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길잡이

시편의 저자

마리아 아나빔 2011. 8. 1. 15:46

                                                                                     

 

 

                                                                                                  

                                                                                                           시편의 저자

 

1. 시편의 저자

 

   개개의 시편들의 작가가 구체적으로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것을 말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시편들이 다윗의 작품으로 간주되어왔다. 사무엘 상권 16, 14-23에 따르면 다윗은 이스라엘의 임금 사울의 궁중악사로 채용된다. 왜냐하면 사울이 우울증 조울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윗은 자기의 친구 요나단이 전사했을 때, 다윗 장수 요압이 피살되었을 때 등 조가를 지어 불렀다. 이렇게 다윗은 시인이며 악사와 가수뿐만 아니라 악기도 제조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많은 시편들의 머리글에 ‘다윗’이라는 인명이 나온다. 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은 다윗을 시편의 원조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시편 26의 머리글은 히브리말로 ‘러다비드’l'David)로 되어 있다. 문제는 ‘다비드’(David)앞에 있는 전치사 ‘러’이다. 이 전치사는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데, 얼마 전까지 이렇게 다양하게 쓰이는 ‘러’를 ‘...의’로 해석해서 시편 3과 같은 경우에 저자를 의미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을 위한’으로 이해하여 ‘다윗을 위하여’로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 예루살렘 성전은 본디 다윗의 도시로서 이 역시 왕실에서 지어기 때문에 성전에서는 임금을 위한 또는 임금에 의한 전례가 중심적으로 펼쳐지기도 했다. 특히 다윗은 이스라엘의 종교를 국교로 끌어 올렸고, 전례를 체계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 또는 다윗의 후손인 임금을 위한 시편들이 역시 많았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예들로 시편은 다윗과, 지혜는 그의 아들 솔로몬과, 그리고 예언은 엘리야와 연관 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고대의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서 흔히 보듯이 저자나 작가는 단순히 작품 뒤에 알려지지 않은 채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계되는 예를 시편 102편의 머리글에서 볼 수 있다. 문제가 되는 말마디는 ‘터필라 러아니’이다. ‘터필라’는 ‘기도’를 뜻하고 ‘아니’는 ‘가련한 이’를 뜻한다. 그래서 위의 말마디는 ‘가련한 이를 위한 기도’ 또는 ‘가련한 이의 기도’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곧, 가련한 이가 성전에 기도하러 왔을 때 성전 담당자에게 이 기도문을 빌려서 자기의 기도로 바쳤으리라는 추측이다. 이 설명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지만 모든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 할 수 없다.

 

   또 ‘코라’나 ‘아삽’이라는 인명이 머리글에 들어 있는 시편들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기도 한다. 우선 ‘코라’의 후손은 역대기 하권 20, 19에 따르면 레위 가문의 합창단이고, 역대기 상권 9, 19에 따르면 성막 출입문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삽은 성전 합창단 또는 음악인이었다고 한다(1역대 15,16). 그래서 한 가지 가능한 사실은 이들이 해당 시편들을 직접 제작 관리했거나, 또는 시편들이 이들에 의해서 성전에서 불렸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편에 사용된 언어와 내용을 고찰할 때 다윗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본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교육 수준의 고하를 막론하고 자기의 감정을 시적으로 표현하는데 능숙했다. 둘째, 이스라엘 민족의 생성기에 알파벳이라는 극히 편리한 22글자로 모든 것을 쓸 수 있는 기록수단이 발명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당시 거대 문화 제국들이었던 이집트의 상형문자나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에 비해서 하나의 엄청난 문자의 민주화 혁명이었다. 또한 동시에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의 엄청난 기억력에 또한 유의해야 한다. 현대인들은 씌여진 문자가 있기에 기억력이 도태되었지만, 옛 사람들은 방대한 서사시 같은 것들을 조금도 틀리지 않고 읊을 수가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도 있는 문화생활을 영위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시편의 가능한 사람들은 첫째, 일반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탄원시편을 지어 성전에서 기도하고, 곤경에서 벗어났을 때는 감사시편을 지어 하느님을 찬미하고, 이 시편들을 성전에 바쳤수 있다. 사실 고대 이집트 성전 같은 데에는 벽에 감사의 말씀들을 파놓기도 했다.

 

둘째, 성전에서 봉직하는 사람들이다. 즉 사제, 전례, 예언자, 종교, 노래와 음악 담당자들 또는 임금 등 누구나 하느님과의 만남 안에서 나름의 기도를 시(詩)로 봉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직접 저작했거나 또는 기존의 시편들을 관장하면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기도서’로 빌려주었을 수도 있다.

 

섯째, 임금이다. 사실 어떤 학자들은 대개의 시편들이 임금들의 작품, 또는 그들을 위한 것이라 주장한다. 그 이유는 성전이 본디 왕립 성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전례가 임금을 중심으로 펄쳐지기도 했다. 이 학자들의 주장은 시편 역시 임금에 의해서, 임금을 위해서 불리다가 나중에 가서야 비로소 일반인들에 의해서도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상 세 분류의 가능한 저자들 중 그 누구도 처음부터 배제될 수 없고, 또 누구만이 유일한 저자라고 주장할 수도 없다. 다만 시편의 저자가 누구였는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었는가이다. 어떠한 상황에 처해서 어떻게 응답했고 하느님과 어떻게 대화하며 그분과 어떤 친교를 이루었는가를 경험할 수 있을 뿐이며, 사실 이것이 더 중요하다.

