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길잡이

모세오경 IX(신명기1)

마리아 아나빔 2011. 1. 31. 11:26

 

 

                                              모세오경 IX(신명기)

 

 

들어가면서

 

민수기와 편집적 연관성

 

    신명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르단 건너편 모압 땅에 도착한 이후(1,1-5), 이스라엘에게 한 연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설정은 이미 모압에 도착하여 약속의 땅을 바라보던 민수기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다. 즉, 신명기와 민수기는 ‘모압’이라는 지정학적 요소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신명기의 마지막(34장)은 모세의 죽음과 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임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민수기 27장 12-23절에서도 한 번 등장했던 내용이다. 대권을 이어받은 여호수아의 이야기는 신명기 이후에 나오는 여호수아기의 주된 내용이 된다.

 

 

1. 신명기의 특징

 

1) 결어적 기능

     신명기는 ‘모세오경의 결어’ 역할을 한다. 죽음을 눈앞에 둔 모세가 모압에서 일종의 ‘유언’처럼 전달한 세 가지 설교로 되어 있는 신명기는, 모세가 이집트 탈출 이후 40년간의 여정을 돌아보면서 한 세대(이집트 탈출 1세대)의 삶을 총정리 하고,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들에게, 이제 곧 들어가서 살게 될 약속의 땅에서 취해야 할 태도를 전해 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죽음을 앞 둔 사람이 자기 생애 전체를 돌아보면서 가족들에게 꼭 당부하고자 하는 내용을 요점만 추려 표현하는 것이 유언이라면, 이제 약속의 땅에 들어가 생활하게 될 이스라엘 회중에게 마지막 당부를 남기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2) 설교체 법규

     오경의 법 모음들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신명기의 저자는 민족을 향한 ‘하느님이 말씀’을 ‘모세의 연설’을 통해 전달한다. 이집트 탈출 이후의 역사회고를 기본 틀로 하여 지금까지의 이스라엘 전승과 신학들(성조들, 계약, 광야 생활, 법적 전례 규정들)을 함축적으로 조화시켜 설교체로서 재구성한 것이 신명기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 때문에 폰 라트는 신명기를 ‘설교체로 전달된 법조문’ 혹은 ‘하느님이 주신 계명에 대한 설교’로 보았다. 로날드 클레멘츠(R.E. Clements)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신명기를 ‘법에 관한 설교 모음집’으로 정의한다.

 

 

2. 명칭

 

     히브리 성경에서 신명기는 ‘엘레 핟데바림’(םירבדה הלא), 이것들은 말씀들이다. 말씀들은 다음과 같다) 이라는 제목으로 불린다. 여기에서 ‘말씀들’이라는 표현은 신명기의 ‘연설적 특징’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칠십인역은 제목을 ‘듀테로노미온’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두 번째 법’이란 의미를 가진다. 이는 신명기 17장 18절의 ‘미쉬나 하토라 하조트’. ‘이 법에 대한 필사’ 라는 뜻)를 그리스어로 번역할 때, ‘이 두 번째 법’이라고 잘못 번역하여 나온 제목이었다. 그러나 실수에도 하느님의 섭리는 작용하는지, 이 제목은 신명기의 내용에 상당히 잘 부합하는 제목이다. 신명기를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에 제시된 율법들에 대한 부연 내지는 종합의 기능으로 본다면, ‘두 번째 법’이라는 제목은 나름대로의 의미와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즉, 시나이에서 받은 계명들(첫 번째 법: 탈출 19장-민수 10,10)을 다시금 ‘해석하는 책’이 신명기(두 번째 법)임을 이 제목은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계약 법전’(탈출 10, 22-23,33)에 들어 있는 규정들은 많은 부분 신명기 12-26장에 병행되고 있다.

 

 

3. 저자

 

1) 빌헬름 드 베테의 입장

     엄밀한 의미에서 신명기에 대한 비평적 연구는 빌헬름 드 베테(W.M.L. de Wette)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요시야 재위 18년(기원전 622년)에 단행된 개혁의 내용과 신학이 신명기의 내용에 부합함을 발견하였다. 열왕기 하권 22-23장의 내용에 의하면 요시야 왕에 의해 성전 보수공사가 진행되던 중 하나의 두루마리가 발견되는데, 유다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을 꿈꾸고 있던 그에게 이 두루마리는 일종의 시금석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두루마리의 내용이야말로 개혁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 그는 이를 근거로 하여 유다 여러 곳에 산재해 있던 지방 성소와 산당들, 그곳에서 일하던 사제들과 전례들을 모두 철폐하고 예루살렘의 중앙 성소하나만을 합법적인 장소로 인준한다. 드 베테는 요시야가 개혁의 밑그림으로 삼은 이 두루마리가 현재 신명기의 원형이 되는 ‘원신명기(Ur- deuteronomion)’이고, 이는 현재 신명기의 12-26장에 해당되는 ‘신명기 법전’과 동일한 것임을 주장하였다.

 

2) 마틴 노트의 입장

     위에서 제시된 드 베테의 주장은 벨하우젠의 문헌 가설에 매우 적절히 상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이 점차 무너지게 된 것은 노트를 통해서였다. 그는 신명기가 원신명기 혹은 요시야 개혁과 관련 있는 두루마리이기보다는, 유배 중(6세기 초)에 활동하던 역사가들의 그룹(신명기계 역사서)에 의해 쓰인 작품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맥락에서 신명기를 모세오경의 ‘결론’으로 보지 않고, 신명기 뒤에 등장하는 신명기계 역사서(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 하권, 열왕기 상. 하권)의 ‘서론’이라고 간주한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노트의 입장을 인정하고 있지만, 드 베테의 주장 역시 간과할 수 없는 가설로 여겨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의 입장을 통해 신명기 이해를 위한 매우 중요한 단초가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즉, 신명기를 어떤 책으로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다르게 제시되고 있는 것인데, 이 책을 요시야의 개혁에 ‘근거가 되었던 문서’로 보아야하는지(드 베테의 입장), 아니면 요시야의 개혁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신학적 산물’로 보아야 하는지(노트의 입장)가 논쟁의 핵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4. 편집

 

     위에서 원신명기 부분을 설명할 때 잠시 언급했지만, 신명기의 편집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통해 이해 할 수 있다.

 

(1) 원신명기(12-26장)는 신명기의 근간이 되는 가장 오래된 모음집으로서 신명기에 제시되는 율법의 핵심 부분이다. 이 부분은 원래 북 이스라엘에서 이미 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북 이스라엘의 멸망과 함께 남 유다에 유입되었다.

 

(2) 이 법전은 히즈키야의 개혁 때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이 시기에 신명기의 다른 부분들(4,41-10,5;10,10-11,32;27,1-28, 26;31,9-13.24-29)이 이 접전에 첨가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하여 형성된 부분이 요시야에 의해 발견된 본문일 것이라 여겨지며(2열왕 22,3-20), 이 법전은 아마도 요시야의 개혁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된다(2열왕 23, 4-27).

 

(3) 여기에 설교의 겉 부분(1-4장, 29-30장)이 유배 시기에 추가되면서 또 다른 편집 과정을 겪게 된다. 특히 1-4장은 가나안 정복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당연히 땅을 빼앗기고 유배상황에 있던 당시 유다인들의 희망과 전망을 암시적으로 담고 있는 부분이다.

 

(4) 마지막으로 부록(31-34장)이 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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