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오경 입문 I
I. 명칭
1. 모세오경 이란?
모세오경의 히브리어 명칭은 ‘토라’이다. 이는 히브리 동사 ‘야라’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던지다’, ‘쏘다’, 적중시키다‘ 등 주로 동작을 표현하는데 사용된 말이었다. 그러므로 무엇을 던지고 쏘려면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데 이렇게 ‘방향제시’와 관련된 의미가 점차 ‘길을 가리키다’, ‘지시하다’, ‘지도하다’ 등의 의미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어의확장을 통해 ‘토라’는 삶 전반에 대한 하느님의 ‘방향제시’, ‘지침’, ‘가르침’, ‘규범’ 등을 의미하는 전문용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신약 성경과 그리스어 사용권에서는 이 ‘토라’를 ‘노모스(nomos)', 즉 ‘법률’, ‘규정’으로 번역하여 사용하였다. 이는 모세오경의 많은 부분이 ‘율법’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 그리스어 용어는 모세오경 전체의 내용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는 협소한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세오경은 ‘율법조항’만으로 구성된 책이 아니라, 창세기와 탈출기 전반부에서 잘 제시하고 있듯이 ‘신화’, ‘민담’ 등 다른 문학양식도 대거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세오경에 대한 또 다른 그리스어 명칭은 ‘펜타튜코스(Pentateuchos)’이다. 이는 특별히 알렉산드리아 학파 교부들에 의해 주로 사용된 명칭으로 ‘다섯 개의 그릇(보관된 책)’,‘다섯 상자(다섯개의 두루마리를 담는 상자)’를 ‘오경’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오경은 다섯 권의 책을 가리키는데, 그렇다고 다섯 권의 책 각각이 아니라 전체를 가리키며, 법적인 의미에 한정되지 않고, 각각의 고유한 문화, 역사적, 사회적 구조를 지닌 법전들 그리고 이 법전들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이루기 위하여 하신 일들을 하나로 이어 전하는 큰 설화 부분들과 함께 이스라엘 민족의 선택과 구원의 역사를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을 의미한다. 그리고 오경은 이스라엘의 여러 신앙 고백들이 수세기를 거치면서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정착된 전서인 것이다. 또한 문체들의 특수성들은 거기서 말하는 내용이달라서만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생활화하는 방식에서도 서로 다르다는 사실로써 설명된다.
2. 모세오경의 각 권의 제목
모세오경 각 권은 명칭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 문화권에서는 주로 그 작품에 등장하는 첫 번째 단어를 제목으로 삼은 반면, 그리스어 문화권에서는 내용상 부각되거나 강조된 단어를 선정하여 제목으로 삼았다. 모세오경 각 권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제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히브리어 명칭 그리스어 명칭
창세기 베레쉬트(한 처음에) 게네시스(창세기)
탈출기 붸엘레 쉐뫁(이름들은 다음과 같다) 엑소도스(탈출, 떠나옴)
레위기 봐이크라(그가 부르셨다.) 레위티콘(레위들의)
민수기 봐예다바르(그가 말씀하셨다) 아리스모이(숫자들)
신명기 엘레핟데바림(말씀들은 다음과 같다) 듀테로노미온(두 번째 법)
3. 모세오경이 제시하는 ‘법’ 개념
‘토라’라고 불리는 모세오경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도리와 가르침을 제시하는 책으로서, 사람을 생명으로 이끌기 위한 일종의 ‘지침서’ 라고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토라를 ‘율법서’로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는 여기서 의미하는 ‘법’ 이 가리키는 진정한 의미는 법적인 측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법적인 차원을 넘어 인간의 삶 전반에 대한 기본도리와 지침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모세오경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법 개념이다.
오경의 많은 설화들은 율법(형법, 혼인법, 족보등) 을 돋보이게 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본문의 분석 작업은 그 자체만으로는 전체의 전망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매우 다양한 유형들은 일정한 의도와 의미와 함께 배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율법 따로, 설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동시에 역사이다. 역사와 율법은 선택된 민족의 것이고, 이 민족의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신 것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전통은 설화적인 면에 더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결국 오경 안에서 하느님에 의한 인류 구원의 역사를 보게 한다.
