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나눔

창세 23: 사라의 죽음과 막펠라의 무덤

마리아 아나빔 2010. 12. 5. 12:10

 

 

 

 

                               성서나눔26- 창세 23: 사라의 죽음과 막펠라의 무덤

 

 

 

들어가면서

 

    창세기 23장은 사제계 전승에 근거를 둔 것인데, 그 사제전승의 기초가 된 더 오랜 전승을 반영하였다. 내용은 매우 법률조를 띠고 있고 아브라함이 동굴 및 밭의 값을 치루고 소유권을 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무덤에는 후에 아브라함, 이사악, 리브가, 레아, 야곱(49,310 묻혔다. 이 책 속의 다른 곳에서도 이 법률상의 취득이 주장되고 있는데, 이 소유권에 대해 후에 분쟁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특히 1절-20절에서는 아브라함은 무덤 하나를 사들임으로써 현명하게 약속의 땅에다 하나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를 자세하게 기록한 것은 약속의 땅 팔레스티나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토지 소유가 이 때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 땅은 선택받은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실제로 얻어 소유한 최초의 땅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마지막에는 온 지역을 영유한다는 약속이 이행되기 시작한 셈이다(13;15,17). 마찬가지로 야곱도 세겜에서 땅을 사고 후에 요셉의 뼈를 묻었다.

 

 

Text 안에서

 

-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두 가지 커다란 약속을 하셨다. 후손을 많이 낳는 것과 땅을 차지하게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약속은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을 낳아 줌으로써 실현되었고 아브라함이 이 아이를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임으로써 확인되었다. 위 이야기에서 두 번째 약속인 가나안 땅의 소유가 상징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다시 물릴 수 있는 방법으로 해브론 동쪽에 위치한 땅을 삼으로써 이루어졌다. 이 땅을 사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사라의 죽음이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안장시킬 수 있는 땅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 무덤으로 쓸 땅을 좀 나누어 주십시오. 이는 아브라함은 외국인으로 소유권이 없었다. 그는 헷 사람의 무덤에 사라를 묻기 싫었기 때문에, 무덤을 사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헷 사람들은 그에게 묘를 팔기 싫어했던 모양이다. 거기서 그의 요구를 흘려버리고 빌려 주겠다고 제의한다. 아브라함은 초기일관 자기가 선택한 동굴을 사겠다고 하고, 이에 충분한 값을 치루겠다고 간청한다.

 

이스라엘의 실제적 원조상인 아브라함과 사라가 남의 나라 땅에 묻힌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이야기의 저자는 할례를 강조한 17장의 내용과 자기 백성 안에서의 혼인을 고집하는 27장 46절-28장 9절을 기록한 바빌론 유배 시절에 문필활동을 했던 사제들이다. 특히 그들은 남의 나라 땅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동시대인들에게 잃어버린 땅을 다시 소유하게 될 희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는 뜻으로 이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무덤이 있는 막펠라의 무덤

 

 

- 아브라함이 산 마므레라고도 하는 헤브론 동쪽에 있는 땅(마므레라는 말은 ‘거룩한 나무’가 있는 곳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차라리 ‘성조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유다 남쪽 예루살렘에서 약 백여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성조들 가운데 베들레험에 묻힌 라헬만 빼고 모두 이 막펠라 동굴(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이중이라는 뜻으로 번역되었으며, 이 동굴이 이중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에 묻혔다. 사라를 위시해서 아브라함, 이사악과 레베카, 야곱과 레아가다 이곳에 묻혔던 것이다. 막펠라 동굴 위헤 현재는 거대한 회교 회당이 서 있는데 하람 엘 칼림, 곧 ‘친구의 무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친구였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이다. 이 회당은 12세기에 지어진 것으로서 유다인들과 회교인들의 성지인 동시에 십자군 시대 때에는 그리스도인들로부터도 공경을 받던 곳이다. 현재는 대부분이 회교도들의 회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회당 한 모퉁이에 유다인들의 경당이 있는데 헤브론 자체가 아랍인들 지역에 속한 탓으로 그곳에서 기도하는 유다인들은 좀처럼 찾아 볼 수가 없다.

 

- 2절에서 아브라함은 가슴을 치며 설피 울었다고 되어 있는데 주검 앞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통곡하던 당시의 장례풍습을 반영하고 있다. 헷 사람들로 소개되는 히팃 족은 기원전 2천년 경부터 천2백 년 사이에 소아시아와 북부 시리아에 히팃 제국을 건설하고 살았던 민족이다. 그런데 아시리아 제국에서는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에 살던 주님들을 히팃 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바빌론에 유배된 사제들도 이 이름을 그대로 채택하였다.

