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나눔(루카)

루가 1, 5-25: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마리아 아나빔 2012. 7. 1. 16:39

                  

 

 

                              루가 1, 5-25: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들어가면서

 

1. 사건의 테두리

 

하나의 사건이 외면적인 장엄한 상황 안에서 이루어진다. 시간은 헤로데가 유다의 왕이었을 때이다. 팔레스티나 전역이 하나의 통일된 왕권 아래 있을 때이다. 온천장, 극장, 경기장, 수도 예루살렘의 새로운 궁전은 특히 장엄한 신전의 새로운 축조는 에로데 왕국의 업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외적인 호화로움이다. 헤로데 자신은 유다인이 아닌, 에돔 사람 즉 에사오의 후손으로서 야곱의 후손들을 새로 다스리고 있다.

 

사건의 발생은 장소는 봉헌장소인 예루살렘의 성전이다. 위대한 왕들과 선지자들의 도시, 야훼의 성전, 그리고 간선된 백성의 계약의 기념 장막 안에서이다. 그 사건은 과거를 끝맺고 미래에 대한 예고의 표적이 되는 희생의 제사 때에 발생한다. 그러나 이것도 외적인 장엄함에 지나지 않는다. 하느님의 백성의 사제직은 속화되었고 즈카리야 자신도 이 사건 앞에서는 자신의 임무가 높다고 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즈카리야는 가장 훌륭한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며, 대표적인 사제 계급의 후손이고 그의 부인 엘리사벳 역시 아론의 후예로써 사제 계급의 후손이다. 이제 때가 무르익어 천년이라는 시간이 끝을 맺으려는 순간이다. 선지자들의 말이 이루어지려는 결정적인 순간이며, 상징에 지나지 않던 성전과 희생은 이제 실제적으로 그 사명을 다하려 하고 있다. 외적은 장엄은 위대한 사건을 합당하게 준비하고 이끌어들이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외적인 장려함이 그 내용을 다 빼앗기어 이제는 테두리밖에 남는 것이 없음을 확실히 보여 주고 있다.

 

2. 하느님의 말씀

 

온갖 위대한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온다. 시작하신 분은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의 말씀은 창조와 구속에 있어서의 참된 사건이고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오심을 준비할 임무를 띤 자신의 전령을 보내신다. 메시지는 두 가지이다. 첫째, 주님의 길을 준비해야 하는 선구자의 개인적 위대성이다. “그는 주님 보시기에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다. 그는 하느님 앞에 임할 수 있는 참된 위대성을 혼자 지니고 있다. 포도주나 그 밖의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는 극기와 희생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 줄 것이다.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을 가득히 받을 것이며, 간선된 사람, 은총이 풍부한 사람, 세상에는 마음이 없고 하느님으로 가득 차 있는 성령으로 취한 사람이 될 것이다. 참된 열성이 불타오르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사명으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위대함이다. 그 위대함은 그의 이름에 이미 나타나 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사실 하느님의 자비로우시다이다. 요한의 사명과 기능은 전령의 역할이다. 요한은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의 오심을 전하는 선구자이다. 엘리야는 아버지와 자식을 화해시키고,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의 첫 세대와 새로운 세대를 영적으로 일치시킨다는 말을 들은 선지자이다. 선조시대가 시작된 위대한 시간과 현대의 시간은 하나의 일치를 이루어 새로운 시작이 되고 새롭게 위대한 끝막음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엘리야가 이러했듯이 요한도 하느님께 대한 열정을 다시 불태워야 하는 것이다. 선지자 요한의 역할은 거역하는 자들에게 올바른 생각을 하게 하여 주님을 맞아들일 만한 백성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따라서 요한은 백성의 마음과 바람을 준비시킴으로써, 그들이 하느님께 돌아오고 하느님께 마음을 열어 드리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주님의 위대한 날, 즉 메시아 시대가 바야흐로 시작하려고 한다는 말라기아 선지자의 말이 이루어진다. 천사의 말은 선지자들의 말을 끝맺어 주고 있다. 요한은 사실 마지막 선지자이며 하느님 왕국의 첫 사람이다. 그래서 천사는 즈가리야 뿐만 아니라 백성 중의 많은 사람이 또한 기뻐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처음으로 여기에 기쁨의 매시지가 강조되어 널리 울려 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장엄한 외부의 테두리와 이 위대한 메시지는 사람들의 위대성과 전혀 화합하지 않는다.

