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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나타난 사막의 의미와 수도생활에 대한 고찰 III

마리아 아나빔 2010. 8. 3. 13:27

 

Ⅳ. 수도생활 안에서의 사막의 영성

   

 

  

  

4세기 초부터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따르기 위하여 사막에서 시작된 수도생활은 삶의 양식이 변화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때의 특별한 “고정된 양식”을 바탕으로 하여 그 정신을 교회 안에서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다. 특별히 복음적 권고의 선서를 통한 축성생활은 성령의 감도 아래 그리스도를 더욱더 가까이 따르며,느님의 영광과 교회 건설 그리고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새로운 특별한 명의로 헌신하여 하느님의 나라에 봉사함으로써 애덕의 완성을 추구하고 교회 안에서 빛나는 생명과 성덕의 표징이 되어 천상적 영광을 예고하려고 최상으로 사랑하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되는 고정된 생활형식을 따라서 살아가고 있다고 수가 있다.

    이러한 오늘날의 수도생활 안에서도 사막은 여전히 서로 상반된 개념으로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도생활 안에서의 사막은 부정적이기 보다 긍정적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수도자는 사막의 체험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고, 자신을 정화하게 되는데 이 사막의 체험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럼으로 수도생활 안에서 만나게 되는 사막의 체험들이 각 수도자의 수도삶을 정화시켜주고 더욱더 수도삶의 본질에 충실하게 살도록 작용하고 있기에 수도생활 안에서 사막의 역할은 크다고 할 수 있다.

 

 

4.1. 관상 속에서의 활동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예수님이 선택하신 삶을 본받고자, 특히 그분을 더욱더 철저히 그리고 가까이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수도삶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수도자들이 복음적 권고를 지키는 목적은 예수님을 더욱 가까이 따르는 위한 것이며, 이것이 수도생활의 본질이다. 그런데 이러한 삶을 시작한 첫 사람들은 하느님 사랑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람들이 사는 세속을 떠나 완덕을 추구하기 위하여 스스로 고행과 기도 및 시련의 장소인 광야로 나아갔었다.(성 안또니오,250-356) 그리하여 점차적으로 광야의 군데 군데에 ‘은수자들의 마을’이 생겨났으며, 그후 300년경 수도승 운동의 기원이 되고, 관상 수도생활의 시원이 된다. 이것은 조직적 수도생활의 첫 번째 형태로써 그 조직을 이루는 요소로 창립자에 의하여 쓰여진 규칙, 과 독거로써 두가지 경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첫째는 은둔생활을 강조하는 것으로, 둘째는 공생생활(Cenobitism)로써 아빠스의 권위 아래서 공동기도, 거룩한 독서(Lection Divina), 노동을 실천하면서 주님을 따르는 삶이다. 이러한 생활 양식은 동양에서 서방으로 전해지며 동방수도승의 시조는 성안토니오(250-356)와 처음으로 수도생활의 규칙을 제정하여 은둔생활에서 공동수도생활(koinonia)을 시작한 빠코미오(288-346)와 바실리오(329-379)가 있다. 빠코미오는 형제들 간의 일상 교제로 인해 실청해야 할 덕목 때문에 공동수도생활을 독수수도생활보다 더 완벽한 것으로 보았으며, 바실리오는 인간의 사회성을 수도생활의 완성으로 보며, 은둔생활의 엄격주의를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수행의 영적차원을 중시하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애덕이 수도생활의 기반으로 생각하였다.

