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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영원』에 대하여(둘)

마리아 아나빔 2011. 1. 20. 20:40

 

 

                                                           시간과 영원』에 대하여

 

 

2. 무시간성과 영원 사이에서

 

     시간성을 극복한 것이 무시간성이고, 이 무시간성의 지속, 즉 과거도 미래도 아닌 존재가 현재적 시간성안에서 계속적으로 지속된다면 이것을 우리는 시간을 초월한 무시간성, 초월적 시간성 또는 영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모든 존재자들은 시간성 위에 서서 시간성,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문화적 시간성 속에서도 객관적 시간성 속에서도 존재하였다. 반대로 영원은 자연적 삶의 본질적 성격이 되는 것이 시간성이라면 자유를 통해 시간성을 이탈하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기에 시간성을 초월한 영원성 우리 문화적 시간성의 경계를 넘어 초월적인 영역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아니 되며, 그러기에 시간성을 이탈한 영원성안에는 초월적인 특성을 지니 종교의 세계와 초월적인 특성들의 속성과 그 안에서의 시간의 초월성과 무시간성을 존재케 하며 극복할 수 있는 초월적 존재자가 영원의 세계에는 반드시 존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1. 영원에 대하여

 

     시간성을 초월한 초시간성인 영원성은 시간과는 상반되는 성격을 띠고 있으며, 영원적 존재는 자연적이고 문화적인 삶에 대해서 어디까지나 우월성을 간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재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적이고 문화적인 삶을 사는 동일주체가 이미 영원의 세계와 친밀한 연관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러한 영원에는 그 영원성을 부여한 존재자가 있을 것이고, 그 존재자가 내리는 사랑의 계시는 영원성과 시간성안에서 긴밀한 연관성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은 한편 시간과 관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것이 된다. 그 내용적 규정은 사랑의 관념에 의해서 얻어지지만, 그 형상적 규정 즉 , 정의는 시간성을 단서로 하여 시간성과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멸하지 않는 현재」에 대해서 말한다. 이것은 영원성에 있어서 첫 번째 본질적인 특성이다. 멸하지 않는 현재는 과거와 전혀 서로 포함되지 않는다. 과거는 우리가 특히 강조한 바와 같이 그 근원적 의의에 있어서 유(有)가 무(無)로의 몰입이며 현재의 괴멸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철저한 극복이 영원성에 있어서 두 번째의 본질적인 특징이 된다. 그리고 미래는 영원에 있어서 자연적으로 보존된다. 왜냐하면 시간성에 있어서 미래는 실재적 타자에 속하며, 타자 쪽에서 오는 것을 맞이하는 태도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사랑에 있어서도 본질적인 성격을 이루며 영원에 있어서도 미래가 보존되는 이유이다.

      즉 영원에 있어서 주체는 오는 것을 맞이함으로써 무를 극복하고 모든 괴멸을 면하며, 미래와 현재와의 완전한 일치, 미래의 완전한 현재성이 바로 영원성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래가 현재와 일치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곳에는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가 있을 수 있는 장소는 없다. 따라서 영원성은 무시간성과 같이 시간의 간단한 부정은 아니며, 그것은 시간의 극복임에는 틀림없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또한 시간과 내연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성은 시간성의 결함인 가멸성, 단편성, 불안전성 등과 같은 것은 현재가 미래와의 합일을 기도하다가 실패로 마친 데서 연유된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반면 영원성은 삶의 본래의 바라는 희망이 성취되었다고 하면 그것은 영원성일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영원에 대한 동경, 역으로 말하면 영원은 시간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신성한 신의 계시, 은혜의 창조가 이 세상의 모든 존재의 근본에 있어서 자연적으로 실재성의 근원을 이루는 것과 같이 영원도 시간의 근원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영원성은 공간성까지도 극복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극복은 시간성의 경우와는 달리 순수한 부정과 같다. 근원적인 공간성은 주체와 실체적 타자사이에 있는 배타성 순수한 외면성이다. 이것은 시간성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와 장래와의 사이에서 반대편에 떨어져 있어 일치하지 못하는 것이 공간성이다. 이것은 영원성에 있어서 철저하게 제거되므로 비 공간성이 그 본질적인 특징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성과 내면적인 연관은 거기에서는 완전한 분리는 없다. 과거를 극복하고 장래와 현재와의 완전한 합일을 성취함으로써 영원성은 시간성을 극복하면서 오리려 완성한다.

 

2.2. 시간과 영원의 관계 대하여

 