II. 전반적인 내용과 구성
1. 내용과 구성
모세오경의 내용을 짧게 정리하면 ‘천지창조부터 모세가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죽는 부분’까지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모세오경에서 강조되고 있는 주제는 ‘두 가지 창조’라 할 수 있는데 하나는 ‘세상의 창조’ 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창조’이다. 하느님께서 전 세계와 거기 사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시고(창세기), 구원의 중재자로서 활동 했던 모세를 통해, 흩어져 있던 민족을 한데 모아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새로이 형성하시는 (탈출기-신명기) 두 가지 창조이야기가 모세오경의 주된 줄거리로 전개된다.
이러한 내용들은 모두 하나의 이야기처럼 연결되어 다음의 구조로 전개 된다.
서 론 본 론 결 론
(창세기) (이집트 탈출 이야기: (모세의 연설: 신명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이렇게 각 권이 가지는 뚜렷한 연속성 때문에 학계는 토라를 원래 ‘한 권의 책’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모세오경을 구성하는 전체 내용은 ‘땅’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신명기 26장 5-9절(이스라엘이 예배드릴 때 낭송하고 고백하던 전례 고백문의 하나로 작은 역사적 신앙 고백문)과 창세기 12장 1-6 안에서도 증명되듯이 모세오경은 ‘땅 이야기’와 그 땅에서 살게 된 ‘민족 형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 관심을 가지고 가장 주목했던 이야기가 바로 ‘땅’ 에 대한 것이었음을 증명해 준다. 그러므로 모세오경 전체가 제시하는 커다란 신학적 주제는 선택받은 이스라엘이 땅을 매체로 하느님과의 계약을 어떻게 성취해 가는지,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으로 이스라엘을 어떻게 손수 이끄시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역기서 특별히 강조되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은 ‘성조들의 방랑- 이집트로 내려감- 노예로 있던 그들을 하느님께서 해방하심’이다.
2. 사경설, 육경설, 구경설에 대하여
원래 한 권의 책이었던 토라가 언제부터 ‘오경’으로 구분되었는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할 수 없다. 단지 칠십인역(LXX) 이 이미 이 구분에 따라 번역되었음을 전제할 때, 적어도 칠십인역이 완성되기 이전에는 이미 그 구분이 확정되어 전해진 듯하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보다 논쟁적 주제로 부각되어 온 내용은 원래 한권이었던 토라의 ‘범위’에 대한 것이었다. 곧 ‘토라’를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이, 창세기에서 신명기에 이르는 범위로 제한할 것이냐 아니면 이와는 다른 범위로 볼 것이냐가 문제시된 것인데, 이와 관련하여 나온 가설이 ‘사경설’:(신명기 제외), ‘육경설’:(여호수아까지 포함) , 구경설’: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상, 하권, 열왕기 상.하권포함) 이다.
- 사경설: 신명기와 그 다음에 이어지는 네 권의 성경(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이 서로 비슷한 신학과 문체로 되어 있어서, 신명기를 ‘토라’에 딸린 부분으로 간주하지 말고 ‘신명기계 역사서’라는 범부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ex) 마틴 노트(M. Noth): 전승사적 연구들에서
- 육경설:‘땅에 대한 이야기’가 토라의 핵심 주제라는 관점을 주지한다면 당연히 땅을 차지하고 이를 분배하는 내용이 등장하는 여호수아기까지를 토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육경설 내용의 골자이다. 신명기까지로 토라를 제한하게 되면, 땅을 눈앞에 두고 모든 것이 끝나는 ‘미완성의 드라마’가 제시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땅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시작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스켐:창세 12,6)에서 땅에 대한 주제가 마무리 되는 여호수아의 이야기(여호 24,1-28)민족의 대표들을 모아 하느님만을 신으로 섬기며 살겠다는 조약을 맺고 의식을 거행한 곳)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ex) 게르하르트 폰 라트(G. von Rad): 구약신학에서
- 구경설: ‘구경설’ 역시 ‘땅’ 이라는 주제가 모세오경 전체의 핵심모티프이다. 그러나 구경설은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면, 땅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땅을 차지하는 이야기(창세기에서 여호수아기까지)와 땅을 얻게 된 그들이 다시 땅을 잃게 된 이야기(여호수아에서 열왕기 상. 하권까지) 전체가 모두 토라의 내용이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구경설은 소위 신명기계 역사서라고도 불리는데 네권의 책(여호수아기,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 역시 토라의 범주에 포함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것은 모세오경과 여호수아기- 열왕기가 내용상의 연관성을 이루고 있다고 보고 이렇게 함께 연결되어 있던 것이 후대에 각각의 책으로 나뉘었다고 간주한다.