 

3. 사람들의 반응

 

즈카리야는 훌륭한 마음의 준비가 갖추어진 사람이었지만 불행하게도 결정적 순간에 이르러서는 그렇지가 못했다. 자기는 이미 늙었고 부인도 나이가 많고 불임증이 있기 때문에 천사의 말을 의심했던 것이다. 즉 즈카리야는 인간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인간적으로 가능한 범위 안에서 판단한 것이다. 그의 신앙은 아직 충분히 높고 깊은 데까지 이르지 못한 것이다. 천사는 꾸짖는 어조로 자기는 하느님을 모시는 시종으로서 하느님의 분부대로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으로 마땅히 충분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높고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만 충분하다. 하느님 앞에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것, 그리고 하느님의 능력은 사람의 약함이 가능성의 한계를 보이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아는 이에게만 충분한 것이다. 즈카리야는 제대로 알아들을 줄 을 몰랐기에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한 징벌로 즈카리야는 인간의 말을 제대로 듣거나 말해서는 안 되게 되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침묵을 지키게 되었다는 표시이다. 이제부터 하느님이 말씀하시기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선택받은 백성이 하느님 말씀을 옳게 인지하지 못했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이것은 구원사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한편 하느님의 능한 말씀으로 시작되었으나 한편으로는 인간이 자기가 할 것을 교만하게 대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비추어 주는 위로가 되는 것도 있다. 내 말은 “때가 오면 이루어 질 것이다”라는 주님의 천사의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적인 요소에 개의하지 않으시고 구원의 계획을 퍼 나아가신다. 따라서 구속 사업은 인간의 거절을 밟고 일어서시는 하느님의 승리로 돌아갈 것이다. 하느님은 언제나 가장 위대하신 분이시다. 하느님의 은총은 곧 하느님께서 스스로 결정하시는 것이며 구원은 하느님의 일이다.

 

  Text 연구

 

성전에서 전례가 장엄하게 거행되는 동안,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요한의 출생과 사명을 예고한다. 즈카리아에게 내린 하느님의 말씀을 표현하려고, 루카는 발현(판관 6, 11-24), 기적적 탄생의 예고(창세 16; 17; 18; 판관 13), 예언자들의 신탁이라는 (말라 2, 6; 31, 1.23-24; 이사 40,3) 전통적 주제와 함께 그리스 말 구약성경의 언어를 이용한다.

 

5절:

 

“유다”

여기서 유다는 그리스인들이 부르는 것처럼 유다인들의 영토 전체를 가리킨다. 루카는 이 용어를 사도 10,37에서도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사도 9,31에서는 유다인들의 방식에 따라 북쪽의 갈릴래아와 대조되는 팔레스티나 땅의 남부 지역만을 가리키는 데에 적용한다.

 

“헤로데”

이두메아에서 태어났고, 기원전 47년에 율리오 카이사르로부터 유다 총독으로 임명된 안티파도로의 아들이다. 교활한 간교에 뛰어났다. 헤로데는 기원전 4년에 죽은 대 헤로데이다(마태 2, 1) 이 임금은 유다의 대사제 히르카노스 2세의 시종장 안티파테르의 아들로서 기원전 73년경에 태어났다. 그는 우여골적 끝에 기원전 41년 유다의 영주가 되고 , 이듬해는 로마의 원로원으로부터 유다임금으로 임명받는다. 그리고 기원전 4년에 죽는다. 예수님은 적어도 기원전 4년 이전에 탄생하셨다. 그 해에 죽는다. 여러 가지 거창한 공익사업을 하였기 때문에 그를 대왕이라고 불렀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예루살렘 성전의 대대적인 개수공사이다.

 

“아비야조”

다윗이 성전에서 종교 봉사 체제를 세울 때, 사제들을 24조로 나누고, 각 조에는 그 반장의 이름을 따 부르게 한다. 그들 각 조는 토요일(안식일)부터 교대하여 성전에서 봉사하였으며, 향로를 피우고 제물을 바쳤다. 아비야조는 엘리아잘을 시조로 하여 한 여덟째 자리를 차지한다. 유배 후 팔레스티나로 돌아온 것은 사제의 네 가족뿐이었으나(에즈 3, 36) 그 가족은 새로 24조로 나뉘고 전처럼 이름을 붙었다. 즈카르야의 뜻은 하느님께서 기억하신다는 의미로 아비야조에 속했다.

 

“아론의 후예”

즈가리야의 아내 엘리사벳(하느님은 맹세하셨다)도 사제 집안의 딸이다. 사제는 보통 히브리인과는 달리, 다른 종족의 여인을 얻을 수 있었으나, 즈가리야는 이런 특권을 이용하지 않았다. “자손”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본디 “딸”을 의미한다. 아들이나 딸이란 말로 후손을 의미한다. 그래서 엄격하게 ‘여손’이 그리스 말에 더 가깝다. 이사악, 야곱과 에사우, 요셉과 벤야민, 삼손, 사무엘, 등 기적적으로 태어난 이들의 어머니처럼, 엘리사벳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다. 본디 ‘불임’은 수치로, 때로는 천벌로까지 여겨졌다(레위 20,20-21). 아브라함과 사라도 그러하였다.

