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제시하는 피
피는 ‘생명의 절대적 중심’으로서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며(레위 17, 14 참조),
따라서 하느님께만 속한 것이다.
성찬례 중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혈을 양하게 되는데,
이는 ‘하느님의 생명’이라는 주제와 연결되어 이해되는 부분이다.
즉, 그리스도의 성혈을 마신다는 것은
곧 하느님의 생명을 마심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악 성경적 전통에서 본다면 피는 부정한 것처럼 여겨진다.
피가 있는 고기를 그대로 먹어서는 안 되고(창세 9, 4),
산모나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은 부정하며(레위 12장),
모든 짐승의 피는 먹지 말아야 한다(레위 7, 26; 17, 10-16)고 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 안에는 피를 신성시하는 입장과 부정하게 보는 입장이 마치 서로 모순되는 듯이 존재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창세기 9장 4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다만 생명 곧 피가 들어 있는 살코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잘 표현되고 있는 바와 같이 피는 생명이고 원래 하느님께만 속한 것이기에 신성하다.
그러나 그토록 신성한 존재를 신성하지 못한 존재인 인간이
함부로 먹거나 만지게 되면 부정을 타게 되므로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즉, 피를 부정하게 보는 경향은,
신성한 것을 신성하지 못한 존재가 무의미하게 접촉하게 되면,
신성한 것일수록 더 큰 부정을 타게 되는 것이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레위기 12장에서 제시되는 산모의 부정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산모는 출산시 신성한 것으로 여기던 피를 쏟게 되는데,
이 경우 하느님께 속한 피를 쏟게 되므로 부정하게 된다.
목 졸라 죽임 짐승을 먹으면 안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목 졸아 죽인 짐승은,
‘죽은’ 몸 안에 ‘생명’을 상징하는 피를 간직하고 있는 모순을 갖기에 부정 할 수밖에 없다.
제사를 드릴 때에도
일반적으로 피는 제단 위에 올릴 수 없었다.
피는 하느님께 속한 것이기에 제단 위에 올리지 않고,
제단 둘레에 뿌리거나 끼얹었던 것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가 10,25-37)에서
사제와 레위인이 다친 이를 돕지 않고
그냥 지나간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사실 레위인과 사제는 처음부터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였던 것은 아니다.
환자를 돕기 위해 그에게 가까이 가는 모습이 성경에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루가 10, 32).
그러나 그가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는 이내 그를 떠나 가버린다.
피가 자신의 몸에 닿아 부정해져서 전례에 참석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피에 대한 유다인들의 이해를 전제로 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다.
- 모세오경, 생활성서,김혜윤, 2005, P. 168-1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