지 두드러진 영성적인 주제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하느님의 뜻’,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 ‘관상과 활동의 조화’, 그리고 ‘하느님 현존 의식’이다. 이러한 영성적 요소들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셨던 삶 속에서처럼 그리스도의 인격을 살려했던 성 빈센트 삶에 깊은 상호 관련성을 지니며 서로 보완하는 영적 요소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므로 특히 여기서는 하느님의 섭리’ ‘하느님 현존의 삶’ 그리고 ‘하느님이 인간을 찾아오심과 그 안에 거주하시고 돌보심’ 끝으로 ‘요셉과 성 빈센트의 신앙 여정 안에 일어났던 몇 사건들’ 함께 아울러 보면서 하느님이 어떻게 인간을 사랑하시고 돌보시는지 느껴보고자 한다. 또한 인간 안에 내재하시는 하느님을 알아 뵙고 충실하게 섬기며 봉사함으로써 그분의 구원사업에 협조하는 두 인물의 삶을 통하여 신앙적 태도를 배우고자 한다.

 

 

1.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요셉의 이야기 안에서 성서 저자는 하느님께서 가련한 처지의 요셉을 돌보아 주셔서 그의 앞길을 열어 주셨다고 보고하고 있다. 즉 그의 삶 전체에 ‘하느님의 특별한 손길’이 함께 하셨다는 것 그리고 요셉은 그것을 깊이 있게 인식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특별한 손길’이란 바로 매사에 하느님이 돌보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에 대한 의탁과 신뢰인 ‘하느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다. 요셉은 그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하면서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의 매순간의 삶을 충실함으로 채울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매순 간의 사건들이 바로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깊이 있게 인식했기에 “꿈을 푸는 것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라고 그의 전 존재로 고백할 수 있었다. 이 말의 의미는 요셉이 꿈의 올바른 해석을 인간적인 지식이나 마술에 돌리지 않고 하느님의 능력으로 풀려고 한다는 것 안에서도 볼 수 있다. 즉 하느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사람을 통해서 꿈의 뜻을 밝혀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꿈을 올바로 푸는 것은 하느님의 힘으로 되는 것이지 인간이 만든 풀이에 따라서는 되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꿈을 통해서 그들의 운명이 이미 알려진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반면에 요셉은 자기가 꿈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능력으로 인한 것이 아닌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그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그리고 하느님이 직접 자신 안에서 함께 하시며 하시는 일로 생각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 말은 자신의 능력을 믿는 이집트인들과 달리 요셉은 존재론적으로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믿고 자신 안에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깊이 알고 느끼고 그의 삶 속에 함께하면서 그분의 현존 속에 살아가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아니 그분께서 손수 요셉에게 찾아오셔서 사셨다.

 

      그러므로 요셉의 삶의 여정 안에서 부딪히게 되는 많은 시련의 여정들, 아버지 야곱의 편애로 형들의 질투를 받아 이집트까지 노예로 팔려오고, 그곳에서 포티파르 부인의 유혹에 직면하고 그로 인해 감옥에 갖히는 이 모든 여정은 성 빈센트 역시 셋째 아들로 아버지의 총애를 받아 황소를 팔아 신학교에 가고 사제생활 중에 도둑의 누명을 쓰고 신앙의 위기를 받고, 또 한 때는 노예로 팔려 튀니지로 가는 등 비슷한 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그들에게 일어난 것은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한 하느님의 섭리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이 섭리에 깊이 신뢰를 두고 의탁했으며 전적으로 하느님의 이끄심과 돌보심 속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성 빈센트 역시 그리스도께 대한 온전한 투신의 삶이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혼란한 시대에 살아야 했던 그는 자신의 온 삶을 시대의 정신에 내어맡긴 사람이었고 그는 아주 서서히 하느님께로 향한 변화를 체험하였다. 그것은 여러 차례에 걸친 회심의 과정과 자신의 모든 인간적인 계획들의 철저한 포기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서도 가난한 이들을 주님으로 돌보는 헌신적인 봉사의 삶은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인격에 다가서게 했고, 그는 분명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성 빈센트는 그의 신앙 여정의 삶 속에서 그가 세운 많은 단체와 동료들에게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체험자로서 하느님 섭리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과 의탁을 강조하였다.

