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나눔33(창세기 30장): 제 손을 통해 주님의 복이 장인에게 내렸습니다.
들어가면서
창세기 30장은 창세 29장에서 창세 30, 1-24절 야곱의 아들들의 이야기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이제부터 초점이 야곱의 집안 문제에서 외부 문제로 옮겨간다. 그것은 곧 라헬과 레아의 갈등에서 야곱과 라반의 갈등으로 이야기의 내용이 바뀌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앞부분의 이야기들은 29장에서 많이 다루었기에 여기서 잠깐만 언급하고 이 장에서는 창세 30, 25-43절 의 이야기를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먼저 야곱의 아들들의 이야기 부분에서 창세 30, 14절에 나오는 자귀나무의 이야기는, 야곱의 편애와 두 여인의 시샘이 결정에 이르렀을 때 있었던 이야기이다. 자귀나무는 히브리어로 만드라고라인데, 이 말은 <사랑한다>고 하는 말의 발음과 비슷하다. 둥글고 노란 작은 열매를 맺는 나무로 옛날에는 약재로 사용하였으며 사랑을 부르는 나무라고 생각되었다. 두다임이라고도 하고 임신 촉진제로 옛 사람들은 믿었다. 그러나 저자는 레아가 다시 아들을 낳은 것과 라헬의 임신을, 하느님께서 하신 일로 기술하였다.
그 다음으로 또 다시 인색한 라반과 슬기로운 야곱의 성격이 나오는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다. 31장 41절에 따르면 야곱은 장인을 위하여 20년 간 일했다. 14년은 아내를 얻기 위하여, 6년은 재산을 만들기 위하여 서였다. 그리고 당시는 가축 떼가 소중한 재산이었다.
라반에게 속은 야곱은 엄격한 계약을 맺고 라반을 앞질렀다. 야곱의 자손도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동물사육에 능숙한 사람들로 특히 이 이야기를 즐겁게, 상세하게 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에 기록된 이야기는 몹시 축소된 것 같다. 또 이 기사는 두 가지 전승을 이용하여 엮었고(29장), 매우 상세하게 짜여져 있다. 31장 7-8, 41절에서 야곱은 라반이 때때로 보수를 바꾼 일에 대하여 불평을 말하고, 얼룩진 털을 가진 것과 발목이 흰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특히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의 계약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이것은 아마 첫 번째 계약일 것이다. 저자는 두 가지 전승을 엮어서 내용을 줄이는데 온 부조화를, 그다지 문제삼지 않은 것 같다. 또 당시의 독자인 양치기들에게는 이해될 줄로 생각하고, 현대의 독자에게 있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상세한 점까지 생략하고 있다.
Text 안에서
창세 30, 25-43: 제 손을 통해 주님의 복이 장인에게 내렸습니다.
위의 성서 본문은 야곱이 갑자기 라반에게 떠나게 해달라고 조르는 말로 시작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지만 짐작컨대 약속된 기간 십사 년이 다 흘렀는데도 라반이 야곱 가정의 풍부한 노동력을 아까워해서 놓아 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야곱이 두 아내와 자식들을 내달라고 청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야곱 가족들 전체가 라반의 강력한 영향력 밑에 마치 그의 재산처럼 예속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라반은 점괘를 통해서 그가 받은 물질적 복이 야곱을 보살펴 주시는 하느님 덕이라는 것 깨닫는다. 라반의 집안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지녔던 명백한 야훼 신앙을 갖지 못하고 점괘나 부족 신들을 믿고 있었다. 즉 라반은 야훼를 자신의 하느님으로서 인정하지 않았으나, 자신을 축복해 준 것은 야곱의 하느님 야훼이심을 알았다고 말한다. 라반은 야곱에게 이제부터 달라는 대로 임금을 주겠으니 더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야곱은 하느님의 보살피심을 인정하는 장인의 말에 자신이 열심히 일한 결과 장인의 재산이 대단히 불어났음을 덧붙여 강조한 다음 이후부터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품삯을 요구한다. 사실 이제껏 장인과의 계약에 매여 장인의 일만을 해주고 자기 재산은 하나도 장만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향에 빈손으로 돌아갈 수야 없지 않는가? 막무가내로 지금 당장 장인의 곁을 떠나겠다고 해도 욕심 많은 장인이 야곱이 딱한 처지를 살펴 자기 재산의 일부를 나누어 줄 리가 없다. 따라서 떠나겠다는 야곱의 말은 장인과의 원래 계약이 끝난 지금 자기 재산을 마련하기 위해 새 계약을 맺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 야곱이 제시한 임금협상안은 매우 특이하다. 야곱은 장인으로부터 어떠한 임금도 직접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그 대신 자기가 돌보는 장인의 양떼 가운데 검은 양과 흰줄무늬 염소들만을 차지하게 해달라고 청한다. 이런 색깔의 양과 염소들은 돌연변이들이다. 일반적으로 양은 흰색을, 염소는 검정색을 갖는다. 비정상적인 색깔의 양과 염소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라반은 쾌히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 술 더 떠 라반은 야곱이 그러나 얼마 안 되는 검은 양과 흰줄무늬 염소들을 골라내기 전에 미리 그것들을 모조리 빼돌려 자기 아들들이 돌보는 양과 염소 떼에 섞어 놓는다. 그리고는 야곱을 아들들이 치는 양과 염소들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기 위하여, 아들들의 방목 장소에서 사흘이나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장소에 야곱의 방목 장소를 정해 준다.
