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나눔 46: 창세기 47-48장: 요셉의 가족들이 파라오를 알현하다
들어가면서
이제 이야기는 요셉의 주도 하에 이루어지는 이집트의 체계화 작업으로 되돌아간다. 성서저자가 여기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은 이집트의 기묘한 전체주의 정부이다. 소유물, 재산,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람 자신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국유화된다. 이집트는 어느 때를 막론하고 절대군주에 의해 통치되어 왔다. 이 같은 체제가 백성을 염려하고 정의감이 있는 사람에 의해 이끌려가는 한에 있어서는 만사가 휼륭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사악하거나 어리석은 통치자의 손에 그 같은 체제가 맡겨질 때는 정치구조 피라밋의 맨 아래 있는 정치 및 사회 경제 조직은 바로 독재적 폭군과 무자비한 억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되고 만다.
출애굽과 계약 및 하느님의 율법이라는 시각에서 기록하고 있는 성서저자는 의롭고 우애있는 사회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관해 뚜렷한 개념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묘사되고 있는 이집트는 결코 그런 사회가 아니다. 모든 땅, 모든 재산, 그리고 백성들 자신마저도 통치자에게 귀속되어 있다. 바로 그것이 ‘종살이 하던 집’ 이집트인 인 것이다.
이 과에서는 요셉이 어떻게 이집트인들을 파라오의 종으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오분의 일 조세제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기원을 밝히고 있다.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권력 아래 모든 토지의 공유화와 중앙집권화는 기원전 16세기에 일어났다. 이 이야기의 저자 야휘스트는 이집트의 이 경제정책의 변화를 요셉에게 돌린다. 다른 한편으로 야휘스트가 그 안에서 녹을 먹고 있는 솔로몬 왕궁의 경제정책을 반영하고 비호하려는 의도에서 이 이야기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Text안에서
창세 47, 13-31: 어른께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요셉은 하느님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 파라오의 꿈을 올바로 해석하고 꿈에 계시된 문제점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한 공로로 대재상에 오른 이후 실수 없이 자기에게 맡겨진 직책을 수행해 왔다. 민심이 안정된 풍년에 뿐 아니라 민심이 흉흉한 대기근에도 나라 전체의 질서와 평안을 유지하면서 원칙에 따라 양곡관리를 현명하게 해나간다. 요셉은 점진적으로 이집트의 모든 토지와 사람들을 파라오에게 예속시킨다.
- 기근이 점점 심해져 가자 이집트 땅뿐 아니라 가나안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까지도 돈을 있는 대로 가져와 요셉에게서 곡식을 사간다. 이집트 사람들은 돈이 다 떨어지자 요셉에게 와서 돈 이외의 수단으로 곡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묻는다. 요셉은 가축을 가져오라고 한다. 이집트인들은 말과 소와 양과 나귀를 가져온다. 이 대목에서 말에 대한 성서의 첫 언급이 나온다. 말이 이집트에 전해진 것은 힉소스 족의 침범이 있었던 기원전 1720-1560년 사이이다. 그 다음 해가 되자 계속된 가뭄으로 농사를 못 짓게 된 이집트인들이 다시 양식을 구하러 온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농사지을 땅과 그들의 몸뚱이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몸과 땅을 다 내놓고 파라오의 종으로 삼는다. 이것은 파라오의 신성과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표현들이다. 단 여기에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사제들에 대한 규정이다. 사제들은 파라오에게서 직접 토지를 하사받았고 그의 녹을 먹고 살기 때문에 파라오에게 땅을 되팔 필요도, 땅의 소출세를 바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곡식의 소출세 이외에 다른 종류의 세금에 대해서는 사제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처럼 사제들의 땅을 제외하곤 이집트 전국의 땅이 적어도 형식상 파라오에게 속해 있었다는 사실은 고대 근동의 문헌으로 입증된다. 이집트 역사에서 명백히 엿 볼 수 있듯이, 힉소스가 다스리기 전에는 땅이 아직 개인의 사유였으나 모세시대에는 사제들의 땅을 제외한 모든 땅이 파라오의 절대관리 하에 있었다.
