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길잡이

열왕기 하권 길잡이

마리아 아나빔 2012. 11. 26. 21:55

 

 

 

열왕기 하권 길잡이

 

 

 

I. 전체 줄거리와 흐름

 

 

열왕기 하권은 북왕국 이스라엘에 전성기를 가져온 아합 임금이 죽은 뒤에 상황이 여러 모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으로 시작된다. 아합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아하즈야와 요람이 여전히 우상 숭배를 하는 가운데, 아합 임금 치세에 바알 예언자를 처단한 엘리야의 영검을 이어 받은 엘리사가 예후를 새 임금으로 기름부어 세운다.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 우상숭배를 확산시킨 아합 가문은 모조리 학살당하고, 이제벨 또한 창문에서 떨어져 죽게 된다.

 

이후 북왕국 이스라엘은 예후의 증손인 예로보암 2세 때 다시 번영하나, 그 아들 때부터 쿠테타가 끊이지 않아서 국력이 쇠약해진다. 결국 아시리아에게 멸망당하고 수도였던 사마리아 지역에는 여러 나라에서 이주되어 온 이방인들과 혼혈현상이 일어난다. 이로 인해 ‘사마리아인’들은 점차 이방인 취급을 받게 된다. 남왕국 유다는 가까스로 살아남아 히즈키야 임금과 요시야 임금 치세에 주님만을 믿고 따르겠다며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벌인다. 그러나 결국 아시리아 제국을 껶고 일어선 신흥 제국 바빌로니아에게 나라를 잃고 바빌론으로 유배길을 떠나게 된다.

 

 

 

II. 내용

 

1. 엘리사의 등장(1-8장)

 

1) 아합의 아들들의 통치(1.3장)

 

아합의 아들 아하즈요람은 1년 간격으로 연이어 왕위에 올라, 아합 임금의 정책을 그대로 시행한다. 아하즈야는 에크론의 신에게 병세를 묻는 등 이방신을 따르다가 엘리야에게서 호되게 비난을 받는다. 요람은다 임금 여호사팟과 연합해서 모압의 반란을 평정하는 길에 엘리사의 도움을 받아 식수를 해결한다. 그들은 모두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등장

 

엘리사의 뜻‘하느님은 구원이시다’이다. 그는 스승 엘리야가 불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다음 주터 예언자로 공식 활동을 시작한다. 본래엘리사는 밭을 갈다가 엘리사를 예언자로 세우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엘리야가 겉옷을 걸쳐 주자 엘리야를 따라 나섰다. 당시 겉옷을 걸쳐 주는 것은 자신의 능력과 예언자의 소명을 부여하는 행동이다. 엘리사는 하늘로 올라가며 떨어뜨린 엘리야의 겉옷을 요르단 강을 쳐 갈라지게 함으로써, 엘리야의 영검을 이어받았음을 드러낸다. 이후 나열되는 온갖 기적이야기는 엘리사의 소명을 뒷받침해 주는 역할을 한다.

 

EX) 엘리사의 기적

 

예리코의 쓴 물을 생수로 변화시킴--- 보리빵 20개로 백명 먹임

가난한 과부의 기름을 많게 함 --- 나아만의 나병치유

수넴 여자의 아들 소생시킴 --- 잃어버린 도끼 찾음

독이 든 국 해독--- 아람 군대를 사로잡음

“ 이제야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5,15)

 

 

III. 예후의 혁명과 이스라엘의 멸망(9-17장)

 

1) 예후의 혁명(9장)

 

엘리사는 다마스쿠스에 가서 하자엘에게 임금이 되리라고 선포하고, 수련생을 보내 예후를 임금으로 기름으로써 엘리야에게 내린 주님의 명령을 그대로 실천한다. 그 뒤 예후는 군대의 세력을 업어 왕위를 찬탈하고는 무자비하게 숙청한다. 바알 숭배자들을 몰살시키고, 왕후 이제벨과 아합의 아들 70명을 죽인다. 심지어 유다의 임금 아하즈와 그의 형제들까지 죽여, 오므리가 이룩했던 남북 간의 유대를 끼뜨림으로써 아시리아에 예속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2) 이스라엘의 멸망(10,1-17,23)

 

남왕국 유다에서는 왕국이 분단된 이후에도 다윗의 단일 왕조가 계속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다. 반면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오므리 왕조가 4대까지 지속되었고, 오므리 왕조를 무너뜨린 예후 왕조도 5대로 끝나고 만다. 그 후 살룸, 므나헴, 프카흐야, 페카, 호세아에 이르기까지 반란과 참살과 음모가 끊이지 않는다. 결국 이스라엘은 마지막 임금 호세아가 아시리아 임금에게 조공을 보내지 않고 이집트에 의지하다가,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고 만다. 신명기계 역사가는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를 주님이신 하느님을 배반한 예로보암의 죄와 우상인 바알을 숭배한 죄 때문이라고 들려준다.

