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나눔 45: 창세기 45-46 장: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을 밝히다
들어가면서
이 장에서는 저자가 두 전승에 따른 대단원을 편집하였기 때문에 같은 사건이 서로 이어지는 절에는 혹은 같은 절속에, 조금은 다른 형태로 되풀이 되었다. 그러나 교묘히 편집되었기 때문에, 장면의 극적 분위기는 고조되어 있다.
드디어 요셉의 이야기는 절정에 이른다. 형제들의 변화된 모습을 목격한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며 목 놓아 운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집트로 오게 된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목숨을 살리시려고, 구원받은 이들의 큰 무리가 되도록”(45, 5.7)하신 일이라고 고백한다. 하느님께서 형들의 죄를 밝히셨듯이(42, 21; 46,16) 이 모든 것 역시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39, 2.3.5.21.23)이 하신 일이니 괴로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요셉은 생명의 하느님의 일꾼이 되기 위해 자신이 그 고통을 겪었다고 이해한다. 비단 형제들뿐 아니라 온 세상을 휩쓴 기근에서 뭇 백성을 구하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41, 57; 50,20). 하느님의 눈, 하느님의 뜻으로 볼 때만이 진정한 용서가 가능하다. 그는 형들과 화해하며 평화를 회복한다.
요셉이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이집트의 재상이라는 기쁜 소식을 들은 야곱은 요셉과 파라오의 초청에 응해 온 일가를 이끌고 이집트로 내려간다. 이때에도 하느님은 밤의 환시 중에 나타나 당신도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며 장차 그곳에서 다시 데리고 올라오리라고 일러, 이집트 탈출 사건을 예시한다(46, 3-4). 그렇게 내려간 이스라엘 집안은 모두 칠십 명이다. 야곱 집안은 요셉의 계획대로 가축을 치기에 가장 좋은 땅인 라메세스 지방에 머물 수 있도록 파라오의 승낙을 얻는다. 요셉은 곡식을 팔아 세상의 돈은 물론 모든 가축과 농토와 나아가 백성들까지 모두 파라오의 소유로 만든다(47, 13-26). 이로써 이집트의 조세제도와 토지제도가 요셉에게 기원하였다고 설명한다.
Text 안에서
창세 45장: 내가 바로 요셉입니다
유다의 말을 듣고 있던 요셉은 유다의 희생정신과 아버지에 대한 그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하여 울음이 터져 나온다. 어떤 의미에서 유다를 비롯한 형제들의 효심은 요셉의 것을 앞지르고 있는 것 같다. 요셉의 시험은 이제 끝났다. 그는 가족들만의 상봉을 위해 측근들을 모두 물러가게 한다.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다고요?”요셉의 고백은 간결하지만 정확하게 상황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아버지에게 그토록 커다란 고통을, 야곱 가정에 비극을 안겨 주었던 바로 그 장본인이 형님들의 눈앞에 서 있다. “비극의 주인공인 아버지께서 분명 살아 계시다는 말이지요?” 요셉은 형들을 가까이 불러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게 해주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내가 바로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아우 요셉입니다.”
-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무조건 감싸지도 신랄하게 비판하지도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들이 저지른 잘못에 다른 동기를 부여하여 형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역기서 우리는 상황처리 방법을 배우게 된다. 형들의 자신을 팔아넘긴 것은 극심한 기근 가운데서 가족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였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섭리는 모든 것에 미치며, 선을 가져다주기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악조차도 이용하신다. 이 심원한 진리는 요셉의 전기를 특징지어 주는 것이 된다. 형들의 양심을 끈질기게 괴롭혀 왔던 이 사건은 결국 하느님의 연출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인 만큼 더 이상 마음으로 괴로워하거나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역사를 다스리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요셉의 말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온 배려를 나타낼 뿐 아니라, 형제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의 막강한 위치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파라오의 어른’이라는 말은 ‘신의 아버지’라는 뜻의 파라오와 거의 비슷한 칭호로서 이집트의 고관을 가리킨다. 옛날의 중근동에서는 <아버지>란 명칭이 높은 지위(정승)의 대명사로 사용되었다. ‘그 온 집안의 주인’이라는 말은 파라오 왕궁의 최고 관리인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집트 전국을 다스리는 자’라는 말은 이집트의 실제적인 행정 책임자를 뜻한다. 요셉이 이집트의 외정과 내정 모두의 실권자임을 과시하는 칭호들이다.