- 오분의 일 조세제도는 후대의 희랍문화권 안에서 발견되는 세금 제도로서 흉년이 들어 그 해의 농사를 망친 농부들에게 먹을 양식을 주고 토지를 산 다음 경작할 수 있는 씨앗을 주어 그 땅을 경작하게 한 다음 소출의 오분의 일을 세금으로 거두어들이는 제도를 말한다. 기원전 5세기의 희랍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문헌에 이 제도가 소개되고 있는 걸로 보아 이 제도에 대한 언급은 후대의 편집자에 의해 첨부된 것 같다. 이 오분의 일세는 이미 요셉이 재상의 자리에 오르기 전 파라오의 꿈을 해석하는 자리에서 제안한 내용이다(41, 34). 요셉은 파라오 앞에서 제안한 내용을 스스로 어김없이 실천한다. 이로써 요셉은 칠 년간의 풍작과 연이은 칠 년간의 흉작이라는 국가적 이변 속에서도 파라오의 왕권을 공고히 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면서 이집트 전체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 뽑은 다섯 사람을 파라오에게 소개하는 것에 있어서 “다섯”이란 수가 곧잘 나오는데, 이집트 사람들은 특히 “다섯”이란 숫자를 행운을 의미하는 수로 보았다. 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곱”, “열둘”이라는 수를 좋아했다. 라므세스 지방은 이스라엘 사람의 강제노동으로 세운 곡식 저장창고의 두 도성의 하나이다. 라므세스 2세 때 완성되고, 그가 자기의 이름을 본따서 붙인 것이다.
- 이어 야곱이 요셉에게 유언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야곱은 낯선 땅 이집트의 고센 지방에 튼튼하게 정착하여 많은 후손을 갖게 된다. 야곱은 죽음을 준비하는 이 마당에서 죽음의 세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하느님 백성의 장래에 대해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는 요셉을 불러 자기를 반드시 가나안에 묻어 달락 신신당부한다. 야곱은 요셉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집트를 마다하고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약속된 땅 가나안에 묻히겠다는 것이다. 요셉의 약속을 다짐받기 위해 야곱은 그에게 “ 네 신의를 성실하게 지켜 네 손을 내 사타구니에 넣고 맹세하라”고 명한다. 요셉이 자신의 충실한 공직 수행으로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백성들로부터 얻은 신망을 걸고 맹세하며, 생명의 근원지인 남성의 국부에 손을 얹고 맹세하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의 신부감을 고르기 위해 자신의 충복을 파견할 때도 사타구니에 손을 얹어 맹세시킨 바 있었다. 이 경우 맹세를 어기는 사람은 아기를 낳을 수 없게 된다고 믿었다.
- 이 과의 이야기에서는 우리는 요셉이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끝까지 성실하게 수행함으로써 자신의 상전인 파라오뿐 아니라 이집트의 모든 백성들에게 큰 도움을 주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창세 48장: 아우가 형보다 더 커져 숱한 민족을 이룰 것이다
이 이야기는 엘로힘 전승과 야훼전승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두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요셉의 아들들인 므나쎄와 에브라임을 어떻게 야곱의 아들들 항렬에 들 수 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다른 하나는 동생 에브라임이 어떻게 형 므나쎄들보다 우선권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죽음이 가까워진 야곱과 요셉의 두 아들에 대한 구전을 모아 기록하고 있다. 야곱은 고통에 찼던 일생을 돌아보고, 여기서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를 기울이며 두 손자를 자기 아들 항렬에 끼어들게 한다. 요셉은 맏아들이 아니었으나, 에브라임과 므나쎄라고 하는 두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 요셉의 두 아들은 야곱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유산을 이어받을 권리가 있다.
- 요셉은 자기의 아버지의 죽음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두 아들을 데리고 그에게 간다. 문병 온 요셉에게 야곱은 가나안 땅 루즈, 곧 베델에서의 하느님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나쎄를 르우벤이나 시므온과 같은 자기 아들 항렬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에브라임과 므나쎄 이외에 요셉이 난 아들들은 자기 아들 항렬에 들 수 없다고 다만 형들의 부족에 소속하여 유산을 상속받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창세기에는 요셉의 다른 아들들의 존재에 대해선 일체 언급이 없다. 라헬의 죽음에 대한 언급은 이야기의 흐름에 걸맞지 않다. 아마도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가 묻힌 가나안 땅에 묻히고 싶은 야곱의 바람을 간접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가나안에서 정작 야곱이 묻힌 땅은 라헬이 묻힌 에브랏이 아니라 브엘세바의 막벨라 동굴이었다. 이곳에는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이 묻혀 있는 곳이다.
