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생활에 대하여
6. 기도와 생활
기도란 인간 존재의 주인이시며 창조주이신 완전한 하느님의 특성을 인간이 인지하는 것이다. 침묵 안에서 갖는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나 실천적인 애덕 안에서 갖는 이웃을 통한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는 결과적으로 하느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을 말한다. 이 현존의 체험이 순수 인간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일 때에는 이러한 직접적인 기도들은 자기도취의 환상과 교만에 빠지게 할 뿐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부르심에 인간이 더듬거리면서 응하는 답으로서, 이 기도는 신앙인의 삶에 희망을 주고, 빛나게 하며 성령의 은총을 통해서 하느님을 ‘아빠’ 라고 부를 수 있는 진정한 기도를 가능케 한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께서 온 밤을 기도로 지새우셨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나자렛에서, 겟세마니에서, 그리고 갈바리아 산상에서까지도 성부와의 대화를 잠시도 쉬니 않으셨다.
진정한 기도는 사랑의 가치를 알아듣게 한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올바른 자신의 변화를 이룩한다. 하지만 그릇된 기도는 인간 마음 안에 공상이나 환상 등 쓸데없는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그러므로 잘못 이해된 기도들은 하면 할수록 더욱 잘못에로 빠지게 할 뿐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정기적이고 규칙적으로 제물을 바쳤으나 그것은 외적인 열성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들의 마음은 텅 비어 있어 모두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모든 기도가 다 좋은 것도, 또 다 효과적인 것도 아니다. 가령 기도가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갈구나 부르짖음이 아닐 때, 그 기도는 아무효과도 내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습성을 유발시킬 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언제, 어디서나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찾아 대화하는데 있어서 온 마음을 기울여야 하며 생활 중에 언제나 내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찾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앞서 요구된다.
“먹고, 마시는 것도 모두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사랑하라, 순명하라, 이 모두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라.”(에페 5,26-6, 1요한 15, 12) 이러한 말들은 모두가 하느님께 올리는 거룩한 희생이며, 땅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영원한 염원이다. 삶 전체를 하느님께 향하는 그리스도교인은 인간의 삶 그 자체를 하느님께 드려야 한다. 기도는 실제로 고통스러울 때나 기쁠 때에 하게 되는데 이는 기쁠 때도 먼저 하느님을 찾고,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에도 언제나 하느님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인은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하고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당신 몸인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에 구원 사업을 계속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구원 사업을 위해 하느님은 먼저 인간 상호간의 일치를 원하고 기다리시며 당신 뜻에 따른 세상 건설과 모든 인간의 행위의 성화를 원하신다.
기도는 모든 존재 안에 숨겨진 진리를 파악하게 이끌어 준다. 특히 기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에 따른 삶의 구현이 되도록 내적 변화를 일으킬 힘을 준다. 모든 신앙인은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찾지 못한다면 삶 안에서도 하느님을 만나지 못할 것이고 또한 삶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는 신앙인은 그 기도 안에서도 하느님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이나 공동체를 통해서 언제나 자기 삶을 재검토내지는 재발견케 해주는 기도에 충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들의 삶을 새롭게 참신하게 해 주는 기도를 통해 삶에 대한 재검토를 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바라보게 하고 삶 그 자체를 복음 정신 안에 있게 한다. 동시에 재검토 하는 삶은 우리들 각자에게 그리스도는 나에게 어떤 분이시며 내 삶 안에서 그분은 나에게 무엇을 기다리시는가? 라는 의문을 계속해서 던지게 한다. 즉 나는 나의기도 안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찾고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바라보는가? 이러한 문제들은 실제적 삶 안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 안에 자신을 일치 시키는가 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일깨워 준다. 기도는 이 현실적인 삶 속에 자리 잡아야 하는 것이다. 즉 마음과 몸 모두를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삶 자체를 기도화해야 하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 안에서 역사하시며 우리를 하느님 안에서 일치하게 하고 마음과 몸을 하느님 안에 묶어 두도록 은총을 내리신다. 그래서 성령은 그리스도교인에게 있어 현존하는 빛이며 정화의 약속이라 한다. 즉 성령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과 세속적인 것들을 구분지어 준다. 그분을 통해서 그리스도교인은 그리스도 안에 존재할 수 있고, 그리스도께서 그들 앞에 현존할 수가 있다. “모든 것은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들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1고린 12, 27-28)
기도에 있어서 많이 하고 적게 하는 양의 문제가 아니라 참되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항상 깨어 기도하라”고 그리스도는 기도를 통한 삶, 삶을 통한 기도를 인간에게 요구하셨다. 이 말은 기도와 삶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 양자는 인간의 노력으로 빛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 하느님의 은총 안에 조화 있게 발전 할 수 있음을 뜻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은 언제나 어디서나 기도의 삶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울로 사도가 말한 “나에게 삶이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필립보 1, 21)라는 말 속에서 신앙인의 생애가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 여정임을 일깨워 주며, 또한 성세의 물을 통해 가야하는 이 삶은 많은 인내와 충실을 동반할 때만이 가능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하느님은 삶의 역사를 통해 구원과 창조 사업을 계속하신다.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은 하느님 사업의 협조자고서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의 뜻을 배우고 실천하는 삶이어야 한다. 하느님의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는 삶과 죽음을 하느님께 내어 맡기고 그 삶 자체를 기도화하여 하느님의 뜻을 채워 드리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 영혼의 내적(마음과 정신)의 상황에 따라 우리들의 삶이 하느님 앞에 가치 있거나 또는 가치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의 삶 자체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하느님 안에 묶어놓기 위해서 그리스도교인은 내적인 마음의 자세가 올바르게 구축되어야 한다. 생활 전체를 통해서 하느님께 마음을 열어야 한다.
인간이 하느님의 존재를 삶을 통한 기도의 형태 안에서 체험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어려운 때가 많이 있다. 삶의 체험을 통한 기도로써 하느님 안에서 그 영혼은 커 나간다. 인간이 하느님의 현존을 향해 마음의 눈을 뜨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내적인 성찰을 통해서 자신의 삶이 기도화되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들이 늘 가지는 기도의 시작은 무엇보다 자아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자아 반성은 우리 각자가 자기 위치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존재가 삶을 통해서 자신 안에 거처하시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작자가 신앙을 증명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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