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나눔 42(창세기 41장): 파라오의 꿈과 요셉이 재상이 되다
들어가면서
요셉은 하느님의 복을 받아 이집트에서 포티파르의 집 관리인으로 세워진다. 그러나 주인과 하느님에게 성실하려는 그는 안주인의 끈덕진 성적 유혹을 거부하다가(유다와 달리) 모함에 빠져 감옥에 갇힌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은혜로, 또는 그곳에서도 하느님을 믿고 따랐기 때문에 요셉은 임금의 죄수들을 돌보다가 헌작 시종과 제빵 시종장의 꿈을 풀이해 준다. 과연 그 꿈 풀이대로 이루어졌지만, 정작 복직된 헌장 시종장은 요셉의 존재를 잊어버린다.
이 년 뒤 일곱 암소와 이삭의 꿈을 꾼 이집트 임금 파라오는 그 꿈을 풀이해줄 전문가를 찾는다. 꿈은 신의 계시로서, 임금의 꿈은 국가의 중대사를 알려 주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특히 두 번씩 같은 내용을 꾸었다는 점에서 꿈의 의미는 남다르게 강조된다. 그러나 신적 존재인 파라오는 물론 이집트의 요술사와 현인들이 모두 실해한 뒤에(그들의 무능력이 드러난 뒤에) 불려온 요셉은, 칠년 풍년 뒤에 닥칠 흉년을 예고하며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하며 재난을 피하기 위하여 양식저장 계획에 착수한다.
하느님이 주신 지혜로 꿈을 풀이한 서른 살의 요셉은 미래의 일을 알고 대처할 수 있는 탁월한 능역을 인정받아 일약 재상으로 발탁된다. 이집트로 팔려 온지 14년만의 일이다. 어떤 이들은 셈족 인물이 이렇게 고위직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은 기원전 16-15세기에 이집트를 지배했던 아시아계의 힉소스 왕조 대(대략 기원전 1670-1570)라고 주장한다. 그런 예는 중왕국부터 후대까지 드물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이 대목은 전체적으로 역시 꿈에 관심이 많은 엘로히스트의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그 기본적인 골격에 있어서 근동 문헌들에 나오는 전형적인 꿈 이야기와 많이 닮았다. 이 기본적인 틀은 다니엘서 2장에도 나오는데, 먼저 왕이나 고관이 종이나 천민을 불러 자기가 꾼 꿈의 해몽을 부탁하고 불린 자가 그것을 시원스럽게 풀어 주며 왕이나 고관으로부터 해몽가에게 보상이 주어진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로부터 얼마간의 세월이 흘렀다는 표현은 엘로히스트 문헌에서 이야기의 도입부에 즐겨 사용되는 문구이다. 이 장의 줄거리는 이집트의 최고 통치권자인 파라오가 아주 신비스런 꿈을 꾸고 요셉이 그것을 해석해 준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왕이 신과 직접 통교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그의 꿈을 몹시 중요하게 취급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고 이 장에 묘사되어 있는 여러 가지 사건은 당시의 이집트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일반 생활과 궁정 생활의 양상에 부합된다.
Text 안에서
창세 41, 1-36: 저에게 무슨 그런 힘이 있겠습니까?
파라오가 꾼 꿈은 앞에서 요셉의 꿈과 두 시종장의 꿈처럼 한 쌍으로 되어 있다. 이 한 쌍의 꿈은 나일 강(이집트 땅의 비옥함과 번영 그리고 온 생명은 해마다 일어나는 나일강의 범람에 달려 있다)을 중심으로 목축과 농업을 하던 이집트인들의 생활을 반영하고 있는데, 첫 번째 꿈은 목축과 관계가 있다. 파라오가 나일 강가에 서 있는데 갑자기 살이 찌고 잘 생긴 암소(팔레스티나에서 대표적인 사육 동물은 양과 염소이지만, 이집트에서는 소였다) 일곱 마리(이집트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 전체의 상징에서 자주 나오는 숫자)가 강에서 나와 갈대풀을 뜯어먹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어 곧 여위고 못생긴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나오더니 먼저 나온 살찌고 잘 생긴 염소 일곱을 잡아먹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곱은 완전한 숫자로서 완전한 축복이나 완전한 저주를 가리키고 있다.