 

     또한 성 빈센트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섭리’(Providence)에 대한 신뢰는 그의 영적 삶에 있어서 하느님 뜻의 식별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요소 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언제나 아버지의 이끄심에 당신의 삶을 전적으로 의탁하셨고, 또한 우리에게도 어린이의 마음으로 아버지께 신뢰를 두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신 것에 모범을 둔 것이었다. 따라서 성 빈센트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섭리란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나 사건들 안에서 조차도 항상 하느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하느님의 보호’에 대하여 신뢰를 두는 마음을 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일에는 하느님 은총의 때가 있기에 앞서 나가거나 과도하게 걱정하지 않기를 권고 하였다. 이러한 하느님의 섭리는 인간을 희망 속에서 안정되게 하고 인간에게 하느님의 협력자로서 생활하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성 빈센트는 하느님의 은총과 그분의 섭리 안에 만난 가난한 사람들과 많은 그의 협조자들의 도움에 힘입어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개방성과 수용성, 자유와 창조성, 책임성과 자기 수용성으로 채워진 균형 잡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매순간의 삶을 ‘하느님 섭리’에 신뢰하며 ‘기도’ 안에 힘을 모아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인격적으로 응답하는 영적 여정이었다. 그 안에서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깊어져 갔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차적으로 그의 영혼과 마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참으로 이 두 인물의 이야기는 드라마틱하다. 요셉에게 일어난 그 모든 사건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하느님 섭리’라고 성서저자는 말하고 있다. 또한 성 빈센트에게 일어난 그 모든 일들 역시 그의 삶을 신앙적으로 성숙시키고 그 시대의 가난한 이들을 돕기 준비와 하느님 섭리의 손길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의 수많은 고생과 시련들은 모두가 선으로 이끌기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을 알아들은 두 사람은 그 섭리에 큰 신뢰와 사랑을 두면서 살아다는 점이다.

 

 

2. 하느님 현존의 삶

 

      요셉과 성 빈센트의 삶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두 번째 공통점은, ‘하느님 현존’에 대한 것이다. 창세기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는 모든 일을 잘 이루는 사람이 되었다” (창세 39, 2). 여기서 ‘주님께서 함께 계심’‘사람’ 이라는 말에 주목하게 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한다. 자라면서도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지!’하면서 꿈을 키운다. 꿈을 이룬 다음에도 ‘어떤 위치의 사람이 되어야지’ 말한다. 이처럼 어떤 사람’이라는 말속에는 사람의 얼굴의 다양함 만큼이나 사람의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요셉의 삶 속에서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사람’이란 바로 ‘그의 삶이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사람’ 이라는 것이다. 즉 삶을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우선순위란 것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사랑일 수 있고, 명예일 수 있고, 쾌락일 수 있고, 그리고 돈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요셉에게는 바로 ‘하느님’이 그의 삶의 첫 자리였다. 이 말은 바로 ‘하느님과 그분의 가치 위에’ 그의 삶을 세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을 그의 삶의 첫 자리로 모시는 사람’, ‘하느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할 때 하느님은 그와 함께 하여주시고 그분의 은총으로 인하여 그는 모든 일을 잘 이루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자신의 삶 속에 첫 자리로 모시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다 곁들여 받는 다는 것을 우리는 요셉의 삶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성경에서 “주님께서는 요셉 때문에 그 이집트 사람의 집에까지 복을 내리셨다.(창세 39, 5)라는 말이 바로 증명하고 있다. 또한 주님을 그의 삶의 첫 자리로 모시는 사람은 마치 신약성경 안에서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라는 주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요셉의 이야기에 하느님 현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 볼 때, 요셉은 그의 철없는 꿈 자랑과 아버지의 편애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이집트까지 노예로 팔려오는 신세가 된다. 그리하여 요셉의 하느님은 이스라엘에서 이집트까지 요셉을 찾아오시게 되고 팔려와 포티파르의 집에서 일하는 그를 돌보신다. 그곳에서 요셉은 들에서가 아닌 집안에서 일할 수 있는 특혜를 누린다. 그러나 그는 포티파르 부인의 유혹이라는 커다란 시련 앞에 서고 그로 인해 감옥에 까지 가게 된다. 다시 하느님은 그 감옥에까지 요셉을 찾아가시어 그와 함께 계시며 그를 돌보아 주신다. 그 덕분에 요셉은 감옥에 간수의 눈에 들어 다른 죄수를 돌보는 일을 맡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요셉에게 꿈을 해몽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어 시종작의 도움으로 파라오 앞에 서고 이집트의 재상이 되어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게 된다. 이러한하느님의 찾아오심’에 대한 믿음은 요셉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신앙이었다. 그래서 요셉은 자식들에게 축복을 주시며 마지막 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이제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갈 것입니다” (창세24). 이 말을 요셉은 재차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맹세하면서 이러는데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 때 여기서 내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십시오.”(창세25)

