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삼덕에 대한 현대적 이해
마리아 아나빔
들어가면서
봉헌생활은 복음적 권고의 서원을 통하여 성령의 감도 아래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따르는 삶이다. 따라서 복음적 권고(Evangelical counsels)란 축성생활의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모범에 근거된 복음적 가르침을 더욱더 가까이 따르기 위한 것이지만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진 것이란 의미에서 권고이다. 이러한 복음적 권고는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아 주님의 은총으로 항상 보존하는 하느님의 은혜이다.
복음적 권고는 정결과 청빈과 순명을 공적 서원(Public Vow)을 통하여 준수하며 하느님께 더욱 철저하게 봉헌되고 축성된다. 이러한 복음적 권고는 그리스도교적 완성 자체는 아니지만 계명의 준수를 넘어 애덕의 완성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다. 복음적 권고를 통한 봉헌생활의 목적은 하느님의 영광, 교회의 건설 및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 나라에 봉사하는 삶에 있다. 그러므로 복음적 권고의 삶은 교회 안에 빛나는 표징으로 고정된 생활을 통하여 인간의 천상적 영광의 궁극적 모습을 예표하며 모든 것에 우선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며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삶이다.
오늘날의 수도자들은 이러한 복음적 권고의 삶을 시대와 환경에 따른 변화와 상황들 속에서 어떻게 그 본질적 의미를 살려 살려내어 살 것인가를 숙고해야 한다. 또한 이 문제는 수도 삶을 살고자 하는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복음적 권고의 삶을 살도록 양성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안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대의 수도자들의 정체성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며 또한 어떻게 복음적 권고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현대적 이해를 간단하게나마 숙고하고자 한다.
1. 복음적 권고의 삶
복음적 권고의 궁극적 목적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삶에로 더욱 가까이 이끌어 주고 궁극적으로는 그분의 삶에 일치시키려는 은총의 선물이다. 그리고 하느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며 그리스도와 당신 사업에 헌신하는 생활로써 ‘주님의 말씀과 모범’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삼덕을 통하여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느님을 무엇보다도 먼저 찾고,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한다. 그러기에 오직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만 찾으며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자기만족을 찾지 않는다. 수도자는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복음적 권고의 실천 자체도 탄력을 받으며 이웃에 대한 완전한 사랑을 기른다. 또한 각자 자기의 소명에 따라 스스로 수락한 복음적 권고는 우리로 하여금 마음의 정화와 영적 자유를 위해 큰 도움으로 사랑의 열성을 계속 일으켜 준다. 따라서 복음적 권고의 세 가지 서원 안에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도록 살아간다. 이러한 복음적 권고의 삶은 죽음과 해방의 생활이며 동시에 사랑의 생활이기에 그리스도처럼 자기 비움(Kenosis)을 통하여 세상 한가운데서 일생을 바쳐 봉사하는 교회의 삶과 사명에 깊이 참여하는 파스카적 삶이다.
그러므로 봉헌생활은 서원을 통하여 평생토록 우리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고 그분께 속하게 되는 축성생활의 신분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서원의 삶은 한 사람의 일생 전체가 구속력을 가지는 선택이기에 강요됨이 없는 자유롭고 책임 있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서원은 서원자 본인 외에는 구속하지 않는다. 또한 수도자는 서원으로써 세례를 새롭게 하고 교회의 신비 속으로 깊게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축성생활이 복음적 권고를 서원함으로써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므로 오로지 죄에 대하여 죽고, 세속을 포기하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세례에 의한 축성에 깊이 근거하여 있다. 그러므로 봉헌생활은 세례의 축성에 깊이 뿌리를 박고 이를 더욱 충만하게 표현하는 특별한 축성이다. 이러한 자기 봉헌을 교회가 받아 주기에, 교회의 봉사에 봉헌되어 교회의 신비 속으로 더욱 깊이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하느님을 위한 이러한 봉사는 봉헌생활을 하는 이들로 하여금 교회의 교계제도에 관계없이 교회의 생명과 성덕에 속하는 신분을 갖게 한다. 그러기에 수도자는 자기 서원에 충실하여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버리고, 오로지 필요한 단 한 분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일에 열중한다. 따라서 봉헌생활을 하는 이는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히 불린 이로서 교회의 삶 안에서 특별한 은혜를 누리고, 자신이 속한 수도회의 목적과 정신에 따라 활동하며 교회의 구원 사명에 기여하는 삶을 산다. 그리고 구원활동에 참여하여 하느님 나라를 넓히고자 노력하는 사도적 사랑과 합치하여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인간을 향한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으로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영광을 증거한다.
