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춤사위

시편86(85) 안에서 영혼(네페쉬)

마리아 아나빔 2012. 5. 13. 09:56

 

 

 

                                                          시편86(85) 안에서 영혼(네페쉬)

 

" 주님,

귀를 기울이시어 제게 응답하소서.

가려나고 불쌍한 이 몸입니다.

제 영혼을 지켜 주소서

당신께 충실한 이 몸입니다.

 

당신은 저의 하느님

당신을 신뢰하는

이 종을 구해 주소서

 

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으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께 제 영혼을 들어 올리니

주님, 당신 종의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 시편 86(85) 1-4 -

 

 

86편의 시편의 기도자는  시련가운데 위와같이 구체적인 간청을 드린다.

그 첫째가 자기의 '영혼'을 지켜주십사는 것이다.

지켜주다’라는 동사는 히브리말에서도 우리말서도 같이 여러 방면에 사용된다.

‘법을 지키다. 집을 지키다. 등 .

 여기서는 ’보호하다‘뜻을 지닌다.

하느님께서 지켜주실 대상은 “영혼(제목숨)”이다.

이 단어는 시편 86편에서 다섯 번이나 나온다.

 

 

 

‘영혼’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고대 그리스 사람들처럼 육체에 반대되는 개념의 이원론적이 않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세상이나 인간을 단일체로 보았다.

영혼에 해당되는 ‘네페쉬’는 본디 목구멍을 뜻한다.

목구멍으로 우선 생명 유지를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음식과 공기’이다.

 

 

 

 ‘목구멍’은 또한 그것이 자리한 ‘목’을 의미한다.

우리말에서도 ‘목이 타는 듯한 욕망’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비록 과학적 사고방식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예부터 목과 욕망이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왔다.

따라서 ‘네페쉬’는 ‘열망. 욕구’의 뜻만이 아니라

또한 모든 감정의 자리로 이해된다.

 

 

이로써 이 단어가 ‘영혼’으로 번역되는 것이다.

감정의 주체로서의 영혼이다.

그런데 목구멍이 막힌다거나, 인간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거나,

또는 인간이 더 이상 감정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네페쉬’는 ‘목숨’ ‘생명’도 뜻하게 된다.

 

 

 

이 단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명을 지닌 바로 그 사람,

 그 개체를 의미하게 되며,

이어서 그 사람을 가리키는 인칭대명사로 쓰이게 된다.

그러므로 ‘네페쉬’는 숨쉬는 인간, 생명을 지닌 인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목구멍으로 계속 무엇인가가 지나가야 하는 곤궁한 인간,

무엇인가를 항상 필요로 하는 인간을 뜻한다.

앞으로 시편이나 구약성경에서 ‘영혼’이라는 말을 들을 때,

바로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네페쉬’ 에 대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중요한 두 가지 사고는

 첫째, 한 부분으로 그 부분이 들어있는 전체를 표현한 것이다.

즉 ‘목구멍’의 뜻을 지닌 단어가 결국은 사람 존재 전체를 뜻한다.

그러나 이 단순한 대체 용어가 아니라

목구멍이 지니는 뉘앙스를 포함하여 전체를 뜻한다.

 예들 들면, ‘하느님의 손’하면, 일하는 기관으로의 손,

직접 일하시는 하느님, 손수 인간의 역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을 뜻하게 된다.

 

 

 

 둘째, 전체적, 종합적, 통합적인 면으로

어떤 사물을 부분이나 나누어 분석해서 보지 않고,

한 사물, 한 과정을 하나로, 나뉘지 않은 전체로 본다.

그리스 사람들은 하나의 사물, 하나의 과정을 각 부분들을 나뉘서 생각하고

그것들에 각기 다른 이름을 붙이겠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많은 경우 ‘네페쉬’처럼 한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시편의 많은 저자들은 이 '영혼(네페쉬)'를

자신의 실존전체를 대변하는것으로 여기며

 하느님 면전에 들어올렸고

하느님께서 이 영혼을 구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즉 영혼은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보는 존재였던 것이다.

영혼이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할 때

자신의실존이 어떠한 것인지 아주 분명히 알 수있었던 것이다.

하느님 앞에 선

그 분의 피조물로서 인간

그러나 하느님이 지극히 사랑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기에 구원을 목말하 하는

                                                                            시편의 기도자들은

자신들의 구원을 목마르게 갈망하는  그 갈망의 자리,

그 갈망의 주체인 자신의 영혼 자체를

그 갈망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인

<하느님>께 들어올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