 

     우리는 여기서 ‘하느님의 찾아오심’ ‘하느님의 현존’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끝까지 인간을 돌보시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은 요셉의 모든 순간에 찾아오셔서 함께 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이 인간을 찾아오심’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이 인간을 찾아오셔서 그 사람 안에 거처를 마련하신다는 것 이 말은 또한 ‘하느님의 현존’이 된다. 그리고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라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성 빈센트가 그의 삶 속에서 늘 말씀해 오셨던 ‘하느님 현존속의 거닐음’이 무슨 뜻인지 요셉의 삶을 통하여 깊이 깨달아 알아듣게 된다.

 

     성 빈센트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인간에게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찾아 나서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 사람 안에 함께 살아가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성 빈센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은 그분의 인격과 삶에 대한 관상에서 그분께서 인간을 직접 찾아 나서시고, 그 인간들 안에 같이 현존하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그의 영성은 그리스도에 대한 관상’에서 ‘인간을 찾아 나섬’ 인 활동으로의 대전환된다.

 

“ 우리는 일과 중에는 기도와 일이 교차한다. 성 바울로의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데살 5,17)라는 말씀을 우리는 기도하는 자세로 일하고 섬기라는 훈계로 알아듣는다. 이 기도하는 근본자세는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의 경배에서도 또 반성의 짧은 순간들에도 항상 표현된다. 성 빈센트는 이를 일컬어 ‘하느님의 현존 속에 거닐음’이라 하였다.” (생활규범 202.1)

 

      이렇듯 성 빈센트가 말하는 ‘하느님의 현존 속의 거닐음’이란 삶의 매순간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면서 그분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일을 할 때에도, 기도를 할 때에도, 그리고 기도와 일이 교차하는 순간에도, 또한 짧은 반성의 순간에도 하느님에 온전히 의탁하고 그분의 현존을 의식하는 삶 그리고 이 삶의 지속적인 연장이 그의 삶을 온통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으로 만들었다. 즉 하느님이 그에게 찾아오시어 그와 함께 하시고 그들 돌보아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하느님과 그분의 친구들인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할 수 있었다.

 

      특히 활동수도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에게 이 ‘하느님의 현존속의 거닐음’이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의식하게 하여 매순간 ‘하느님의 사람’으로 존재케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기도나 일 모든 것이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게 한다. 그렇다고 기도와 일이 목적이 되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 일치의 삶으로 살아가게끔 도와주는 것들이 된다. 따라서 기도가 모자라서, 일을 많이 해서 하느님과의 사귐에 문제가 있고 수도 삶에 위기를 느낀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적일 수도 있다. 물론 한달에 일년에 일생에 긴 시간을 내어 내적 깊이로 들어가서 하느님을 만날 필요가 있고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떠한 순간에도 하느님이 함께하심을 놓치지 않고 깨어있음, 과 ‘하느님이 나를 찾아오시어 매순간 나를 도와주시고 돌보아 주신다는 것’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라 생각된다. 성 빈센트는 누구보다 이것을 잘 깨달아 알아들었기에 하느님의 현존을 그의 삶 속에 살아갈 수 있었고, 그의 동료들에게도 이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느님의 사업을 하기위해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깊은 신뢰를 두는 것 그리고 매순간 사도직을 하든 기도를 하든, 그 무엇을 하든 그분의 현존 안에 살아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말이다.

 

 

3. 인간 안에 계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봉사

 

      요셉과 성 빈센트의 삶에서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그들 모두가 ‘인간을 찾아오신 하느님’을 온 일생에 거쳐 섬기고 봉사하면서 살았다는 것이다. 요셉의 경우 하느님은 가련한 처지의 요셉을 불쌍히 여기시어 노예로 이집트까지 팔려간 요셉을 찾아오신다. 이 하느님은 일차적으로 ‘요셉’ 안에 함께 살아가신다. 그리고 그 다음 ‘요셉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 마침내 ‘이집트에 살고 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오시어 그들과 함께 살며 돌보아 주시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가신다. 요셉은 바로 그의 동족들 안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알아 뵙고 그들을 구원하는 일에 온 삶을 바친다. 즉 그의 형제와 동족들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섬긴다. 섬김과 봉사에는 미움이 사랑으로, 분노가 온유로 바꾼다. 여기에 요셉의 인품과 하느님 사람으로서의 인격성이 드러난다.

