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유와 책임
마리아 아나빔
서 론
오늘날 인간은 한편으로 더 세상의 주인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점점 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조차 주인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게 다음과 같이 묻게 된다. 인간은 참으로 자유로운가? 그는 이 독특한 특전을 왜 누리고 있는 것이며, 인간은 도대체 언제까지 자유를 충만히 누리게 되는 것이며,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소극적인 의미에서 자유란 “강제의 결여”또는 “-로 부터의 자유"(libertas te)로 규정하며,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는 어떤 존재자는 그것이 자기 자신을 소유하고 있고, 이 관계 속에서 자기의 존재와 모든 관계를 위한 충분한 조건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써 자기소유, 자기 자신에게 현존함, 완전한 자기충족을 의미한다. 이것을 그리스인들은 자기 자신 안에 자기의 원리와 목적, 자기의 시작과 끝을 소유하고 있는 ‘자족(自足’ autarkeia)라고 불렀고, 라틴인들은 ’자기 행위에 대한 지배‘(dominium in actus suos)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dominium super se ipsum)라고 불렀으며, 이것이 후에 그리스도교적 사고 안에서 발전되게 된 ’위격‘(hypostasis or persona)개념의 기본 특징이 된다. 여기서 위격이란 한 존재가 자기 자신을 소유하고 있고 어떤 다른 것에 의하여 소유되고 있지 않는 하나의 위격을 말하는 것이며, 이러한 위격성은 그리스도교 세계에서는 1차적으로 신에게만 적용될 수 있고 2차적으로는 인간에게 적용된다. 또한 적극적 자유는 ”-위한 자유(libertas per)라고도 부르고 있다.
1. 결정주의 대 비결정주의 논쟁
결정주의(determinism)는 일반적으로 모든 사건이 원인을 가진다는 원리로써 즉, 모든 사건이 인과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정주의 자들에겐 우연이란 없는 것으로써, 비록 인간이 인과율에 대하여 모른다고 하더라도 인과 법칙은 계속 작용하고 있으며, 또한 예외가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비결정주의(indeterminism) 또는 자유주의(libertarianism)는 인간이 단지 인과적으로 완전히 설명될 수 있는 인격체일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을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도덕적 행위자라고 주장하는 것으로써 어떤 행위를 하거나 안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행위자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가 행한 것에 대해 해명할 수 있고, 책임을 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결정주의를 부정하는 이들을 흔히 ‘양립불가능주의’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양립가능주의자(compatibilist) 또는 온건한 결정주의자들은 결정주의 원리를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그 행동에 대해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싶어하며, 우리가 자유롭다는 것의 정도에 등급이 있다고 하고 있다.
2. 자유의 실존
자유를 자연의 결정주의적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행동한다는 주장들로써는 첫째로 신화적 결정주의로 인간 행동들은 자유결단의 결실이 아니라, 운명이나 별들 또는 악령들로부터 결과된다는 것으로 그리스 원자주의자들, 에피쿠로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부 중세 사상가들의 주장이 있으며, 둘째로는 신학적 결정주의로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 여지를 남겨 두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대부분의 이슬람 신학자들과 루터 및 칼빈 같은 일부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에 따른 주장이 있는데 이는 외면적 결정주의이다. 본유적 결정주의으로는 첫째로는 생리학적 결정주의로 인간의 의지의 움직임들을 다른 생리학적이고 심리적인 움직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신체조직 세포들간의 화학적 조합에 대한 단순 반응으로 보는 현대의 과학자들의 생각과 둘째로는 사회학적 결정주의로 인간 행동은 사회로부터 개인에 행사되는 압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마르쿠제와 같은 구조주의자들의 생각과 셋째로는 인심리학적 결정주의로 의지 작용은 전적으로 지성 및 그의 지식에 의해 규정된다는 라이프니츠나 프로이드의 생각과 넷째로는 형이상학적 결정주의로 인간의지를 절대적 의지 신적 실체의 한 운동 또는 한 양태로 보는 스피노자나 쇼펜하우어의 생각들이 있다.
