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9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에 필리핀 공동체의 책임과 양성장으로 소임을 받고 필리핀에 도착했다. 5년의 영성실현위원회에서의 소임을 마치고 나의 육체와 마음과 영혼은 조금 휴식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상황과 상태에 아랑곳없이 새로운 선교지에 새로운 자매들과 새로운 문화 그리고 새로운 소임에 들어가야 했다. 나의 능력과 역량이 그것을 감당하고 소화해 낼지 가름해볼 여지도 없이 단지 수도자로서의 소임에 대한 순명으로 받아들이고 따라야 했다. 난 그것이 수도자의 삶이고 자세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고 살고 있다.
처음 총원장 수녀님으로부터 필리핀 양성장 소임을 받았을 때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단지 가라고 하니 순수한 마음으로 ‘예’ 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예’를 ‘나의 신앙’ 하느님과 예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수도자로서의 순명과 신앙으로 대답을 했지만 인간적인 이성적 반응은 나중에 다가왔다. 그 당시 필리핀 공동체의 상황은 새로운 집을 마련했고 그 집을 리모델링하여 이사를 해야 했다. 그 과정이 시급하기에 더 일찍 떠나야 했다. 그 당시 개인적 내 사정을 회고해보면 나의 어머니는 고령에 두 다리 골절수술을 했고 막 퇴원을 했다. 수도자로서의 나의 역할이 많은 것을 해줄 수는 없지만 정신적으로 중요한 존재였다. 개인적 마음도 그런 어머니 곁을 조금만 더 같이 해주고 싶은 것이 인간적인 마음이었다.
필리핀으로 떠나는 날이 자꾸 다가오자 나의 마음은 조급해지고 앞으로의 소임이 걱정되며 참으로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며 겁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의 검증되지 않은 영어실력도, 문화가 다른 자매들과의 관계, 제3의 언어로 양성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공동체를 꾸려야 한다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당장 해야만 하는 집수리와 이사 등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도 주어졌다. 그런데 선교지로 떠나기 이틀 전, 아침기상 벨이 울리기 전에 나는 아주 선명한 목소리를 나의 내면으로부터 뚜렷하게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조차 분명히 구분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내 마음에 각인되어 남아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목소리로 “내가 너를 필리핀에서 기다리고 있다.”라는 목소리이었다. 이 목소리를 들은 이후 내 안에 있던 모든 두려움들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예수님이 있는 필리핀을 향하여 짐을 꾸렸고 이곳에 왔다.
필리핀에서 양성소임을 맡고 공동체를 꾸려 온지도 어는 덧 5년이 되어가고 있다. 무사히 새로운 집수리를 마치고 이사를 해서 Formation House 라고 간판도 붙었었다. 선교지과 양성소의 미래적 비전을 전망하며 St. Vincent Mission Center도 지었다. 두 그룹이 이미 첫 서원을 했고, 또 두 그룹은 법정수련기와 활동수련기를 보내며 열심히 수련을 받고 있다. 펜데믹에도 불구하고 방글라데시에서 처음으로 필리핀 양성소에서 청원기와 수련기의 양성을 받기위해서 왔다. 함께 생활하던 사도직도 일 년 전에 분가를 해서 사도직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올해는 필리핀 국제양성소 설립 10주년이 된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 안에 그분의 뜻으로 이루어진 일이라 여겨진다. 하느님이 하신 일들이 그저 놀랍기만 하고 그분의 창조적 사랑은 위대하다.
선교지의 자매들을 양성하는 선교사로서, 한 사람의 인격을 성숙 시키고, 무엇보다 하느님께 봉헌된 수도자로 준비시키는 양성장(Formator)으로의 삶은 언제나 녹녹치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나의 삶을 돌아본다면 이곳에서의 삶은 내가 남을 양성하기 전에 하느님 손수 나를 양성시키고 이끄신 삶이라 생각된다. 양성의 출발은 부르심에서 시작되지만 그 중심엔 ‘개인적 회심’이 자리한다. 여러 번에 걸친 회심은 내 삶을 언제나 하느님께 투신하게 하였다. 특히 선교지에서 선교사로서의 삶은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 단 하루도 살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한 사람을 수도자로 양성시키는 사람으로 스스로 하느님 앞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투명해지도록 하며 그분 앞에 한없이 가난하고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나의 삶의 모습이 양성자들에겐 첫 양성수업이기 때문이다. 선교지에서 살기위해서 많은 용기와 능력도 필요하지만 가장 필수적인 태도는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함과 의탁이다. 그러할 때 하느님은 나의 필요를 그때그때마다 아낌없이 채워주심을 뼛속까지 체험했기 때문이다.
성 빈센트는 그의 하느님 체험에서 ‘하느님의 사랑은 무한히 창조적’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나의 삶은 이 말을 삶으로 체험하고 깊이 알아듣게 했다. 사람을 양성하는 일에서나 사도직을 넓혀가는 일에서나 사고와 인생의 폭을 넓혀가는 일에서나 그리고 한 사람의 수도자로서 그분과 더욱더 하나가 되어가는 수도여정 안에서 이 진리를 깨닫게 된다. 또한 우리 수도 공동체에 해외선교를 허락하시고 선교지의 자매들을 수도자로 양성하기 위해서 시작한 필리핀 국제양성소 역시 하느님의 사랑의 창조의 한부분이다. 그분의 사랑의 창조성은 사람 안에서 다양한 시대의 사건과 징표를 통하여 쉼 없이 계속된다. 그분의 거침없는 사랑의 창조성에 나는 그저 내 삶을 맡겨드렸고 나의 수도 삶의 충실성과 항구함으로 살았고 지금도 응답한다.
끝으로 필리핀 국제 양성소에서 하느님 사랑의 창조사업에 처음으로 응답하고 협력한 나의 선임자 수녀인 베아트릭스 수녀님, 이 여정에 직접적으로 함께 동행해준 클레오파수녀님, 빈센티나 수녀님, 사도직 안에서 간접적으로 함께 해주신 골롬바 수녀님, 이다마리아 수녀님 등 함께 해주신 모든 수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 창조의 여정에 주인공으로 참여하고 국제양성소를 거쳐 갔던 미얀마 유기서원 수녀님들, 지금도 그 일에 동참하고 있는 선교지의 수녀님들과 자매들께 진심어린 주님의 사랑을 드리고 싶다. 그들은 이 창조적 하느님 사랑의 열매들이며 나와 이 일에 참여한 모든 수녀님들은 그분 사랑의 창조사업의 일꾼들이다. 그리고 이 일은 세상 끝날 까지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 사랑의 속성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 마리아 아나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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