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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

마리아 아나빔 2010. 6. 17. 19:36

 

 

 

 

 

여성학

 

 

   여성학(女性學)은 여성, 여성주의, 젠더(성역할), 정치 등의 주제를 다루는 간학문적(학제적), 다학문적 학문이다. [1] 여성주의 이론, 여성사(여성 참정권의 역사 등), 페미니즘 정신 분석, 여성 보건 등의 주제를 포함하며, 여성주의나 젠더학(젠더연구)에 영향을 받은 인문학과 사회 과학의 실천 연구 등을 포함한다.(위키백과)

 

 

1. 학문으로서의 여성학

 

1.1. 여성학 약사( A Short History of Women's Studies)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만들어진 한 연구위원회. 여성학연구위원회는 문학, 법학, 신학, 사회학, 생리학, 사학 등을 전공하는 20여 명의 교수들이 논문을 발표하고 여성학 교과과정과 교수방법 등을 논의하고 실제로 여성학이라는 학명을 탄생시켰다.  '여성학'이라는 이름을 명명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불과 20년 남짓한 만큼 여성학은 젊고 싱싱한 학문이다. 이 새로운 이름으 로 처음 교양과목에 여성학을 개설한 것이 1977년이고 그 이후 약 10여년만에 전국에 있는 대부분의 대학교에서 여성학, 또는 이 와 유사한 과목을 개설하게 되었을 만큼 여성학은 짧은 시간 내에 확산되었다. 대학 뿐만 아니라 정부 소속 연구원. 한국여성개 발원이 정부 출연 연구원의 대표적 기관으로 1983년도에 설립되었고 초대 원장은 김영정 교수이다. 김영정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 에서 여성학을 처음 개설할 당시 이를 관장했던 한국여성연구소의 초대 소장이기도 하다.

    여러 사설 연구기관, 성인사회교육기관 그리고 방송매체들도 여성학을 확산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해 왔다. 여성학이 이렇게 단기간에 다양한 방법으로광범위하게 알려지게 된 만큼 여성학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와 평가는 다양하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여 성학이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것 쯤은 공부하지 않아도 다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일반대중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접어두더라도 여성학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여성학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다양하다. 이는 여성학의 학문적 역사가 짧기 때문에 그리고 빨리 발전하고 있는 학문으로서 피할 수 없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역동적 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성인교육기관이나 방송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여성학은 일단 접어두고 우선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에서 형성되고 있는 여성학 을 중심으로 여성학사를 간략히 개관하면 다음과 같다. 대학원 여성학과가 1982년 이화여대에 설립된 이래 현재 전국적으로 여러 대학에 여성학을 전공으로 하는 대학원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이화여대는 석사, 박사학위과정이 있으며, 계명대, 대구효성가 톨릭대학교, 부산여대에 여성학대학원이 있고, 한양대, 성신여대, 동덕여대, 숙명여대에 여성학협동과정이 설치되어 여성학 석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여성학회가 1984년에 창립되어 춘계와 추계 학술대회를 개최하며 정기 간행 학술지 {한국여성학}을 연간 2회 출판해오고 있다.. 초대 회장은 윤후정교수이며 현재 전국 회원이 500여명에 달하고 있다.

 

   그 외에도 각 대학 연구소 및 연구단체에서 발행하는 학술지는 십수개종에 이른다.. 한국여성개발원이 발행하는 {여성연구}, 이대 한국여성연구원의 {여성학논집}, 숙대 아시아여성문제연구소의 {아시아여성연구}, 효성여자대학교, 부산여자대학교, 서울여 자대학교등 대학연구소들의 정기간행물이 있고 또 하나의 문화의 무크지, 한국여성연구회의 {여성과 사회} 등을 비롯한 많은 간 행물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발전과정은 아마도 구미 몇 나라를 제외한다면 세계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르고 역동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미국과 영국, 불란서의 여성학 발전과정은 공통적으로 여성해방운동의 학문적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60년대 말에 진행 된 진보적인 시민운동과 학생운동에 참여한 많은 여학생들과 지식인들은 독자적 여성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이들이 지식인으로서 갖는 관심과 활동은 대학 내에서 여성연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여성해방운동은 여성학을 낳았고 여성학의 파장은 각 학문분과에 새로운 연구영역을 탄생시켰다.  미국에서 첫 여성학강의로 기록되는 강좌는 문학 또는 역사학에서 여성연구를 중심으로 개설한 강좌이다.. 미국의 경우 1969년 2개 대학에서 시작되었던 여성학이 1983년도에는 442개 대학으로, 1990년 이후에는 600여 대학에서 개설되어 전체 대학생의 75 퍼센트가 수강하고 있다. (정세화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강좌의 교육내용 및 운영에 있어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소, [여성학논집], 창간호, 195쪽 참조, 메릴린 슈스터, "학문의 성차별 역학관계: 미국에서의 교훈", 21세기를 향한 여성고등교육의 평가와 전략, 학술회의 자료집, 숙명여자대학교 아세아여성문제연구소 주관, 15쪽)

