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
3. 탈출기와 창세기의 내용적 연속성
이상의 내용은 탈출기가 창세기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오경편집자의 신학적 의도 하에 이루어진 작업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연결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신학적 주제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약속의 구체적 실현
마틴노트에 의하면, 족장 전승과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던 이집트 탈출 전승이 서로 함께 결합된 것은 지파 동맹체제(Amphictyony) 라는 배경 안에서이다. 이러한 연합- 수렴작업을 통해 편집자는 족장들에게 언급했던 약속이 이 이스라엘 안에 실제적이고 직접적인 사건으로 ‘실현’됨을 선포하고자 했다.
이 책의 입문 부분에서 창세기와 탈출기의 제작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스라엘이 가장 먼저 체험했던 것은 이집트 탈출 사건이었음을 언급한 바 있다. 이를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탈출 사건은 가나안 땅을 찾아가기 위한 절대필수 과정으로 제시되었고, 축복의 땅에 대한 ‘약속’은 이미 성조들에게 제시되었던 것임을 위해 창세기의 성조사 부분이 첨가되었으며, 이러한 편집 과정의 마지막에는 성조들과 약속이 사실은 최조의 인류인 아담에게까지 소급된 것임을 제시하기 위해 원역사 부분이 첨가되었음을 서술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형성된 모세오경은, 이 책을 처음부터 읽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줄거리로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를 이해하게 한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복을 주시고자 세상을 창조하셨고(창세 1-11장), 이러한 축복은 이스라엘의 성조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으며(창세 12-50장), ‘땅’과 ‘민족 번성’에 대한 그 축복은 더 이상 ‘약속’만으로 남아있지 않고, 이집트 탈출 사건과 시나이 계약을 통해 구체적인 역사로 실현된다(탈출기). ‘약속의 구체적 실현’이라는 주제가 강하게 부각되는 시나리오인 것이다.
2) 족장들의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하느님
오경의 저자가 이 모든 통합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주목한 신학적 주제는, 억압된 정치 구조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혹은 선민으로서 그들이 누리는 행운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알아 가는 과정’으로 이해되었고, 이는 성경 전체가 ‘하느님의 계시’라는 대주제와 상통한다. 즉, 이스라엘은 이 과정을 통해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확인하게 되면서, 그 확인이 신앙과 신념으로 승화되었을 때 시나이에서 하느님과의 절대적인 계약을 체결한다.
사실 그들은 ‘족장들이 하느님’에 대하여는 알고 있었지만, 그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하느님’, 즉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고백할 수 있는 ‘자신들의 하느님’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족장들이 섬겼던 신의 존재에 대하여 막연한 느낌과 정보를 갖고 있기는 했지만, 그 하느님의 이름조차 정확히 몰랐고,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이라는 막연한 표현으로 지칭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막연함은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이 ‘야훼’라는 것을 알려 주신 사건(3장;6,2)과 극적인 이집트 탈출 사건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관계로 돌입하게 되는데,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알게 되었다 해도 그분을 진정 깊이 알아 가는 과정이 필요했고, 결국 40년간의 광야 체험을 통해 그들은 그분을 보다 잘 이해하고 믿는 성숙의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많은 예언서 전승들은 광야를 ‘첫 사랑의 장소’, ‘약혼 시절’로 고백하고 있다(예레2,2;호세 2장;11,1). 이러한 표현들은 광야의 여정이야말로 그분과의 교제가 심화되고 구체화되었던 시기임을 잘 제시해 준다.
이렇듯 탈출기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직접적으로 알아 가면서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그 여정의 끝에서 그분과 구체적인 관계(계약)를 맺었음을 선포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전개된다.
이러한 탈출기의 여정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가장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해 준다. 이스라엘은 족장들에게 하신 약속이 자신들의 역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보면서, 그 징표들을 통해 조금씩 하느님을 알아 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신앙의 도정에서 누구도 예외 없이 체험하게 되는 은총 중의 하나이다. 초월적인 하느님의 약속, 계약, 이론 등은 우리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체험되지 않는 이상, 그저 형이상학적인 관념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인간의 삶 안에 개입하고 계신 살아 있는 존재이시며, 이러한 하느님의 현존을 구체적으로 느끼고 인지하는 것은 인간 각자의 몫이라 하겠다. 내 인생의 역사 안에 구체적으로 들어와 활동하시는 분, 그분에 대한 실제적 체험을 통해 ‘족장들의 하느님’으로만 인식되어 왔던 하느님은 비로소 ‘나의 하느님’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4. 창세기와 탈출기-신명기와의 관계
롤프 크니림(R.P.Knierim)은 오경이 ‘창세기’와 ‘탈출기-신명기’라는 두 개의 거대한 문학 덩어리로 나뉘어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구분이라고 생각되는데, 모세 이전 시대를 언급하는 창세기는 모세의 시대를 다루는 탈출기-신명기를 위한 도입 내지는 준비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탈출기-신명기는 모세의 탄생과 고난, 소명,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묶여있다. 여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 공동체를 탄생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로 묘사되고, 이러한 막중한 책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정체를 모세에게 끊임없이 확인시켜 주신다. 물론 모세에게 전달된 야훼의 정체성을 통해 모세오경이 꾀하고 있는 주제는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의 정체성을 소개하고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탈출기 1장- 신명기 34장이 제시하고 있는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이집트에서 시나이 산으로(탈출 1,1-민수 10,10)
① 시나이 산으로(탈출 1,1-18,27)
② 시나이 산에서(탈출 19,1-민수 10,10)
2) 시나이 산에서 모압까지(민수 10,11-신명 34,12)
① 모압 평원으로 (민수 10,11-36,13)
② 모압 평원에서(신명 1, 1-34,12)
이러한 구조는 ‘지리적 여정’을 통해 내용이 진행됨을 드러내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장소적 이동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이동은 신학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여행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해방 사건과 그 경험을 토대로 형성된 이스라엘은 일종의 ‘해방 공동체’, 내지는 ‘민족 공동체’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지만, 이후에 제시되고 있는 더 많은 이야기들은 이스라엘이 하느님만을 그들의 신으로 모시는 그리고 그것을 진심으로 고백하는 ‘제의-신정 공동체’로 조직화되었음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 길잡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세오경VI(탈출기4) (0) | 2010.11.23 |
---|---|
모세오경VI(탈출기3) (0) | 2010.11.23 |
모세오경 VI(탈출기1) (0) | 2010.11.23 |
모세오경 V(창세기 2) (0) | 2010.10.14 |
모세오경V (창세기1) (0) | 2010.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