     시간은 영원에 대한 밀접히 관계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상반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시간의 연속성과 완성이 바로 영원이라 할 때는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있지만, 영원이 탈시간적 속성, 시간 밖의 세계 또는 시간이 정체된 현재의 지속이 영원이라 할 경우 시간과 영원은 서로 상반된 위치를 차지하고있다. 이러한 시간과 영원의 문제는 자연히 유한성과 영원성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즉 유한성과 시간성은 통상 거의 동일한 사건의 양면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한편 이것은 존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한계, 제한, 결함을 가질 경우에는 또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비 존재와 본질적으로 결부하고 있을 경우에 그것은 유한적이라고 불리워야 할 것이고, 시간성이 유한성과 친밀한 연관이 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 된다. 반면 시간성이 어떤 경우에 영원성과는 인연이 없고 서로 상용될 수 없는 위치에 서에 되는 것일까? 이에 인간적 주체의 경우 창조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무(無)를 밖으로 또는 밖을 향해 소유하지 않고, 그것을 자기본질의 핵심에 극복된 계기로 소유함으로써 시간성을 극복하고 영원성을 성취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영원성이야 말로, 주체의 진정한 존재방식이고 시간적 존재자는 그것을 동경하고 그곳에 오르려고 노력한다고 할 경우, 이런 유한성이야말로 진정한 유한성, 본질에 있어서 유한성인 것의 본래 순수한 모습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유한성은 시간성과 같은 유한성처럼, 다만 부분적 부정 즉 반은 유(有) 즉, 멸하지 않는 존재이다. 지금 이것을 진정한 유한성이라고 부른다면, 시간성과 표리관계에 있는 유한성은 “악한 유한성”이라고 불리 울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직접성, 자연성이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본래의 유한성의 부정 즉 영원성의 부정을 의미한다. 주체는 무(無)로부터의 이탈을 구함으로써 도리어 멸하지 않는 존재를 잃는 것이 바로 시간성이다. 시간성에 있어서 주체는 무(無)를 밖으로 쫓아 버리고 오로지 내 유(有)만을 주장한다. 그것은 귀결로 도리어 우리 밖에 있는 무의 속으로 몰아 넣어 끊임없이 괴멸의 운명으로 다다르게 된다. 여기에서 악한 유한성이 성립된다. 즉 주체가 스스로의 힘을 믿고 자기본연의 모습인 진정한 유한성을 벗어버리고 즉 신에 의하여 만들어졌고, 그의 은혜 없이는 무와 같은 것이면서 그은혜를 악 이용하여 초월적 존재가 되려고 하는 반역의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악한 유한성 때문에 영원성으로서의 무종극적 시간성이 발생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시간성의 극복은 주체가 자기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서 신의 사랑에 의해 진정한 유한성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바로 영원성으로의 귀결일 것이다.

     이러한 영원성을 우리는 사랑에 있어서 발견한다. 사랑은 주체와 타자와의 사람의 공동(共同)이다. 주체는 사는 것이며 동시에 주장하는 일이므로 사랑은 이런 공동을 성립시키며 유지하는 노력과 동작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공동은 생명력을 있는 관계이고 정지와 고정을 허용치 않지만,( 마치 삼위일체적 사랑 안에 있는 역동성처럼) 그렇다고 단순한 접촉도 아니고 충돌은 더욱 아니다. 우리가 인륜적 관계라고 부르는 것은 모두 이와 같은 사랑의 공동이라든가, 또는 그 공동(共同)의 기초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관계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치와 화합 없이 우리는 한순간도 생존할 수가 없다. 현실적 삶의 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서 공동의 형태도 꽤 다양하지만 결국 모든 삼라만상은 사랑의 관계로 귀착한다.

반면 사랑은 영원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고 영원히 변치 않는다고 맹세까지 하지만, 문화적 삶의 단계나 인간성이 미치는 범위에 따라서 시간성의 기반을 벗어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사랑의 일치와 정체 없는 역동성을 통하여 인간은 영원성적인 속성의 존재인 신의 사랑에 대한 사람의 응답으로서, 사람의 신에 대한 사랑의 특수한 형태로서 영원성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오면서

 

    시간과 영원에 대한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자연적, 문화적, 객관적, 시간과 물리적인 상태와 시간을 인식하는 생명체의 종류와 심리적 상태에 따라 각기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100살을 살아도 죽음의 순간에는 살았던 삶이 결국 찰나에 지나지 않게 인식 될 것 이며, 의롭게 산 사람은 짧게 살아도 영원을 산 것과 같을 것이다. 또한 인간의 삶의 세계을 떠나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별들의 생성과 소멸의 시간성과 아주 미세한 생물체의 생명을 존속시키며 진화를 거듭하는 시간성에 이러기까지 시간은 우리에게 시간의 유한성과 무한성의 한계와 지평을 확장시키기에 충분한 것 같다. 반면 시간은 창조이거나 무(無) 그 자체라고 말해지는 그 시간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주체 내면으로 깊이 조명되어, 시간성을 있게 하고 그 시간성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존재자를 직시하게 한다. 그와 더불어 인간은 내면적으로는 자기 본래의 존재의 인식과 외면적으로는 타자와의 사랑의 일치와 공동을 통하여 초시간적이며 탈시간적인 초월적 세계인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고, 그 안에서 모든 존재자들을 존재케 하며 스스로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존재자를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기에 인간은 유한성의 시간 안에서 끊임없이 시간성을 초월하여 무시간성의 영원으로 들어가려는 원의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며 영원한 삶을 꿈꾸며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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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 C.F. von 바이쎄커지음, 『자연의 역사』, 강성휘 옮김, 서광사, 1977

. 제이 그리피스지음, 『시계밖의 시간』, 박은주 엮, 당대출판사, 2002

. 피다야정지음, 『시간과 영원』, 박철수 엮, 도서출판, 1990

. 성서 신학사전, 광주가톨릭대학,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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