 

   기존 학문의 전통에서 다루지 않았던, 그래서 보이지 않았던 여성의 공헌, 여성의 경험 등을 다루기 시작한 첫 단계를 다학문 적(multi-disciplinary)접근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단계의 교과목은 [여성과 문학], [여성과 역사], [여성과 사회]등으로 나타 났다. 이러한 다학문적 연구와 교육은 학제적(inter- disciplinary) 접근으로 이어진다. 각 학문분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은폐된 여성 경험, 또는 여성의 불가시성 (不可視性)의 원인이 무엇이며 그것이 왜 지속되는지를 연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학문적, 학제적 연구가 확대되면서 여성학은 하나의 전공 프로그램으로 모아지고 더 나아가서 여성학과의 설립, 학위 과정등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 이러한 서구의 발전과정과는 다른 경로를 통해 여성학이 발전되었다. 일제의 강점과 연관된 사회적 혼란, 식민주의 통치로부터 벗어나서 독립국가로서 존립하는데 요구되는 과제들, 분단, 전쟁 등을 역사적 배경으로 한 급격한 산업화 과정은 우 리사회가 지난 1세기 동안 겪어온 격동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모든 사회변화 과정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기 보다는 몇몇 파워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학문, 지식, 교육제도가 겪어온 파행적 과정 역시 이런 사회적 배경과 분리되어 설명될 수 없다. 서구의 과학과 기술을 이전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가 되기도 했으며 그 이외에도 교육제도 및 대다수의 학문 분과들이 서 구의 모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이는 물론 한국만의 특수한 경험이라기보다는 제 3세계 대부분 국가의 공통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바탕에서 한국의 여성학은 주로 여성교육에 집중하고, 여성의 발전 및 사회적 공헌 등과 관련한 많은 문제들을 고민해 온 여자대학교를 중심으로 발전되었다. 물론 여성에 대한 연구와 이론화 작업은 [여성학]이라는 학명이 생기기 전부터 있어 왔 다. 대학 내에서 1950년대와 60년대에 여성학적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개설된 [여성과 직업]. 1950년대 부터 이화여대에서 김활 란 선생이 담당한 과목, [여성운동사]. 1963년부터 이화여대 법정대학 공통 과목으로 이태영선생이 학장으로 취임하면서 설정되었다. {이화100년사} 이화100년사 편찬위원회 편, 이대 출판부, 1994년, [여성과 사회]. 서울여대에서 60년대 전교생에게 필수과목으로 개설된 과목으로 고황경 선생이 담당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은 여성학이라는 학명으로 보다 본격화되었으며 이를 선두로 많은 남녀공학 대학교들 이 여성학을 교과과정에 포함시키기에 이르렀다.

 

   이제 다수의 대학교에서 여성학은 단일과목이 아닌, 여성학 계열과목군으로 성장하여 다양화, 전문화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이 화여대의 경우 교양과목 계열에 [여성과 세계]계열이 있는데 여기에는 [여성학], [한국여성사], [성문화연구], [여성과 생명], 여성과 예술, 여성과 일, 여성철학, 페미니즘연구, 성의 사회학, 성차심리학, 기술혁명과 여성, 세계여성문학, 여성과 매스컴, 여성과 정책, 한국여성문학, 호신의 이론과 실제 등의 과목이 있다. [여성학]은 그 기초로서 이러한 연구를 위한 토대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여성학의 확산과 발전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공통된 것이어서 여성학 관련연구 및, 여성학 프로그램의 수는 급중하고 있다.. 19995년 북경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의 여성학관계자 모임을 통해 보면 북미와 서구 뿐 아니라 ,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호주지역등 거의 모든 나라의 대학에서 여성학 강의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 다. Women's Studies Quarterly Vol. XXIV. No. 1 & 2

 

 

1.2. 여성학의 학문적 특성

 