반면 서방에서는 성 아우구스티노(354-430)와 성 베네딕도(480-547)가 있으며, 성아우구스

    티노는 공동생활과 형제적 사랑의 실천을 중시하며 애덕생활을 수도생활의 첫째가는 주제로 삶았으며, 성베네딕도는 조직체를 이루며 정주하여 사는 수도공동체을 중시하였는데 즉, 아빠스를 중심으로 한 가족적 공동체, 전례 그리고 정주를 수도생활의 중심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성 베네딕도는 수도자를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기도 했는데, 수도원 안에서 살며 규칙과 아빠스 밑에서 순종하며 분투하는 공생수도자(coenobita), 수도원 안에서 오랜 훈련을 받고 나서 광야로 나아가 단독으로 싸움을 하면 살수 있는 은둔수도자(anachoreta), 진정한 수도자의 전통을 가르치던 공생수도자들의 모임에서 탈퇴하여 규율없는 생활을 하는 작당수도자(sarabita), 그리고 집 없이 방랑하는 수도승들인 방랑수도자(gyrovagus)로 구분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공생수도자(coenobita)를 가장 훌륭하게 여겼다.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베네딕도의 공통점은 둘 다 수도회 규칙서를 썼는데, 아우구스티노의 규칙서는 활동수도회에 여향을 주었고, 베네딕도의 규칙서는 관상수도회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따르기 위한 동기에서 시작된 수도생활은 사막에서 시작되었었고, 또한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추구하려는 사막의 정신은 고정된 양식을 취하여 주님을 가까이 따르는 관상수도회를 만들었으며, 관상적 수도생활은 관상적 삶과 기도 안에서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였고, 지금도 관 상속의 활동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

 

4.2. 관상과 활동사이

 

    수도생활은 1200년 이후 교회 안에서 새로운 수도생활 양식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성 프란치스코(1182-1226)와 성 도미니코(1170-1221)이다. 두 성인이 세운 수도회는 교회로부터 구걸하는 허락을 받아서 탁발수도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프란치스코와 도미니코는 차이가 있는데, 프란치스코는 실제로 교회를 위하여 많은 봉사를 했지만 봉사가 목적이 아니며, 집중적으로 하느님을 찾는 생활, 예수님을 모방하는 수도생활이 목표였다. 반면 도미니코는 분명한 목적을 위하여 회원들을 모집하고, 처음으로 일정한 활동들을 위하여 수도회를 설립했는데, 즉, 회원들은 설교자로써 이단자들을 회두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그래서 도미니코회는 처음부터 성직자들로 구성되었다. 조직도 수도원마다 독립되는 수도회와 달리 총장 아래 여러 지방의 작은 공동체를 모아 관구로 두고 총장이 회 전체를 다스리는 중앙집권적 제도였다.

    하지만 이들 탁발수도회의 뚜렷한 공동적인 특징은 사도적 생활이다. 그 당시 사도적 생활이라 하면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전의 수도자들은 울타리를 떠나지 않고 복음을 전하며 세상이 그리스도화 되도록 일하였다. 그러나 봉건체제가 쇠퇴함에 따라 사회가 크게 변천하여 상업과 공업에 발전하였고, 이에 따라 새 도시나 길드 조합들이 형성되어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와 생산과 상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새 시민” 의식 가운데서 활발하게 움직이게 되는 사람들의 신앙심에도 필연적으로 변화가 뒤따랐으며, 실생활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주관적인 신앙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크리스찬 이상을 증거하는 일이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있어서도 새로운 선교방법이 필요했다. 즉 사람들이 사는 가운데로 가서 그들의 생활 리듬에 맞추고 그들이 이해 할 수 있는 복음을 선포해야만 했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수도원을 중심으로 기도하고 일하면서 이민족들의 신앙을 키워주고 고대의 문화를 보존하여 전수해주는 구심력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나서는 원심력으로 전환된 것이다. 성령의 인도에 순응하여 시대의 징표를 올바르게 해석한 결과 “세상에 나아가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이 수도생활의 “새로운 요소”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주목을 끄는 것이었고, 수도생활의 변화였다. 이제 수도생활은 사람들과 세속을 떠났던 은둔적인 관상의 생활에서 세상 안에서 관상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수도생활의 사막의 장소와 정신이 사람들이 사는 세상 으로 다시 들어오려고 한거시다.

