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단상

교황님의 세계 여자 수도회 총장회의(U.I.S.G.) 개막 연설(2013.05.08)

마리아 아나빔 2014. 1. 25. 15:49

 

 

 

                              교황님의 세계 여자 수도회 총장회의(U.I.S.G.)

                                     개막 연설(2013.05.08)

 

 

주교단 안에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형제인 추기경님, 그리고 사랑하는 수녀님들!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축성생활이 교회의 여정 안에서 언제나 빛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여러분 각자에게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수녀님들, 무엇보다 먼저 제게 환영의 말씀을 해주신 사랑하는 형제인 종 브라즈 데 아비즈 추기경께 감사를 드립니다. 수도성성 사무총장님께서 함께 해주tu서 더욱 좋습니다. 여러분들 모임의 주제인 “복음에 따른 권위의 봉사”는 여러분들에게 맡겨진 임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표현에 비추어 저는 세 가지 단순한 생각들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저는 이 세 가지 생각들을 여러분들이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으로 심화시켜 나가도록 남겨 둡니다.

 

1.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선택한 것이다.”(요한 15,16) 이는 우리 사제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성소는 언제나 하느님의 주도임을 기억하게 합니다. 수도생활 안에서 당신을 따르도록 여러분을 부르신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 바오로와 함께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라고 말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계획들을 비우는 가운데 여러분들의 실존을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집중하기 위해 계속해서 여러분 자신들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탈출”은 흠숭과 섬김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들 안에서 주님을 경배하고 그분을 섬기는 여정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탈출입니다. 경배하는 것 그리고 섬기는 것, 이 두 가지 태도는 분리될 수 없고 언제나 함께 가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 전혀 생각하지 않으면서 주님을 경배하고 다른 이들을 섬기는 것. 이것이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의 “비움”입니다. 그리스도의 중심성과 축성생활의 복음적 정체성을 언제나 기억하고 살아가십시오. 여러분들의 공동체가 무엇보다 여러분 실존의 세 가지 주춧돌들을 통해 경배와 섬김의 여정 안에서 자기로부터의 “탈출”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십시오.

 

 

순명 역시 인간의 중재들을 통해 전달된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교회로부터 인준된 성령의 내적인 움직임 안에서 하느님의 뜻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순명입니다. 권위-순명의 관계는 교회의 신비의 폭넓은 맥락 안에 자리한다는 것과 교회의 중재적 기능의 특별한 실현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수도자 성성, 권위의 봉사 그리고 순명, 12)

 

청빈은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하도록 가르치는 복음의 논리 안에서 각종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청빈은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며 하느님 왕국을 성장시키는 것도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일하시는 주님의 은총과 능력임을 가리키는 교회 전체를 향한 표지판과도 같습니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 코린 12,9) 라고 이방인들의 사도는 말합니다. 청빈은 연대성, 나눔, 사랑을 가르치며 또한 삶의 참된 의미를 흐리게 만드는 물질적 우상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본질적인 것에 대한 절도와 기쁨으로 표현됩니다. 청빈은 비천하고 가난한 이들, 병자들과 삶의 실존적 변두리에 놓여있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배우게 됩니다. 이론적인 청빈은 쓸모가 없습니다. 청빈은 비천하고 가난한 이들, 병자들과 어린이들 안에서 가난한 그리스도의 살을 만짐으로써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정결은 소중한 카리스마로써 부드러움과 자비와 그리스도의 가까움과 함께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선물의 자유를 넓혀줍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한 정결은 어떻게 활동성(적극성)이 성숙한 자유 안에 자리하는지, 그리고 언제나 하느님의 우위성을 빛나게 하기 위하여 어떻게 다가올 세상의 표징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풍요로운” 정결, 교회 안에 영적인 자녀들을 낳는 정결이어야 합니다. 축성된 이는 “노처녀”가 아니라 어머니이고 어머니여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축성생활이 지닌 이 모성, 이 출산 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영적인 출산능력의 기쁨이 여러분들의 존재를 활기차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교회의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모습과 같은 어머니들이어야 합니다. 그 모성 없이 마리아는 이해될 수 없습니다. 그 모성 없이 교회는 이해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마리아와 교회의 이콘입니다.

