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헬렛 9(1-18): 이해 할 수 없는 세상사
들어가면서
코헬렛 9장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사에 대한 고찰로써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려주리오?”라는 질문으로 발전시킨다. 먼저 인간이 닥쳐올 불행의 시간을 알 수 없다는 내용을 전한다(1-12). 이는 인간의 모든 삶이 하느님의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인간은 제약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앎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인간의 행위나 능력, 힘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은 똑같이 죽을 운명에 놓여있다. 코헬렛은 이 모든 일을 허무한 것으로 보고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삶을 최대한 즐기는 것이 최선임을 말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인생을 즐겨라”(9) 권고한다. 이어서 인간운명은 우연의 연속일 뿐 그 누구도 불행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사건도 예상할 수 없다고 말한다(13-15).
Text 안에서
인생 만사 모두 하느님의 뜻 안에 있고, 그 뜻을 알고자 살펴보지만 알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운이 좋다든가 나쁜 것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느냐 받지 못하였느냐를 결정할 수 없다. 하느님의 사랑은 내세의 삶에서야 완연히 드러난다.(8.18-9,2)
1절, “나는 이 모든 것을 내 마음에 두어 고찰해보았는데, ... 그들의 행동도 하느님의 손 안에 있었다.”의인과 지혜자의 행위는 하느님께서 사랑을 받을지 미움을 받을 지 알 수 없다. 이것이 하느님의 섭리이다. 그러나 ‘ 사랑도 미움도’에서 사랑한다와 미워한다의 히브리어의 동사는 반대개념이 아니라 “보다 많이” 라든가 “보다 적게”라든가 하는 비교개념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야곱을 사랑하고 에사오를 미워하였다”라고 할 경우 에사오을 미워한 것이 이 아니라 야곱보다는 에사오를 덜 사랑했다는 뜻이 된다. 여기에서도 의인과 저자가 하느님께로부터 번영과 재산과 장수 등의 은혜를 줄지 말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뜻에서 ‘미움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 그(인간) 앞에 있는 모든 것이 허무일 뿐이라고 한다.
2절, 그래도 인간은 모두 같은 운명이라는 것이다. “같은 운명”이라고 하는 말은 2장 14절, 3장, 19절에서는 죽음을 의미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일체의 화를 가리킨다. 그리고 “착한 이도 깨끗한 이도 더러운 이도”는 도덕적인 의미가 아니라 율법에 근거한 외면적 인 행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즉 종교적 정결 의식에 따른 정과 부정을 가리킨다. 또한 ‘“깨끗한 이와 더러운 이”, “제물을 바치는 이와 바치지 않는 이”, “맹세하는 이나 맹세를 꺼려하는 이” 등은 각기 당시의 특정 분류 사람들을 가리킬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의 근본 의도는 인간의 종교적, 윤리적 상태와 무관하게 모두 같은 운명을 겪는다는 사실을 예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것을 태양 아래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악으로 본다(3절).
4절, “그렇다, 산 이들에 속한 모든 이에게는 희망이 있으나”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희망은 살아있는 동안의 활동과 즐거움을 가리킨다. “살아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다”라고 하는데, 설교자는 이 속담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죽음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는 고대 오리엔트에서는 특히 히브리인에게는 가장 더러운 멸시받을 동물로 생각되고 있었다(1사무 17,43; 2사무 3,8; 이사 38,13). “사자”는 강함의 상징이며 동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되었으면 이 뛰어난 동물도 개보다 못한 것이다. 이로써 산 이들의 행복이 특별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산 이들에 (속하도록) 뽑힌”으로 되어 있으나 유다인 성경 전승가들과 대부분의 고대 번역본들은 “산 이들에 결합된(연결된)”으로 읽는다. 이 둘의 차이는 자음 네 개로 구성된 동사에서 연이은 자음 두 개의 자리만 바뀐 것이다.
5절, “산 이들은 자기들이 죽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알지만” 은 산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는 이유를 든다. 설교자의 이 종말론은 시편 88편 11-13절, 115편 17절과 같다. “좋은 것”은 사후의 보상이 아니고 생존 중 자신의 일로써 얻은 보수이다. 이것은 죽음과 함께 끝나는 것이다. 즉 “그들에 대한 기억은 잊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설교자에게 인생의 비극이기 때문이다.
