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줍기(창세기)

야곱과 에사오

마리아 아나빔 2010. 12. 21. 16:16

 

 

 

야곱과 에사오(창세 25, 19-34)

 

 

 

 우리는 창세기 25, 19-34절 안에서

 성경에 등장하는 또 다른 두 물 야곱과 에사오 를 만나게된다.

 그리고 이 둘 안에서 인간이 지닌 다양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두 사람의 성격적인 면들을은 그들의 이름 안에서 알 수 있다.

성경에 에사오는 살결이 붉다라는 말로 소개된다.

즉 살결이 붉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붉다’는 뜻의 아돔이라는 형용사와 연관이 되고

에돔은 붉은 땅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에사오는 살결이 붉고 에사오에게 탄생된 에돔족은 을 차지 하고 살았다.

그리고 털투성이라는 말은

히브리 말로 ‘세일’ 인데 에돔 땅에 있는 세일이라는 이름의 산악 지대와 연결된다.

이리하여 그는 사냥꾼이 되었다.

 

 

한편 야곱은 발꿈치를 붙잡은 자’라는 뜻으로

아켑이라는 히브리 단어와 자음이 같다.

그런데 원래 야곱이라는 이름은 다른 근동 문헌에서

하느님께서 보호하실지어다’라는 뜻의 고유명사로 등장하는데

하느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는 야곱의 처지를 가리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야곱은 천막에 머물러 살았다.

성경이 형에 대해 우월한 위치를 점령한 야곱을 목축업자소개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유목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면에 수렵에 대한 목축업의 우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이어지는 불콩죽 이야기에서 이 우위성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같은 환경과 배경 안에서

두 인물의 지닌 서로 다른 성격적인 면들을 살펴본다면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다.

붉은 죽을 먹고 싶어 안달하는 에사오의 모습에서 에사오는 경솔한 소년으로 묘사되고 있는

반면 야곱은 교활하고 머리회전이 재빠른 소년으로 소개되고 있다.

또한 힘이 세지만 너무 조심성이 없는 에사오가 육감적인 사람이라면

몸은 허약하나 더 예민한 야곱은 정신적인 사람이다.

에시오가 죽 한 그릇을 청하자 야곱은 상속권을 달라고 요구한다.

나아가 다시는 상속권에 대한 반환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맹세까지 얻어낸다.

 야곱은 철저한 계산속에서 에사오의 장자권을 탈취한다.

이어지는 에사오의 행동은 그가 얼마나 경솔하게 행동했는지 돋보이게 된다.

저자는 에사오가

“맹세하고 상속권을 팔아넘기고 불콩죽을 받아서 먹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고

 연속적으로 묘사한 후 이야기의 결론으로

“에사오는 자기의 상속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두 인물의 성격적인 배경은 아래의 상황아래 그려졌다.

이스라엘의 적 에돔 사람은 버릇없고 육적이며,

어리석고 충동적이어서,

한때의 물질적 이익 때문에 가장 중요한 권리를 파는 자라라는 것이

그들의 조상 에사오란 인물을 통해 야유로 묘사되었다.

덧붙여 에사오는 칼로 세상을 살았고(27:40),

흉악하며 집념이 강하고,

가나안 사람의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36,2)고 기록되어 있다.

반대로 야곱은 그가 장자의 상속권을 교묘하게 가로챘으나

비난만 할 수 없는 정당성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 안에서 우리는 이 권리를 가지고 있는 이는 재산상속의 경우,

다른 사람의 2배를 받고(신명 21,17),

또 그 밖의 특권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권리가 보다 더 자격이 있는

다른 아들에게 넘어간다는 다른 예도 찾아 볼 수 있다(역상 5,1-2).

 

 

이제 야곱과 에사오라는 성경의 두 인물,

이 Text를 통하여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한번 새롭게 해석해 보자.

 

야곱과 에사오는 하느님께로부터 서로 다른 은총의 선물들을 받았다.

 에사오는 건장한 육체를 받아서 사냥꾼이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은총을 받았다.

 반면 야곱은 외소한 육체를 소유하였지만 그는 지혜로운 머리를 선물로 받았다.

그래서 외소한 그의 육체적 핸대캡이 극복되고 있다.

그 밖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은총의 선물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다.

그리고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것은 다 소중한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장점이 되든 단점이 되든 이 모든 것은 모두가 소중하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그가 지닌 단점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시고

 창조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그 선물을 어떻게 다루고 사용하는가에 있다.

성경에서는 언제나 ‘거룩함’과 ‘속됨’을 구분한다.

거룩한 것은 거룩하게 다루고 속된 것은 속된 것으로

즉 그 목적대로 다루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만약에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다루지 않았을 때 그에게는 죽음이 주어졌다.

바로 야곱과 에사오 안에서도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야곱과 에사오는 서로 다른 은총을 받았지만

에사오는 그의 은총의 선물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대수롭게 여겼다.

그는 그의 육체적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 그것은 마구 다루었다.

 

 

반면 야곱의 모습 안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끌어낼 수 있는데,

야곱은 하느님께 부터 받은 그의 달란트를 아주 잘 사용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머리를 사용하는 일이었는데

그는 하느님이 주신 이 다란트를 이용하여 두배 세배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에사오가 가진 장자의 권리고,

그리고 그가 후에 라반의 집에 몸붙어 살 때의 모습 안에서도,

그리고 그가 야뽁 강을 건너 다시 그의 형 에사오를 정면으로 만나야 할 때에도

그는 그의 지혜를 십분 발휘하여 어려운 순간의 모면한다.

그리고 이러한 야곱을 하느님은 책망하시기보다 축복해 주신다.

 

 

그러기에 우리는 야곱과 에사오의 이야기 안에서

우리의 삶의 자리를 한번 돌아 볼 수 있다 .

 즉 나는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능력과 달란트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으며,

 그것을 잘 사용하고 있는가? 질문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내게 주신 건강, 능력, 환경, 직책과 일들을 내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리고 지금 나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이 나에게 주진 탈란트로 그것을 열매 맺지 못한다면,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두 개의 탈란트를 받고

그것을 열매 맺지 못했던 종처럼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곱과 에사오의 이야기를 통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핸티캡을 탓하기보다

그것을 하느님이 사용하시도록 내어드리고,

그것을 사용할 방법을 스스로 찾고,

그리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두며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겠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좋은 것을 붙잡으십시오. 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우리는 삶 속에서

 각자가 하느님으로부터 선천적으로 받은

생명을 비롯하여 재능이나 건강과 같은 귀중한 선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보잘 것 없는 가치와 맞바꾸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야곱과 에사오 통한 성경의 Text를 우리 삶 속에서 재해석해 보면서-

 

 

마리아 아나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