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모세오경의 의의
1. 역사의 종교적 의의
오경은 역사와 동시에 율법으로 제시된다. 이 말은 오경이 교의 신학적 논술의 형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경은 우리에게 한 민족을 드러내 보여주면서, 하느님께서 이 민족을 어떻게 세우고 보호하셨으며 또 어떻게 기적적인 운명을 향해서 이끄셨는지 말해 준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이 민족, 그리고 이들을 통해서 온 인류와 맺고 유지하신 관계 속에서 이 책의 의미가 발견되는 것이다.
오경의 백성은 거룩한 민족, 곧 전적으로 하느님께 봉헌된 백성이다. 이 백성은 모든 것은 하느님께 달려 있다. 그러므로 오경의 율법은 단순히 법적인 계율들이나 종교 의식, 또는 규정들로 귀착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율법이 하나의 역사에서 탄생하였고, 또한 계속해서 그 역사 속으로 다시 끼어들기 때문이다. 율법은 한 민족을 택하시어 당신 모습에 따라 만드신 하느님의 교육이며, 결국은 이 백성의 종교적인 사고의 표현이기도 하다.
2. 오경의 그리스도교적 이해
이스라엘 백성이 온 세상에 흩어짐과 더불어 율법서는 이 민족을 하나로 묶는 통일성의 기초가 되고, 이스라엘을 한 민족으로 존립시키는 요소로 대두된다. 그리하여 오경의 법률적인 면들이 강조된다. 토라, 곧 온 세상에 퍼져있는 유다인들의 일상생활을 주제하면서 이들이 한 민족이 되도록 해주는 율법에 대한 성실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해석(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랍비들)이 결코 보편주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보편주의는 유다 민족을 그 중심점으로 하면서 율법에 대한 성실성을 전제할 뿐이다. 이러한 전망 속에서 율법의 현실성이 돋보이게 된다.
유다교가 지닌 이러한 항구한 가치 외에도, 이제 그리스도교 해석에 따라서 또 다른 형태의 보편주의가 시작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구약성서의 약속들이 이미 지켜졌다. 곧 이 약속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고, 새로운 계약이 옛 계약을 마무리 지은 것이다. 첫 번째 계약의 율법은 이제 역사의 한때에 속한 것이 드러나는 한편, 교회가 이방인들에게 개방됨과 더불어, 하느님의 말씀은 이 역사의 전체적인 지속성으로 세상에 내려진다는 생각이 강조된다. 이는 하느님의 백성을 이루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이 과정은 멈추지 않고, 완성될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은혜는 영원하며 유다 백성은 그분께 받은 것을 잘 보존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그들만의 토라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육화한 하느님 말씀을 알아듣는다. 이들은 율법 안에서 자기들의 역사를 발견한다. 이들은 파스카날에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된 구원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고대하며 살아가는 여정에서 공동체를 이룬다. 이들 역시 자기 생명이 계약으로써, 곧 그리스도께서 이들을 위해서 맺으신 계약으로써 결정되었음을 안다. 이들 또한 하느님의 말씀, 그리고 그분의 자비와 성실성의 징표에서 양식을 얻는다. 오경이 증언하는 사건들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 안에 이루실 업적을 미리 알리고 보인다. 그리고 옛계약의 제도를 새계약의 제도들을 준비하고 그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드러낸다. 성전과 전례에 대해서 말해진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의 몸, 곧 하느님의 영광이 그 위에서 빛을 내는 새로운 성소에 적용된다(요한 2, 21) 그리하여 오경은 계속해서 오늘의 인간들에게도, 아브라함의 신앙을 함께 나누고, 온 인류를 위해서 이 선조에게 내려진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도 생명의 원천이 된다.
IV. 모세오경의 형성 단계
모세오경은 여러단계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근저에는 모세라는 인물과 출애굽의 사건들이 자리하고 있다.
2. 뒤이어 사람들은 이야기, 율법, 담화문, 사건에 대한 묵상, 전례적 거행 등과 같은 세부적인 부분들을 구전으로 아니면 이미 글로
기록하여 전하게 되었다.
3. 율사들이(예언자들, 사제들, 현자들) 각기 다른 시대에 그러한 부분들을 모아 일관성 있는 이야기, 즉 4개의 문헌들을 만들었다.
4.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이 4개의 전승들을 다섯 권으로 된 하나의 책 속에 모아 놓게 되었다.
