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이성
-마리아 아나빔-
들어가면서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은 인간 정신이 진리를 바라보려고 날아오르는 두 날개와 같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신앙과 이성”은 바로 인간의 진리 인식의 궁극적인 두 가지의 방법인 신앙과 이성의 역할과 그 중요성에 대한 교회의 회칙이다.
서 론
인간은 인류의 역사안에서 진리(veritas)를 추구하는 일에 투신하여 왔으며, 이 물음에 어떻게 대답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항로가 결정되는 중요한 것이였다. 교회도 이 역사의 예외자가 될 수 없으며, 특별히 진리의 봉사(veritatis diaconia)라는 책무를 자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원천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생의 의미를 묻고 그 답을 모색하는 데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철학(philosophia)이다. 철학은 진리를 향한 열망이 인간 본성 그 자체의 일부라는 것을 다른 모습과 형식으로 보여준다. 철학 작업을 통하여 인간 지성의 고유한 사변 능력은 종교적 사고 방식을 산출한다. 하지만 잘못된 이성은 ‘철학적 교만(superbia philosophica)'에 빠지게 된다. 교회는 철학안에서 인간 생명에 관한 근본적 진리들을 알게 해 주는 길을 보며, 동시에 교회는 철학을 신앙을 더 깊이 이해하고 복음의 진리를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달하는 데 필수불가결의 수단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담지자로서 자신의 전문성을 확신하며, 인간 이성의 특별한 활동과 진리에 대하여 성찰을 할 필요성을 재확인 한다. 또한 이번 회칙은 진리 자체라는 주제와 신앙과의 관련 속에 있는 그 기초에 관하여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제 1장 하느님 지혜의 계시
교회의 모든 가르침을 특징짓는 것은 교회 자신이 하느님께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뚜렷한 자각이기에, 인간에게 제공된 지식은 신앙으로 받아들인 하느님의 말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 헌장(Dei Verbum)은 “하느님의 아드님(Dei Filius)"의 가르침을 글자 그대로 따르면서 신앙 이해(intellectus fidei)의 오랜 역사의 여정을 따라 계시를 성서의 가르침과 교부들의 전통에 비추어 성찰하고 있다. 또한 이 공의회는 철학을 통해서 알게 된 진리와 계시 진리가 동일하지도 그렇다고 상호 배타적인 것도 아님을 가르치고 있다. 즉 자연적 이성을 통해서 아는 것이 다르고, 초자연적 신앙을 통해서 아는 것이 다르는데 이는 서로 다른 질서에 속하는 인식이라는 것이다. 철학과 과학은 자연 이성의 질서 테두리 안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지만, 성령께서 조명하시고 인도하시는 신앙은 당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신 행적과 말씀 즉 계시의 경륜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계신다. 계시는 신비(mysterium)를 간직한 채로 남아 있는데, 이것은 인간 이해 능력의 한계 때문에 위축된 모습으로 오직 신앙만이 그 신비를 올바로 꿰뚫어 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된다. 제1차 및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철학적 탐구를 위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는데 계시는 인간의 마음을 중단 없이 노력하도록 분발시키는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진리를 우리의 역사 안에 끌어들이며, 두 개의 지점 사이에서 이성은 오직 하느님의 무한한 신비 앞에서만 한계를 인정하게 되는 자신의 고유한 탐구와 이해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2장 알기 위하여 믿는다.
