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빈센트 드뽈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빈센트 드뽈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Incarnatio)와 ‘파스카’(Pascha) 사랑을 관상하는데서 흘러나온다. 특히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육화’의 신비와 ‘십자가’를 통한 파스카 신비는 인간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드러내는 커다란 두 축이 된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의 삶은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육화 시킨 그분의 강생에서 시작하여 말씀과 업적으로 일생에 걸쳐 아버지의 뜻과 그 분의 일을 행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 삶을 ‘이웃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자신의 삶 속에 내면화시켜 그리스도의 인격에 다가간 것이 된다.
따라서 빈센트 드뽈은 일생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관상함으로써,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적인 사랑으로 행하면서 자신의 인격을 그리스도화 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한가지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적으로 외적으로 지니셨던 ‘인격적인 덕행들’과 ‘생활양식’ 그리고 그분의 ‘존재 그 자체’로 이루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 전체를 자신의 ‘전 인격체’로 응답하는 통합된 삶을 통하여 이루었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의 정신과 영성은 그리스도교의 교의(Dogma)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한 복음(Kerygma)의 핵심에 위치한 것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본받는 그리스도론적인 것이 된다.
3.1. 빈센트 드뽈이 만난 ‘위로부터’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인 인간에게 그 본래의 인간의 존엄성과 고유한 품위를 찾아주고 구원으로 이끌기 위한 하느님 ’자비의 육화’가 된다. 더 나아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는 빈센트 드뽈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원천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따르는 그의 삶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의 영성을 ‘하느님 자비의 영성’ 이라고 말할 때, 그가 하느님의 자비를 관상한 일차적인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하느님이 손수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을 관상한 것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3.1.1. 육화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관상
그리스도인의 인격은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있기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우리 안에 넘치는 그분의 은총에 힘입어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닮게 한다. 따라서 하느님을 아는 사람의 영적 여정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여러 단계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되고, 고유한 자아(自我)의 모습을 찾아 나서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향한 여정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내면으로부터 알게 되고 그분의 뜻을 찾으며 자신의 신원을 결정하게 되는 것에서 비롯된다.
빈센트 드뽈의 생애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는 사제가 되었지만 처음부터 거룩하지만은 않은 사람이었다. 젊었을 때 그는 출세하고 싶어서 일찍 사제서품을 받고 싶어 했었다. 신학교 시절엔 아버지가 형편없는 옷차림으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아들을 보러 찾아왔을 때 친구들 앞에 체면이 깎일까봐 창피해서 만나지 않는 적도 있었다. 또한 자신이 시골 출신으로 돼지치기를 했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못한 세속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 사람이었다. 이처럼 젊은 날의 빈센트 드뽈의 삶은 자신의 생활의 안정을 위하여 노력하며 하느님의 뜻과 자신의 의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그가 세속적 명예와 욕구를 추구하던 처음의 자세를 버리고 그 대신에 열정적이고 단호한 마음으로 거룩함을 추구하는 회심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특히 빈센트 드뽈이 두 차례의 신앙 체험과 회심을 통하여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에 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연민을 지니시고 돌보아 주신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일생을 바치기로 맹세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첫 번째 하느님 체험은 그가 도둑질을 했다는 어떤 누명을 쓰고도 여섯 달 동안이나 그 일에 대하여 입을 다물고 변명하지 않은 채,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침묵으로 거룩한 시간을 보낸 것에 있다. 두 번째 신앙체험은 그가 파리에서 마르그리트 여왕의 빈민 구제 담당자로서 애덕 사업에 동참하면서 생활할 무렵에 있었다. 그것은 어떤 신학박사가 신앙의 유혹에 빠져 있는 것을 돕기 위해서 그 유혹을 자신이 대신 받겠다고 기도한 것에서 비롯된 하느님 체험이었다. 이때 그에게 있어서 신앙의 암흑은 너무 컸었다. 그래서 그 또한 유혹에 빠질 듯하면 ‘사도신경’을 베낀 종이를 가슴에 품고 그 위에 손을 대며 믿음을 새롭게 고백해야할 정도이었다. 그러나 한편 이 시절 빈센트 드뽈은 마음속의 고뇌에도 불구하고 이전 보다 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덕을 실천하며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해 주려고 애썼었다. 그런데 하느님은 이 시련의 유혹으로부터 엄청난 유익을 끌어내는 은총을 그에게 베풀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달리 더욱 심한 의혹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던 그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기로 맹세한다. 그러자 그의 마음을 괴롭히던 고통은 어느덧 사라지고 영혼은 평화를 얻으면서 이제까지 느껴 본 적이 없던 용기를 느끼며 온몸을 다해 하느님께서 주신 사업을 완성해 내리라고 다짐하게 된다.
빈센트 드뽈에게 이 두 사건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게 한 출발점이 되는 ‘자아 정체성 체험’이 이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즉 빈센트 드뽈은 이 두 사건 안에서 일어난 하느님과의 신앙 체험을 통하여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향하여 움직여야 하는지를 분명히 의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하여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향한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때 빈센트 드뽈이 어떤 내적체험을 헸었는지가 된다. 왜냐하면 그는 분명 그 안에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그 무엇’을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바로 빈센트 드뽈이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하느님이신 분이 왜 비천한 인간으로 오셨는가?’ (Cur Deus homo?)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 존재’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그 안에서 발견한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에게는 분명 가난한 이들 안에 현존(現存)하시면서 그들에게 봉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러한 그분과의 ‘인격적인 만남의 체험’이 그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전은 빈센트 드뽈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제시하는 시발점이 되어 주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드러내었고,(요한 3,16)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구체화시키는 ‘육화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바로 이 사건을 계기로 빈센트 드뽈의 인격 안에 그 모습을 드러냈었던 것이다.
3.1.1.1.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연민(Compassio)과 자기비움( Kenosis)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인간이 되셨다는 ‘육화 사건’은 구세사의 정점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의 모습으로 창조하시고, 당신을 닮도록 하셨을 뿐만 아니라 악의 세력에 빠져 방황을 일삼던 인간을 자비와 사랑으로 계속 돌보시다가, 그리고 마침내 구원하기위해 몸소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와 인간까지 되셨기 때문이다.(요한 3, 16-18) 그러므로 이 사건은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낸 것이 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은 인간을 위하시는 ‘사랑의 하느님’(philanthropy)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통하여 친히 ‘자비를 육화’ 하시고 ‘인격화’하신 분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비를 보고 발견하는 사람은 ‘보이는 분’으로 나타나시는 한없이 ‘자비로우신 아버지’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이르는 모든 길은 곧 성부와 그분의 사랑에 가까이 가는 길이 된다.
빈센트 드뽈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발견한 것은 육화하신 그분의 인격자체가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증거 하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그분은 모든 사람들이 ‘사랑과 자비’에 따라 삶을 영위하도록 ‘요구’하시는 분이 된다. 즉 하느님이신 그분이 자신을 비우시어 여느 사람처럼(필립 2, 6-7) 되셨다는 것은 그분이 ‘사랑의 육화’가 되어, 고통 받는 사람들, 불운한 사람들, 죄인들에게 강력하게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 보이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세상에 현존케 하신 것이 된다.