우리는 이 문헌들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간략하게나마 그 문헌들의 위치를 설정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V. 오경의 저작자들
오경의 여러 가지 문학적인 면들을 보고, 오경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오경 전체에 대한 통일적인 안목을 잃지는 않더라도, 놀라움을 금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오경의 문체와 서술 방식이 다양하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독자에게는 이 다섯 권의 책이 일종의 전서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렇듯 오경은 이스라엘의 여러 신앙 고백들이 수세기를 거치면서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정착된 전서인 것이다. 이 때문에 어떤 법조문들은 서로 다른 문맥 안에서 되풀이되기도 한다. 또한 오경 문체의 특수성들은 거기서 말하는 내용이 달라서만 아니라, 유일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생활화하는 방식에서도 서로 다르다는 사실도 설명되기도 한다. 이러한 오경의 대표적인 저작자들은 다음과 같다.
1. 전대의 전승
1) 야훼계 전승
야휘스트(약자 J) 전승은 솔로몬 왕궁의 서기관들로 만들어 진 것으로 하느님을 태초부터 그분의 고유한 이름을 야훼라고 부르는 전승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기원 전 950년경, 예루살렘의 왕적 환경 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인간의 창조로 시작되는 태초부터(창세 2, 4-25) 모세의 죽음에까지(신명 34, 5-6) 이르는 역사를 이야기 한다. 이전승의 첫 부분은 삶을 누리도록 창조되었지만(창세 2) 하느님께 대한 순종의 거부(창세 3) 폭행(창세 4) 낙인찍힌 인류라는 틀 속에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한다. 하느님께서 인내를 가지시고 죄인인 인간들을 받아들이신다는 것이 노아와 그 자손들에게 보장되는(창세 6-8), 이는 장차 그분께서 모든 민족들을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내리실 복을 지향하는 것이다(창세 12, 1-4). 이 전승에서 왕은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즉 신앙의 일치를 이루는 것은 왕이다.
야훼계 전승의 서술에는 일정한 성소들, 그리고 씨족의 민속 설화와 관련된 구두 전승의 생생함과 다양성이 보존되어 있다. 이 전승은 구체적이고 화려하며, 다채롭고도 순진하기까지 한 문체로 특징지어 진다. 하느님을 인간의 언어와 행동 양식에 비추어 표현한 의인화의 수법에 능하다.
2) 엘로히스트 전승
엘로히스트(E) 전승은 하느님을 엘로힘이라 부르던 북왕국 이스라엘의 문필가들로부터 750년경에 생겨난다. 엘리야나 미가와 같은 예언자들의 메시지로서 매우 특징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이 전승은 예언자들에게 역점을 두고 있다. 의인화의 수법을 지양하고 그 대신 꿈이나 현시를 통하여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비멜렉지방에 채류한 아브라함(창세 20), 아브라함의 제사(창세 22), 요셉의 이야기의 많은 부분(창세 50,20참조) 그리고 모세의 유년기(탈출 2) 하느님 이름의 계시와(탈출 3,14), 모세의 장인 이드로와 관련된 이야기(탈출 18)들이다. ‘계약의 법전’이라(탈출 20,22-23,33)불리는, 오경에서 가장 오래된 율법집이 바로 이 엘로힘계 문학 지층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후에 계속되는 엘로힘계 전승을 구분해 내는 일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이 전승을 야훼계 전승에서 나누어내는 것을 포기해야 할 정도이다.
몇몇 이야기에서 특수한 전망을 드러내는 데 이것들은 먼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거리가 있음을 드러내고, 인간적인 활동에 하느님 자신을 끌어넣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천사, 그리고 심지어는 인간을 그분 대신에 개입하도록 하며(창세 22, 11-18; 32, 23-33), 때로는 하느님께서 무서운 면이 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전승은 이러한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올바른 자세를, 흔히 밀접한 관계와 동시에 순종을 뜻하는 ‘경외심’이라는 용어로 상기시킨다.(창세 20,1;22,12) 그런데 이 용어는 엘리야 및 엘리사 예언자와 가까운 집단의 신심을 특징짓는 것이다. 예언자의 모습은 모세의 구실(민수 11,25) 또는 아브라함의 구실까지도(창세 20,7) 서술하기 위한 본보기로 쓰인다.
야훼스트 전승과 엘로히스트 전승, 이 두개가 700년경 예루살렘에서 통합된다. 이것을 흔히 제호비스트(JE)라고 하는데, 이는 단순한 첨가가 아니라 일련의 전승들을 보완하고 진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 후대의 전승
1) 신명기계 전승
신명기 저자(D) 특별히 신명기에 모아들여진 것이고 신명기 속에 내포되어 있기에 신명기계 전승이 된다. 이 전승은 다른 전승들과 더 혼합되었으며 매우 특이한 문제로 특징지어진다. 율법의 가르침에 집중된 이 전승은 세상의 기원에 대한 역사를 구상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쓰이는 문학유형은 순종에 대한 호소, 경고, 그리고 위협과 약속을 내포한 설교이다. 그리고 율법의 다양한 규정들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라는 핵심적인 계명에 연결되어 있다. 또한 율법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은 지속적으로 ‘오늘’을 위한 현실성이 강조되는(신명 1,10)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된다. 에집트 탈출(신명 16,3), 선조들에게 주어지는 좋은 땅에 대한 약속(신명 4,31), 그리고 세상의 창조(신명 4,32) 등이 그것이다.