 

 

2. 권위의 행사 안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두 번째 요소는 섬김입니다. 우리는 참된 권력은 어떤 차원에서든 섬김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섬김의 빛나는 정점은 십자가상입니다. 베네딕도 16세는 위대한 지혜를 통해 인간에게는 권위가 소유와 지배와 성공의 동의어라면 하느님에게 있어 권위는 언제나 섬김, 겸손, 사랑의 동의어라는 것을 여러 차례에 걸쳐 교회에 호소하십니다. 그것은 사도들의 발을 씻으시기 위해 허리를 굽히셨으며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5-27) 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논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2012년 1월 29일 삼종기도 참조) 하느님의 백성, 교회, 형제자매들을 자기 이익과 개인적 탐욕을 위한 발판처럼 ”사용하는“ 교회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야기하는 폐해를 생각해봅시다. 그들은 교회에 매우 큰 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동행하고 이해하고 도와주고 사랑하는 가운데 권위를 행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 특히 외롭고 소외되고 메마른 사람들을 껴안는 가운데 권위를 행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눈길을 돌리지 말도록 합시다. 주님이신 그분이 자기 자신을 전부 내어주기까지 종이 되신 거기에 교회 안에서의 모든 권위가 자리합니다.

 

 

3. 마지막으로 축성생활의 구조적 차원과도 같은 교회성입니다. 이 차원은 삶 안에서 계속해서 거듭 취해야 하고 심화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성소는 교회의 여정을 위해 근본적인 카리스마입니다. 어떤 수도자가 교회와 함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세례 안에서 우리를 낳아 준 교회와 함께 “느끼는 것”은 일치의 가시적 표징인 로마의 주교, 베드로의 후계자 그리고 목자들과 이루는 친교 안에서, 교도권을 향한 충실성을 통해 교회의 자녀임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선포와 증거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결코 혼자만의 행위가 아닙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며,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복음의 선포와 증거는 결코 혼자, 또는 그룹의 행위가 아닙니다. 그리고 복음화에 임하는 사람은 그 누구가 되었든, 바오로 6세가 매우 잘 기억했듯이, 개인의 영감의 힘으로가 아니라 교회의 선교사명과 일치하여 교회의 이름으로 행동합니다.(현대의 복음 선교, 80 참조) 바오로 6세는 계속해서 교회 없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 교회 밖에서 예수님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는 것, 교회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이분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상동, 16 참조) 여러분은 교회의 건전한 가르침 안에서, 교회를 향한 사랑 안에서 그리고 교회 정신 안에서 여러분 수도회의 양성을 세심하게 보살펴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어쨌든 그리스도와 그분 복음의 중심성, 사랑의 봉사로써의 권위, 어머니인 교회와 함께, 교회 안에서 “느끼는 것” 이 세 가지 지표들이 제가 여러분들에게 남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여러분들의 활동에 대해 다시 감사를 드리면서 저 또한 여러분들과 함께 이 세 가지 지표들에 일치를 이룹니다. 여러분 없는 교회는 무엇일까요? 모성, 애정, 부드러움, 어머니의 직관이 결핍된 교회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수녀님들, 제가 애정을 가지고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여러분들의 공동체에 저를 대신해서 인사를 전해주십시오. 특히 환자 수녀들과 젊은 수녀들에게 제 인사를 전해주십시오. 모든 분들에게 기쁨과 재림의 기다림과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가도록 격려를 보냅니다. 여러분들은 즐거운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것, 성모님과 우리의 거룩한 어머니 교회의 살아있는 이콘이 된다는 것은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