   여성학은 다양한 학문간의 '관계의 학'이고, 나아가 다른 학문의 성과를 여성학적 관점에서 검토, 비판해 본다는 점에서 '검증 학'이며 '비판학'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또한 여성학은 여성의 '인간화', '여성해방 또는 여성지위 향상'에 공헌한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사회 개혁을 요청하기 때문에 [혁신적]인 학문이며, 바로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이론학'이 아니라 '실천학'이기 도 하다.. 정세화, 앞의 글, 194쪽 미국 여성학의 초기 개척자의 한 사람인 플로렌스 하우 (Florence Howe)는 여성학을 대학 내에서의 여성해방운동이며 교육운동 이라고 본다. 즉 여교수나 여학생은 여성학을 통해 여성을 차별하고 배척하고 왜소화시켜 온 사회와 대학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실천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우에 의하면 여성학은 다음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종래의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의 식개혁

2.성별분업의 형태에 구속되지 않는 여성의 역할모델을 다양하게 제공하는 일

3.남성중심적 가치체계로 구성되어 있는 교육과정을 여 성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일 . Florence Howe, Women's Studie s and Social Change, Rossi, A. & Calderwood, A., pp.393-423

 

 

비판의 작업

 

   여성학은 학문과 교육의 관행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갖고 출발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 다. 비판의 의미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 가지 비판의 방법은 부정적인 평가이다. 평가를 부정적으로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 갖고 있는 내용이 잘못되었다거나 그르다 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한 판단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 고쳐져야 하고 더 나은 것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함 을 함의한다. 두번째 의미는 보다 철학적인 것으로서 '어떤 것이 존재하는 조건에 대해서 그것이 바탕으로 하고 있는 가정이나 전제들을 검토하는 것'이다.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기존 교육에 대한 비판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현재의 교육은 "성차별적인 교육이다"라는 평가를 내린다면 그것은 첫번째 의미의 비판이 될 것이다. 교과과정, 교과서 분석, 교사와 학생 간에 일어나는 상호과정 속에서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차별을 받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발견은 곧 비판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역사적 위인들이 거의 다 남성이 고, 삽화가 여자의 역할을 가정적인 것, 또는 남성의 보조자로 암시하는가 하면 교사는 여학생에게 "여자는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는 시집을 잘 가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외모를 잘 가꾸어야 한다"는 암시를 준다면 이러한 경우 여학생 의 학업성취의욕은 남학생에 비하여 현저히 감소될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이 성차별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바탕 으로 교육내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 평등한 남녀상을 강조하는 교과서 내용 또는 삽화 그리고 교사가 학생과의 상 호작용에서 유의해야 할 점들을 제안할 수 있다.

 

   두번째 의미의 비판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교육이 (성별의 문제를 떠나서) 어떠한 목표를 갖고 어떠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질문하면서 그러한 조건을 유지시키는 전제들을 검토하는 것이다. 교육이 사회유지기능을 한다면 과연 사 회전체가 성차별적인 상황에서 교육이 남녀평등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는가? 교육의 목표가 사회지도자를 키우는 데 있다면, 그리고 여자는 사회지도자이기보다는 가정적 역할을 담당하는 전제에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구체적 내용을 변화시키고 자 하는 수준의 노력은 그 의미가 축소될 수 밖에 없다. 전제와 가정 자체를 고려하는 비판에 대해 다음의 인용을 음미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한 시대의 철학을 비판할 때, 단지 지적인 입장에만 주력하지 말라. 그것은 해석자들이 드러내 놓고 필수적으로 방어하려 고 생각하고 있다. 시대의 모든 다양한 체계들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근본적인 가정들이 있다. 그 러한 가정들은 너무나 명백해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다른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리 데일리, 「하나님 아버지를 넘어서」, 1997, 이대출판부,에서 재인용 여성학의 비판활동은 위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여성학을 가르치는 대학의 현실은 어떠한가? 현재 우리 사회 의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육'을 수행하기보다 상급 학교로의 진학, 취업 또는 사회 진출을 위한 자격증을 발부하는 기관으로서의 성격을 더 많이 띠기 시작했다. 학생들 또한 전인적인 발전과 창의성의 계발보다는 교육기관의 수료증이 주는 특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경쟁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 지배적인 상황이 되고 있다. 대학의 구성원들은 거의 모두가 다 경쟁 을 통해 기득권을 선취한 사람들로서 나름대로의 집단 이기주의의 유혹을 벗어나기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 서 대학 구성원들의 철저한 자성과 일관적 합리성 없이는 학문과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개혁이 매우 어렵다고 보겠다.

 

   이러한 교육의 현실을 비판하는 여성학은 스스로에게 큰 부담을 지우면서 출발한다. 여성학은 여성이라는 집단이 편파적이고 배 타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연구하고 교육하는 학문이 아니라, 전체 사회의 건전한 발전과 개개인 여성과 남성의 자기발전을 실현하고자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성학의 주요한 과제는 여성의 이익과 이해만을 위한 고립적 인 연구가 아니라 모든 학문 영역에 적용되는 교육, 사고방식, 정서들을 변화시킴으로써 새로운 파라다임을 모색하는 일이다.