성서는 신앙으로 얻어지는 지식과 이성으로써 얻어지는 지식이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를 놀랄 만큼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으며, 지혜문학(Libri sapientiales) 바로 그것이다. 또한 지식을 향한 열망은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특성이며, 성서의 세계는 이 인식 이론에 제 나름대로의 독특한 공헌을 하였다. 인간은 이성의 빛을 통해서 어느 길을 택할지를 알 수 있지만, 오직 신앙의 지평 안에서 그들이 추구해야 하는 올바른 정신을 갖추고 신속하게 목표에 다가 갈 수 있다. 그럼으로 이성과 신앙을 어떤 대립 구도로 몰고 가는 것은 근거 없는 일이며, 그것들은 서로 상대방을 내포하고 있고, 각자 고유의 활동 영역이 있는데, 이성이 하느님 초월적 주권과 섭리적 사랑을 마땅히 인정해야 하는 ‘하느님 두려움(timor Dei)'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제3장 믿기 위하여 이해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진리를 찾는 여정은 인간 존재자가 취할 길이 있는데, 그것은 이성의 능력으로 시작하여 이 세상의 우연적인 것들을 넘어 무한을 동경하는 길이다. 특별히 철학은 이 탐구를 자신의 고유 과제로 삼고, 독특한 수단과 학문적 방법들을 통해 이 보편적인 인간의 열망을 표현한다. 진리는 인간에게 처음에는 물음으로 다가오며, 모든 진리는 보편적인것과 절대적인 것을 추구한다. 인간이 진리를 탐구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은 그 자체로 해답의 씨앗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적 진리의 여러 측면들에는 실험과 확증을 통한 자명성을 드러내는 것들과 인간 지성의 사변적인 능력들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들과 마지막으로 어느 정도의 철학에 토대를 두고 있는 종교적인 것들이 있다. 여기서 교회는 진리를 찾는 인간이 또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ill qui vivit alteri fidens)”임을 강조한다. 즉 진리가 일차적으로 경험적이거나 철학적인 것이 아닌, 인격의 진리(personae veritastis) 인격의 본질과 인격이 깊은 내면으로부터 드러내는 그것을 의미한다. 그럼으로 이성 역시 그 모든 탐구 과정에서 신뢰적 대화와 진지한 우정으로 지지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적인 진리와 계시 진리의 이 통일성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생생하고 인격적인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제4장 신앙과 이성의 관계
신앙과 이성이 만나게 되는 주요한 계기들은 고전 철학 안에서 나타나며, 이것은 무엇보다 이성과 종교 사이의 연관 관계를 해명하는 일이었다. 또한 그리스도교가 철학을 채용하는 과정은 매우 신중하며, 특히 이레네오(St. Irenaeus)와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는 계시 진리를 철학자들의 해석에 종속시키려 드는 문화 체계와 마주치게 될 때 경종을 울렸다. 신중한 분별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철학적 사고의 적극적 수용을 주창한 선구자는 성 유스티노(St. Justinus)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s de Alexandria)이다. 이들은 ‘확실하고 유익한 유일한 철학’을 그리스도교 진리 안에서 발견하였으며, 그리스 철학은 일차적으로는 그리스도교 진리를 지지하고 완성하는 것, 즉 진리를 옹호하는 것이였다. 또한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이 철학 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예를 오리게네스(Origenes)가 좋은 예 인데, 교회의 이단들에 대하여 플라톤 철학으로 활용 반박하며, 그리스도교 신학의 초기 형태를 구성한다. 그리고 플라톤적이고 신플라톤적인 사상을 그리스도교화시키는 이 작업은 카파토키아의 교부들, 디오니시오 아레오파지타(Dionysius Areopagita) 특히 아우구스티노(Augustinus)이다. 특히 히포의 주교는 그리스와 라틴 세계의 사상 조류들을 포용함으로써 철학과 신학 사이의 최조의 위대한 종합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이성은 정화되고 올바로 조정되만 한다면 더욱 높은 영역으로 고양되어, 존재, 초월적인 것 , 절대적인 것 등에 대한 인식의 튼튼한 토대를 제공한다. 또한 스콜라 철학에서 훈련된 이성의 역할은 ‘신앙의 이해(intellectus fides)에 대한 성 안셀모(St. Anselmus)의 해석의 덕분에 더욱 두드러지게 되며 신앙의 우위성은 이성에 고유한 탐구와 상치되는 것이 진리로 향한 자극이 되었다. 특히 성 토마스 데 아퀴노(St. Thomas de Auino)는 이성의 빛과 신앙의 빛은 둘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따라서 양자 사이에는 어떠한 모순도 있을 수 없다고 논증하며, 신앙과 이성 사이의 조화에 영예로운 자리를 배정한다. 신앙은 이성에 의존하고 이성을 완성한다. 신앙을 통해서 조명받을 때, 이성은 죄의 불복종 때문에 오는 연약성과 한계로부터 해방되어,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지식으로 고양되는 데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지식이 지혜로 성장해 가게되는 과정에서 성령의 역할을 깊이 깨닫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한편 초창기 대학들이 세워지면서 신앙과 이성의 분리의 역사가 시작되며, 후기부터 두 가지 탐구 방식 사이의 정당한 구별에서부터 치명적인 분리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는데 결국 이 분리의 또 하나의 귀결은 이성 자체에 대한 더욱 깊은 불신이었다. 그리하여 근대의 철학은 이성의 극대를 주장한 합리주의. 맹신주의, 무신론적인 인본주의, 형이상학적이거나 윤리적인 전망에 대한 일체의 호소를 배격하는 실증주의, 실용주의(과학주의), 끝으로 합리주의 위기인 허무주의(비합리주의)를 초래하였다. 이것은 철학의 보편적 지혜와 연구로부터 점차 인간 인식의 여러 영역 가운데 하나로 위축된 것에 있다. 그 결과 현대의 인간은 그 어느 때 보다 자기가 만들어 낸 것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지성과 의지의 성향이 만들어 낸 작업의 결과로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제5장 철학적 문제에 대한 교도권의 입장
