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길잡이

성서를 읽는 방법

마리아 아나빔 2010. 6. 17. 16:52

 

Ⅱ. 성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 한 백성이 자신의 삶을 재독(再讀)하다.)

 

들어가기 전에

- 성서는 성령의 영감에 의해서 성서의 기록자들에 의해서,

시대를 달리 하면서 다양한 저자들의 사상과 문화와 문체들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 하나의 책으로 엮어진 총서들이며

그 내용이 인간과 하느님과의 계약의 관계를 다룬 것으로

크게 두 계약

즉 시나이 산에서의 모세와 맺은 계약인 구약과 예수그리스도와 맺은

신약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그 목적이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구원을 다룬 단 하나의 주제를 다룬

긴 이야기의 의미에서 그 저자가 하느님이 된다.

- 그러므로 성서는 고정된 총서라는 것 이상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의 우주요,

우리가 초대받고 있는 하나의 모험이다.

즉 하느님께 대한 열정에 사로잡힌 한 백성의 모험이고

혐재 우리의 구원에 대한 모험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모험이다.

 

 

- ‘성서 읽기’ 돕기 위한 몇 가지의 이해들-

 

1. 하나의 ‘텍스트’가 된 삶

성서의 다양한 책들은 우리에게 흔히 별것 아닌 것 같고, 별 관심을 기울일 만한 것이 못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한 믿는 백성의 모험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들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2. 이해하는 것은 나중에 가서이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 사건의 정확한 기록을 재생하자는 것이 아니며, 지나간 것을 정확하게 묘사하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사건이 현재 우리에게 지니는 의미를 표출시킴으로써 어느 정도 그 사건을 재창조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참 지난 후에 그 사건에 대해 다시 이야기할 때에는 또 다른 것들을 그 사건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그가 말한 그대로의 문장을 이야기 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그것을 이해한 대로 이야기 할 것인가? 다시 말하자면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정확하게 다시 취할 것인가? 아니면 그가 진정으로 우리에게 말하고자 했던 의미를 거기에 첨가할 것인가?

이처럼 그 자체로서는 우리에게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 사건들이 있다: 그러한 사건들은 나중에 우리의 역사 안으로 들어옴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의미를 취하게 된다.

 

3. 정확성이냐 아니면 진실성인가?

우리는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성서에 기술되어 있는 것이 진실인가? 그 기적이 진짜일까? 이러한 질문에 응답하기 이전에 진실이라는 단어에 대해 우리가 부여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질문을 제기해야 할 것이다.

진실성: 예를 들어 소설의 경우 모든 것은 꾸며진 것이지만 독자들이 그 소설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 소설이 인간 실재를 잘 다루고 있다면 그 소설은 사실이 될 수 있다. 즉 그 어느 것도 정확하거나 역사적인 것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사실이지 않는가!

정확성: 정확성이란 역사적으로 지나가 버린 것을 지칭하는데 적합한 표현이다. 이것은 카메라나 녹음기가 담아 놓을 수 있었던 것들이다.

정확성과 진실성: 예를 들면 한 수학문제의 형태가 ‘한통의 연애편지’라는 것은 사실이다. 나아가 내 친구가 표명한 구절을 내가 다시 반복하게 될 방법은 그 구절이 정확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보다 더 진실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성서가 진실인가? 이러한 의미의 진실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서에서 부정확한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사건들을 전해 주고 말씀들을 전달해 주는 방법이 정확하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가 성서에서 발견한 의미를 성서가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 방법은 진실된 것이다.

 

4.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는 것

사건의 본질적인 실재는 육안으로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사건의 역사적인 관점을 통해서, 그리고 내가 보는 것을 통해서 그 실재를 알아내야 한다.

이것은 성서를 기술한 이들에게도 해당 된다.즉 그들은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 사건들이란 그들이 믿고 있기 때문에 의미를 띄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오늘 성서를 읽고 있는 우리에게도 관계된다.

우리는 신앙인이든 아니든 간에 성서를 공부할 수 있다; 우리는 텍스트들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 저자들과 동일한 신앙을 나누고, 저자들이 추구하는 바를 함께 추구한다면 우리는 텍스트를 다르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파생되는 중요한 결과는 하나의 텍스트가 전해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혹은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 된다.

 

5. 하나의 텍스트의 의미

우리가 하나의 텍스트를 대할 때, 특별히 하나의 오래된 텍스트를 대하게 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느 정도 다음과 같이 추론하게 된다.

-저자는 무엇인가를 말할 것이 있었고

전달해 줄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의미를 자기의 고유한 문화와 자기의 용어 속에‘담아 놓았다’

-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에게 맞는 우리의 용어 속에 그것을 ‘다시 포장하는’ 일이다. 우리는 텍스트 속에, 끄집어내야만 하는 ‘단단한 핵심’어떤 객관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처럼 야기된 사건에서 찾아 낸 의미를 그 사건에 첨가시키면서 그 사건의 삶을 계속해 나간다.

그러므로 읽는 다는 것은 하나의 텍스트를 점령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 우리로 하여금 살아가게 하는 무엇인가를 그 텍스트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텍스트로 하여금 아무것이라도 말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바로 여기에서 텍스트에 대한 연구, 그리고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는 연구 방법론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참고문헌: 구약성서 길잡이, E. 샤르팡티, 안병철, 성바오로 출판사, 1991, P.1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