 

6절

 

“이 둘은 하느님 앞에 의로운 이들로”

이 부부는 고귀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보다 높은 덕의 광채를 지닌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느님 앞에 의롭게 살았다. 곧 그들 부부는 성인이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물론 하느님 앞에서도 의롭게 산 의인이었다.

 

7절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아이가 없다는 것이 크나큰 수치였다(창세 30, 23). 엘리사벳은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인데다 벌써 늙었기 때문에 이젠 자녀를 낳을 희망이 없었다고 두 사람은 슬퍼하고 있었다.

 

8절

 

“ 하느님 앞에서”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곳에서 특별한 기쁜 소식을 하느님이 즈카리야에게 전해 주신 사선이 일어났다.

 

9절

 

“사제들의 관례”

사제들 사이에서 일어날 여러 가지 분규를 사전에 막으려고, 매일 아침 제비를 뽑아 맡을 일을 정하였다.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향대라고 부르는 성전 깊은 곳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향은 공식기도 때, 곧 오전 9시와 오후 3시에 바치고 있었다.

 

10절

 

“온 백성의 무리가” “백성”에 해당하는 라오스는 하느님께 선택된 백성을 일컫는 용어로서 루카 복음서에서 자주 쓰인다. 믿음이 깊은 유다인들은 토요일에 사제들이 향을 바치고 있을 때, 성전에 모이는 습관이 있었다. 사제가 지성소 안에 분향하고 있을 때 “밖에서는” 곧 이스라엘 사람과 부인들의 광장이라는 곳에 모여 기도하였다.

 

11절

 

“주님의 천사”는 대천사 가브리엘이다(19절).

“분향제단” 또는 향의 제단이라고 하며, 백향 나무로 만들었는데 작은 황금 판으로 덮은 제단이다. 그 위에서 향을 바치고 있었다(탈출 40, 5).

 

12절

 

“두려움” 사람이 직접 초자연계와 마주 칠 때 일어나는 마음의 동요이다(다니 8, 17-18). 루카는 천사의 발현 또는 하느님의 계시 그리고 하느님의 다른 개입 앞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보통 하느님과 천사의 발현때 사람을 안심시키는 말씀이다.

 

13절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이 청원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여러 주장이 있었다. 어떤 이는 아들 얻기를 간구했고, 그런데 후에 즈카리야가 천사의 약속을 왜 의심했는 것에 대한 심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메시아와 이스라엘의 구원을 청했다는 주장이 더 타당하다. 천사는 그에게 예언자들이 약속하였고, 메시아의 길을 준비해야 할 선구자가 될 어린이를 약속하였고, 그의 간구를 들어 주셨다고 증언한다. “요한” 히브리말로 “요안네스”로 ‘주님은 자비로우시다’( 또는 야훼의 은총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 이름이야말로 선구자로서의 사명을 잘 표현하고 이다. 즉 메시아가 오실 첫째 표징이 된다. 정녕 그의 사명은 하느님의 은총 그리스도께 나갈 준비를 시키는데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천사는 사실 두 가지 기도가 다 받아들여졌다고 말한다.

 

14-15절

 

“주님 앞에 큰 인물” 이것은 요한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가를 보여주는 히브리식 표현법이다.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라틴말 sicera는 밀, 보리, 기장, 종려 열매 등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말한다. 신심이 깊은 유다인은 고행으로 이러한 술을 마시지 않았고 머리도 깎지 않겠다는 허원을 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나지르(nazirim), 곧 거룩하다고 여긴 사람이라고 불렀다. 요한은 그런 나지르가 될 것이다. 그의 성덕은 겉으로 나타나는 고행생활로 나타날 것이다. “성령으로 가득찰 것이며” 그는 태어나기 전부터 성령의 풍성한 은총을 받아 죄가 깨끗이 씻겨지고, 거룩하게 된다는 뜻이다. 성경 안에서 나지르인들에는 삼손, 예레미야 등이 있는데 이들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하느님께 봉헌된다. 이는 그들의 특정 사명을 수행하도록 미리 선택되었음을 뜻한다.

 

16절

 

“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옛날의 예언자들처럼 이스라엘 사람에게 큰 감화를 줄 것이다. 또한 그의 고행을 통하여 그들의 하느님이신 메시아께로 그의 동족들을 인도할 것이다.