진리의 봉사자로서 교도권의 식별은 이성의 빛 속에서 그 고유 원리와 방법들에 따라 전개되지 않는 철학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교도권의 의무는 대립적인 철학적 견해들이 계시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을 위협하게 될 때, 또한 중대한 오류들의 씨앗을 심는 거짓되고 단편적인 이론들이 하느님 백성의 순수하고 단순한 신앙을 혼란시키면서 점차 광범위하게 펴져 나가기 시작할 때, 이에 분명하고 강력하게 대응한다. 그러므로 신앙의 빛 안에서 교회 교도권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견해들과 철학들을 권위있게 비판적으로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식별이 부정적으로 간주되어 교도권이 어떤 가능한 성찰을 배제하거나 제한하려 든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교도권의 개입은 무엇보다 철학적 탐구를 증진시키고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으로 교회는 ‘지혜와 지식의 온갖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다(골로2,3)는 것을 알고 있고, 따라서 신비의 인정으로 이끄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철학적 탐구를 자극하며 개입한다. 교회의 철학적 관심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발전 시키는 가운데 철학적 사고가 신앙과 신학에 얼마나 깊이 공헌하는지를 보여주고, 철학이 학생들이 인간과 세상과 하느님을 건전하게 연결시켜 인식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며, 구원의 가치를 지닌 철학적 유산 안에 근대 철학의 여러 사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 철학은 시목자 양성과 신앙의 준비(praeparatio)에서 철학적 가치를 약화시키거나 또한 그 자리에 어떤 다른 것을 대체하는 함축적 권력의 발동으로 해석되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철학 연구가 신학 연구와 사제직 지망자 양성에 근본적이고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제6장 철학과 신학 사이의 협력
신학은 신앙의 청종(auditus fides)과 신앙의 이해(intellectus fides)라는 이중의 방법론적 원리의 빛 속에서의 신앙에 대한 이해로서 구조화 되어 왔다. 철학은 올바른 ‘신앙의 청종’을 위해서 인식과 인격적 통교, 특히 다양한 언어 형식들과 기능들의 구조를 고찰할 때에 신학에 톡특한 기여를 하게 된다. 또한 교회 전승, 교도권의 선언들, 그리고 특별히 전통으로부터 끌어낸 개념들과 사고 형식들을 활용하고 있는 위대한 신학 스승들의 가르침을 더욱더 일관되게 이해하는데서도 철학의 기여는 매우 중요하다. 교의 신학, 기초신학, 윤리신학, 다양한 문화들의 관계안에서 철학은 교의 신학적인 측면의 하느님 신비를 논증적인 방법으로 해명할 수 있어야 하며, 기초신학에서는 신앙의 근거 안에서 정당화와 명료화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윤리적 문제안에서는 윤리적 결단의 일반원리에 대한 건전한 철학적 전망이 요구되며, 다양한 문화적 개방성 안에서는 진리에 이르는 다양한 길을 제시하고, 모든 인간들이 인간답게 만드는 가치들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그럼으로 신학과 철학 사이에 설정되어야 하는 관계는 상호 순환성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철학은 신학 자체가 철학의 도움을 요청할 때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철학은 문화들과 그리스도교 신앙 사이의 만남의 장이되고, 신앙인과 비신앙인 사이의 이해의 장이되기 때문이다.
제7장 오늘날 요구되는 과제들
성서 속에는 예외적으로 철학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인간관과 세계관을 알려 주는 함축적이고 명시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그럼으로 오늘날 요구되는 첫 과제들은 성서로부터 또는 ‘하느님의 모습(imago Dei)으로서의 인간관을 솟게 하는 것에 있다. 그리고 현대 상황의 가장 중요한 측면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의미의 위기(discrimen significations)인데, 이는 과학적 성격에 바탕을 둔 것으로써 학문의 단편화는 물론 의미추구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묻지 않는 철학은, 이성을 진정한 진리 탐구의 열정이 없는 단순한 부수적 기능들로 환원시킬 위험 속에 놓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인간의 진리 인식능력 즉 사물과 지성의 일치를 통해 객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인식 능력을 확정해주며, 진정한 형이상학적 차원의 철학은 인간의 영적 본성에 바탕을 두고 인격적 존엄성의 근거를 확립할 수 있게 해주는것으로써 오늘 날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그릇된 행동 방식들을 교정하기 위하여 취해야 할 최선의 것이라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현대 신학의 과제들은 효과적인 복음 선포를 위한 자신의 고유한 방법들을 쇄신 하는 일에 투신해야 한다. 또한 의미와 진리 사이의 언어의 문제들안에서 전해주고자 하는 진정한 진리가 무엇인지 물어야 하며, 끝으로 또하나의 절박한 과제인 계시 진리의 이해 또는 신앙의 이해를 표현하는 일이다. 특히 신앙의 이해가 신앙인의 행위와 연결되는 영역에서 철학의 복원은 시급하다. 끝으로 교회 내에서 신학 작업은 무엇보다 신앙 선포와 교리 교육에 봉사하는 것이다.