- 근동 여러 나라에서는 양털이 거의 희고, 염소는 짙은 밤색이거나, 검은 색이었다. 라반은 여전히 인색하고 교활하였다. 정말 유목민다운 이야기이지만, 야곱의 가축 떼는 벌써 순종이 아니므로 흰 털을 가진 것과 얼룩지고 검은 털을 가진 새끼를 낳기도 하였다. 저자는 역사가로서 야곱이 한 일을 그대로 쓰고 있으나, 동물을 잘 다룰 줄 알았기 때문에, 제 나름의 방법으로 자기의 가축을 늘렸다. 그것을 공개하기 싫었기 때문에, 겉으로 껍질벗긴 나무 이야기로 사실은 은폐 하였을지도 모른다.
- 장인의 술책에 야곱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을 이용하여 교활한 장인에게서 재산을 얻어 낸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경험 많은 양치기들이 선배들에게 배운 방법으로서, 양들의 버릇에 대한 관찰과 고대의 주술적 요소를 결합시킨 당대의 목축비법을 반영하고 있다. 야곱은 미류나무와 감복숭아나무와 플라타나스의 푸른 가지들을 꺾어 흰색 줄무늬가 나오도록 껍질을 벗기고 그렇게 껍질이 벗겨진 가지들을 물먹이는 구유 안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 장인의 양과 염소들 가운데에서 튼튼한 것들이 물 먹으러 올 때만 그 가지들을 놓고 그 앞에서 교미하도록 유도하는데, 악한 것들이 교미할 때는 그 가지들을 치워버렸다. 이 방법으로 야곱은 튼튼한 어미들로부터 태어난 검은 양과 흰줄무늬 염소새끼들을 많이 갖게 되고 나중에 큰 부자가 된다. 라반의 교활한 꾀가 야곱의 지혜를 따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야곱은 정상적인 털색의 어미에게 아주 드문 털색의 새끼를 낳게 하려고 세 가지 방법을 쓴다. 1) 염소를 위해서는 희게 껍질을 벗긴 가지를 교미 중에 그 앞에 세워, 흰털이 섞인 새끼를 낳게 하였다(37-39). 2) 양을 위해서는 가지 대신 검은 염소를 향하도록 하여 검은 양을 낳게 하였다(40절). 3) 무리 중에서 강한 것이 교미할 경우에만 가지를 사용하여, 희귀한 털색의 강한 새끼를 낳게 하였다.(41-42절). 특히 강한 것은 여름에 약한 것은 가을에 교미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분별할 수 있었다.
- 어떻게 보면 극히 세속적인 이 이야기가 전해 주는 교훈은 사악한 라반이 야곱을 골탕 먹이려 했다가 오히려 착한 야곱에게 당하게 되었다는 이솝 이야기식의 논리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야기의 핵심은 자신의 부에 대한 라반의 솔직한 고백과 “제 손이 가는 일 하나하나가 모두 장인께 내리는 주님의 복이 되었습니다.”라는 야곱의 확인에 있다고 할 것이다. 라반은 자신의 부가 야곱을 보살펴 주시는 하느님 덕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복을 가져다 준 야곱에게 마땅한 대가를 지불해 주지 않고 악착같이 착취하려고 했다. 라반의 욕심은 하느님께 대한 자신의 올바른 인식을 온전히 가로막고, 인간적으로 많은 해택을 입은 자기에게 가까운 사람의 권리와 이익을 짓밟도록 만든다.
- 라반의 욕심은 지독하다. 십사 년 동안 야곱을 부려먹은 것도 모자라 많은 후손으로 인하여 이제 점점 증대되고 있는 야곱 가정의 유효노동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야곱이 자기 집에서 나가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야곱이 품삯 대신 요구한 몇 마리 되지 않은 검은 양과 줄무늬 염소마저 철저히 빼돌려 다 자기 아들들의 양떼에 집어넣어 버린다. 야곱의 성실하고 정직한 태도는 이런 라반의 태도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비록 어린 시절에 형 에사오를 속이고 그의 복수를 피해 도망쳐 나온 야곱이지만 라반의 집에서 보여 준 그의 태도는 매우 성숙하고 점잖은 것이었다. 삼촌과 계약에 충실했고 삼촌의 재산을 자기 것처럼 보살폈으며, “훗날, 제가 삯으로 받은 양떼를 와보시면 제가 얼마나 정직한 가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 라고 장담하는 그의 말에서처럼 항상 정직하게 행동했다.
- 야곱의 이런 착한 삶이 라반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평생 떠돌이 가난뱅이 신세를 면치 못할 형편이었는데 불의에 희생을 당하는 사람을 돌보시는 하느님께서 가만히 계실 리가 없으신 것이다. 더구나 야곱은 아브라함의 약속과 축복을 정식으로 이어받은 상속자가 아닌가? 이렇게 해서 야곱이 아주 큰 부자가 되었다“라는 마지막 말씀 뒤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는 것이다. 즉 꽤가 많은 야곱이었지만 그의 매순간의 삶은 성실함으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 참고문헌: 하느님과 함께 걸으며(창세기 해설서),정태현, 생활성서사, 1990, p.173-176.
창세기,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p.121-124.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기념 구약성서 주해집, 페데리코 바르바로, 크리스찬
출판사,1986, p.305-311..
성서의 길을 따른 여정, 생활성서사, 1987, P.78.
'창세기 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32장:야곱이 하느님과 씨름하다 (0) | 2011.02.20 |
---|---|
창세기 31장: 야곱이 고향으로 달아나다 (0) | 2011.02.16 |
창세기 29장:야곱이 라반의 집에 도착하다 (0) | 2011.01.29 |
창세 28, 1-22: 야곱이 베텔에서 꿈을 꾸다. (0) | 2011.01.22 |
창세기(27, 1-46) :야곱이 에사우의 복을 가로채다 (0) | 2011.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