빈센트 드뽈이 이러한 ‘육화 하신 그리스도의 인격’을 더 깊이 관상하고 심화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당대의 위대한 영성가인 삐에르 드 베륄(Pierre de Bérulle)주교와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빈센트 드뽈이 마르그리트 여왕을 위해 성무 활동을 하고 있을 당시 어떤 환자의 병상에서 만났다.
베륄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된 관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cordis)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인간의 모습으로 육화하여 철저하게 가난하고, 수난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적 사랑을 관상하고 그 현존 안에 머무는 것이다. 따라서 빈센트 드뽈의 영적 지도자로서의 베륄의 영성은 행위보다는 마음의 자세를 더 강조하는 것이 된다. 즉 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리스도가 살았던 역사적인 현실과 그분의 마음 상태를 인식하면서 자기 안에 일어나고 있는 은총의 요구를 알아듣고, 그리고 한 인격체로서 자기를 부르는 하느님께 응답하는 것이다.
빈센트 드뽈은 이러한 베륄의 영성에 영향을 받았다. 더구나 베륄은 위엄이 있고, 겸손하며, 무게가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거룩한 사람이었기에 그를 매우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신비가로서 나타내 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베륄의 숭고한 관상은 빈센트 드뽈을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시켰고, 인간으로 보여준 그의 폭 넓은 인격은 그를 감동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온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듣고, 그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영성생활의 기초로써 빈센트 드뽈의 영성의 시원(始原)이 되었다.
그리하여 빈센트 드뽈은 베륄 통하여 겸손되이 자신을 낮추어 ‘육화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깊이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존재는 추상적이고, 사변적으로 흠숭하며, 덕(德)으로서만 현존하는 분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존재는 현실세계 안에 육화되어 함께 계시는 존재, 가난한 이웃 안에 현존하시는 분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냉철한 현실적 감각을 지닌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당연한 귀결이기도하다. 왜냐하면 빈센트 드뽈은 농민의 아들로서 ‘대지의 영성’에 깊이 뿌리 내린 사람이었기에 그의 현실적 감각은 타고난 덕성(德性)에 기인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독자적인 영성으로서 훗날 그가 예수 그리스도가 살았던 삶의 양식을 그대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따를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헌신은 그의 어릴 적 삶의 모습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 역시 당신의 공생활 전 30년을 나자렛이라는 동네에서 가난한 이들 안에서 손수 노동을 하면서 하느님의 창조 활동에 참여하셨고, 그러므로 가난한 이들의 고충을 몸으로 체험하신 분이시듯 말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빈센트 드뽈이 온 마음을 모아 하느님의 말씀에 귀기울임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집중하였다는 것에 있다. 즉 성서의 말씀대로 그는 그의 삶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하느님 나라’를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먼저 그분 나라와 그분 의로움을 찾으시오. 그러면 그런 것도 다 곁들여 받게 될 것입니다.”(마태 6,33)
따라서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육화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자비로운 사랑’(Compassio)이 그분으로 하여금 자신의 모든 것을 비워(Kenosis) 인간이 되신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있다.(SV Ⅺ, 32) 또한 그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로 자신을 바치기로 맹세한 것도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삶의 대전환은 두 차례에 걸친 신앙 체험에 따른 회심과 베륄의 영적도움으로 ‘예수 그리스도 중심’에로 삶의 전환이 그에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리하여 빈센트 드뽈은 하느님 섭리의 여정 안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를 위한 주님의 소명을 알아들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3.1.1.2. 하느님 사랑의 결정체인 인간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무이하고 유일회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신비 속으로 관통해 들어 가셨고, 인간의 ‘마음’ 속에 들어가신 분이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실, 혈육을 하신 ‘말씀’의 신비를 떠나서는 인간의 신비가 참되게 밝혀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삶의 중심이 되며, 우리 모든 인간의 구원자이다. 또한 우리 인간들의 둘도 없는 스승이며, 친구이고, 또한 형제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의심할 여지없이 이 세상과 우리 인간의 삶에 있어서 빛이 되시는 분으로서 인간의 마음과 하느님의 마음을 동시에, 우리들 인간의 마음 안에 심어 주시는 분이 된다. 따라서 하느님의 모상과 유사성을 지닌 인간의 참된 품위는 참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 될 수 있다. 비록 하느님 모상으로서 품위를 지닌 인간의 모습이 때로 왜소하고 연약하게 보일지라도 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신 그리스도로 인해 인간은 자신의 참된 품위를 다시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참 인간이신 그리스도께 가까이 감으로써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과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인간의 신비’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셨고, ‘인간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신 분이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병자들을 고쳐주시고(마태 14,14),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 맞추는(루가 15,20)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그리스도가 인간에 대해 가진 ‘연민’(compassio)과 ‘측은지심’(misericordiae)의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바로 영원으로부터 ‘원하시고’ 하느님이 ‘선택하신’ 인간, 은총과 영광에로 부름받고 예정된 ‘가장 구체적인 ’ 인간, 하느님의 모상을 지니고 있는 ‘각’ 인간, ‘가장 현실적인’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진실히 말하거니와, 너희가 지극히 작은 내 형제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었을 때마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가난한 이들과 동일시(Identification of Jesus with the poor)하였다. 그리고 그들 안에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셨다. 이러한 연유에서 빈센트 드뽈은 불우한 사람들을 이웃으로만 보지 않고 그들 안에서 ‘우리의 주님’까지도 발견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는 단순한 사회적 동정심이나 의무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인간에 대한 ‘연민 어린 사랑’에서 비롯된다.(SV Ⅺ, 77)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가장 비참하고 소외되고, 영적 육적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삶으로 자신이 불림을 받았음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연민, 온유, 진심어린 사랑과 존경과 헌신이 요구된다고 하였다.(SV Ⅹ, 331; 353; 727)
또한 이러한 예를 루가 복음사가는 아주 잘 설명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 최초의 메시아 선언’은 “주님이 나를 보내셨으니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로잡힌 이들에게 해방을, 눈먼 이들에게 눈뜰 것을 선포하며 억눌린 이들을 풀어 보내고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이로다.”(루가 4,18-19)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유별나게도 가난한 사람들, 생계 수단이 없는 사람들,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 창조계의 아름다움을 볼 줄 모르는 눈먼 사람들, 마음이 상한 사람들, 혹은 불의로 고통 받는 사람들, 그리고 죄인들에게 ‘사랑이신 하느님’을 보여주시는 분명한 표지가 되셨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 역시 철저하게 인간을 위해서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이해했듯이, 그분의 사명을 자신의 사명으로 이해하였다.
어느 날 빈센트 드뽈은 공디(Gondi)부인의 권유로 폴빌(Folleville)의 간스라는 곳에 살고 있는 가난한 농부의 임종을 지켜보게 되었다. 이 농부는 빈센트 드뽈 의 권유로 죽음을 앞두고 총고해를 하였다 그런데 이 폴빌에서 가난한 영혼을 위한 방문은 빈센트 드뽈에게 하느님 사업의 구체적인 ‘사명감’(vocatio)을 불어넣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하여 자신의 소명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하느님 사랑의 결정체인 ‘인간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게 되는 체험이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주님’과 ‘하느님’의 아들로 남아 있지만, 그분이 ‘가난한 사람들의 인격’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에 대한 위대한 발견과 깨달음의 은총이었다. 또한 그것은 하느님 구원으로 초대를 받고 하느님 모상을 지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각’ 인간 한 사람의 ‘영혼 구원’과 ‘인간 존엄성의 품위’를 보게 되는 체험으로써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가 된다. 따라서 이 소명은 빈센트 드뽈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서의 인간, 그 존엄성에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요, 하느님 모상으로서 인간의 참된 품위를 회복시켜주는 일에 헌신하는 것에 있다. 그리하여 빈센트 드뽈은 하느님으로부터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랑과 자비의 도구가 되도록 초대를 받게 된다.
