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 14-19: 선고
1. 아담과 하와는 더 이상 동산에 머물 수 없다. 하느님의 계획을 거절하였고, 하느님과의 친교를 깨뜨렸다.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 이제 두렵고 부끄러운 일이 되었다. 하느님의 선고가 그런 사정을 드러내 보여준다. 하느님은 남자를 엄하게 다루신다.
“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생물학적 죽음이 닥치기 전에도 나날의 삶, 우리의 삶이 갖가지 고초와 불확실성과 취약성으로 가득하다. 하느님을 찾는 일도 아주 확실하지 않은 표지들을 통해서 찾아야하기 때문에 손으로 더듬어 찾듯이 힘들다.(사도 17,27)
인간관계도 무척 힘겨워져서 부부간에도, 그 밖의 모든 인간 공존도 어렵기만 하다. 나아가서 대자연이나 동물들과의 관계도 힘들어진다.
근본적인 차단은 동산에서 멀어지는 일이다. 사람이 비록 신앙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동산은 하느님과의 우애와 친교를 맺어 사는 삶을 의미한다. 남자와 여자에게 떨어진 그 밖의 처단은 완전히 달라진 인간 조건에서 오는 귀결들이다. 우리가 본래 속하는 신체적이고 생물학적인 ‘자연적인’환경에서 살아가는 처지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이런 삶에서는 고난과 고통, 질병과 죽음, 이들을 수반하는 불안과 고뇌가 일상다반사가 된다.
우리는 우리 비참한 실존에 대해서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탓을 돌리는 버릇이 있다. 우리는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는 자세를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인간 조건이 저 첫 번째 잘못된 선택의 산물임도 사실이지만, 그 뒤 인류의 모든 세대들과 우리 자신들이 저질러온 그릇된 선택의 산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 있는 삶의 무대는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든 국가적 세계적 차원에서든, 사람이 갈수록 기울어지기만 하고 갈수록 미끄러지기 쉬우며 똑바로 일어서기는 그 만큼 어려워진다.
2. “ 열매를 따먹으면 죽으리라” 즉 뱀에 대한 선고가 끝난 후 인간에 대한 선고가 이어진다. 그런데 하느님의 형집행은 참 묘하다. 왜냐하면 앞에서 “열매를 따먹으면 죽으리라” 고하셨으니 당연히 죄인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셔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철부지 아들에게 매를 든 아버지처럼 마음이 누그러지셔서 형벌을 내리시기 전에 형벌을 내리시기 전에 뜸을 들이시고 정해진 형량도 가볍게 해주신다. 즉 악의 장본인인 뱀에게 와는 달리 저주를 내리시 않고 구원의 약속부터 해주신 다음, 엄한 벌이기는 하나 사형보다는 가벼운 형벌을 선고한다. 즉 여자에겐 아기를 낳을 때의 진통과 남편에게의 종속을, 남자에게 노동의 어려움을 개별적인 형벌로 주시고, 둘 모두에게 에덴동산으로부터의 추방을 명하신다.
- 여자에게 내려진 벌은 남자와의 관계에서부터 비롯된다. 범죄 이전에는 남자는 그녀의 동등한 친구요 인생의 동반자였다. 그러나 이제 여자는 남자의 아이를 고통 속에서 낳아야 하고, 채워질 줄 모르는 남자에 대한 욕망을 지니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에게 굴욕적인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범죄로 인하여 남녀 상호간의 균형과 조화가 깨져 버린 셈이다.
- 남자에게 내려진 벌은 그의 생물적인 본질과 깊이 연결되어 나타난다. 자신의 범죄로 인하여 아담은 자기가 비롯된 그 땅을 저주받게 했고, 이제 땅은 아담에게 협조를 하지 않게 되었다. 17절의 “죽도록 고생해야 먹을 것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농민들의 어려움 삶을 가리키고, 18절의 “들의 풀을 먹어야 할 터인데,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는 말씀은 목축민들의 어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범죄 이전의 동산의 묘사를 보면 심고 가꾸지 않아도 보기 좋고 맛있는 열매가 언제나 주렁주렁 열려 있어서 이마에 땀을 흘리지 않아도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범죄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땅으로부터 순순히 먹을 것을 취할 수 없게 되었다. 창세기의 저자는 이것을 인간의 자업자득으로 보고 있다. 곧 인간의 범죄로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그에게 열매를 내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3.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음식을 얻어먹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는 말씀은 앞에서 “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경고의 말씀과 관련이 없다. 이 대목의 말씀은 인간이 죽을 몸이라는 뜻이고 앞에서의 말씀은 열매를 먹는 즉시, 그 자리에서 죽으리라는 경고이다. 죽음은 범죄에 대한 형벌이 아니다. 형벌의 내용은 오히려 죽을 때까지 겪어야 할 고생스러운 생활조건이다. 그리고 이 형벌의 끝은 죽음이다. 이 형벌의 집행 장소는 낙원이 아니라 사막이다. 엉겅퀴와 가시덤불이 뒤덮인 땅으로 내쫓기는 남녀에게 하느님은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주신다.
* 참고문헌: 구약성서입문, 안토니오 지를란다/성염, 바오로딸, 2001, p.157-159.
하느님과 함께 걸으며, 정태현, 생활성서사, 1990,p.30-34.
성서의 길을 따른 여정, 생활성서사. 1987, p.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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