- 요셉은 야곱을 위시해서 가족들이 아직도 오 년이나 남은 이 극심한 기근에서 견뎌 내려면 이집트로 아예 이주해 와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스라엘 사람은 이집트의 북동쪽 국경 가까운 고센지방에서 생활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후에 이집트에 거주하면서 이 지방은 목축에 “가장 좋은 땅”에서 파라오의 가축들도 기르며 살게 된다. 이집트에서 아버지와 형네 식구들 모두를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자신이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겠다고 한다. 요셉은 자신이 그 정도의 일을 충분히 하고도 남을 만큼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음을 형제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형들의 시각적 체험을 강조한다. 사실 형들은 요셉의 시험을 겪으면서 요셉이 이집트에서 행사하는 온갖 권력을 직접 목격한 바 있다. 요셉은 고향에서 틀림없이 떠나기를 주저할 아버지 야곱을 설득시키기 위해 형들의 목격증인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에게 “내가 이집트에서 어떤 영화를 누리고 있는지, 그 밖에 무엇이든지 본 대로 다 아버지께 말씀드려 주십시오.”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 자신이 이집트에 노예로 팔린 사건에 대한 요셉의 신학적인 해설과 온 가족이 이집트로 이주해 와야 한다는 당위성의 설명 이후에 비로소 요셉은 친동생 벤야민의 목을 부둥켜안고 운다. 그 다음 형들과 화해와 용서의 표시로 입을 맞춘 후 서로 붙들고 운다. 요셉의 말을 머리로 받아들인 형들은 이제 요셉의 스스럼없는 용서와 애정의 표시를 대하고 마음의 긴장을 완전히 풀고 요셉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 요셉의 형제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파라오와 신하들이 기뻐하며 특히 파라오는 요셉에게 마차들을 보내어 형제들의 가족과 아버지를 모셔오게 하라고 분부한다.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한 것은 당시의 파라오가 이집트 사람이 아니라, 요셉과 그의 형제들과 같은 나라 출신인 힉소스라고 하는 주장에 잘 어울린다. “요셉의 사적을 모르고”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힌 탈출기 1장 8절의 ‘새 왕’은, 권력을 잃은 마지막 힉소스가 이집트를 쫓겨난 뒤에 정권을 잡은 이집트 출신의 어느 파라오일 것이다. 파라오의 이 큰 호의는 요셉이 예사롭지 않은 봉사를 해 주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파라오의 명령대로 형제들에게 마차를 내어 주고 여행길에 먹을 양식을 주는 것은 물론 형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외출복 한 벌씩, 그리고 친동생 벤야민에게는 다섯 벌과 은돈 삼백 세겔을 준다. 벤야민에게 주는 특혜는 야곱이 요셉에게 보였던 편애를 연상케 한다. 아버지에게 보낼 선물과 이집트로 올 때 필요한 양식도 마련해서 보낸다. 그리고나서 형들에게 도중에 서로 다투지 말라고 당부한다. 벤야민에게 주었던 특혜 때문에 형들이 다툴까 걱정이 되었나 보다.
- 집으로 돌아온 형제들은 야곱에게 요셉이 살아서 이집트의 재상이 되어 있더라고 전한다. 야곱은 너무 뜻밖의 일이라 처음엔 믿지를 못한다. 그러나 자기를 데려오라고 보낸 화려한 이집트이 마차와 선물을 잔뜩 실은 마차들을 보고 아들들의 말을 믿게 된다. 적어도 막내 벤야민과 인질로 붙잡혀 있다던 시므온을 포함하여 열한 명의 아들들이 무사히 돌아왔지 않는가! 야곱은 혼잣말로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한다. 사실 요셉의 죽음은 야곱에게 평생의 한이 되어 마음 한 구석에서 떠나지 않았었는데, 이제 그 죽었다던 아들이 살아 있다니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 이야기에서 하느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마음먹은 이상 인간이 저지른 실수나 죄악에서도 선을 끌어내신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게 하느님의 섭리요 사랑이라는 것이다.