 

17절

 

“주님보다 먼저 와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메시아의 선구자가 되고, 엘리야가 지녔던 정열과 굳셈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엘리야가 아케브와 바알이라는 우상을 섬긴 사제와 하느님의 가르침을 버린 이스라엘 사람을 향해 용감히 싸운 것처럼, 요한도 타락한 헤로데나 바리사이파 사람 또는 악을 고집하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예리한 칼로 내려칠 것이다. 또 예언자들이 오실 메시아를 맞도록 사람의 마음을 준비시킨 것처럼, 요한은 오실 예수님을 맞도록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마음의 준비를 외칠 것이다.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요한은 히브리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 데러옴으로써, 아버지와 자손과 그 도덕적 타락에 노한 조상에게 다시 자손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할 것이다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며” 그리스말 Text가 말하는 순종하지 않은 반역자를 말한다. 지금껏 하느님의 말씀에 반역 해 온 유다인은 요한의 모범과 충고로써 다시 올바른 사람의 지혜로 돌아올 것이다. 올바른 조상이 지녔던 것과 같은 마음과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예수님을 맞아들이고 그분 가르침과 감화를 달게 받아들이도록, 세례자 요한은 이스라엘 국민의 마음을 준비시킬 것이다.

 

18절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지금 말한 천사의 약속이 이루어진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나이를 생각하면서 천사의 말의 실현을 의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그의 불신은 죄가 되었다. 사라와 그 밖에 다른 구약의 여인들에게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나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만 했던 것이다.

 

19절

 

“가브리엘”(남자란 뜻)

나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말을 믿어야 한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 왕 앞에 나가 존경을 다하여 그 명령을 따르는 충신과 같다. 이 말은 나는 하느님 앞에 시중들려고 서 잇는 가브리엘 이란 의미로 이는 페르시아 궁궐 안의 모습을 담은 표현으로, 임금 앞에 서 있는 이들은 최고위 관리들로서 이들로서 이들만 어전에 들 수 있었다. 가브리엘은 천사들 가운데서도, 영광 속에 계시는 주님의 면전까지 들 수 있는 고위 천사라는 것이다.

“너에게 이야기 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이 말은 즈카리야에게 하신 약속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보여준다. 대천사 가브리엘은 사람의 모습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난 일이 있었다(다니 8, 15). 요한이 태어나리라는 것이 인간의 구원을 알리시는 하느님의 메시지, 곧 “기쁜소식”이다. 여기서 ‘기쁜소식을 전하다’가 그리스 말에서는 한 동사이다. 이처럼 루카는 늘 “복음”이라는 명사만 쓰는 마르코와 달리 자기의 이 첫 작품에서는 항상 이 동사를 사용한다.

 

20절

 

“벙어리”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이로써 이 주장은 62절에도 들어맞는다. 이는 불신에 대한 징벌이면서, 그가 믿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요청한 표징이기도 하다. 즈카리야는 하느님의 약속의 증거를 구하였는데, 천사가 준 증거는 그가 상상도 못하는 것으로써 그것은 믿지 않은 그에게 준 벌이기도 하다.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태어난 아기의 할례 받는 날을 가리킨다.

 

21절

 

“기다리던 백성은” 지성소 안으로 들어 가 향을 바칠 때는 사제를 볼 수가 없었지만, 그 일을 마치면 나와서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려고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나 즈카리야가 지성소 안에서 다른 때와는 달리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던가 하고 사람들은 걱정하였다. 탈무드에 따르면, 밖에 있는 회중이 불안해지지 않도록 대사제는 성소 안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분향을 한 사제는 밖으로 나와, 보좌하는 네 명의 사제와 함께 백성에게 축복하게 되어 있었다(민수 6, 23-26참조)

 

22절

 

“말을 못하고”늘 한 것 같이 축복의 말씀(민수 6, 23)을 해줄 수 없었다. “어떤 환시를 보았음” 지성소에 오래 머물러 있었던 일, 그의 얼굴에 나타난 깊은 감동, 벙어리가 된 일, 그런 것들을 보고 사람들은 그가 무슨 신비스러운 영상을 보았음을 짐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즈카리야 자신이 손짓으로 지성소에서 있었던 초자연적 사건을 알려 주었다.

 

23절

 

“봉직기간이 차자” 사제들의 각 조가 성전에서 일해야 할 일주일간의 봉사를 바친 것을 말한다. “집” 즈카리야가 살고 있던 유다 산골의 한 동네이다.

 

24절

 

“엘리사벳은 다섯달 동안 숨어지내며” 이런 은혜를 받은 엘리사벳은 드러내고 나다니지 않았다. 숨어 살며 오로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모든 일을 하느님께 맡기고 있었다. 숨어지냈다는 말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임신 사실을 하느님이 계시로만 알 수 있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25절

 

“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주시고” 아기를 임신하지 못한다는 것은 히브리 여인에게 있어서 튼 수치가 되는 일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해주신 하느님 축복에서 제외되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창세 22, 17) 따라서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부끄러움을 씻어 주는 일이었다.

 

 

 

참고문헌: 주석성경,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2010. pp. 229-232.

           신약성경 주해집(루카 복음서), 도서출판 크리스챤,1991, pp. 52-59.

           루카복음해설, 리처드 굿츠빌러/ 김택준역, 성 바오로출판사, 1991, pp.3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