 

  성 빈센트 역시 그의 삶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인간을 사랑하시어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께서는 특히 ‘가난한 이들 안에’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이신 분이 왜 비천한 인간으로 오셨는가?’ (Cur Deus homo?)‘에 대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었고 그에 대한 해답을 그가 발견한 것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성 빈센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게 한 출발점이었다. 즉 그의‘신앙적 자아 정체성 체험’을 확고하게 이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깨달음 안에 일어난 하느님 신앙 체험을 통하여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향하여 움직여야 하는지를 분명히 의식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성 빈센트에게는 분명 가난한 이들 안에 현존(現存)하시면서 그들에게 봉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러한 그분과의 ‘인격적인 만남의 체험’이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 비전은 성 빈센트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제시하는 시발점이 되어 주었다.

 

      성 빈센트의 삶은 하느님 사랑의 결정체인 인간에 집중되었다. 특히 그리스도처럼 그 시대에 가장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으로서 인간의 고유한 품위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었다. 즉 그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과 동일시하였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이웃사랑을 통하여 하느님 사랑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서 그 시대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볼 수 있는 사람들’ 즉 가장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인 죄수들, 정신 질환자들, 노인들, 집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 버림받은 아이들 질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만나며 그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에 참여 하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인간의 행복과 구원을 위한 동참으로써, 여러 형태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의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구원과 해방을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그 시대의 요청에 맞게 정감적이고도 효과적으로 행하였다. 이 처럼 성 빈센트는 가난한 이들 안에 함께 계신 그리스도를 발견하였고 또한 그들 안에 계신 주님을 충실하게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그의 삶의 전부였다.

 

 

나오면서

 

     요셉의 신앙적 삶 안에서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성 빈센트의 삶은 영적인 측면과 일대기 안에 서로 상통하는 점들이 있음을 위에서

보았다. 온전히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하면서 살았던 점, 하느님을 섬기는 삶에 충실했던 점, 그리고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한 그들에게 하느님은 손수 찾아오셔서 그들의 모든 삶 속에서 함께 하셨던 ‘하느님 현존의 삶’을 살았던 이들이다. 또한 요셉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굶주림에서 구원하였듯이 성 빈센트 역시 가난한 이들에게 찾아오시어 그들 안에 살며 그들을 돌보시는가난한 이들 안에 계시는 주님’을 발견하고 그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궁핍 중에 있는 가난한이들의 구원과 해방을 위해 살았다는 점이 상통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삶은 “주님께서 요셉과 성 빈센트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는 모든 일을 잘 이루는 사람이 되었다”라는 말씀의 주인공들이 되었다(창세 39, 2). 또한 파라오가 요셉에게 한 이 사람처럼 하느님의 영을 지닌 사람을 우리가 또 찾을 수 있겠소.”(창세 41,38)라고 자신의 신하들에게 고백한 이 말은 바로 그들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았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이들의 인격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매우 흡사하다.

 

     요셉은 예수의 여러 예형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성서적 덕성의 탁월한 모범이기도 하다. 즉 하느님께 대한 그의 불굴의 신앙, 모든 시련 앞에 정직함, 모욕의 용서, 악을 선으로 갚는 아량은 그리스도인 누구나 갖춰야 할 덕목들이다.

 

      성 빈센트은 중년이 되었을 때에도 그의 부족한 성향을 모두 가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침묵과 겸손, 기도와 선행으로 일관된 생활로 말미암아 높은 성덕에 이르렀다. 또한 창의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이었기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성숙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그가 노년이 되었을 때는 그리스도와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는 애덕이 깃든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성 빈센트의 삶은 그리스도의 생활양식과 그분의 인격의 덕목에 기초하여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신앙의 여정은 혼탁한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던져 비참함 가운데서도 인간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을 지닌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즉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사랑’과 인간을 통한 ‘하느님 사랑’ 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고, 자신도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자신 안에 완성시키는 것 이었다.

 

        끝으로 요셉과 성 빈센트는 겸손한 삶을 살았다. 입신출세의 문턱에 들어서 있으면서도(요셉은 이집트의 재상/ 성 빈센트는 궁정의 고문관) 자신의 지혜와 슬기를 하느님이 은총에 돌리는 그들의 겸손한 자세와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그리고 이들의 깨끗하고 정직한 삶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또한 하느님과의 사귐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 삶 속에서 하느님 현존 의식, 그리고 인간들 안에 있는 하느님에 대한 봉사이다. 그러므로 또한 이들이 지녔던 덕행과 신앙적 삶의 자세는 우리 신앙인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