 

4.3. 활동속의 관상

 

    16세기에 접어들어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은 또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는데 그 주인공은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1491-1556)이다. 이냐시오가 추구한 새로운 수도회의 모형은 활도 안에서의 관상으로써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활동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근대의 수도회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고대 교회는 비교적 자립하는 지역 교회의 연합체였다. 그 후 중세기에는 점차로 로마의 주교가 군주처럼 모든 교회를 다스리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먼저 교회의 통치를 거부하는 동방 교회의 대다수가 독립해 나가고 그 다음 서유럽의 프로테스탄트가 분리되었다. 이런 두 번의 분열을 뒤 가톨릭교회는 상당히 획일적인 중앙집권적인 조직, 로마주교가 교황으로 다스리는 통일된 집단으로 되었다.

    이냐시오는 이런 교회를 위한 봉사단을 구상했는데 이것이 바로 근대 수도회의 시작인 예수회가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과 목적에서 설립되었기에 교회의 지시를 중요시 한 나머지 전통적인 수도회의 세 가지의 서원에다 교황에 대한 순종한다는 네 번째 서원을 발한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수도회는 세상을 떠났던 수도자들과 달리 임금으로 모시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세상을 정복하려 했다. 즉 광야가 아니라 세상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서 옛 수도자들의 공동생활 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효과적인 활동을 위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 전통적인 요소 즉 수도복, 성무일도의 공동낭송 같은 것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이런 예수회를 본보기로 하여 근대사회의 구체적인 필요성에 따라 병원, 교육, 전교 등 일정한 봉사를 목적으로 하는 많은 수도회들이 창설된다. 여성의 경우는 17세기까지 교회에서 외부 활동을 허락하지 않고 봉쇄구역내의 수도생활만을 허락하였는데 1633년 성 빈센트 드뽈(1581-1660)과 성녀 루이즈 드 마리악이 공동으로 설립한 자선사업을 하는 여성들의 모임이 처음으로 수도회 인가를 받아 첫 활동수도회로써 세워졌으며 뒤에 수없이 많은 여자 활동 수도회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런 수도회들은 가끔 아우구스티노나 베네딕도, 프라치스코의 규칙과 같은     고전적인 수도회칙을 채택하면서 그 활동과 상황에 맞는 회헌을 첨가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사막으로 떠났고, 또한 그분을 더 구체적으로 따르기 위하여 생겨났던 수도생활은 이제 사막에서 다시 세상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으며, 이제 세상이 광야가 된다. 이제 수도생활은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많은 활동들을 통하여 수도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그 활동들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난다. 그러므로 세속보다 더 어려운 조건인 고행과 시련과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사막으로 떠났던 첫 번째 수도자들이 살았던 광야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세상이 어쯤 지리적 장소의 사막이 주는 조건보다 더 어려움을 가져다주는 시련과 유혹의 장소, 도시속의 광야인지도 모른다.

 

4.4. 20세기의 수도생활

 

    20세기를 맞이하게 된 교회는 정치적 사회적인 세상의 변화와 함께 교회 내부도 이전과는 아주 달라졌다. 그 첫 번째 표시는 바로 교황의 영토 상실이었다. 781년에 시작된 교황령이 약 천년 뒤인 1870년에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됨으로써 끝이 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교회는 세속에서 일어나는 반교회적인 경향에 대응하기 시작하고 더욱 영적인 교회를 표방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평한다. 또 다른 하나의 변화는 교황령의 영지가 점점 작아지면서 교황권의 권위 회복과 교회가 로마 중심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중앙집권은 교황들이 여러 나라들과 조약을 맺게 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재자들의 국가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교회를 방어하고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20세기에 교회는 내외적으로 커다란 시련을 겪게 된다. 교리와 성서에 위협을 가져온 모더니즘과 사회와 인간생활의 비 그리스도교화 그리고 교회와 사회의 세속화 등이 가속되고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관심이 교회에서 멀어져 가는 어려운 상황이 생겨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 안에서 복음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필요하였고 이에 따라 노동하는 사제들과 가난한 이들 속에서 말없이 살아가는 수도자, 그리고 생업에 종사하면서 복음을 실현하는 평신도 단체들이 생겨났다. 세상이 급변하여 생겨나는 필요에 부응하는 수도생활의 변화가 20세기에 생겨났다.

