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생활 안에서 수도생활
목차
우리시대의 특징들
1. 욕망의 시대의 수도생활의 청빈
2. 개인부의 시대의 형제적 공동체
3. 감성시대의 엠마우스 공동체
4. 해체주의 시대의 성령 공동체
나오면서
우리시대의 특징들
1) 신자유주의: 사회경제 시스템(구조조정, 임시직, 지속적인 인간관계 불가능)
- 새로운 자본주의(신자유주의)
- 소비에트 연방의 무너짐(1980년)
- 기업합병, 이윤창출
ex) 소유, 소비, 경제, 욕망
2) 포스터 모더니즘: 20c를 대표하는 mordernism의 반발에서 생겨남(근대화의 반발)
- 자유로운 개인의 가능성(공동체 탈퇴)
- 개인주의의 극대화
- 다원성 불활실성의 시대
- 해체주의
- 축제놀이/ 포퍼먼스
ex) pre- mordernism: 신자본주의, 의지 집단, 위계적 관계, 인격적 공동체, 사랑, 희생, 봉사, 순종, 성부,
사랑과 장유유서.
mordernism: 인본주의, 이성, 개인, 수평적 관계, 이념적 공동체, 진리, 믿음, 신념,
자유, 평등, 성자, 합리성(진리).
post-mordernism: 자본주의, 감성, 개인, 무기적 관계, 동료회적 공동체(ngo), 선,미
공유, 나눔, 다양성, 성령, 인간은 자연의 일부/ 생태영성, 자아를 반영한 개인, 사회성이 없는 놀이문화.
1. 욕망의 시대의 수도생활의 청빈
- 신자유주의 물결 --- 복음적 청빈
- 행복의 문제(경제문제) --- 참행복 선언
- 무한경쟁 --- 복음적 청빈의 근원이신 그리스도
- 마음껏 소유하라(소비시대) --- 자신을 비우고 스스로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의 삶
- 욕망은 죄가 아니다 --- 욕망을 버리고 (명예, 재물, 소유) , 모든 것을 공유함
양극화와 불평등의 사회
- 사랑= 행복= 화폐가치 --- 하느님으로 채워가는 삶(Mt 13, 44-46)
2. 개인주의시대의 형제적 공동체
- 과도하고 지나친 언어사용 --- FRATERNITA
- 좋아한다는 개념(소유) --- 마태 23, 8-12에 바탕을 둠
- 개인주의의 극대화(쿨한 관계) ---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내영역화(연대성 상실) --- 우리 모두는 한 형제
개인주의의 타락
- 관계 에너지 약화 --- 다양성을 인정(다를 뿐 차별이 없음)
- 이기주의적 개인주의 --- 공동체의 목표 갖기(수도회의 카리스마)
고독한 개인 자유, 평등, 박애, 형제적 공동체를 말함
3. 감성의 시대의 엠마우스 공동체
- 포스트 모더니즘의 주기능 --- 엠마우스 공동체
- 즐기는 시대/ 놀이문화 --- 동행: 절망과 상실있 곳에
좋고 싫음이 뚜렷
- Feel ing 중요 --- 공감: 공감하며 끝까지 들어줌
호감과 비호감(진리가 잣대가 아님)
- 행위 중심적 만족감 --- 감동: 충분히 공감한 후
감성 tuch(놀이문화 속에 program 을 집어넣음)
무한 경쟁
4. 해체주의 시대의 성령 공동체
- 포스트 모더니즘의 주기능 --- 성령 공동체
- 전통이 무너짐 --- 주님 부활 공동체(요한 10, 19-20)
- 권위의 해체 --- 용서와 평화의 공동체
- 동일성 거부 --- 충만하기 때문에
성령으로 강화됨/ 성령은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것을 하나로 모음
ex) 판관시대는 각자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감 --- 예수의 공동체는 해체되고 성령께서 다시 일으킴.
나오면서
오늘날 우리는 수도 삶의 본질을 상실했기에 다시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영적생활을 진단할 필요가 있다.
영성이란 하느님 체험이다. 이 체험은 삶의 현장에서 드러나고 증거된다.