그러나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가치와 양립할 수 없는 곳이다. 그리고 우리가 전 생애를 통하여 모든 것을 바쳐 따르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적 가치는 세속적 가치들과 상반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과 하느님 나라를 위해 세상의 삶의 양식이 아닌 특별한 삶의 양식을 취하셨다. 그래서 그분처럼 살기 위해서 그분이 취한 정결과 청빈과 순명의 복음적 권고의 삶은 수도자로 하여금 세상 안에 살면서도 세상으로 말미암아 길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는 길잡이와 같다.
2. 복음삼덕: 정결, 청빈, 순명의 삶
정결
하늘나라를 위한 정결서원은 하느님 은총의 탁원한 선물로써 갈라지지 아니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이다. 이로써 수도자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하느님과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더욱 불타오르게 된다. 이러한 정결은 천상 행복의 특별한 표지로써 하느님을 섬기고 사도직 활동에 헌신하는 가장 좋은 길이다. 이로써 수도자는“하느님 은총의 탁월한 선물로써 하느님께서 제정 하셨고 내세에서 완전히 드러날 혼인, 곧 신부인 교회가 유일한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맺는 혼인을 상기 시키는”종말론적이고 예언자적 증거의 삶을 살게 된다.
따라서 봉헌된 정결생활의 원천은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부터만 우리의 정결한 삶의 의미를 둘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의 정결한 삶이야말로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의 신비와 연결된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고 하느님 나라가 이미 여기에 있다는 한 표징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사람들을 향한, 전적인 자기 증여의 표현으로서의 봉헌된 정결을 사셨고, 놀라운 생활 방식의 기원이 되셨다. 따라서 정결의 진정한 의미와 동기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분의 가르침에서 찾아야 한다. 여기에는 장차 올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현존이 있다. 그것은 언젠가 우리 모두가 도달하게 될 완성된 하느님 나라의 결정적인 조건과 삶의 방식의 진정한 시작이고, 아버지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사랑 안에서 자신을 전적으로 증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봉헌된 정결생활은 그 기원이 그리스도의 삶에서 비롯되었고 전적으로 그분만을 사랑하기 위한 삶의 방식이다.
청빈
하느님 나라를 위한 청빈서원은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따르기 위한 것에 있다. 우리가 가난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가난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보다 철저히 따르기 위해서이다. 이런 의미에서 수도자들의 청빈은 완덕에 이르는 하나의 수단으로써,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비움(kenosis)에의 동참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적이고 외적으로 또한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으로 그리스도의 가난에 동참 한다. 그때 비로소 이 세상에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올바로 증거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청빈서원은 우리를 교회와 그 신비에 특별한 모양으로 결합시켜준다. 복음적 권고를 서원함으로써 사랑의 열정과 완전한 하느님 예배를 가로막을 수 있는 장애에서 해방되어, 하느님 섬김에 더욱 깊이 봉헌되고 실천으로 드러나며 증진된다. 특히 청빈서원은 그 초점을 마음의 가난에 두어, 재물에 대한 초연함으로 이해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현존의 표징, 물질에 대한 하느님 나라 질서의 회복이다.
그리고 청빈서원은 수도자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것은 단지 하느님께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요, 하느님으로 충만해지기를 돕는 방법임을 증거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전적으로 채워야 하는 것은 하느님의 부(富)요, 세상의 모든 것을 통하여 지향해야 할 목적 또한 하느님 자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수도자는 청빈서원으로써 바로 이러한 종말론적인 사실들을 자신의 삶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드러내고 상기하게 된다. 특히 가난은 하늘나라라는 보다 높은 가치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므로 청빈 서원은 바로 하늘나라를 궁극적 목표로 한다.
순명
순명서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대한 순명과 그분의 사명에 있다. 그리고 아버지께 대한 인격적 순명은 아버지의 뜻인 인간들에 대한 구원계획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순명서원의 본질적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순명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셨고, 그리스도교의 모든 진정한 순명의 최고의 모델이 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애 동안에 아버지께만 순명하신 것이 아니라, 직접 사람들에게도 순명하셨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 사건과 인간, 그리고 인간이 제정한 규정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나타나는 성부의 계획, 즉 뜻을 받아 들였다. 순명으로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고, 죄를 용서하며 사람들 섬기는 봉사의 삶을 살았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순명은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과 관계가 있다. 따라서 수도자들은 순명으로 “하느님의 구원 의지에 결합되고”더 결정적이고 확실하게 그분의 구원계획에 협력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순명은 바로 이 사랑을 완성시키는 길이며 하느님과의 일치하는 길이다. 따라서 수도자의 순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고 그분의 사명을 완성하시기 위한 자기 비움에 있다.
