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순례자
끊임없이 기도하시오
일찍이 나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신앙의 눈을 뜨고 교우가 되었지만, 내가 하는 행동은 예나 다름없으므로 하느님 앞에서는 대 죄인으로 의지할 곳 없어 떠돌아다니며 근근이 목숨만을 이어가는 서글프고 외로운 나그네입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어깨에 둘러멘 자루 속에 든 말라빠진 빵조각과 내 호주머니 속에 든 성경 한 권뿐입니다. 이것이 내가 가진 전 재산입니다. 그러나 한 번도 순례의 길을 쉰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삼위일체 축일을 맞게 되어 어느 성당에 들어가 다른 교우들과 함께 성무일과에 참여했습니다. 이때 성경을 보게 되었는데 사도 성 바오로가 <데살로니카 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었습니다. 그 중에 “끊임없이 기도하시오”(1테살 5, 17)라는 구절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모두가 생활하노라면 숱한 일로 바쁜데, 어떻게 늘 기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 대답을 얻으려고 성경을 펼쳐 여기 저기 찾아보았더니 금방 들은 성경 구절과 또 다른 성경 구절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늘 기도하시오”, “언제나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에페 6, 18), “깨끗한 손을 쳐들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1티모 2, 8). 이 말씀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떻게 해야 기도 생활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나? 어디서 이 의문을 풀어 줄 분을 만날 수 있을까?하고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이름난 분들이 설교하는 성당에 가면 내가 알고 싶은 문제를 알 수 있을 것 같아, 또 다시 순례의 길을 나섰습니다. 그 동안 기도에 대한 훌륭한 강론도 많이 들어 봤지만 그 강론은 거의 다 기도에 대한 일반적인 가르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즉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왜 해야 되는가, 기도의 효과는 무엇인가였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기도가 참된 기도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습니다. 한 번은 마음으로, 또 영구적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강론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어떻게 그런 기도를 하게 되었느냐에 대한 말은 일체 없었습니다. 그동안 수 없이 많은 설교와, 기도에 대한 강론을 들어 봤지만 내가 바라던 것에는 언급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 후 부터는 강론을 들으러 가지 않기로 하고,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직접 얻어 보리라 생각하고는 이 의문을 풀어 줄 수 있는 경험 많고 지식이 있는 분을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찾아 헤맺습니다. 성경도 읽고 영적 지도자의 경험도 풍부한 지혜로운 길잡이가 어디에 있을까 하고 열심히 알아 보았습니다. 그런던 어느 날 어떤 마을에 오래 전부터 영생을 꼭 얻고야 말겠다는 결의에 찬 분이 살고 있는데, 그 분은 집안에 경당을 하나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두문불출 하고,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하든가, 영적 독서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단숨에 그분께 달려갔습니다. 그분께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보아하니 길가는 나그네인 모양인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나를 찾아 왔오?” “저는 하느님의 진리를 찾아 헤매는 나그네입니다. 선생님께서 매우 열심이시고 지혜로우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의 ‘끊임없이 기도하시오’란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또 어떻게 늘 기도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한동안 쳐다보시더니 “사도 바오로께서 말씀하신 ‘끊임없이 기도하시오’란 그 말은 마음 속으로 하는 영구적 기도를 뜻하는 것이요. 마음으로 하는 영구적 기도란 하느님께 자신을 드리기 위한 인간의 끊임없는 정신적인 노력이지요. 이 은혜로운 노력에 성공하려면, 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를 주님께 자꾸 청해야 하는 거요. 더 많이 또 더 열심히 기도하시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늘 기도할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비록 시일이 오래 걸린다하더라도 늘 깨어서 기도를 계속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는 먹을 것을 주시고 또 길가다가 먹을 것도 내놓으셨습니다. 나는 그분의 가르침으로도 기도의 참 뜻을 깨우치지 못했고, 아무런 소득 없이 이 집을 나와, 다시 길을 걸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무렵에 수도자 같아 보이는 노인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나의 물음에, 자신은 수도자로 몇 몇 형제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그 은둔처는 여기서 25 리쯤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있는 곳으로 가자고 자꾸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분이 거처한다는 은둔처로 갔습니다. 나는 깍듯이 예를 올리고 나서, 찾아 온 목적을 말했습니다. “스승님, 제 말 쫌 들어 보십시오. 어떤 기도 시간에 사도 바오로의 ‘끊임없이 기도하시오’란 말씀을 들은 지가 벌써 일 년이나 되는데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고민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제 나름대로 성경도 읽어보고 저명한 분의 설교도 들어 보았으나 아직도 그 말씀의 참 뜻을 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어디선, 자나 깨나, 일하는 동안에도 기도해야 한다는 이 말씀의 참 뜻이 무엇인지요?” .......
스승님은 나의 청을 기꺼이 받아 들이고, 말없이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보이며 말씀하셨습니다. “교부들의 책 한 권을 드리겠습니다. 이 책을 보시면 기도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 것인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환하게 아시게 될 것입니다. 내심으로 하는 영구적인 <예수의 기도>란 예수님 앞에 있다 생각하고 어디서나 어느 때나 잠들었을 때라도 항상 마음과 생각으로 예수의 이름을 끊임없이, 그저 줄곧 부르는 호칭 기도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지요. “주 예수 그리스도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러한 호칭 기도를 해 버릇한 사람은 마음 속에 큰 위안을 느끼고, 이런 기도의 효능에 대해 깊은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어느 때나, 입술과 마음과 생각으로 예수의 이름을 간단없이 부르는 호칭기도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마침내는 호칭기도를 안하면 못 견디게 되고, 그 기도는 절로 입술을 타고 흘러 나오게 됩니다. 자, 이만하면 항구적인 기도가 어떤 것인가를 아셨겠지요”.
나는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예, 잘 알았습니다. 스승님! 그러나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좀 더 가르쳐 주십시오”. 스승님께서는 책꽂이에서 <수덕의 실천>이라는 책을 꺼내시어 다음과 같은 부분을 읽어 주셨습니다. “침묵과 고요에 앉아 있으라.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아라. 그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주 예수 그리스도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라. 잡다한 생각들은 멀리 쫓아 버려라, 인내하고 내 말을 자주 실천하도록 하여라”. ......
- <이름없는 순례자>, 최익철 역, 가톨릭 출판사, 1991, PP. 11-23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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