- 야곱은 요셉의 아들들을 보면서 “이 애들이 누구냐?” 고 요셉에게 묻는다. 야곱의 눈이 어두워져 알아보지 못한 것 같다. 아이들에게 축복을 내리기 전에 야곱의 눈이 어두워져 있는 상황과 같다. 그러나 이사악과는 달리 야곱은 누가 형이고 누가 아우인지 똑똑히 알면서도 동생 에브라임을 므나쎄보다 앞세워 축복한다. 요셉은 아버지가 눈이 어둡기 때문에 두 아이의 서열을 착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축복은 하느님의 은혜를 전하는 것으로서, 안수의 형식을 취하였다. 오른 손은 권력이 더 강한 것이다. 따라서 둘째 에브라임이 큰 은혜를 입었다.
- 야곱은 요셉이 아이들을 축복하기에 앞서 아이들에게 입을 맞추고 끌어안으면서 요셉에게 감회에 젖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제 하느님께서 네 아이들까지 보게 해주시는 구나” 온갖 고통을 안겨 준 요셉의 실종이 이제 기쁨의 원천이 된 것이다. 요셉의 두 아이들은 야곱의 무릎 사이에 세워져 있었는데 이는 양자채택의 고대 예식에 속하는 자세였다. 요셉은 자기 아들들과 더불어 축복을 받기 위해 무릎을 끊고 아버지에게 절을 올린다. 그리고 큰 아들 므나쎄는 야곱의 오른쪽에, 작은 아들 에브라임은 왼쪽에 앉게 한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오른쪽은 행운을, 왼쪽은 불운을 의미한다.
- 야곱의 장엄축복은 하느님께 대한 세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하느님, 둘째 야곱의 목자가 되어 주신 하느님, 셋째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야곱을 구원한 천사이다. 야곱은 이 하느님이 요셉의 아이들에게 복을 내려주시기를 청한다. 이어서 야곱은 “나의 이름과 조상들의 이름 아브라함과 이사악이 이 아이들에게 살아 있기를, 이 세상 한복판에서 왕성하게 불어나기를 빕니다” 하고 기원한다. 이 기원은 이야기의 저자가 후대에 에브라임 부족과 므나쎄 부족으로 하여금 비록 그들의 조상들이 이집트 땅에서 태어났지만 결코 이집트인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오른손을 에브라임 머리 위에, 왼손을 므나쎄 머리위에 바꾸어 얹는 것을 고쳐 주려고 한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이 의도적으로 손을 바꿔 얻은 것이라고 밝힌다. 야곱은 형 므나쎄도 큰 민족을 이루겠지만 에브라임은 더 큰 민족을 이루리라고 예언한다. 실제로 두 부족 가운데 에브라임은 더 큰 민족을 이루리라고 예언한다. 실재로 두 부족 가운데 에브라임 부족이 숫자가 더 많았다(민수 1, 22.35;2, 19.21). 동생이 형을 앞서게 되는 상황은 야곱과 에사오의 경우와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서 얻은 쌍둥이 베레스와 제라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이것은 앞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솔로몬 왕궁의 서기관들인 야휘스트들이 형을 제치고 왕위를 차지하게 된 솔로몬의 왕위계승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련된 배려로 생각된다.
- 이어지는 “이스라엘 백성은 너희의 덕을 입고 살며 ‘하느님께서 너를 에브라임처럼, 므나쎄처럼 세워 주시기 바란다.’ 하리라”는 야곱의 축복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느님의 약속 “세상 사람들이 네 덕을 입을 것이다”라는 창세기 12장 3절의 말씀을 연상케 한다. 마지막으로 야곱은 요셉에게 그가 하느님의 배려로 조상들에게 약속된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보장한다. 그러나 요셉은 죽어 이집트 땅에 묻힐 것이고 야곱의 먼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약속된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 이 성서 말씀은 야곱의 축복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나쎄에게 주어지는 과정을 전해 준다. 이 축복의 내용은 아브라함 때 이미 약속하신 땅과 후손에 관한 것이다. 온갖 파란곡절을 겪으면서도 야곱은 선조들의 신앙과 축복을 간직하여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해 준다.
※ 참고문헌: 하느님과 함께 걸으며(창세기 해설서), 정태현, 생활성서사, 1990,
p.288-295.
창세기,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p.190-197.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기념 구약성서 주해집, 페데리코 바르바로, 크리스찬
출판사,1986, p.407-417.
성서의 길을 따른 여정, 생활성서사, 1987, P.85-86.
오경, 성서와 함께, 영원한도움 성서연구소 편저, 2006, P.14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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