이런 결정주의자들에 대한 논거를 거슬러 자유의 실존을 지지하는 논거들을 몇 가지로 요약한다면 첫째, 결정주의자들은 왜 모든 사건이 어떤 원인을 가져야 한다고 상정하며 어째서 예외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왜냐하면 보편적인 인과법칙은 결코 과학적 사유의 전재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결정주의자들의 주장은 물질적인 것들만 실재하고, 실재하는 모든 것은 물질의 필연적 법칙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인데, 만약 비물질적인 실재가 있다면 그것의 실존을 검증하는데 실패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셋째, ‘실재하는 것은 모두 물질이다’라는 그들의 명제는 스스로 모순인데, 이는 그 명제 자체는 분명 감각적 검증에 속하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넷째, 자유는 책임과 불가분적인데, 이는 자유를 부인하게 되면 책임에 대해서도 부인해야하는데 책임성의 실제적 적용이 없이는 윤리 영역에서의 모든 칭찬과 비난이 객관적 기반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자유는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되고 지적될 수 있을 뿐이다. 여섯째, 자유를 지지하는 결정적인 논거는 인간의 심리적 구조 자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들의 심리구조와 다르게 의지는 절대적이고 완전하며 총체적인 선, 즉 ‘절대선(bonum sic et simpliciter)을 열망한다. 그리고 어떤 특수한 선도 인간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일곱째, 결정주의는 실천적 모순에 빠질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자기의 선택과 행동들이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활동들이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3. 인간의 자유와 신의 섭리
결정주의 문제와 매우 유사한 또 한가지 매우 오래된 문제가 있는데, 바로 신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도대체 왜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답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것을 행하기 전에 신이 미리 그것을 알고 있고 또 그 분이 우리 행위의 원인이라면, 어떻게 우리의 선택들이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곤경에서 벗어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입장은 인간에게서 자유의지를 부인하는 것이다.(신화적, 신학적 결정주의) 두 번째 입장은 신의 섭리를 부정하는 것이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신은 창조의 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명상하는 신 개념) 세 번째 입장은 자유와 섭리를 둘다 부정하는 것이다. 실재하는 모든 것은 물질이기 때문에 자유의지와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이 세입장의 공통되는 결정적인 약점은 한결같이 명백한 사실들을 배격하는 것에 있다. 신이 모든 것을 섭리하고 있다고 주장할 충분한 이유도 있고, 또 인간 존재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한다고 주장할 충분한 이유들도 있는데 두 가지 다 부정하는 것은 이성을 거스르는 행위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은 이에 제4입장을 택한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섭리와 자유가 양립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확증해 준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오직 신만이 무한한 자유인 한에서 인간과 다른 영적 존재자들에게 선사한 유한한 자유를 창조하고 보장한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인 이상, 치유될 수 없을 정도로 유한하고, 내면세계든 외부세계든 지배할 수 없으며, 인간을 효과적으로 완성하는 것을 선택할 수 없다. 즉 지속적으로 무한을 향하여 움직이면서 동시에 유한성에 메여 있는데, 이 역설은 오직 신의 무한한 자유를 인정함으로써만 해결될 수 있다. 신의 섭리가 의미하는 것은 신의 지식과 능력이 절대적으로 모든 것과 모든 활동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 의지가 어떻게 동시에 인간의 어떤 행위에 대해서 참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신의 인식 방식이 인간의 인식방식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인간을 제외한 이 세상 만물은 필연성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롭게 행동한다. 신은 필연적인 것들과 자유로운 것들 모두의 원인이다. 그 분의 원인성은 자연(본성)들을 변경시키지 않는다. 신의 원인성은, 결정되어 있는 사물들은 필연성에 따라 행동하도록, 그리고 자유로운 존재자들은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만든다. 왜냐하면 그분은 각 사물 안에서 그 고유의 본성에 따라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합리적인 의지를 직접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우주안에 아무것도 없으며,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의지는 절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리고 오직 신만이 의지를 그 자유 선택으로 움직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의지가 자유롭다는 것이 보장된다. 신은 필연성의 질서와 우연성의 질서를 지배하며 동시에 초월한다. 따라서 행동하는 내 안에서 그 분이 행위 할 때, 내 행위의 자유 자체를 그 심층에서 설정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인데, 내가 나의 행위의 자유로운 원인이고 주인이기 때문에, 그분의 영향은 제1원인의 자격으로 자유로운 제2원인인 내 안에서 나의 행동방식 자체와 자유롭게 수행된 행위의 바로 그 완성을 관통한다. 그러나 이 자유는 신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 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신으로부터의 자유는 존재로부터의 자유일 것이고, 그것은 결국 비존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신은 인간 본성에 개입하는 어떤 대립적인 힘이 아니라, 인간 본성으로 하여금 그 선택활동에 자유롭도록 보장해주는 것으로 나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 아닌, 그 보증자임이 드러난다. 한편 인간의 행위에 대한 신의 개입은 존재론적 이유들(제2원인의 제1원인에 의존)때문만이 아니라 윤리적 이유들 때문에도 중대한 문제가 되는데, 자유는 자유인 한에 있어서, 그리고 선하거나 악한 목적에 대한 선택인 한에 있어서, 행위는 온통 인간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는 신의 자유를 본뜬 것이기 때문에 신의 법에 복종한다고 해서 자유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복종을 통해서 인간의 자유는 진리 안에 머물고 인간의 존엄성을 한층 더 드높이게 된다.
'테마가 있는 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경위기의 철학 (0) | 2011.01.22 |
---|---|
인간의 자유와 책임(2) (0) | 2011.01.22 |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2) (0) | 2011.01.22 |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 (0) | 2011.01.22 |
천사론(2) (0) | 2011.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