 

   이러한 파라다임의 전환을 위하여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기존의 교육과 연구의 근저에 놓여 있는 남성편견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세계와 인간과 사회를 편견없이 바라보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론과 가치론적 정향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곧 과학적 지식에 대한 개념규정및 연구의 변화와 결부되며, 나아가서는 교과과정 내용의 변화와 연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제학의 파라다임은 화폐를 매개로 하는 재화와 용역의 생산과 소비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 며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여성 대다수의 무보수 노동은 그것이 한 사회의 경제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적 기능임에도 불구하고 제외되어 있다. 이러한 가사노동을 포함한 무보수 노동에 초점을 맞추어 재분석을 한다면 경제학 자체가 변형될 수 밖에 없다. 정치학의 경우에도 공식적인 정치체제나 제도에 한정된 현재의 틀을 벗어나 권력관계가 개입된 사적인 관계들, 이웃, 학교, 교 과과정, 가족, 인종, 민족, 종교 집단 등과 같은 정치기관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관계의 정치성을 보여줄 때 여성이 현시화되고 '정치'가 재구성될 수 있다.

 

   여성학에 대한 편견과 오해 남성학이란 것은 없는데 왜 여성학은 있느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여기에 대한 답변의 하나가 이제까지의 학문이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남성들을 위한, 남성들의 학문이기 때문에 이 질문의 전제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 나 이 답변 또한 정확하지 못한 점이 있다. 이제까지의 학문이 남성들만의 학문이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남성들의 체험 이 인간 모두의 체험을 대변하려고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더 사실에 가깝다. 학문의 대상이 남성의 체험을 중 심으로 한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남녀 모두에게 보편적이라는 전제를 가지면서 인간성이 남성의 모델로 대표된다 는 점이 더 깊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주장에 대해 반감을 갖게 하는 많은 장치들이 우리 사회에는 존재한다. 이 장치들 중의 하나는 여성과 관련된 이슈를 사소화 (trivialization)시키는 것이다. "전쟁이나 인종차별, 계급차별, 경제문제, 환경오염 등 다른 많은 중대한 문제들이 있는데 겨우 그까짓 여자들 문제를 꺼내다니"라는 주장처럼 흔히 듣는 여자들 문제는 다른 문제보다 덜 중요할 뿐 아니라 여자들은 전쟁이나, 인종, 계급차별, 경제, 환경문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또 다른 장치는 특수화 (particularization)이다. "그것은 이상한 여자들, 잘난 척하는 또는 못생긴 여자들의 문제일 뿐이 야" " 그것은 경상도 남자만의 문제야" "그 여자는 특히 질투심이 많아서 그래" 라고 하는 식으로 여 성문제는 개인적 경험에 한정된 특수한 개인의 문제에 불과한 것으로서 특수화시킨다. 또한 여성의 문제는 추상화 또는 영성화(spiritualization)의 문제로 환원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의 이념형인 " 홍익인간"은 남녀차별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된다. 또한 성경에도 "그리스도 안에는 남성도 여성도 없습니다"라 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도처에서 우리는 '확실히 구별, 차별이 있다'는 인식에 직면한다. 특히 현재 주어진 사회 현실의 차별적 인 상황과 그리스도의 이미지가 남성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그 구절이 의미하는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이와 함께 여성문제의 보편화 (universalization)를 통해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진정한 문제 는 인간 해방이 아닌가"라는 명제가 비록 옳다 하더라도 그것이 성차별주의와의 직접적 대면을 회피하기 위해서 사용될 때 는 여성의 현실을 정당화하는 기반이 될 뿐이다.

 

   그러나 학문은 인간을 편견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세계를 보다 정확히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편견으로부터 해방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학문을 통해 우리의 세계를 더욱 더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성학 연구는 그동안 기존학문의 편견을 벗겨내는데 열중해 왔다. 기존의 편견 때문에 보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 게 하는 것' 그리고 이것에 이름을 주고 이를 탐구해내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예를 들면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없는 것이 라고 생각해 온 공기에 공기라는 이름을 짓고 더 나아가서 산소의 기능을 파악하고,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 진공의 상태를 상상하 고 진공 상태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등의 탐구가 진행되어 온 것과 같다. 이러한 작업의 예로는 가사노동, 성별관계, 신체적 성, 문화적 성, 성별분업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를 다루는 것이 여성학 연구의 주요내용이 된다.