3.2. 빈센트 드뽈이 만난 ‘아래로부터’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는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죽음보다 강한 것임을 드러내는 사랑의 극치가 된다. 이러한 파스카(Pascha)의 신비는 육화의 신비와 긴밀히 결부되어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자비의 완결된 육화이시고 하느님 자비의 산 표지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사랑의 실현이 된다. 그는 자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손에 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묵상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에게 사랑하는 것에 대한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하고 인간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인간 존엄성을 일깨워 그를 그리스도의 사랑에로 참여를 재촉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그리스도 인격의 절정을 만났다.(1요한 3,16) 그리고 그것은 그의 삶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거침없이 불을 놓게 만드는 그리스도 사랑의 도화선이 되었다.
3.2.1.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관상
복음서의 보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전적으로 십자가에로 방향지어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그분의 삶은 십자가 없이 이해될 수 없고, 십자가를 향한 여정의 삶 없이 설명될 수 없다.(사도 8,32-33; 1베드 2,21-25, 3,18; 로마 15,3; 히브 12,2; 루가 22, 37참조) 또한 이러한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겸손 그리고 순종(필립 2, 6-8)을 뜻한다.
빈센트 드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신비’를 자신의 인격 안에 내면화한 사람이다. 즉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재촉(2고린 5,14) 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적 사랑에 자신의 삶을 집중하며 그 사랑에 자신을 투신하였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하지 아니하고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를 길이란 없다고 하였다. “우리가 언제나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또한 우리 몸에 드러나기 위해서 입니다.”(2고린 4, 10) 따라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야하며, 우리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가리어져 있어야하고, 우리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해야하며,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기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SV I, 295)
빈센트 드뽈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철저히 살기 위해서 드 공디의 영지에서의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버리고, 죽은 곳이나 다름없는 사띠용 레 동브 본당으로 갈 것을 결정한 행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삶’을 살고자 한 것이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은 빈센트 드뽈이 자신의 의지를 하느님께 온전히 바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따라서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빈센트 드뽈이 자신의 영적 회심을 거쳐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자신의 삶 안에서 실천적으로 옮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드러난 ‘십자가’는 바로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고, 하느님을 위한 우리의 사랑임을 그가 깊이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완전한 자기봉헌인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가난하고, 버림받고, 힘없고 소외된 이들에게 그분의 참된 자유와 생명 그리고 구원을 되찾아 주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그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안에서 가난하고 소외되며 보잘 것 없는 이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시면서 까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만났기 때문이다.
빈센트 드뽈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자신의 인격 안에 내면화시켜 활동적인 사랑을 실천하는데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Francis de Sales)의 영적 공헌이 매우 켰다. 빈센트 드뽈이 베륄에게서 육화하신 예수 그리스도 인격의 모든 외적 업적에 따른 그분의 내적인 인격에 대한 비전을 보았다면,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에게서는 참으로 사람이 되신 참 인간으로서의 구체적인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다. 또한 빈센트 드뽈이 베륄로부터 자신의 인격 안에 그리스도의 사제로서의 충만성을 복원할 수 있었다면,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에게는 그리스도 신비 전체를 부단 관조함으로써,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통하여 모든 인간 안에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새롭게 발견한 것에 있다. 그리고 하느님의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사랑’(love of effective)으로 ‘인간의 품위’를 결정적으로 회복시켜 주는 하느님 사랑을 배우게 된다. 왜냐하면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인간학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에 접근하는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영적 감각을 지닌 분이다. 또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그 방법으로 이웃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수행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영성생활을 모범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빈센트 드뽈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온유함의 표양을 통하여 다양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정감적인 사랑과 효과적인 사랑을 함께 잘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을 통하여 하느님은 인간이 당신께 대한 불성실 의 죄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시다. 또한 당신 외아들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까지 인간을 당신의 신성으로 이끌고자 하시는 ‘자비와 연민’(םיםךר: rahamim)으로 가득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다시 한번 더 자신의 인격 안에 심화시키는 것이 된다. 따라서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인간에게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찾아 나서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제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에 대한 관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직접 찾아 나서시고, 그 인간들 안에 같이 현존하여 계시는 활동으로 나아가는 대전환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빈센트 드뽈은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지만 그러나 적극적인 행동가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동의 동력은 내면적인 것이었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명상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를 만나 뒤부터 비로소 그의 영성의 불꽃은 뒷받침 받고 풍부하게 되어 현실적인 행동가가 관상과 활동이 서로 균형을 이룬 그리스도의 인격체로 이룩하고 상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3.2.1.1.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에 대한 열정(Passio)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관심사는 하느님의 일과 인간의 일로써 하느님의 뜻인 인간의 행복과 구원이었다. 따라서 그분은 인간에 대한 봉사를 율법 준수나 성전과 관련된 예식질서 전체보다 우선시 하였다.(마르 2,27; 마태 5, 23-24) 그렇다고 인간에 대한 봉사가 하느님 섬김을 대신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참된 하느님 섬김은 ‘인간에 대한 봉사’ 안에서 그 참됨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모든 계명을 하느님과 인간을 사랑하라는 이중계명( 마태 22,37-40)으로 요약하였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 시대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 죄인, 창녀, 세리, 마귀 들린 사람, 눈먼 사람들, 절름발이, 불구자, 나병환자, 굶주리는 사람, 박해받는 사람, 억눌린 사람, 묶인 사람들을 만났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멀리 떨어진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 당장 나를 필요로 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었다.(루가 10,29-37) 또한 예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감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아주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으로 그 사람의 영혼까지 돌보아주는 사랑이었다. 즉 예수께서 당신이 내어주는 이 연민의 정(pieta)을 받는 사람들은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인정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었다.(마르 2,1-12; 루가 7, 36-50; 7,48.50) 그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커다란 스캔들이 되기도 하였다. 반면 이것은 그분의 인격의 수용성과 개방성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이 된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사랑의 철저성은 한계 없는 용서, 서열이 없는 봉사, 대가 없는 포기와 자신을 희생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근거하여 타인을 온갖 한계와 결합을 있는 그대로 오롯이 그리고 철저히 사랑하는 것이 된다.