이 전승은 북부 왕국의 멸망(기원전 722년) 직후 유다 땅으로 도망한 북부 레위인들 사이에서, 또는 다른 학설에 따르면 예루살렘 궁정과 가깝게 지내던 현인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문서화 하였다고 한다. 그 뒤 유배에 이르기까지 이 전승은 수차례에 걸쳐 발전되고 확장된다. 그리하여 다른 책들에도 영향을 주었다. 북쪽 왕국에서 시작되어, 예루살렘 왕국에서 완성되었다. 수사학적인 표현을 삼가면서 메시지를 단도직입적으로 전달하고 하느님께 대한 신실한 복종을 강조한다.
2) 사제계 전승
사제계(P) 전승은 587-538년 사이 즉 바빌론의 유배기간과 그 이후의 사이에 생겨났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빌론에 패망하여 그 수도 바빌론에 포로로 끌러가서 539년 풀러날 때까지 귀양살이 하는 동안에 사제계급들이 작성한 것이다. 유배 중에 사제들은 백성의 신앙과 희망을 유지시키기 위해 그들의 전승을 되새겨 보게 된다. 이들은 모세오경의 최종 편집자로 간주된다. 이 전승은 칠일간의 세상창조로 시작해서(창세 1,1-2,4ㄱ) 모세의죽음에까지 이르며(신명 34,7-9) 하나로 이어지는 족보를 중심으로 역사를 이룬다. 이 전승이 지니는 문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반복, 일정한 경직성, 숫자의 정확성, 족보와 명부, 그리고 제의와 전례를 돋보이게 하는 모든 것을 선호한다는 점들이다. 성소(출애 25-31과 35-40)와 제사(레위 1-7) 그리고 아론과 그 자손들로 구성되는 성직자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레위 8-10) 사제 집단에 고유한 증언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이유로 이 전승에 사제계 전승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다.
이 사제계 전승은 오랜 구두 전승을 바탕으로, 바빌론 유배 기간 중에 예루살렘의 사제들이 다시 세운 성전에서 제의를 복구하려는 의도에서 문서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 전승은 하느님께서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모든 인간은 하느님을 섬기고 찬미하기 위해서 그분의 모습에 따라 창조되었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모세와 대사제 아론의 중개로써 하느님과 인간들 사이에 구원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 위에 하느님의 영광이 자리 잡고 있는 제단에서이다.
위에서 소개한 4개의 전승들과 이들로부터 계발된 내용들은 때가 되었을 때 한권의 책으로 묶어지게 되었다. 이 한권의 책이 모세오경이다. 이러한 작업은 400년경에 와서 완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일반적으로 사제였던 에즈라가 그것을 이룩했다고 본다.
야휘스트 전승과 엘로히스트 전승은 주로 설화를 담고 있고, 신명기계와 제관계 전승은 율법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신명기만을 담고 있는 신명기계 전승을 제외하고 다른 세 전승들은 모세오경의 처음 네 권에 골고루 섞여 있다. 오늘날 오경의 통일성과 다양성은 방대한 작품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줄뿐더러, 이 작품의 메시지를 동일한 신비에 대해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여 알아듣게 해준다. 곧 어떤 것은 더욱 심리적인 것으로(야훼계 전승), 어떤 것은 하느님의 초월성을 돋보이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엘로힘계 전승), 또 다른 것은 법적 그리고 제의적인 현실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사제계 전승), 그리고 마지막 것은 하느님의 선택과 사랑을 보여주는 것으로(신명기계 전승) 드러내 주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 전승들이 역사이든 율법이든 간에 아주 다양한 상상적 환경에서 수집 집대성하게 된다고 말한다.
- 왕국과 그 측근들
- 예언자와 제자들의 집단
- 사제단 혹은 성소 예배소(예루살렘, 배델, 길갈, 실로) 제 각기 특이한 색채를 띰
이 네 그룹이 저자들이 창세기의 서로 다른 부분을 작성하고 손질했기 때문에 세부사항에서 중복과 충돌, 논리적 단절 등등 문학적 결함들이 발견되고 있다.
※ 참고문헌: 모세오경, 김혜윤, 생활성서, 2006, P.11-22.
창세기,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p.10-21.
구약성서의 길잡이, E. 샤르팡티/ 안병철, 성바오로 출판사, 1991, P. 7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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