세상 체험들 --- 기도/성찰 ---- 삶에서 드러나는 양상(살고 증거 되는 삶)
(삶의 현장)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삶의 현장에서)
수도자의 행동양식의 기준은 언제나 복음의 정신이다. 복음의 정신에 따라 '가난한 이들을 을 주님'으로 모시고 함께 사는 일이다. 또한 수도자의 본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그분을 사람들 안에서 찾아 나서고, 그분을 닮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도자가 생기를 얻고 힘을 얻는 곳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때문이다.
하느님을 체험하는 주체는 바로 나이다. 수도자는 자신의 본질을 살기 위해서 자신의 사는 삶의 자리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나는 누구인가? ' 질문하고‘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상황을 인식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한다. 이러한 수도자의 삶이‘말씀 중심의 삶’이기때문이다. 이러할 때 우리의 삶은 나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옮겨간다. 말씀안에 머무는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성령 안에서 숙고하는 시간이다. 또한 오늘날의 예언자는 이러한 현실 안의(말씀과 상황) 안에서 긴장감을 견디어 내는 것에 있다.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행동하기 위해서 수도자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고 성찰하고숙고해야 한다. 그런다면 삶의 자리에서 그것을 살아낸다. 복음적 삶과 상반되는 현실을 견디어 내고 그 안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본질을 사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수도자들의 삶은 이러한 현시대적 특징들 안에서 자기중심적 삶의 태도에서 공동체 중심으로 삶으로 옮겨가고 살아야 한다.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결론적으로, 수도자는 시대의 여러 상황 가운데서 무엇보다 수도자의 본질(수도자의 정체성, 복음, 수도회의 카리스마)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실제현장에서 살아내고 견디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시대의 ism 은 언제나 있었고 있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시대와 장소와 이념속에서도 수도자의 본질인 복음의 정신으로 자신의 신분을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도 삶의 현장에서, 매일 일상의 삶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넘어 복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시대의 정신에 맞서 묵묵히 수도자의 정신을 살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수도자가 예언자와 신비가로 살아가는 길이다.그리고 이 삶은 수도자의 본질을 상실해가는 이시대에 더욱더 요청된다.
P.S.: 덧붙이는 단상
영원한 도움의 수녀회 소속의 마리비타 수녀님의 강의를 듣고 정리해보았다. 결론 부분에서는 나의 생각을 덧붙였다. 즉 이 시대에 한 사람의 수도자로 살아가는 것이 힘든 것은 단지 시대의 상황과 이데올로기의 문제만은 아니다. 시대와 상황은 언제나 그 속성상 변화하는 것이 그 성향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되지 않는 본질인데, 수도자들의 삶은 이것을 살기를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수도자가 시대의 상황때문에 본질을 살기가 어려운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또한 역설적으로 그 상황에서 본질을 살아내는 것이 또한 그의 신분에 맞는 역할이다. 그리고 많은 이 삶을 살았던 성인 성녀들이 증거적 삶으로 보여주었다. 시대와 상황에 개의치 않고, 또는 그에 맞는 복음적 증거의 방법을 찾으면서 변화되어가는 것들 안에서 변화지 않는 영원한 진리의 삶을 증거하는 것, 그것에 수도자의 특별한 부르심의 목적과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떠한 시대이든 한 시대와 역사속에 속하여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역사와 상황이 달라짐에 수도자가 살아야하는 복음적 가치의 본질이 변화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복음적 가치로 변화되는 세상에 변화지 않는 영원한 진리와 사랑의가치가 있음을 증거해야한다. 그것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보여주었던 분이 바로 우리가 가르침과 모범을 따라살아가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가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분은 이 세상의 가치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셨지만, 오히려 이 세상을 이기시고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바로 이 삶을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의 수도자들이 살아가는 삶이다. 이 대의 상황과 이념들을 탓하고 주저앉아 있기 전에, 우리가 누구인지 분명히 인식하고, 우리가 살아야 할 방향을 향하여 더욱더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현대의 수도자들의 삶이고 이 시대에 더욱더 요청되는 수도생활이라 생각한다.
- 마리아 아나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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