빈센트 드뽈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서 그 시대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볼 수 있는 사람들’ 즉 가장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인 죄수들, 정신 질환자들, 노인들, 집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 버림받은 아이들 질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만나며 그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에 참여 하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인간의 행복과 구원을 위한 동참으로써, 여러 형태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의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spiritually and corporally) 구원과 해방을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포기 하였다. 또한 이것은 그에게 있어 인간의 고통으로 인하여 고난을 겪은 ‘그리스도의 인격’에 참여하는 동정심(sympatia)의 자발적 동참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하느님을 인간에게 또한 인간을 하느님에게 봉헌한 예수 그리스도를 스승과 벗으로 받아들일 때, 우정의 본질에 당연히 요청되는 삶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능동적 자비를 실행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 삶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을 하느님 나라 건설에 참여시키셨다.(루가 8, 1-3; 23,27-31; 55 참조) 따라서 빈센트 드뽈은 하느님 사랑의 사업을 위하여 당신의 ‘사도들과 제자들을 모으셨던’ 그리스도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봉사를 위해 남자나 여자, 부자나 가난한 이들, 유식한 이나 무식한이 등 모든 사람을 불러 모았고, 공동체들을 만들었다. 또한 그는 예수께서 공생활을 하실 때 부인들이 각별히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담 드공디, 루이즈 드 마리약, 마가릿 나조, 장 프랑스 드 샹딸 등 많은 여성들을 하느님 사업에 참여시켰다. 특히 그는 협조자 루이즈 드 마리악과 함께 각 사람을 그 사람의 성향에 맞게 양성시켰다. 또한 각 개인의 고유한 인격을 발견해주는 인격교육으로 애덕의 수녀들과 함께 일함으로써 여성들과 일할 줄 아는 사제로서 여성의 지위 향상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이 때 무엇보다도 루이즈 드 마리약은 빈센트 드뽈의 내면속에 있는 ‘좋은 자아’(自我; Anima)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즉 그의 매우 차갑고 거친 성품을 여성적일 만큼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예민함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도왔다. 특히 그와 함께 일을 하면서 그로 하여금 타인의 감정을 읽을 줄 아는 심안(心眼)과 자신의 감정을 부드럽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끔 해줌으로써 ‘인간의 감정’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게 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처럼 엄격하면서도 부드러움이 있는 감성적으로 성숙한 따뜻한 인간관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그 시대의 많은 협조자들 과 그들로 이루어진 단체들을 통하여 “영혼들을 위한 열정”에 그의 전 존재와 그리스도의 인격적 삶으로써 투신하였다.(SV XI, 135) 이것은 인간적인 연민과 사랑으로 가득한 그리스도의 인간 사랑에 대한 열정이 빈센트 드뽈에게 그대로 옮겨져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에 불을 일으키게 하여 평생토록 헌신하게 한 것이 된다. 또한 이것은 빈센트 드뽈이 복음의 정신에 따라 ‘하느님 사랑’을 ‘인간 사랑’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이중 계명을 완성하는 것으로써 그리스도의 인격을 자신의 인격 안에 담는 작업이었다.
3.2.1.2.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의 일과 인간의 일 안에 삶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도 선포하지도 않았다. 그의 유일한 일은 오직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일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의 일이란 바로 하느님의 뜻인 인간의 일에 헌신하는 것이었다. 즉 하느님의 뜻은 인간을 돕고, 치유하고, 해방시키는 하느님의 구원의지로서 인간의 행복이며, 인간과 인류의 구원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느님의 일’과 ‘인간의 일’을 위해 철저히 투신하며 하느님의 뜻을 인간 행동의 최종 규범으로 설정하였다.
빈센트 드뽈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자신의 최고의 규범으로 삼고 그리스도께 집중된 삶을 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이었던 그의 삶에는 몇 가지 두드러진 영성적인 주제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하느님의 뜻’,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 ‘관상과 활동의 조화’, 그리고 ‘하느님 현존 의식’이다. 이러한 영성적 요소들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셨던 삶 속에서처럼 그리스도의 인격을 사는 빈센트 드뽈의 삶 안에서도 깊은 상호 관련성을 지니며 서로 보완하는 영적 요소들로 자리 잡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오직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빈센트 드뽈의 삶 역시 하느님 섭리를 따라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The will of God)을 실천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하느님의 뜻은 빈센트 드뽈에게는 모든 것을 ‘하느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자신의 뜻에 대한 ‘전적인 포기’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한 가장 일차적 요소가 된다. 또한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거룩해질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그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전교회 신부들과 애덕의 딸들에게 “우리는 자신을 하느님께 바쳐야 하고 하느님을 위해 우리 자신을 닮아 없어질 때까지 봉사해야 한다.”(SV Ⅱ, 36)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은 비록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하느님의 뜻이 분명히 나타나기 전에는 아무 것도 결코 결정하려 들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뛰어난 식별력으로 말미암아,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원하시는 부르심의 징표들을 민감하게 알아듣고 응답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가 17세기 프랑스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고, 많은 하느님의 사업을 할 수 있었던 일들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특히 폴빌과 샤티용 레 동브에서 있었던 사건은 하느님이 그에게 원하신 뜻이 바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물적으로 도움을 주며 봉사하는 삶임을 그가 잘 알아들은 경우가 된다. 그리고 그가 하느님의 뜻을 찾는 방법은 언제나 하느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섭리’(Providence)에 대한 신뢰는 그의 영적 삶에 있어서 하느님 뜻의 식별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언제나 아버지의 이끄심에 당신의 삶을 전적으로 의탁하셨고, 또한 우리에게도 어린이의 마음으로 아버지께 신뢰를 두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신 것에 모범을 두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도 이것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시라는 신뢰에 있다.(마태 6,11; 25-34; 10, 28-31; 루가 6,34; 12,22-32; 23,46) 따라서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섭리란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나 사건들 안에서 조차도 항상 하느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하느님의 보호’에 대하여 신뢰를 두는 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은 모든 일에는 하느님 은총의 때가 있기에 앞서 나가거나 과도하게 걱정하지 않기를 권고 하였다. 이러한 하느님의 섭리는 인간을 희망 속에서 안정되게 하며 인간에게 하느님의 협력자로서 생활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된다. 더불어 하느님께 협력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위협이나 시련 중에서도 끊임없는 충실성을 가질 수 있게 하여 하느님 사랑의 증인과 충실한 협조자가 되는 기쁨을 체험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이 그 시대의 어려운 상황들 안에서 하느님 사랑의 증인과 협조자로서 거침없이 충실히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섭리가 자신과 관계되는 모든 것을 돌보아 줄 것이라고 믿는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느님께 신뢰를 둔 그의 삶에 있다. 따라서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섭리는 하느님이 베풀어주시는 은총의 선물로써 ‘하느님의 일’과 ‘인간의 일’을 위해 일하는데 있어서 추진력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빈센트 드뽈이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와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 것은 ‘기도’(Pray)이었다. 특히 이것은 그가 루가복음서 안에서 ‘성부를 향해 기도하시는 그리스도’를 관상한 것에서 비롯된다. 즉 예수께서는 당신의 공생활 중에 가장 중요한 모든 순간에 언제나 기도하셨다.(루가 3,21; 5,16; 6,12; 9,18.29; 10,2; 11,1; 18,1.9; 22,32; 22,41-42;23,46)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이 자신이 행하는 모든 선한 일과 자신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모든 것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 선포를 하실 때 항상 기도 안에서 아버지의 뜻과 말씀에 귀 기울이시며 끊임없이 기도의 삶을 살았다.(루가; 2,49; 3,22; 9,35; 10,21-22; 23,46; 요한 7,29; 33,17; 13,18 참조)
그렇기 때문에 빈센트 드뽈은 ‘기도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완벽하게 닮을 수는 없다 해도 기도생활을 통해서 그분과 일치하려고 노력하였다.( SV XII, 113) 무엇보다도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관상하는 것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의 봉사를 위해 힘을 모으는 삶의 중심이었다. 즉 기도 안에서 그리스도께로 마음을 모아 하느님에 대한 ‘정감적인 사랑’(affective love)을 키워, 이를 통하여 가난한 이들에 대한 ‘실천적인 사랑’(effective love)으로 나아가는 영적생활의 구심력과 원심력의 ‘중심축’이었다. 이것은 후대의 사람들이 ‘관상과 활동’을 조화시켰던 그리스도처럼 빈센트 드뽈을 ‘활동 속의 관상가’로 부르게 된 이유가 된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은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과 ‘자비로운 행위’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이 ‘상호 보완적’인 것임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예를 그는 ‘하느님을 위해서 하느님을 떠남’(leaving God for God)이라는 말로 자주 표현하였다. 따라서 그의 기도 안에서의 생활은 곧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의 생활을 의미한다.(요한15,9) 그리고 이러한 그의 삶은 그로 하여금 매순간 ‘하느님의 현존’(God's presence)속에 생활하는 삶으로 만들어 주었다.