 

   여성학이 그 사상적 기초를 여성주의에 두고 있다는 것은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여성학은 곧 여성주의인가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여성학이 곧 여성주의는 아니다. 여성주의는 하나의 이념인 반면에 여성학은 학문, 즉 과학이기 때문이다. 이념과 학문의 차이를 밝히는 것은 그 자체가 몇권의 책으로도 끝낼 수 없는 논쟁이 될 성질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학은 다른 많은 학문과 달리 여성주의라는 이념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갖고 있다. 그것은 여성학의 연구 목표가 여성주의와 공통된 가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학은 여성 억압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목표를 설정하는 동기는 궁극적으로 여성 억압을 야기시키는 구조를 변혁하는 데에 있다.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변형시 켜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총체적인 인간적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것이 변화의 지향이며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렇다면 여성주의란 무엇인가?

 

<생각해 볼 문제>

1.자신이 전공하는 과목을 여성학적으로 재구성해보자.

2.여성학에 대해 서로가 가지고 있는 통념을 열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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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하이디 하트만/린다번햄,「여성해방이론의 쟁점」, 태양

메리 데일리, 「하나님 아버지를 넘어서」, 1997, 이대출판부

생태신학은 착취당하는 자연만이 아니라 자연과 연관되어 억압당하고 있는 여성의 문제에 대한 신학적 답변을 요구하는 생태여성신학으로 확장되어야 그 의미를 더욱 확고하게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여성은 자연과 동일시되어 착취당했으며 동시에 자연은 열등한 여성성을 지녔기에 인간이 파괴해도 좋을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태신학은 여성의 문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샌트마이어는 그의 책 『nature reborn』의 인간중심적 성경해석을 넘어선 생태학적 성경해석을 주장하면서 자연의 땅 지배와 마찬가지로 남성의 갈비뼈로서의 여성 통치도 정당화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온산으로 집결되는 공동의 세계는 자연과 남성과 여성의 조화로운 샬롬의 세계라는 것이다.

생태신학이 생태여성신학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인간과 자연에 대한 구분은 여전히 존재한다. 자연의 고유성과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생육하고 번성할 권리를 인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생태신학이 추구하는 인간과 자연의 둘 사이의 상호 공존은 실은 어떠한 매개체가 없기 때문에 한쪽이 우위를 점령하거나 혹은 평행선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 인간이면서도 자연과 동일시되어 온 여성의 문제를 고찰한다면 자연과 인간 사이의 공통분모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책임성 있게 생태학적 문제들을 다룰 수 있게 된다. 본문요약 생태신학을 넘어서서 생태여성신학으로 확장되기 위하여 본 논문은 자연과 여성의 연관성이 어떻게 인류의 지배와 억압의 역사 속에서, 인류 문화 속에서, 그리고 종교 안에서 자연착취와 여성억압으로 이루어져 왔는지를 살펴보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생태여성신학적인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본 논문은 특별히 여성과 자연의 동일한 상징이 억압으로 작용한 원인이 계층적 이원론에 있음을 주목하며 그 핵심에 있는 신 표상(모델)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여성과 자연 모두를 포함하는 여러 하나님 모델들을 말하고자 한다.

Ⅰ장에서는 생태신학이 여성의 문제를 포함할 때 총체적이고 책임감 있게 생태학적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를 밝히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생태여성신학은 자연과 여성을 연관시켜 생각하는가? 그러한 근거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제기 될 수 있다. 그래서 Ⅱ장에서는 자연과 여성이 같이 억압당하였던 과정들을 살펴보며, 왜 여성과 자연이 이렇게 연관시켜져서 생각되어지는 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여성은 자연과 함께 문화 안에서 억압받았으며, 특히 종교 안에서 자연과 연관된 신비적인 힘을 통제하기 위한 마녀사냥으로 억압받았다. 이렇게 자연과 여성이 함께 억압당하는 이유는 바로 기독교 사상 안에 있던 계급적 이원론적 신 표상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Ⅲ장에서는 이러한 신 표상이 인간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가를 심리학자들의 분석과 사례를 통해서 살펴본 뒤 전통적인 신관인 남성적이고 가부장적인 하나님에 대한 신관을 살펴보며, 이것에 반대하여 나온 류터와 샐리 맥페이그의 생태여성신학적인 신 표상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Ⅳ장에서는 이 두 신학자들의 신 표상을 평가하며 나의 하나님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것은 샐리 맥페이그의 은유신학에 기반을 둔 것으로서 풍성한 하나님 모델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정의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경험을 풍부하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