창세기 46장: 야곱일가의 이집트 이주
35장에 끊어졌던 야곱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지면서 요셉의 이야기와 혼합된다. 46장은 이집트로 건너간 야곱 집안의 후손들을 열거하는데 족보에 관심이 많았던 사제계 문헌에 속하는 기록이다. 성조들의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에 이르면 하느님의 계시가 내리는 경우가 흔하다. 이집트에 가는 것은 식량 때문만은 아니다. 하느님의 계획에 따르면 히브리인을 고립시키고, 가나안과 이집트의 영향에서 지켜 주시고, 유일신론을 지키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 마침내 이스라엘 곧 야곱은 모든 식구들을 거느리고 헤브론을 떠나 이집트로 향한다. 브엘세바에 이르자 야곱은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께 제사를 바친다. 아마도 그는 정들었던 선조의 땅 가나안을 떠나 낯선 땅 이집트로 가는 것이 불안해서 하느님을 찾은 것 같다. 제사와 같은 종교적 주제는 그 동안 요셉 설화에서 잊혀져 있었다. 그날 밤 환상 중에 하느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시어 야곱을 안심시켜 주시며 그가 이집트로 이주해야 하는 까닭을 가르쳐 주신다. 우선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네 아버지의 하느님’이라고 소개하신다. 곧 스스로 선친 이사악을 돌보아 주시던 하느님, 조상 때부터 언제나 성실하고 변함없이 은총과 자비를 내리시는 하느님이심을 미지의 세계에 대해 불안해하는 야곱에게 확인시켜 주신다. 그를 지켜주시고 다시 데리고 돌아올 것을 보증하신다. 그러나 이 경우는 야곱을 후세, 크나큰 백성이 되게 하시며 이끌고 돌아온다는 뜻이다.
- 그 다음 야곱에게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꺼리지 말라고 하신다. 여기서 창세기의 저자는 야곱이 이집트로 내려가는 이유가 결코 인간적인 욕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해둔다. 하느님의 의도는 기근에 시달리는 가나안 땅에서 야곱의 후손들이 굶주리지 않고 곡식이 풍부한 이집트에 가서 강대한 민족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느님은 이집트까지 야곱과 친히 동행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저 유명한 순례 의 테마가 다시 여기에 등장한다. 하느님은 약속된 땅과 후손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 성조들과 함께 순례길의 동반자가 되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약속된 땅은 이집트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그곳에서 야곱을 다시 불러내올 것이라고 다짐하신다. 하느님이 이 약속은 요셉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야곱에게 “요셉의 손이 네 눈을 감겨 줄 것이다”고 말한다. 실제로 야곱이 죽은 후 요셉은 그를 선조들이 묻힌 가나안 땅 막벨라 동굴에 안장할 것이다. 이처럼 “그곳에서 불러내리라.”는 다짐은 야곱 개인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지만 탈출기 사건과 연관시켜 긴 안목으로 볼 때 이집트에서 한 민족으로 발돋움한 그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말씀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저자는 하느님의 이 말씀을 통하여 출애굽 사건을 미리 준비해 놓고 있다.
-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이제 안심하고 힘든 여행길을 재촉하는데 야곱에게 딸린 직계자손으로 이집트에 건너간 사람들은 남의 집에서 온 며느리들을 빼고 도합 66명으로 되어 있다. 이 숫자에 야곱과 이집트에 있는 요셉 및 그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나쎄를 합치면 부족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인원 70명이 된다(탈출 1,5;24, 1.9;신명 10,22 참조: 판관 8,30;12,14). 야곱의 자손의 계보는 본래 있던 다른 문헌에서 여기에 넣은 것일 것이다. 70인이라고 하는 수도 대충 말한 것이다. 벤야민의 세 아들과 일곱 손자는 그가 이집트에 가고 나서 태어난 자손이다. 이 수에다 여자나 종의 수를 더하면 유목민의 총수가 나온다. 히브리인이 이집트에 들어간 것은 힉소스 왕조 때라고도 하지만, 실은 힉소스는 이 무렵 이집트를 지배하지 않았던 것 같다. 따라서 기원 전 16세기경의 일이었을 것이다.
- 이집트인은 가축치기를 꺼려하고 싫어했다. 목자들은 시리아 방면에서 오는 유목민이었고, 고도의 문명을 누리는 이집트인에게는 미개한 야만족이었다. 야곱의 아들들은 자진하여 가축을 치는 목자가 되어 인구가 적은 고센 지방에서 고립하여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집트인은 유목민을 싫어했다고 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이집트인은 힉소스가 아니다. 힉소스는 원래 유목민이었다.
※ 참고문헌: 하느님과 함께 걸으며(창세기 해설서), 정태현, 생활성서사, 1990,
p.279-286.
창세기,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p.183-190.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기념 구약성서 주해집, 페데리코 바르바로, 크리스찬
출판사,1986, p.395-406.
성서의 길을 따른 여정, 생활성서사, 1987, P.83-85.
오경, 성서와 함께, 영원한도움 성서연구소 편저, 2006, P.14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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