3.3. 예수 그리스도의 덕행들 안에서 빈센트 드뽈의 삶
빈센트 드뽈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사는 방식’이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생애와 사건들 안에서 그리고 공생활 중에 어떠한 삶의 자세로 살았고, 어떻게 사람들을 만났고 섬세하게 대화하며 생활했었는지를 배우는 것이었다.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정성을 기울였는지를 관상함하며, 그분이 이 세상에서 사셨던 삶의 덕행을 ‘그대로 사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삶의 전부였기에, 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삶의 덕행들로 자신의 삶을 입는 것이었다.
3.3.1.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나타나는 덕행들
빈센트 드뽈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의 삶을 자세히 관상하였다. 복음서에 입각하여 그분의 생애에 얽힌 사건들을 바라보는 것 이외에도 그분께서 하신 일련의 말씀과 교훈들을 찾았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 사셨던 삶의 덕목을 자신의 삶과 그의 회원들에게 모범으로 제시하였다. 전교회 회원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선교를 위하여 지니셨던 단순, 겸손, 온유, 고행 그리고 열성이라는 다섯 가지 덕목을 갖출 것을, 첫 하느님 사업의 시작인 애덕회와 사랑의 딸회에는 겸손, 소박, 사랑의 덕목을 살도록 요청하였다.(SV IX, 594-95) 그리고 이것이 회 전체의 영혼의 능력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3.3.1.1. 소 박
빈센트 드뽈이 예수 그리스도 삶의 덕행들 안에서 첫 번째로 택한 것은 소박(Simplicity)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서 매우 진실하고 단순하게 말하고 행동하신 삶의 행위에 기인된다.(요한 3,21; 8,31; 14,16; 18,37)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인 소박은 복음의 핵심 주제로서 예수님이 보여 주신 ‘진리에 대한 헌신’을 의미한다. 진리에 대한 헌신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SVⅠ,144) 꾸미고 과장하며 숨기거나 감추지 않고,(SVⅠ,284; Ⅴ,464) 이중성을 피하며 동기의 순수성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삶의 정신이 된다.(CR Ⅱ, 4; SVⅠ,172) 이는 예수께서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시오.(마태오 5,37; 야고 5,12; 2고린 1,17-20)) 라고 가르치신 말씀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소박은 진리 안에서 진리를 증거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사랑으로 진리를 실천하는 삶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드러내는 투명한 인격이 되는 것을 의미하며 외적으로는 꾸미지 않는 삶의 양식으로 실제로 소박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특히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소박한 삶이란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공동체로써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삶의 양식대로 사는 것에 투신하는 것이 된다.
또한 소박은 한 인간에게 있어 불일치 된 삶의 모습을 실제로 자신이 되어야만 하는 참된 자신의 모습으로 일치시켜 주는 작업으로 통합된 인격체를 추구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격적인 전체성이고, 사람 일생의 다양한 측면들을 통일된 방식으로 결합시키는 능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소박하다는 것은 인간의 충실성과 고결성, 성실성과 투명성을 의미하며, 겸손과 신중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잘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소박한 사람은 ‘통합된 영혼’에 도달하며,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의 전체 안에서 서로 만나는 것이 된다. 그러기에 빈센트 드뽈은 소박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덕목(SVⅠ,284)이요, 자신의 행동 가운데 가장 유념하는 것으로 ‘나의 복음’(SV Ⅸ, 606)이라고 말할 정도로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3.3.1.2. 겸 손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말씀과 모범’(CR Ⅱ, 7)으로 우리에게 가르치신 두 번째 덕목은 겸손(Humility)이다.(마태 20, 28; 마르 9,35; 루가 14,11; 18,14; 22,26-27; 요한 13,12-15; 필립 2, 5-11) 그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의 덕목인 겸손은 모든 선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하느님 사랑의 은총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SVⅠ,182) 그러므로 하느님께 대한 넘치는 신뢰와 함께 우리 자신의 비천함과 허물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또한 겸손은 자발적인 자기비움으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생활을 좋아하며, 다른 이들을 자신보다 더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은 은사에 대한 감사이며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중심적인 태도로써 종의 자세를 포함하고 있다.(마르 9,35; 요한 13,1-15)
따라서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겸손은 우리 자신을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화 되도록 허용하는 마음이 된다. 또한 빈센트 드뽈은 겸손을 모든 ‘복음적 완성의 기초’가 되고 전체 ‘영성 생활의 중심’(CR Ⅱ, 7)이 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빈센트 드뽈이 겸손을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善)의 원천’이라 할 때 그는 복음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 된다.(SV Ⅸ, 674) 그러므로 그는 주님의 말씀인 복음에 매우 충실한 사람이었다.
3.3.1.3. 온 유
빈센트 드뽈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한 세 번째 덕목은 온유(Meekness)이다.(마태 5,5; 11,28-29; 21,5; 루가 4,22; 7, 36-50; 15, 1-7) 복음서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강인함과 온유함을 모두 갖추신 분으로서 온유한 태도로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은 하느님의 자비가 사랑과 온유로 구성되어 있고,(CR Ⅱ, 6) 그 온유가 진리를 향하고 있기에 그리스도의 온유로서 사람들에게 봉사했다.
