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첸시안 영성의 단상

빈첸시안과 거룩한 문

마리아 아나빔 2016. 8. 24. 13:43




빈첸시안 영성의 단상(3)

빈첸시안과 거룩한 문
Vincentians and Holy Doors!
By John Freund,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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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문을 통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 는 일은 재미있는 일입니다. 한 사람이 몇 번이나 그들을 따르는 누군가를 위하여 그 문을 잡겠습니까? 요즘은 삶에 떠밀리어 다 른 사람을 위해서 문을 잡아주는 실천을 많이 잊고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서 문을 열어주는 행위는 이번 자비의 희년에 교황님께서 마음에 간직하신 이미지로 변형됩니다.

교황께서는 순례를 하는 사람들과 특별히 지정된 성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축복을 주시는 전통을 상기시킵니다.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대축일에 거룩한 문은 하느님의 위로와 용서 그리고 희망을 느끼게 하며 하느님 사랑을 경험하고자 하는 이들이 지나갈 자비의 문이 될 것입니다.


전대사와 신앙 체험을 위해 신앙인들이 거룩한 문을 통과하는 짧은 순례로 불릴 성문이 주교에 의해 지정된 모든 본당과 주교좌성당에서 열리게 됩니다.


자비의 문

우리의 마음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무겁고 고통스런 처지에 있을 수 있습니다.

· 우리 자신의 죄와의 투쟁
· 가족들과의 관계가 깨어짐에서 오는 깊은 상처
· 불임의 고통
· 정신적 신체적 고통
· 실직의 충격
· 배신이나 버림받은 고통
· 정신적 육체적 가난의 모든 형태들
우리 가운데 누가 다양한 고통과 혼란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해방과 자비를 갈망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요청할 때 우리는 고통과 혼란 속에 있는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본능적으로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고통을 면제받음으로써 우리의 고통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때론 고통이 제거되지는 않지만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와 그곳에 함께 있음 안에서 편안함을 발견합니다.


자비가 무엇입니까?
저는 최근에 “자비는 다른 이의 혼돈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는 것이다”라는 것을 읽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육화의 신비, 자비의 희년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연결시키기를 좋아합니다.


대림절에 우리는 구원을 고대합니다. 개인으로만 아니고 모든 피조물이 우리의 혼돈의 세상으로 하느님이 오시기를 갈망합니다. 육화의 신비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혼돈으로 기꺼이 들어오신 일입니다. 노숙의 처지에 몸소 들어오시는 하느님, 자신의 운명을 내어 맡기는 혼돈으로 들어오시는 하느님보다 더 큰 상징은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0대 소년 때에 하느님이 혼란스런 그의 세계 속으로 들어오심을 민감하게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지속적인 자비가 필요함을 또한 이 세상도 자비가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자비의 특별 희년을 경축하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자비의 문을 통과하는 옛 상징을 사용합니다. 영적으로 그는 로마에 있는 거룩한 문을 통과하는 순례자들의 전통적 개념을 넘어갑니다. 그는 하느님 자비의 경험을 위한 문으로 세상의 모든 교구에 거룩한 문이 열리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또 다른 혼돈으로 들어가기”라는 자비에 대해 생각할 때 헤아릴 수 없을 만치의 하느님의 자비를 경험하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더불어 상징적으로 저 또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보여주기를 요청받으며 제 차례임을 깨닫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혼돈에서 해방됨과 더불어 다른 이들을 위한 위로와 용서를 해주며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시작으로 열린 문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성 빈센트와 성녀 루이제를 따르는 사람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해방을 찾을 수 있는 자비의 문이 되어 줌으로써 주님의 길을 마련할 수 있는 몇 가지 시작의 길들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위로- 타인을 위한 시간 만들기
여러분은 “시간을 갖는 것”에 대하여 질문 해 본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의 문지방을 건너오는 것을 허용합니까?
또는 우리는 우리의 문을 잠그고 타인과 연루되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까?


용서
우리는 기꺼이 마음속으로 용서받기를 원합니까?


희망을 불어넣어주다
우리는 화내고 고의적으로 피하고 있습니까?


이 거룩한 자비의 해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자비의 해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기회의 순간입니다. 자비의 해는 우리의 마음이 감동받기를 허락하는 시간입니다.


하느님은 결코 우리에게 오시는 것을 피곤해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혼돈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오늘, 전례는 성 빈센트와 성녀 루이제를 따르는 사람으로 우리를 상기시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기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날까지 여러분 안에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것을 계속 완성해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주님의 길을 마련합시다. 그리고 자비의 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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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isericordiae Vultus, “The Face of Mercy” (11 April 2015).
(2) Mike Jordan Laskey wrote in the National Catholic Reporter about Kerry Weber’s great book Mercy in the City, which he read a few months ago. “So I pulled it off the shelf and paged through the first few chapters, and there it was on page 12, where she quotes the Jesuit priest Fr. James F. Keenan. “Mercy,” he says, “is the willingness to enter into chaos of an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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