 

-‘몸붙여 산다’는 표현은 아브라함이 그곳 원주민들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에 대한 ‘세력있는 귀인’이라는 표현은 원문에는 “하느님의 왕족 또는 하느님의 뽑힌 자”로 되어 있다. 이것은 구체적인 지위를 나타낸다기보다는, 일종의 명예 칭호로서, 하느님의 보호와 복을 받는 인물임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그 지역 사회에서 완전히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뜻이다.

 

- 옛날 근동에서는 도읍의 문(이 성문의 의미는 또한 성문에서 이루어지는 공개집회에 의석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란 뜻)에 가까운 광장이 집회장이었다. 지금의 근동에서도 그러하지만, 이 사람들은 겉으로는 정중하지만 받는 것은 반드시 받는다. 아브라함은 너그럽고 자존심이 높은 사람인만큼, 헷 사람이 거저 주겠다는 제의에 혹하지 않는다. 지불한 돈은 지불함을 보게 된다.

땅을 사는 데 있어서도 아브라함은 그 지역 모든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다. 에브론과의 거래에 있어서도 주민들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졌고 떳떳하게 제 값을 주고 에브론의 땅을 샀다. 성문 곁 광장에 모인 이들은 듣거나 본 것에 대한 증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광장은 대체로 사업과 재판이 이루어지는 공공 장소였다. 23,17-18절은 토지매매의 계약을 대충 추린 것이며, 메소포타미아의 발굴에서 이러한 계약을 쓴 도장이 많이 발견되었다.

 

   은 사백 세겔(1세겔은 11.5그램이므로 5킬로그램 가랑이 된다)은 큰 돈이다. 예레미야가 밭을 살 때 지불했던 돈은 불과 17세겔에 지나지 않았고, 오므리왕이 사마리아 전체를 건설하기 위해 샀던 지역도 다 합해서 6,000세겔뿐이었다. 따라서 거저 주겠다는 에브론의 처음 말은 빈말에 지나지 않는다. 즉 헷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품위를 인정하고, 그에게 매우 예외적인 호의를 베풀면서도 결국은 그에게 토지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것 이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에브론과 전혀 흥정을 하지 않고 달라는 금액을 모두 지불한다. 즉 제 값은 다 받았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사람들의 상거래 풍습을 보는 것 같다. 아마도 소유권을 분명히 해두고 싶은 생각도 있었겠고 다른 한편 이방인들 앞에서 자신과 자기 아내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성서 저자는 아브라함이 토지 대금의 지불을 중시했음을 상기시킨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서 얻게 된 첫 소유지인 이 묘지는 선물이 아닌 것이다.

 

-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이제 헷 사람의 땅이 완전히 아브라함의 소유로 넘어오게 되었다고 밝힘으로써 상거래의 엄격한 규칙을 강조하고 있었다. 아브라함이 이 땅을 묘지로 만든 이후 그이 후손들도 이곳에 묻히게 된다. 헷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문헌에 따르면 서쪽에 사는 셈족들의 땅 전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헷 사람들”은 기원전 1200년경에 사라진 현재 터키의 아나톨리아 제국을 이루였던 히타이트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유목민들에게 있어서도 가족묘지는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 이사악을 번제로 바치라는 가장 큰 시련 이후 하느님께서는 더 이상 아브라함에게 시련을 내리지 않으신다. 아브라함에겐 이제 마지막 인생길을 준비하는 일만 남았다.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신 가나안 땅에 묻힐 자리를 마련해 놓고 며느리를 맞아들인다. 이런 일을 하면서도 아브라함은 비록 남의 나라 땅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을망정 주위 사람들의 신망을 잃지 않고 품위를 지켜나간다. 한평생 온갖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을 굳게 믿고 곧은길을 걸어온 노령의 아브라함! 비록 땅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자기 당대에 보지 못했지만, 그것에 대해 조금도 섭섭하게 생각하거나 하느님을 원망하는 일 없이 조용히 여생을 보내면서 자신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가고 있다.

 

 

 

 

※ 참고문헌: 하느님과 함께 걸으며(창세기 해설서),정태현, 생활성서사, 1990, p.111-114.

                창세기,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p.98-100.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기념 구약성서 주해집, 페데리코 바르바로, 크리스찬

                출판사,1986, p.249-258.

                성서의 길을 따른 여정, 생활성서사, 1987, P.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