따라서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온유함이란 ‘분노를 다루는 능력’(SV XII, 186)으로써 자기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 대한 붙임성, 상냥함, 공손함과 차분한 용모로써 사랑이 지배하는 방식(SV XII, 188)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여기에는 용서하는 마음과 용기로 타인의 거칠음의 공격을 참아내는 것도 함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이 폭력을 당하셨을 때, 이 거친 대우에도 선하심으로 대응하셨고 온유함에 머물러 계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빈센트 드뽈은 복음 선포에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의 거칠음을 잘 견디어 내기 위해서는 온유함은 선교사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온유함은 인간의 ‘인격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상냥함과 굳건함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불의를 저지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격적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자신이 설립한 회에 말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인격적인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완만하게 일어나는 것이기에, 유연하고 인내로운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온유에는 항상 단호함과 온유함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빈센트 드뽈은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을 지녔었고, 온유함의 덕행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생활 안에서 온유함을 배웠었다. 그리하여 그의 삶의 말년에는 완벽하리만치 마음속에 온유함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3.3.1.4. 고 행
빈센트 드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행의 모범이시기에,(마태 4,22; 16,24; 20,22; 마르 1,20; 8,34; 루가5,11; 9,23-24; 14,33; 17;25; 24,26) 만약 우리가 그분을 따른다면 우리도 그분의 모범을 따라 고행을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였다. 따라서 그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게 해주는 네 번째 덕목으로 고행(Mortification)을 택하였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이 말하는 고행이란 인간이 지닌 내․외적인 감각 모두와 영혼의 열정을 부정하는 뜻이 포함된 것으로써, 욕망을 이성에 종속시켜 무심(無心)을 만드는 불편심(不偏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된다.(SV Ⅹ, 56) 이러한 고행은 기도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고, 기도에 이르는 길을 돕는 것이 된다.(SV XII, 231) 또한 고행은 더 나은 일을 하기 위한 한 가지 좋은 일을 기꺼이 포기하는 태도로써 무엇보다 ‘자신과 복음’을 위해 필요한 덕이 된다. 특히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고행은 가난한 이들 안에 육화하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방해되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으로, 무엇보다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끝으로 고행의 진정한 목적은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선택하고 인격을 건설하는데 있다. 따라서 고행은 우리 자신의 목적을 의식하고 자신의 유한한 에너지를 집중시켜 그 목적에 자신으로 하여금 충실하게 하는 것이 된다. 특히 그리스도적 삶을 따르는데 다가오는 많은 어려움의 여러 조건들 안에서 복음적인 기쁨 속에 그 어려움들을 잘 받아 안고 살아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함을 의미한다.
3.3.1.5. 열 정
빈센트 드뽈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그분의 마음에 시선을 집중하였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나라 건설과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그의 마음은 언제나 사랑의 불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25,31-36; 요한 3,16; 13,34-35; 1고린 13,13; 로마 13,8; 1요한 3,16; 3;23; 4,7-8) 그래서 그는 다섯 번째 덕목으로 그리스도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추진력인 열정(Zeal)을 선택하였다.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열성은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느끼는 것으로써 그리스도를 전하는 선교를 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덕목이 된다. (SV XII, 307) 즉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있어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정신으로 정감적인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열성은 ‘불붙은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어디에든 가려는 기꺼운 마음이다.(SV XI, 291)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목숨이라도 바치고픈 마음의 의지(SV XII, 204)가 된다.(2고린 5,14) 특히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열성은 하느님에 대한 정감적인 사랑을 이웃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려는 효과적인 사랑으로 뛰어들게 하는 사랑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열성은 주님과 당신 백성을 위한 인간적이고 연민으로 가득한 깊은 사랑일 뿐 아니라 효과적인 노력과 희생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러한 열성은 일시적인 사랑이 아닌 평생토록 그리스도와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일에 투신하게 하는 충실하고 ‘지속적인 사랑’이 된다.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열성은 무엇보다 가난한 이들을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을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은 전도성이 있는 불붙는 사랑으로 다른 이들과 나누고 연대하게끔 하는 개방적으로 ‘열려진 사랑’이 된다. 따라서 열정은 한 인간으로 하여금 꾸준히 그의 자아가 성덕과 인격의 완성을 향해 행보를 계속하게 하는 추진력이 된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은 그의 회에 ‘열정의 불꽃’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권고 하였다.(SV Ⅺ, 135-136)
3.3.1.6. 예수 그리스도의 덕행의 원동력인 사랑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 그 자체이시다. 따라서 그의 모든 삶의 덕행은 바로 사랑 그 자체이신 그분의 인격에 있다. 또한 그분의 인격은 사랑의 원천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에게서 흘러나온다.(출애 34,6; 요한 13,34-35;1요한 4,16)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원동력인 사랑이 그분의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듯이, 빈센트 드뽈이 말하는 사랑 또한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보여주신 사랑에 대한 관상에서 비롯된다.(요한 3,16; 13,34-35; 15,12)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자신을 비워 사람이 되어 오셨고, 그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기까지 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에게 있어서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이 사랑하셨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통하여 새롭게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정신이다. 따라서 사랑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전체의 ‘원동력’이 된다. 그 사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데 필요한 정감적인 동시에 효과적인 사랑이며, 영적인 돌봄과 동시에 육체적인 돌봄을 함께 해주는 것으로 구체화되고 실현된다. 즉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팔의 힘과 이마의 땀방울을 흘리며 어려운 일에 뛰어드는 사랑이다.(SV XI, 40) 그 사랑은 매순간 사건과 각 각의 사람들에게 독창적이고 창조적으로 행해지는 사랑이며,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행하는 충실한 사랑이다. 이는 하느님 사랑이 영원하기 때문에 그 사랑의 덕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것이 되어야 하는 사랑이 된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그 사랑보다 더 엄청나게 더 큰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빈센트 드뽈에게 유일한 사랑으로 하느님의 일과 가난한 이웃에 봉사하게 하는 일을 일치시켜 주는 구심점이었다. 특히 이 사랑은 하느님의 섭리가 이끄시는 대로 그때그때에 자기를 헌신하면서 살아가게 하는 하느님 사명에 대한 열정을 항구하게 지니게 하는 것이 된다.
빈센트 드뽈은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삶의 덕행들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그리고 깊게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분께서 지니셨던 인격과 사랑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갔으며, 그들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섬겼다. 그리하여 빈센트 드뽈은 종종 그의 애덕의 딸들에게 “자매들은 자기 자신의 행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을 수행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병자들을 섬기고, 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함이 흘러넘치고, 귀찮을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를 실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지니며… 모든 행동이 단순한 피조물의 행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입니다.”(Coste Ⅸ, 322이하)라고 말하면서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몸에 지니고 닮기를 요청하였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이었고, 그 사랑은 그의 힘과 비전, 그리고 성숙된 인격적 삶을 위한 조화의 원천이었다.
3.3.2.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양식과 봉헌생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의 생활 방식을 본받고, 하느님 나라에 봉사하게 하려는 것에 있었다. 그리고 특히 정결하고 가난하고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 특유의 ‘생활양식’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드러내고 증거 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분은 그러한 당신의 삶에 일부 사람들을 초대하신다. 그리고 이 초대에 응답한 이들은 그분의 모범과 가르침에 따라서 특별히 ‘정결과 가난과 순명’의 삶을 통하여 모든 덕의 모범이신 그리스도와 복음을 철저히 실천하며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가는 봉헌된 사람들이 된다. 이러한 모범에 따라 빈센트 드뽈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증거를 위하여 하신 ‘생활양식’을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삶의 ‘공격무기’와 ‘방어무기’로 택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정결은 하느님께 대한 갈라지지 않는 마음(1고린 7,32-34)을 표명하는 것으로써 그분의 무한한 사랑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정결한 사랑은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증언하신 사랑으로써, 하느님과 형제자매들에게 완전한 사랑으로 응답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된다. 이에 빈센트 드뽈은 정결을 하느님의 선물로써, 우리 모두를 위해 당신 자신을 주시고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방법으로 여겼다. 따라서 정결은 독신으로 살면서 하느님과 이웃에게 온 정성을 다하고, 우리의 마음을 차별 없이 더욱더 열어 주는 사랑이 된다.(CR IV, 1; C29; 30)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모든 이들이 정결 안에서 성장하기를 바랬다.
