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 4, 17-24: 카인의 자손
1) 카인은 하느님 앞에서 물러나와 놋이라는 곳에 자리 잡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아내와 한자리에 들어 에녹을 낳는다. 카인은 아담보다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아벨을 죽이고도 숨지 않았고 하느님이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도 자신의 과오에 대해 변명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하고 당돌하게 쏘아 부친다. 하느님이 카인에게 형벌을 선고하시자 그 벌이 너무 무겁다고 항변한다. 아벨을 살해한 땅에서 물러나와 동쪽 놋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도시를 세워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서 그곳을 에녹이라 부른다.
2) 에녹은 ‘시작하다’라는 히브리 동사와 어근이 같다. 이것은 에녹이 카인의 첫 번째 아들이 되고 그의 이름을 따서 첫 도시가 건설된 사실과 연관된다. 카인의 족보에는 일곱 세대의 이름이 나온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숫자인데 카인의 이야기에서 자주 반복된다. 카인을 죽인 사람에게 하느님이 일곱 갑절로 벌을 내리실 것이고 카인의 여섯 번째 후손인 라멕은 자신을 해치는 사람에게 일흔일곱 갑절로 복수하겠다고 공언한다. 카인의 족보와 같은 부분적 족보는 고대 근동에서 한 가정의 족속이나 종교적인 의미 이외에 별다른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 못한다.
3) 라멕의 이야기에서 죄의 공포는 확대되는데, 그가 부르는 복수의 노래는 잔인성과 냉혹해진 죄인의 특징인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다. 라멕이 자기 아내들 앞에서 언급한 그 자신의 폭력적인 성격은 노아 때까지 점점 증폭되어 폭력의 상황을 예고해 주고 있다.
자비로우신 주님께서는 죄인들을 멸하지 않으신다. 아마 여기에서 비롯되는 가장 무서운 결과는 인간이 하느님의 자비를 이용하는 것이리라. 인간은 자기를 해친 자들에게 복수를 꾀할 뿐 아니라 끔찍할 정도록 잔인하고도 혹독하게 이를 감행한다.
하느님은 라멕의 가증스런 허풍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시며 그에게 아담과 카인의 경우처럼 재판이나 자기를 변명할 기회를 주시지도 않는다. 라멕은 모욕적인 태도로써 화해의길을 스스로 차단한다. 그런데 이 대목 역시 희망의 표시로 끝맺는다.(26절에서)
생명은 계속 이어져 셋은 에노스(아담과 같은 의미로 인류를 뜻한다.)라는 아들을 얻는데, 그 아들이 야훼께 예배를 드린다. 하느님께 대한 참된 예배는 라멕의 죄처럼 커다란 죄와 병존할 수 있는 것이다.
창세기 5, 1-32: 아담의 자손
아담 후손들의 계보(창세 5, 1-32)는 홍수 이야기로 넘어가는 교량역활을 하고 있다.
모세오경에 나오는 이와 유사한 대부분의 계보들과 같이 이것도 모두가 제관계 저자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 계보가 가지는 기본 목적은 인류가 대를 이어 가며 세상으로 펴져나갔다는 사실을 알리는데 있다.
선조들의 나이에 지나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고대인들은 흔히 오래오래 산 것을 그들의 위대한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으로 돌리곤 했던 것이다. 어떤 왕들은 일만 년을 살았다고도 하는데, 이 숫자는 분명히 상징적인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햇수들 역시 상징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 상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명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주목할 것은 인류가 창조 당시로부터 멀어지고 죄가 확산되어 감에 따라서 나이들도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 참고문헌: 하느님과 함께 걸으며(창세기 해설서), 정태현, 생활성서사, 1990, P.45-46.
성서의 길을 따른 여정, 생활성서사, 1987,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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