ex) 구스타브 횔셔(G.holscher): 이스라엘 역사 서술에서
3. 그렇다면 왜 ‘오경’인가?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는 토라를 ‘오경’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사실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1) 내용적 근거
‘ 두 번째 법’ 이라는 그리스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신명기는 ‘첫 번째 법’을 소개하고 있는 탈출기-민수기의 결론에 해당하기에 ‘첫 번째 법’과의 연속성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시나이에서 야훼 하느님과 맺은 계약(탈출 20장 이하)과 이 계약을 통해 제시한 법을 첫 번째 법이라고 이해한다면 신명기는 이 법을 다시 재해석했다는 의미에서 두 번째 법을 소개한 탈출기-민수기 부분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음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2) 정치적 배경
토라가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 공신력을 띠고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에즈라 시대였다.(느헤 8장 참조). 토라는 이 시기가 가지고 있던 사회적 현안에 대하여 제시된 일종의 실정법이자 사회적 규정이었다.
그런데 당시 유다인들은 페르시아로부터 귀환하기는 했지만 정치적으로 완전한 독립을 허가받은 상태는 아니었기에 주거 지역을 요르단 서쪽만으로 제한당해야 했고, 그랬던 그들에게 조상들이 차지했던 요르단 동쪽은 추억과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즉 그들이 도달하지 못했던 요르단 동쪽 지역은 마저 차지해야 할 또 다른 약속의 땅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페르시아의 후원을 받으며 이스라엘의 실정법으로 반포된 토라 안에 요르단 동쪽 땅의 정복을 소개하고 있는 여호수아기가 포함되었을리는 만무하다. 즉 요르단 서쪽만을 유다인들의 거주지로 제한하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요르단 동쪽 지역의 정복을 언급하는 여호수아기는 실정법(토라)의 범주에서 제외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3) 사마리아 오경
이스라엘 귀한 당시 사마리아인은 유다인의 강력한 배척과 거부로 그들과 분리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유다인들은(특히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정치개혁) 순수 혈통의 보존을 매우 강력한 민족주의적 정책의 일환으로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에즈 9-10장 참조). 이런 이유에서 유다인으로부터 소외된 사마리아인은 유다인과 결별하면서 그들만의 경전을 따로 만들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제정된 사마리아인의 경전은 모두 ‘오경’으로 구성되었다. 이를 우리는‘사마리아 오경’ 이라고 부르며, 이는 토라가 원래 오경이었음을 역으로 증명해 준다.
여기서 사마리아 오경에 대하여 좀더 덧붙여 설명한다면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만의 경전을 독립적으로 설정하고 이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처소로 택한 곳이 시온산(예루살렘)이 아니라 그리짐 산이라고 주장함으로써(요한 4,20참조) 중앙 성소에 대한 입장을 유다인들과 다르게 천명한다. 이러한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불화는 기원 전 128년부터 110년 사이에 있었던 요한 히르카노스의 스켐 정벌을 통해 극대화되며, 이러한 갈등상황은 신약시대 전반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사마리아 오경은 고대 히브리어 문자에서 발전된 특수 문자를 사용하여 제작된 문헌으로써 1616년 다마스쿠스에서 사본이 발견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발견된 사마리아 오경 중 가장 오래된 사본은 기원후 10세기경의 것이며, 현재 잔존하는 몇 백명의 사마리아인들은 나블로스(스켐지역)에 가장 오래된 본문의 사본들을 보존하고 있다.
사마리아 오경의 내용은 현재 구약 성경 기본 편집본으로 공인된 BHS본문과 대략 6,000개 정도의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차이점들의 대부분들은 철자법과 문법에 대한 것으로서, 사마리아 오경은 마소라 본문에서 발견되는 어려운 문법들을 설명하거나 명료화가기 위해 많은 부분들을 추가하거나 수정하고 있다.
※ 참고문헌: 모세오경, 김혜윤, 생활성서, 2006, P.11-22.
창세기,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p.10-21.
구약성서의 길잡이, E. 샤르팡티/ 안병철, 성바오로 출판사, 1991, P. 7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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