-두 번째 꿈은 농사와 관계가 있다. 곡식 줄기 하나에서 일곱 이삭이 나와 잘 여물어 가는데 뒤이어 돋아난 일곱 이삭이 샛바람에 말라 쭉정이가 되어 버렸더라는 것이다. 이 쭉정이 이삭들이 잘 여문 이삭들을 삼켜 버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샛바람은 원문에 동풍으로 되어 있는데 팔레스티나 동부 사막 지대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열풍으로 되어 있는데 팔레스티나 동부 사막지대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열풍을 가리킨다. 시로코라고도 불리는 이 무서운 바람이 불어 닥치면 그해 농사는 망치고 만다(호세 12, 2; 29,17; 39,6). 파라오는 잠에서 깨어나 그 꿈 내용이 불길한 것 같아 마음에 자꾸 걸리어 뒤숭숭해진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이집트 내의 모든 마술사와 현자들을 다 불러들인다. 파라오는 마술사들(점을 치는 이집트의 사제들은 마술을 행하는 이들로 고위 관리들이었다)에게서 꿈속에 나타난 신비의 베일을 벗기는 힘을 얻어내고자, 그리고 현자들(서기관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이들도 역시 고위관리들이었다)에게서는 충고와 의견을 경청하고자 했던 것이다. . 당시 두 부류의 사람들이 파라오의 질문에 대답해 주는 고문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이 꿈을 풀이하지도, 꿈과 관련하여 그럴듯한 의견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이런 긴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표현 방식은 고대 페니카아(우가릿) 문헌들에서도 (특히 꿈과 관련해서)발견된다.
- 그때에야 비로소 술잔 시종장이 요셉의 이름을 기억해 내고 요셉에게 은혜도 갚고 왕의 신임도 얻어 내고자 왕에게 그를 추천한다. 파라오는 사람을 시켜 즉시 요셉을 불러 오게 한다. 이제 요셉에게 닥친 모진 시련들이 청산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파라오는 자신의 꿈을 아무도 풀지 못한다는 불평과 함께 요셉에게 소문대로 꿈을 푸는 능력을 발휘하도록 요청한다. 요셉은 파라오의 말을 듣고 즉시 자기에겐 그런 능력이 없고 오직 하느님만이 꿈을 푸실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파라오는 요셉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개의 꿈 이야기를 듣고 요셉은 그것들이 하나의 같은 내용을 두 가지의 상징적인 영상으로 반복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고 알려 준다. 일곱 마리의 살찌고 잘 생긴 암소와 통통하게 익은 곡식 이삭 일곱 개는 칠 년간의 연속적인 풍작을 가리키고 일곱 마리의 깡마르고 못생긴 암소와 쭉정이 이삭 일곱 개는 칠년간의 연속적인 흉작(일곱 해 동안 지속되는 기근은 설형문자로 쓰인 메소포타미아의 문헌, 페니키아와 후대의 이집트 문학에서도 불 수 있다)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고대 근동의 문헌에 의하면 칠년씩이나 계속되는 풍작과 흉작이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드문 현상이었다. 연속되는 이런 대풍작과 대흉작을 정확하게 때까지 예견한다는 것은 분명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일이다. 요셉은 자신의 예견이 하느님의 계시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임을 누차 강조한다. 그는 파라오 앞에서 하느님이 직접 왕에게 앞으로 될 일을 미리 알려 주셨다고 여러 번 강조하면서 자신을 전혀 내세우지 않고 파라오와 하느님 사이의 관계만을 강조 한다(창세 31, 16. 28. 32).