예수 그리스도의 청빈은 “부요하셨지만 가난하게 되신”(2고린 8,9) 그리스도의 완전한 자기 봉헌을 모범으로 한다. 그러므로 복음적 청빈의 근본적인 의미는 인간의 진정한 부요가 바로 하느님이심을 증언하는 것이고,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에 있다. 따라서 빈센트 드뽈에게 청빈은 가난하셨고 겸손하셨던 그리스도와 우리를 일치시켜주는 것이 된다. 구체적으로는 가난한 사람들과 삶을 공유하고, 그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지금의 나 자신과 우리가 가진 것을 내어 놓는 삶이된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우리 인생의 일부로써, 우리가 가진 재물을 그들이 처분할 수 있는 것으로까지 여긴다. 그의 이러한 취지는 교회 안에서 새롭게 조명되었는데, 그것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사랑’으로 가장 소외된 사람들과 연대하고 그들처럼 소박한 생활조건에 동참하는 삶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명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을 양식으로 삼으신(요한 4,34참조)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에 있다. 따라서 빈센트 드뽈에게 순명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끊임없이 당신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자신을 맡기셨고 전 생애가 ‘오직 순종뿐’ 이었던 그분처럼 사는 것에 있다. 그러기에 특히 순명은 모든 일들에서 “즉각적으로, 기쁘게, 그리고 끈기 있게”(CR V, 1)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런데 빈센트 드뽈은 그리스도의 복음삼덕의 삶의 양식과 함께 네 번째 서원으로써 ‘항구함’을 더 포함시키고 있다. 이것은 그의 독창적인 것으로 그리스도의 전교 사업이 ‘죽을 때까지’ 지속되어야 하는 것임을 그가 잘 인식한 것에 비롯된다.
봉헌생활이 연약한 인간성 안에 이루신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을 세상에 보여주는 삶일 때, 빈센트 드뽈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양식에서 취한 네 가지 서원의 덕목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뿌리를 둔 것으로 항구함의 서원을 통해 전 생애 동안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그리스도께 더욱더 투신하고 충실성을 다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이 된다. 또한 봉헌생활의 삶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모범과 말씀으로 그분의 사랑을 세상 안에 드러내는 것이라 할 때, 그 증거의 방법은 이웃에 대한 봉사의 삶이다. 즉 그리스도처럼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에 대한 인격적 사랑으로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투신하는 삶이 된다. 이처럼 빈센트 드뽈의 네 가지 서원의 삶 또한 그리스도의 모범과 생활양식을 온전히 실천하는 삶으로써, 특히 이를 통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기꺼이 투신할 준비를 하는 것이 된다. 또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서원을 성취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봉헌생활의 삶이 정화의 여정에 있는 이들이 자신을 성령께 의탁하고, 끊임없이 ‘변모하신 주님’의 모습(마태 17,2)을 관상하며 주님처럼 ‘변모된 존재’가 되도록 성덕을 추구해야 하는 것에 있다. 또한 봉헌생활의 삶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자신의 삶을 반영시켜 완성시키는 것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온전히 봉헌해야하며, 그리스도께서 가셨던 곳에 가서 그분께서 하셨던 일을 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삶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격의 수련과 성숙된 인간성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빈센트 드뽈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를 위한 네 가지 서원의 삶은 그리스도와 복음에 충실한 삶으로써 한 인간을 성숙된 그리스도의 인격체로 성장을 도와주는 것이 된다.
한편 봉헌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독신생활에서 오는 어려움들 안에서 균형 잡힌 인격으로 성숙되기 위해서는 많은 수련이 요구된다. 특히 하느님과 인격적인 체험인 기도, 일의 만족, 공동체와의 우정, 정직한 대화와 균형 잡힌 생활방식, 인격도야와 관계의 신중성 등을 필요로 한다. 또한 자신을 희생하려는 최선의 노력, 내적 진리와 잘 정돈된 자유의 상징인 겸덕, 용기와 절제, 지혜와 정의,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 충실성과 성실성, 활동생활과 관상생활의 적절한 조화, 복음적 자유에 힘이 되는 현세 사물을 끊는 초연한 마음, 대인 관계에 있어서 필요한 마음의 명랑과 안정성 등이 요구된다.
그렇지만 만약 봉헌된 이들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묵상을 한다면 많은 힘을 얻을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인격적 관계를 통하여 ‘관대한 사랑’으로 사람들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긍심과 책임감을 지닌 성숙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 인격을 성숙시키는 지속적인 양성과 함께 ‘그리스도께 대한 새로움의 사랑’을 자신의 삶 안에서 부단히 일깨워 나아간다면 성숙된 그리스도의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빈센트 드뽈의 영성에서처럼 ‘가난한 이들’과 인격적인 만남과 연대는 봉헌된 이들로 하여금 영성과 삶을 통합시켜주는 중추적인 요소가 되어 하느님의 사랑으로 나아가게 하여줄 것이다. 그러므로 봉헌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양식에 그 원천을 두고 있는 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 안에서 조명되어야 하는 삶이 된다.
3.3.3.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랑의 관계
사랑은 인간의 모든 활동과 모든 존재의 기초와 핵심으로써 어떤 고유의 존재를 자발적이고 창조적으로 보다 낮은 가치로부터 보다 높은 가치로 나아가게 하는 정신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인격은 오직 하나의 고유한 실체로써 개방성을 지니며 한 인간의 단계에서 그 스스로 자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관계 안에서 사랑함이란 인간에게 열려진 가장 심오한 작용으로써 인간을 전 인격체로 형성시키는 것이 된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인성을 취하여 이 세상에 온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 그 자체로서 구체적으로 인간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분이시다. 이것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실 정도로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가 더욱 밀접해지고 넓어졌다는 의미와 더불어 그리스도의 육화와 파스카 사랑으로 인하여 그 만큼 인간의 품위와 존엄성이 격상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랑이 ‘가치를 고양하는 운동’이라 할 때,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당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잃었던 사람들 바로 ‘가난한 사람들’, ‘세리들과 창녀들’,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어린이들’ 등을 인격적으로 보다 높은 가치에로 고양시키며, 또한 인간을 신화(divinization)시키는 것이 된다. 따라서 루가 복음에서(4,18),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하신 그 일에 동참한 빈센트 드뽈의 여정과 또한 그가 헌신한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의 삶은 가난한 이들의 인격을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고양시킨 것이 된다.
