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
10. 내용
탈출기의 전체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전반부(이집트 탈출 이야기)
(1) 탈출전승 부분
이집트로 내려간 이스라엘은 그 수가 늘어나면서 이집트들로부터 정치적 탄압을 받게 된다(1장). 결국 파라오는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리지만 모세는 공주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출되고 그 공주의 양아들로 양육된다. 어른이 된 모세는 어느 날 자기 동포를 탄압하던 이집트인을 살해하고 미디안으로 도주하는데(2장), 거기에서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동족의 해방을 위해 다시 파라오에게 가게 된다(3-7장).
파라오가 이스라엘의 해방을 주장하는 모세의 말을 듣지 않자 하느님께서는 아홉 가지의 큰 재앙을 내리시고(7,8-11,10), 마침내 파스카 축제를 지내는 날 모든 맏배를 죽이는 마지막 재앙을 내리신다(12,29-36). 이에 경악한 파라오는 모세의 청을 허락하고, 이스라엘은 마침내 ‘갈대바다’를 건넘으로써 이집트의 억압에서 해방된다(12-15장).
(2) 광야 전승 부분
이집트 탈출에 성공한 이스라엘은 기나긴 ‘광야 여정’을 시작한다. 하느님의 엄청난 업적을 체험한 그들이었지만 광야 생활의 불편함은 곧 불평으로 이어지고, 원망하는 그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물과 만나, 메추라기를 내려주신다(15-17장). 이러한 광야 여정 중에서도 그들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야훼 -니씨’(주님께서 나의 깃발이라는 의미)라는 이름으로 제단을 봉헌하기도 한다(17,8-16). 모세는 장인 이트로의 충고를 따라 아주 중요한 재판만이 자신이 하고 나머지는 여러 재판관에게 일임하도록 하는 체제를 확립한다(18장).
2) 후반부(계약 체결과 성막 건립)
이스라엘은 시나이 광야에 이르러 계약 체결을 준비하는데(19장) 하느님께서는 이 계약에 충실할 수 있는 수단으로 ‘십계명’과 ‘계약법전’을 주신다(20-23장). 마침내 그들은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고 ‘하느님 백성’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24장). 이러한 계약체결의 가시적 증거로 그들은 성소를 건립하고자 하고 하느님께서 보여 주신 모형대로 성막을 제조한다(25-27장). 아울러 사제들을 성별하고 제사규정, 안식일 제도 등도 제정한다(28-31장). 이렇게 하느님과의 계약을 체결한 이스라엘이었지만 모세가 하느님을 만나러 산에 가 있는 동안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함으로써 죄를 범하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이에 몹시 노하시지만 모세의 간청으로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신다. 모세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적어 놓은 증언판을 깨뜨리고 금송아지를 빻은 가루를 이스라엘에게 먹게 하며 반역자를 처벌한다. 이후 이스라엘은 하느님으로부터 다시 증언판을 받고 계약을 갱신한다(32-34장).
성막을 건립하기 위해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인 예물이 넉넉해지자, 이스라엘은 봉헌을 중단하고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운다. 그리고 거기에 기물을 들여 놓음으로써 이를 마무리한다. 이 모든 일이 끝나고 나자 구름이만남의 장망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가득 차게 된다(35-40장).
11. 갈대 바다 사건의 역사성
이집트 탈출 사건은 모세오경에서 중심이 되는 사건이며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게 된 근거가 되는 원체험이었다. 이 놀라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의 하느님이야말로 살아 계신 분임을 깨닫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다를 건너 이집트를 탈출하는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탈출기 14장은 야훼계와 엘로힘계, 제관계 전승이 결합되어 완성된 부분으로 보인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갈대 바다 사건은 여러 저자들에 의해 묘사된 신학적 고백이고 신앙 전승이지, 사실에 대한, 혹은 ‘어떻게’에 대한 정확한 보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갈대 바다 사건에 대한 회의적 견해를 내놓고 있다.
1) 갈대 바다 사건의 역사성에 대한 회의적 견해
갈대 바다 사건이 현재 성경에 묘사되어 있는 그대로 발생한 실제 사건이라는 주장에 회의를 품게 하는 근거들은 다음과 같다.
(1) 신명기 6장 21-24절, 26장 5-9절, 여호수아기 24장 2-13절 등은 이스라엘이 전통적으로 전례 중에 고백하던 일종의 역사적 신앙 고백문들이다. 이 신앙 고백문들은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언급함으로써 이를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기억하고 그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중요한 신앙 고백문들 안에,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빠져 나왔다는 사실은 언급되고 있지만 소위 ‘갈대바다’를 건넜다는 내용은 발견되지 않는다.
(2) 장정만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 빠져나가(민수 1,46 참조) 바다를 건넌 사건이 사실이었다면 상당히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이집트 람세스 2세의 왕실 기록이 이 사건을 언급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이집트이 실록 어디에서도 이러한 사건의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또한 창조에서 유배까지 이스라엘의 중요한 역사를 정리한 ‘역대기’의 기록에서도 이 사건은 등장하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이스라엘이 갈대 바다를 건넜다는 기록이 성경의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서는 그 어떤 전승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3) 이스라엘이 탈출할 때 선택한 ‘바다’도 구체적으로 어떤 바다였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들이 건너간 바다를 히브리어는 ‘얌 슈프(갈대 바다)’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장소가 현재의 수에즈 만 일대에 자리 잡고 있는 ‘홍해(Red sea)'인지, 아니면 나일강 상류 텔타 지역의 늪지대인지 확실하지 않다.
(4) 그 바다가 어느 곳이었든지, 바다가 갈라지는 모습도 성경에서는 서로 다르게 보도하고 있다. ① 시편 136의 13절에는 “갈대 바다를 두로 가르신 분”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한편, ② 시편 106의 9절에는 “갈대 바다를 꾸짖으시어 물이 마르자”라는 표현이 나온다. 즉, 첫째 본문에서는 바다가 갈라지는 모습으로, 두 번째 본문에서는 바다가 바람에 의해 마르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바다를 건넌 사건 자체를 보도고 있는 탈출기 14장 21-22절 역시 두 전승을 서로 혼합하여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 주님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샛바람으로 바닷물을 밀어내시어, 바다를 마른 땅으로 만드셨다. 그리하여 바닷물이 갈라지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즉, 14장 21-22절의 전반부는 하느님께서 거센 돌풍을 일으키시어 바다를 말리시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면, 후반부는 모세가 지팡이를 바다로 뻗치자 물이 양측으로 벽처럼 갈라져서 마치 탈출하는 이스라엘인들을 벽이 지켜보는 듯한 모습으로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2) 종합
모세오경이 여러 시대에 걸쳐 구성된 이야기들의 집합이요, 이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발견된 문헌임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집트 탈출 사건 자체도 성경에 제시된 그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발생한 사건이이라고 주장할 수만은 없음이 분명해진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집트 탈출 사건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여러 가지 형태로 성장, 변화되었을 것이고, 이러한 과정 안에서 더욱 구체적이고 극적인 묘사들이 첨가되면서 현재의 형태에 이르렀을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즉, 이집트에 거주하고 있던 히브리인들은 조금씩 무리를 지어 이집트를 빠져나왔고 이를 서술함에 있어 그들이 알고 있던 여러 가지 민담들, 예를 들어 바다를 건너는 사건, 여러 가지 재앙들에 대한 이야기, 비극적 박해, 유아 살해 같은 매우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후대에 첨가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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