 

 

 

2. 시편의 저자를 가리키는 머리말

 

    전체적으로 머리글은 후대에 붙여졌다. 아직도 연구는 계속되고 있으나 명확한 해답을 얻기에는 요원하다. 다만 학적으로 중요하지만, 우리가 시편을 봉독할 때는 우선 참조만으로 충분하다고 하겠다.

 

   머리글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시편 번역문의 오른 쪽 중간중간에 나오는 ‘셀라’라는 말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고자 한다. 성서 각주에는 ‘전례적 기능을 하는 말로 여겨지는데, 그 뜻은 분명하지 않다’로 되어 있다. 이 말의 확실한 의미와 용도를 우리가 모르고 있다. 쉬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우선 고대 번역본들도 각기 달리 이해하고 있고, 또 이 말이 일관성 있게 쓰이지도 않는다. 39개의 시편에 71번(칠십인역에는 92번) 나온다. 그래서 이것 역시 잠정적으로 그냥 두어도 되겠다. 그러나 ‘무시’가 아니라 잠정적 ‘보류’다. 또한 앞으로 전혀 이를 밝혀 낼 수 없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체 150편의 시편 중에서 73편의 시편이 다윗의 노래이다.

ex: (시편 3-9; 11-32; 34-41 ; 51-65; 68-70; 86; 101; 103; 108-110; 122; 124; 131; 133; 138-145)

 

12편의 시편이 아삽의 노래이다.

ex: (50; 73-83)

 

11편의 시편이 코라의 자손들의 노래이다.

ex:(시편42; 44-49; 84-85; 87-88)

 

2편의 시편은 솔로몬의 노래이다.

ex: (시편 72;127)

 

1편의 시편은 모세의 노래(시편 90), 헤만의 노래(시편 88), 에단의 노래(시편 89), 여두툰의 노래(시편 39)라고 전해지는 시편이 각각 하나씩 있다.

 

    아삽, 헤만, 에단은 왕정시대의 성전 성가대 지휘자였다. 에단은 아마도 여두툰과 동일한 인물이었을 것이다.(참조: 1역대 15, 16-24; 25, 1-6; 2역대 5, 12; 29, 13-14). 합창단 중 가장 오래된 단체는 ‘코라의 자손들’(1역대 6,7-12, 18-23)이다. 이들은 매우 다양한 직분을 수행하였으며(성전 수위 1역대 9,17-19; 26,19; 성전에서 과자 굽는 일, (1역대 9,31) 모세 시대부터 레위 계급에 속했다.

합창 단원에 대한 역대기의 증언(1역대 29,30)등을 참고한다면, 시편집이 집성되기 전에 이미 아삽, 코라 등의 지휘 아래 합창단에서 사용하던 소책자가 있었다고 본다. 그런 노래들에서 발췌했거나 유래한 시편들이 시편집에 함께 수록되었을 것이다.

 

다윗에게 돌려진 73편의 시편 가운데 13편의 시편

ex: (3;7;18;34;51;52;54;56;57;59;60;63;142) 신명기계 역사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다윗의 생애를 반영한다. 이처럼 다윗에게 저작의 공을 돌리고 그의 삶을 시편에 반영함으로써 시편의 허구의 노래나 기도가 아니라 역사적 구체성을 띤, 곧 실제 인물의 삶을 반영하는 노래이며 기도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앞의 13편의 시편에 소개된 다윗의 삶은 영예로운 모습과는 거리가 먼 슬퍼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사울이나 압살롬에게 쫓기던 다윗, 밧 세바와 불륜에 빠진 죄 등). 이는 시편이 기억하는 다윗은 하느님의 대리자 또는 이스라엘을 다스린 임금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슬픔과 좌절, 죄로 고뇌하는 인간적 모습의 다윗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이렇게 시편 저자는 다윗이라는 인물을 통해 슬픔과 좌절, 죄로 번뇌하는 보편적인 인간을 소개하고자 했을 것이다.

 

머리말에 모세, 솔로몬, 다윗 등을 저자로 소개하는 시편의 실제 저자가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실제 저자는 휼륭한 위인을 저자로 내세워 작품의 경건성을 드러내거나 영감받은 기록임을 증명하려고 했을 것이다.

 

 

 

 

※ 참고문헌 : 당신말씀 나의 등불, 임승필, 성바오로출판사, P.19-27.

                  시서와 지혜서, 김정훈, 바오로딸, 2007, P.86-87.

'시편 길잡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의 저작 목적  (0) 2011.08.20
시편의 저작 시기  (0) 2011.08.20
시편과 기도  (0) 2011.07.12
시편의 중요성  (0) 2011.06.24
시편 속에 어린 삶의 애환  (0) 2011.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