7-8절, 그래서 설교자는 인생을 즐기라고 초대한다. “기뻐하며 빵을 먹고 기분좋게 술을 마셔라”고 한다. “ 네 옷은 항상 깨끗하고, 네 머리에는 향유가 모라자지 않게 하여라.”고 한다. “깨끗한 옷" 예로부터 축일이나 축하 때 입는 옷(유딧 10,3)으로 상용되었다. 이것은 청조함과 환희를 나타내는 것이었다(에스텔 8,15; 묵시4,4.;7,9). "네 머리에는 향유가 모자라지 않게”에서 항상 기름을 바르는 것은 즐거움을 나타내는 것이다(7,10; 시편 45,8; 잠언 27,9; 지혜 2,7; 아모 6,6).
9절, “하느님께서 베푸신 네 허무한 인생의 모든 날에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인생을 즐겨라” “사랑하는 여인”은 ‘사랑하는 아내’(욥기 31,9-10; 시편 128,3; 잠언 5,18-20)로써 설교자를 통하여 일부일처를 확인할 수 있다.
7-9절의 말은 고대 바빌론의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한 구절과 매우 흡사하다. 영생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 길가메시에게 여주인 시두리는 이렇게 권한다. “길가메시여, 어디를 헤매고 돌아다니나요? 당신이 추구하는 생명을 찾을 수는 없을 거예요. 신들이 인간을 창조할 대 인간에게 죽음을 내리고 생명은 자기들 손에 간직하였답니다. 길가메시여, 당신의 배를 가득 채우고 밤낮으로 즐겁게 지내세요. 매일 기쁨의 잔치를 벌이고 밤낮 춤추며 노세요. 말끔한 새 옷을 입고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세요. 당신의 손을 잡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고 당신의 아내는 당신 품안에서 즐거워하게 하세요. 이것이 (인간의) 일이랍니다!”
10절, “네가 힘껏 해야 할 바로서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나 하여라!” 즉 이 세상에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한 온갖 일을 하라고 권한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7절 이하에 나오는 세상 생활의 기쁨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너가 가야 하는 저승에는”에서 설교자는 죽음과 함께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후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고 강하게 역설한다. 여기서 저승은 죽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여겨졌던 지하세계이다. 이것은 설교자 이전의 전통적 가르침이다(욥기 14,10-12; 시편 6,6). 그러나 후대의 지혜문학과 후기의 예언서와 묵시문학은 사후의 생명과 부활을 인정한다(지혜 2,23; 3,1-4; 다니 12,2 참조).
11-16절은 이 세상일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상식으로 말하면, 이 세상에서 당연히 보상받을 일을 했는데, 너무나 자주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 세상에는 상식을 벗어난 일이 많다. 발이 빠르다고 반드시 우승하는 것도 아니고, 악인 사이에도 부자가 많다. 인생의 신비는 이 세상에 국한된 현실만 가지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11절, 인간은 누구든지 때가 되어 불행이 덮쳐 오면 당해야 한다. 모두 정해지 때와 우연에 마주치기 때문인데, 이때는 바로 죽음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재난의 때’를 가리킨다고 보면 좋다. 따라서 인간은 예정된 시간과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을 간파할 수없기 때문에, 그의 모든 활동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5-16절, 성읍에 지혜로운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난하였다. 그는 도시를 구할 수 있었으나, 가난 때문에 아무도 그에게 마음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혜는 힘보다 낫다.라는 속담을 즉, 그러나 가난한 이의 지혜는 멸시당하고 그의 말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라는 야유하는 말로 사용한다.
17절은 지혜로운 현자의 말은 큰 소리로 괄괄대는 어리석은 사람의 소리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즉 “조용히 듣는 지혜로운 이들의 말이 어리석은 이의 호령보다 더 낫다라는 것이다.
※ 참고문헌: 구약성경 주해서,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2010, pp.1834-1837.
시서와 지혜서, 성서와 함께, 영원한 도움 성서 연구소, 1981, p.149.
전도서 주해집(시편), 크리스찬출판사, 1986, pp. 291-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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