- 요셉은 꿈의 해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꿈의 계시된 문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적절한 의견을 파라오 앞에 내놓는다. 말하자면 요셉은 꿈의 신비를 푸는 마술사의 역할도 해내고 꿈에 드러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현자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요셉이 제시한 해결책은 우선 슬기롭고 지혜로운 책임자를 하나 선정(‘슬기’와 ‘지혜’는 모세의 보조자들(신명 1,13) 솔로몬(1열왕 3,12),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햇순‘이(이사 11,2)갖춘 덕목이기도 하다)하여 이집트를 다스리도록 하고 이 책임자 밑에 성실한 감독관들을 두어 풍작이 계속되는 칠년 동안 소출의 오분의 일씩 세금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세금으로 거둬들인 이 잉여 농산품은 창고를 지어 저장해 두었다가 다음 칠 년 동안의 흉작이 닥칠 때 방출하여 모든 이집트 국민들을 기근에서 구하는 것이다.
이 과의 이야기에서 돋보이는 것은 요셉의 겸손한 태도이다. 입신출세의 문턱에 들어서 있으면서도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하느님의 은총에 돌리는 그의 겸손한 자세에서 파라오와 다른 고관들을 크게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겸손과 하느님께 대한 신뢰는 큰일을 맡을 사람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이라고 본다.
창세 41, 37-57: 고생하던 이 땅에서 하느님은 나를 번성하게 하셨다.
이 과의 성서말씀은 요셉이 파라오의 신임을 받는 재상이 되어 이집트 내의 실권을 쥐고 파라오의 꿈에 계시된 내용에 따
라 칠 년의 풍작과 칠 년의 흉작에 지혜롭게 대처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준다. 요셉은 비록 남의 나라 땅에서이지만 자기에게 맡겨진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선익을 가져다준다.
- 요셉의 꿈 해몽과 제안에 파라오와 그의 모든 신하가 흡족해 하고 더구나 요셉의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태도가 파라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 그래서 파라오는 스스로 신하들에게 요셉을 이집트의 재상 자리에 추천하면서 요셉의 동의를 구한다. 요셉이 한결같이 자신의 지혜와 해몽할 수 있는 능력을 하느님께 돌리는 데도 불구하고 왕은 요셉의 신통력이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슬기와 지혜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면서 왕궁의 모든 권한과 온 나라 백성들에 대한 권한을 그에게 맡긴다.
- 요셉에게 주어진 자리는 재상의 자리(수상)이다. 왕은 상징적인 최고 권력자로 남고 모든 일을 그에게 위탁한 다는 것이다. 경호대장 집에서나 감옥에서처럼 요셉은 윗사람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을 만큼 신뢰를 얻은 것이다.
- 파라오는 자기 손에서 왕권을 상징하는 옥새반지를 빼어 요셉에게 끼워주고 가장 값비싼 천으로 예복을 해서 입힌 다음, 이집트의 고관들에게 왕이 명예의 표시로 선사하는 금목걸이를 요셉의 목에 걸어 준다. 임금의 “인장”은 때로 관리 임명 때 수여되기도 하였다. 이와 달리 의복과 “금목걸이”는 일반적으로 임무수행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재상의 의복은 특별히 제작되었으며, 이러한 의복의 착용은 지위 높은 사람의 표시로 상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요셉을 자기 병거 다음으로 화려한 병거에 태워 함께 행진함으로써 문무백관과 백성들 앞에서 그의 즉위를 공식적으로 알린다. “물렀거라”는 표현은 이집트 식으로는 ‘조심하라’, ‘정신 차려라’는 뜻이고 히브리 식으로는 “무릎을 끊어라!”라는 뜻이다. 파라오는 이런 식으로 요셉에게 실제적인 모든 권한을 맡겼음을 널리 알리면서 요셉 자신에게 직접 대놓고 자기가 비록 왕이지만 요셉의 허락 없이 이집트 전국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손 하나 발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요셉에게 사브낫바네아라는 이집트 식 이름을 지어 준다. 이 이름은 ‘하느님께서 그가 살아 있다고 말씀하신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 다음 요셉에게 카이로 북동쪽 태양신의 중심 도시 오에 살고 있는 사제 보디베라의 딸 아세낫을 아내로 준다. 보디베라라는 이름은 요셉을 산 이집트의 경호대장 보피파르와 같은 이름으로서 태양신 ‘레의 선물’이라는 뜻이고 아세낫은 여신 ‘나잇에게 속한 여자’라는 뜻이다. 이 때 요셉의 나이 서른이었다.