3. 복음 3덕에 대한 현대적 이해
봉헌생활의 행동양식과 기준은 언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분의 생활양식 그리고 그분의 정신에 있다. 따라서 수도자의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수도자는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 청빈, 순명의 삶을 통하여 이 여정을 살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복음적 권고의 삶은 시대와 상황에 따른 도전을 받는다. 특히 현대의 수도 삶은 신자유주의와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세속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그에 따라오는 공동체 생활의 해체와 개인주의로 수도생활은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수도생활에 새로운 쇄신과 활력을 찾을 수 있는 기회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수도 삶의 본질을 더욱더 새롭게 자각하고 철저히 살아가는 일이다.
하느님을 체험하는 주체는 수도자 자신이다. 수도자는 자신의 본질을 살기 위해서 자신이 사는 삶의 자리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나는 누구인가? ' 질문하고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상황을 인식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한다. 이를 위해서 요청되는 것은 복음적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말씀 중심의 삶’이다. 말씀 안에 머무는 시간은 수도자로 하여금 성령 안에서 숙고하고 그분을 따라 살아가게 하는 시간이다. 이러할 때 수도자의 삶은 나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옮겨간다.
또한 오늘날의 수도자의 삶은 특히 닥쳐진 현실, 즉 말씀과 매순간의 상황 안에서 긴장감을 견디어 내는 삶의 힘에 있다.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행동하기 위해서 수도자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고 성찰하고 숙고해야 한다. 그 다음 삶의 자리에서 그것을 살아낸다. 그러할 때 복음적 삶과 상반되는 현실을 견디어 내고 그 안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본질을 살게 된다.
또한 오늘날 수도자들의 삶은 이러한 현시대적 특징들 안에서 자기중심적 삶의 태도에서 공동체 중심으로 삶으로 옮겨가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수도 삶은 공동체적 삶으로의 부르심이다. 따라서 수도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즉 공동체적 삶의 가치는 수도생활의 본질적 가치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각자가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삼덕의 생활양식을 통하여 복음적 가치를 살아내는 것이 수도자의 정체성이다.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언제나 있었고, 있어왔으며, 또한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시대와 장소와 이념 속에서도 수도자의 본질인 복음의 정신으로 자신의 신분을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도 삶의 현장에서, 매일 일상의 삶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넘어 복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시대의 정신에 맞서서 묵묵히 수도자의 본질과 정신을 살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수도자가 예언자와 신비가로 살아가는 길이다. 그리고 이 삶은 수도자의 본질을 상실해가는 이 시대에 더욱더 요청되는 것이다.
나오면서
수도자는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그분의 삶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다.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삶의 방식, 그리고 복음적 가치를 자신이 주어진 시대 안에서 증거적 삶으로 자신의 전존재로서 살아가는 이다. 그리고 이 삶을 구체적으로 복음삼덕의 삶의 양식을 통하여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언제나 그 시대의 사조와 환경의 도전을 받으며, 또한 어떻게 자신의 삶 속에 토착화 시켜 살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갖고 있다.
반면 오늘날 이 시대에 한 사람의 수도자로 살아가는 수도 삶이 어려운 것은 단지 시대의 상황과 이데올로기의 문제만은 아니다. 시대와 상황은 언제나 그 속성상 변화하는 것이 그 성향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되지 않는 본질인데, 수도자들의 삶은 이것을 살기를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수도자가 시대의 상황 때문에 본질을 살기가 어려운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또한 역설적으로 그 상황에서 본질을 살아내는 것이 또한 그의 신분에 맞는 역할이다. 그리고 이 삶을 살았던 많은 성인 성녀들이 이것에 대한 증거적 삶을 보여주었다. 시대와 상황에 개의치 않고, 또한 그에 맞는 복음적 증거의 방법을 찾으면서 변화되어가는 것들 안에서 변화지 않는 영원한 진리의 삶을 증거 하는 것, 그것에 수도자의 특별한 부르심의 목적과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떠한 시대이든 한 시대와 역사 속의 한 구성원으로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역사와 상황이 달라짐에 수도자가 살아야하는 복음적 가치의 본질이 변화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복음적 가치로 변화되는 세상에 변화지 않는 영원한 진리와 사랑의 가치가 있음을 증거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보여주었던 분이 바로 우리가 가르침과 모범을 따라 살아가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가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분은 이 세상의 가치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셨지만, 오히려 이 세상을 이기시고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바로 이 삶을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수도자들이 살아야 하는 삶이다. 이시대의 상황과 이념들을 탓하고 주저앉아 있기 전에, 우리가 누구인지 분명히 인식하고, 우리가 살아야 할 방향을 향하여 더욱더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현대의 수도자들의 삶이고 이 시대에 더욱더 요청되는 수도생활의 양성의 한 요소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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