 

3) 사마리아인의 시조(17, 24-41)

 

아시리아 임금은 잡아간 이스라엘 백성 대신에 아시리아 본토인들을 사마리아에 이주시킨다. 그들은 이방 종교와 풍습을 그대로 지켜 우상을 숭배하면서, 유배되지 않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따라 주님도 섬겼다. 마찬가지로 남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주민들의 영향을 받아 우상 숭배에 젖어 들고 악습에 물들게 된다. 이렇게 모든 분야에 혼합된 사마리아인들은 후대에 가서 유다인들에게 배척하게 된다.

 

 

 

IIV. 바빌론 유배까지(18-25장)

 

이스라엘이 망하기 전부터, 유다는 아하즈에서 요시아 임금에 이르기까지 아시리아를 섬겨야 했다. 아시리아가 멸망한 후에는 신바빌로니아와 이집트 틈새에서 휘둘리다가, 마침내 기원전 587/6년에 무너지고 많은 이들이 바빌론으로 유배길에 오르게 된다.

 

1) 아하즈의 정책(16장)

 

아하즈는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반아시리아 동맹 제안을 물리치고, 오히려 아시리아에 많은 재물을 바치고 속국이 된다. 그리고는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아시리아 제단을 모형대로 만들어 예배 드리기도 했다. 심지어 다른 민족들의 고약한 풍속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에 살라바치기도 했다.

 

2)히즈키야의 정책(18-20장)

 

기원전 715년 히즈키야가 즉위해서 유다에 전환점을 마련한다. 그는 산당들을 철거하였고, 산당의 성물인 제단, 제주, 아세라 목상들을 부수었을 뿐 아니라 여러 세기 동안 숭배해 왔던 예루살렘 성전의 구리 뱀도 산산조각을 낸다. 히즈키야의 목적은 유다의 신앙을 정화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유다 신앙의 중심지로 만들며, 아시리아의 지배에서 독립하려는 것이었다. 비록 그의 시도는 실패했지만, 신명기계 역사가는 “유다의 모든 임금 가운데 그만 한 임금이 없었다.”고 그이 치적을 높이 평가한다.

 

3) 므나쎄의 정책(21장)

 

12세기에 왕위에 오른 므나쎄는 55년간 다스리는 동안 다시 우상숭배에 빠짐으로써,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해 유다 왕국의 멸망을 예고한다. 므나쎄 시대야말로 유다의 암흑기라 일컫는다.

 

4) 요시야의 종교개혁(22, 1-23,30)

 

요시야는 8세에 임금이 되어 하느님의 눈에 드는 바른 정치 를했고 모든 일을 다윗을 본받아 한 발짝도 어긋나지 않고 살았다. 그는 기원전 622년 성전을 보수하다가 보물 창고에서 발견한 법전(원신명기)를 바탕으로 종교개혁을 실시한다. 공적 예배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집중시키고, 또한 아시리아에 예속된 옛 북부 왕조까지 정화시켰고 예루살렘과 맞겨루던 베텔과 기타 산당들을 파괴함으로써 아시리아에 대해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독립을 선언하여 위상을 떨쳤다. 그러나 그가 이집트 파라오 느코와 싸우다 므기또에서 죽자. 유다는 패망의 길을 걸었다.

 

5) 여호야킨과 제1차 바빌론 유배(24, 8-17)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던 때에 즉위한 여호야킨 임금은 바빌로니아에 항복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여 3개월 후 투항하였다. 바빌로니아 임금은 성전과 왕궁의 보화들을 약탈하고 여호야킨을 위시하여 유다의 권력층, 고관들, 명사들, 기술자들을 바빌론으로 잡아갔다. 그리고 가난한 지방민만 남겨 두었다. 이사야가 말하는 “남은자들”은 바로 이들을 가리킨다.

 

6) 치드키야와 제2차 바빌론 유배(24, 18-25,26)

 

치드키야는 여호야킨의 후임으로 왕위에 올라 바빌로니아에 잘 복종한다. 어리석게도 4년 뒤에 반기를 든다. 그리하여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을 포위해 양식이 떨어지자, 밤중에 탈출하다가 붙들려 자식들을 잃고 자신은 실명을 당한 채 바빌론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그달야가 총독으로 임명되지만 왕족의 후손들에게 살해되고 만다.

 

7 )여호야킨이 에월 므로닥에게 대접을 받다(25, 27-30)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여호야킨은 37년간 억류 생활 끝에 자유로운 몸이 되어 귀빈 대접을 받았다. 이로 말미암아 유배민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았으리가 기대했을 것이고, 그들의 꿈은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정복한 후 키루스 칙령을 내려 현실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여호야킨 의 석방은 미래로 열린 희망의 서광이라 할 수 있다. 그를 중심으로 다윗 왕조의 회복도 꿈꾸어 보게 되었다. 그 희망은 이스라엘 백성이 참회를 해서도 아니고 또 주님의 명령에 복종해서도 아니다. 이 마지막 희망이 아주 없어지지 않은 것은 주님의 약속 때문이다.

 

“ 나는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는 이는 나 자신 때문이며 나의 종 다윗 때문이다.(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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