 

4.4.1. 세상 안에서의 사막

    20세기에 들어와서 또 하나 수도생활의 새로운 형태는 바로 평신도 재속단체이다. 아주 다양하고 많은 재속단체가 나타나서 세속에서 직업을 가지고 생업에 열중하면서 복음적인 삶을 추구하고 세상을 변모시킨다는 것이다. 재속회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세속에 살면서 애덕의 완성을 향하여 노력하고 세상의 성화를 위하여 특히 그 안에서부터 기여하기를 힘쓰는 축성생활회이다.(교회법 710) 교회법에서는 수도회와 재속회를 구별한다. 둘 다 축성생활에 속하는 것으로 복음적 권고를 지키는 것이 그 공통점이지만, 수도자들은 공동생활을 하면서 세속으로부터 격리되는 것이 다른 점이다. 그와 달리 재속회는 사회 한가운데서 산다. 그러나 재속회원들에게 수도복과 봉쇄구역이 없을 뿐 세속과의 거리는 상대적이다. 즉 수도복과 봉쇄 구역이 없는 수도자이다.

 

4.4.2. 현대 사막속의 활동

    20세기의 새로운 형태의 수도생활 형태는 바로 샤를 드 푸코(Foucauid, 1858-1916)의 정신에 따라 출발했다. 그의 삶의 여정은 간단하지가 않았다. 그는 어릴 때 양친을 여의고 신앙을 잃었다. 장교가가 되어 북아프리카의 진압군 부대로 아프리카에 들어가 이슬람 신자들의 열심한 생활을 보았다. 그때부터 주님을 위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성지순례를 하던 중 나자렛에 머물면서 그의 영성이 준비된다. 예수는 알려지지 않은 나자렛 이라는 마을에 머물면서 비처난 목수로서 오랜 기간을 묵묵히 묶여 사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하라 사막의 베니로의 종교에 관한 대화 없이 형제적 삶을 살다가 피살된다. 생전에 이 정신대로 사는 공동체를 구상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그가 죽은 뒤에 추종자들이 나타났다.

     푸코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별개의 세상이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은 세상에서 그냥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형태를 취한다. 주변의 생활과 같은 수준의 삶을 살고 주변의 생업에 종사하며 살면서 복음 전파를 직접적으로는 하지 않지 않는 것이었다.

곧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조금도 차별 없이 먹고 살아가면서 가난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적인 삶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간난 속에서 주님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수도생활의 발전사를 보면 처음 시작은 은둔이었다. 그러나 점차로 사회로 돌아온다. 초대교회와 3세기 이전의 금욕자와 동정녀들은 완전히 사회 안에서 생활했다. 그런데 300년경부터 본래의 의미에서의 수도생활이 시작되어 사회를 철저히 떠난 은둔생활을 했다. 그 후 수도자들의 시선이 사회로 돌려지면서 중세기의 탁발수도회들은 복음 선포를 목적으로 사목을 했다. 그들은 복음 선포를 불가결의 사명으로 보았다. 그 후 16세기의 이냐시오는 예수님의 군대로 인간 사회를 정복하는 수도회를 설립한다. 대부분의 수도회는 세상 안에서 활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대의 재속회는 사회를 어떤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사회의 한 부분으로 여긴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복음적 권고를 지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재속회는 초대교회의 동정녀나 금욕자와 같은 위치를 갖는다. 역사가 한바퀴 돌아서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과거의 전통적 수도생활과 수도자상이 없어진 것도 아니며 앞으로도 다양한 수도생활의 양식이 공존할 것으로 보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