- 요셉은 재상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전국을 시찰한다. 민심을 살피고 이집트의 풍물을 익히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후 칠년 동안 요셉의 꿈풀이대로 풍년이 들어 땅에서는 많은 소출이 났다. 요셉은 이렇게 이집트 땅에서 풍성하게 생산된 각종 식량을 거두어 남는 식량을 도시마다 창고를 지어 보관하게 한다. 이집트의 창고 제도는 고대 근동의 여러 나라가 부러워하던 제도 중의 하나였다. 곡식의 오분의 일을 세금으로 받아 내게 하는데 워낙 풍작이라서 나중에는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식량이 너무 많아서 계산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 흉작이 들기 전에 요셉은 아세낫에게서 아들을 둘 얻었다. 큰 아들의 이름은 므나쎄, 작은 아들의 이름은 에브라임이라고 짓는다. 므나쎄는 ‘나로 하여금 잊게 하셨다’는 뜻인데 이야기의 저자는 이 이름을 하느님께서 요셉으로 하여금 쓰라린 과거의 아버지의 집 생각을 잊게 하셨다고 풀이했다. 에브라임은 ‘나를 번창하게 하셨다.’라는 뜻인데 이야기에서 하느님은 요셉이 고생하던 이 땅에서 그를 번성하게 하셨다는 내용으로 풀어 설명된다. 비록 남의 나라 땅에서 그 나라 문화와 풍습과 종교까지 배우고 익히지만 자기 두 아들들의 이름은 자신을 지켜 주고 돌보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는 뜻을 담아 지었다. 하느님의 은공은 언제나 기억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 칠년의 풍년이 다 각 요셉의 예언대로 흉년이 시작되었다. 이집트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기근이 든 것이다. 나라마다 양식이 바닥이 나 난리법석을 피우는데 이집트에만은 비축한 양식이 넉넉하게 있었다. 백성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자 파라오는 요셉에게로 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명령한다. 요셉은 창고를 열어 이집트 사람들에게 곡식을 파라 막대한 부가 왕실에 들어온다. 요셉에게 양식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집트 백성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나라에서 양식을 사려고 이집트로 몰려왔다. 특히, 팔레스티나의 기근이 더욱 극심해서 마침내 야곱 집안도 이집트에 식량을 사러 오게 되었다.
- 이 이야기에서도 요셉의 깨끗하고 정직하면서 슬기로운 성품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집트라는 대국에서 요셉은 자신에게 재상직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자신을 신임하는 파라오에게 충성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이집트 백성 전체를 위해서도 헌신적으로 일을 하였다. 중앙에서 명령만 하는 고관이 아니라 직접 이집트 전국을 순회하면서 민정을 파악하였다. 칠 년의 대풍작이 들었을 때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놀지 않고 부지런히 창고를 지어 식량을 비축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이어지는 대흉년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이다. 흉년이 들기 시작하자 백성들에게 자기 개인 인심 쓰듯 창고에서 비축된 식량을 함부로 방출하지 않고 백성들에게 식량을 정당한 가격으로 판다. 요셉의 지혜와 성실한 직무 수행은 이집트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밀려오는 사람들까지도 구제해 주었다. 요셉의 태도에서 우리는 공직자의 참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
※ 참고문헌: 하느님과 함께 걸으며(창세기 해설서),정태현, 생활성서사, 1990,
p.247-255.
창세기,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p.166-172.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기념 구약성서 주해집, 페데리코 바르바로, 크리스찬
출판사,1986, p.369-376.
성서의 길을 따른 여정, 생활성서사, 1987, P.83-85.
오경, 성서와 함께, 영원한도움 성서연구소 편저, 2006, P.14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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