결 론
교회는 철학적 사고의 중요성과 진정한 차원을 강조하는 가운데, 인간 존엄성(hominis dignitas)에 대한 옹호와 복음 내용의 선포를 촉진시켰다. 또한 철학적 사고는 우리의 신앙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데 유일한 토대가 되기도 한다. 그럼으로 철학자들과 교사들은 타당한 철학적 전통의 흐름 속에서 형이상학적 지혜를 포함하여 철학적 탐구에 고유한 지혜와 진리의 차원들을 복원시킬 용기를 가져 인간 영역의 다양한 영역들을 조명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오면서
신앙과 이성은 인간에게 주어진 존재 인식과 진리 추구에 필요한 두 개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인간은 이를 통하여 다른 피조물과 우주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자신의 존재와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게 된다. 또한 이를 통하여 모든 것의 제 1존재자와 삶의 궁극적인 목표인 진리에로 향하는 열망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이러한 입장에서 교회는 진리 추구의 방법으로 초월적인 존재자에게로부터 오는 계시적 경륜인 신앙과 인간 인식의 바탕에서 비롯되는 이성의 중요성을 재 천명하고 있다. 특히 이성은 신앙 안에서 그 작업이 이루어질 때 참된 진리로 향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더불어 올바른 이성의 사용을 위한 그 기초 작업을 철학적인 작업 안에 두며, 이를 통하여 하느님 계시의 표징들을 설명하고, 사물 인식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식별의 측도로 사용하기를 권하고 있다.
교회는 또한 모든 사제들과 교사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이성의 작업인 철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작업을 바탕으로 그 길을 제시 할 수 있기를 교부들과 교회의 전승과 전통을 통하여 설명한다. 하지만 이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이성의 작업들이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앙 안에 조명되어야 함과, 궁극적으로는 올바른 신앙의 이해를 위하여 사용되고 도움이 되는 것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못했을 경우 초래 되었던 결과들이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회적,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문제들과 이데올로기를 창출하여 엄청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이에 교회는 특별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장을 모델로 제시함으로써 신앙과 이성의 상호 독립된 영역을 내어주고, 또한 조화로운 발전을 위한 상호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바랍직한 일 임을 제시하여 준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성이 없는 신앙은 맹신주의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고, 신앙이 없는 이성은 무신론적인 이데올로기로 전략하게 된다.
특히 현대 사회는 신앙보다 이성을 추앙하는 문화와 사고와 체제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하여 모든 것은 이성주의, 합리주의 그리고 과학주의 만능으로 인간의 사고는 메말라 가고 사회와 경제는 기계주의, 경제 우선주의로 빈부의 격차, 생태계 파괴, 생명의 본질에 대한 경시등 도덕적 윤리 뿐만 아니라 생명 윤리 문제들까지 침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기에 현대의 삶은 인간 존재의 의미와 본질 및 존재에 대한 의미를 상실한 기계적, 구조적, 분석적, 실증적인 사고의 틀로 인간의 정신을 몰락 시키고 있다. 이에 교회는 이러한 현상들 앞에 의미의 존재를 다시 묻고, 존재론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궁극적인 길들을 제시하여 주는 형이상학적고 올바른 이성 위에 정초된 철학의 중요성을 재 강조한다.
그럼으로 교회는 참된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영적 본성에 바탕을 둔 인격성 회복 그리고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 추구를 위하여 신앙과 이성의 합당한 자기 역할과 방향 및 상호 작용을 위한 올바른 철학의 정초와 철학의 복원의 시급성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이를 통하여 나는 다시 한번 우리 시대에 요청되는 것들이 무엇이며,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이성의 합당한 사용,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걸어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다신 한번 재 인식하게 된다. 끝으로 신앙과 이성은 그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으로써, 이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진리 추구의 도구로써, 지혜로운 삶의 영위을 위한 하느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욱더 중요한 것은 신앙과 이성 통하여 참된 신앙인이 걸어야 할 길은 바로 성령의 이끄심 안에 걸어가는 것이고, 그 분이 진리와 우리의 인식의 눈을 뜨게 하여주고 진리로 이끄시는 유일한 뿐이심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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