또한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가치 실현을 위해 사랑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가치 가능성을 위한 사랑이었다. 따라서 참된 사랑은 인격이 미성숙한 사람에게도 인격 성장을 위한 가치가 그 사람의 인격 안에 있는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의 사랑은 조금의 차별도, 어떤 예외도 없는 사랑으로써 모든 사람들의 인격을 격상시키는 것이 된다. 따라서 처음엔 무척 세속적인 사람으로서 아주 서서히 그리스도께로 향한 변화를 체험한 빈센트 드뽈과 그가 사랑하였던 병든 이들, 도형수들, 버려진 아이들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차별 없는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행업에 의해 각자의 인격이 성숙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삶 안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함’에 의해서 인격이 고유하게 형성되지만, 또한 사랑의 작용을 수행하는 것은 바로 ‘인격의 활동’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사랑자체 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말씀과 업적 그 자체로 참된 인격이시다. 그리고 이렇게 성숙된 인격을 지니신 그리스도이셨기에 인간을 참되게 사랑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격은 서로 밀접한 상호관계에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사랑의 활동으로 인하여 높은 가치를 실현하는 인격은 낮은 가치를 실현하는 인격보다 더 고귀하고 고상함은 틀림없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 말은 선(善)이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각자 개인이 지향하는 가치 생활을 통해서 사람들은 그만의 고유한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빈센트 드뽈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다가서는데 있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의 인격을 휼륭히 형성시키는 요소가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된 그의 인격은 더욱더 가난한 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베풀 수 있었던 것이 된다. 따라서 사랑은 인간이 그가 가지고 있는 가치들 중 보다 높은 가치들을 실현하도록 하거나 자신 스스로 최고의 존재가 되도록 해주는 것이 된다. 또한 그것은 한 인간으로 하여금 가장 휼륭한 삶을 살고 가장 휼륭한 인격자가 되게 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균형 잡힌 사랑과 인격의 삶 안에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 즉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그분의 비범한 수용성,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자유롭게 책임을 지는 책임성, 권위로 진리를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권위를 세우는 자유와 창조성, 차별 없는 사랑과 무한한 개방성, 그리고 빼어난 진실성을 지닌 인간성 등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완성된 인격을 지닌 그분의 인간성에 감탄하게 된다. 따라서 완성된 그리스도의 인격의 근원은 바로 사랑자체이신 그분의 위격에 있고, 또한 사랑을 성장시키고 실현시키는 그분의 인격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랑함으로써 높은 감정을 개방하고 사랑이라는 높은 가치를 추구하며, 그 삶을 지속적으로 사는 가운데 그의 인격을 그리스도처럼 고양하게 되고 성숙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와 빈센트 드뽈의 인격과 사랑 안에서 사랑이 인격을 휼륭히 성숙시키게 하는 정신적 태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인격이 잘 형성되어 있으면 사랑의 정신적 태도를 잘 간직하여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휼륭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랑 안에서 인격적 가치는 사랑하고 사랑 받는 자로서, 그리고 가치들을 일으키고 다른 사람들을 인간의 진정한 삶과 자유에로 부르는 것으로써, 자기를 초월하는 사람이 가지는 가치가 된다. 또한 그것은 그들의 환경 안에서 가치와 의미를 실현할 수 있는 창조적인 인간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을 행함으로써 다른 이들도 그렇게 행하라고 초대하고 고무한다. 따라서 인간의 인격적 가치는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성적이 되고, 이성적이며, 책임감을 가지라는 우리 안에 심어진 내적 요구에 응답하는 인간 안에서 실현된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준 인격의 가치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인격을 그대로 살았던 빈센트 드뽈이 우리들에게 초대하는 ‘인격적 가치의 삶’이 된다.
결 론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그분의 말씀과 업적 그리고 그분 존재 자체에 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인격은 육화와 파스카의 신비 안에서 절정을 이루며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그리스도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그분 안에 인간에 대한 ‘연민과 열정’을 불러일으켜 인간의 신비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삶과 사명은 오직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는 것이고, 그 하느님 뜻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인간의 행복과 구원이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존재 그 자체로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의 육화이며, 인간의 구원자로서 그 시대에 가장 소외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영적, 육적으로 돌보며, 구원의 길로 이끄는 것에 있었다.
빈센트 드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마음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의 신비와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다. 특히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파스카의 신비 안에서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담고 있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보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삶 속으로 투신하였다. 따라서 빈센트 드뽈의 삶은 하느님 사랑의 결정체인 인간에 집중되었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처럼 그 시대에 가장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인간의 고유한 품위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었다. 즉 그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과 동일시하였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이웃사랑을 통하여 하느님 사랑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빈센트 드뽈에게 그리스도의 삶으로의 초대가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혼란한 시대에 살아야 했던 그는 자신의 온 삶을 시대의 정신에 내어맡긴 사람으로 아주 서서히 하느님께로 향한 변화를 체험하였다. 여러 차례에 걸친 회심의 과정과 자신의 모든 인간적인 계획들의 철저한 포기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학문과 성덕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그 시대의 위대한 영성가들인 베륄,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앙드레 듀발등과 만나 영적 친교를 통하여 학문과 성덕을 닦았다. 또한 하느님 사업을 시작하면서 공디 가문의 친구들이나 친척들, 백작 부인들 등 사회적으로 상당히 유력한 사람들과 친분관계도 가졌으며, 주님의 벗들인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소박한 삶을 나누었다. 특히 루이즈 드 마리약은 빈센트의 영적 동반자로서 하느님 사업의 유능한 협조자 일뿐 아니라 빈센트 드뽈로 하여금 균형 잡힌 인격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난한 이들을 주님으로 돌보는 헌신적인 봉사의 삶은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인격에 다가서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과 추진력이었다. 따라서 빈센트 드뽈은 하느님의 은총과 그분의 섭리 안에 만난 가난한 사람들과 많은 그의 협조자들의 도움에 힘입어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개방성과 수용성, 자유와 창조성, 책임성과 자기 수용성으로 채워진 균형잡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매순간의 삶을 ‘하느님 섭리’에 신뢰하며 ‘기도’ 안에 힘을 모아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인격적으로 응답하는 영적 여정에 있다. 그 안에서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깊어져 갔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차적으로 그의 영혼과 마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빈센트 드뽈이 중년이 되었을 때, 부족한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침묵과 겸손, 기도와 선행으로 일관된 생활로 말미암아 높은 성덕에 이르렀다. 또한 창의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많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성숙된 인격을 지닐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가 노년이 되었을 때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존경과 사랑”을 아낌없이 주었기에, 애덕은 이제 그의 것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빈센트 드뽈의 삶은 그리스도의 생활양식과 그분의 인격의 덕목에 기초하여 세상 안에 자비로운 사랑을 육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인격을 자신의 삶으로 산 것에 있다. 그러므로 빈센트 드뽈의 삶의 여정은 혼탁한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던져 비참함 가운데서도 인간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을 지닌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보여주는 삶이 된다. 또한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 사랑’과 인간을 통한 ‘하느님 사랑’ 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고, 자신도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자신 안에 완성시키는 것이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인격적 완성은 예수의 사상과 행동방식과 가르침의 깊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성부께 대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응답에 참여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부러진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이사 62,3)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모든 인간의 참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자신의 본질적인 인간성을 회복하며 그리스도의 인격체로 성숙되기를 노력하고 있다. 또한 그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친히 사람이 되어 오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그리스도의 간절한 소망이 된다. 그러므로 이 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삶 속으로 우리 모두를 초대하시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는 쉼 없이 참 진리와 사랑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의 여정을 계속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길은 반드시 우리를 참된 행복과 구원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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