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4(23): 행렬의 노래(성소에 들어가는 전례)
들어가면서
시편 24는 ‘시온의 노래’와 교훈적 의도를 지닌 ‘전례시편’에 속한다. 전례 안에서 행렬의 노래로 두 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부분은 순례자가 하느님의 성전에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전례가 이었다. 순례자는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주님이신 하느님께 대한 찬미가를 노래하면서 찾아온다(1-2).
성전 옆에 오면 순례자는 스스로 묻는다. “어떤 사람이 야훼의 산으로 오르랴? 어떤 사람이 그 성소에 들어서랴?”(3)하고. 사제들은 하느님의 성소에 들어가는데 필요한 준비에 대하여 가르쳐 대답한다. “행실과 마음이 깨끗한 사람, 허망한 데 뜻을 두지 않고 거짓 맹세 아니하는 사람”(4)이 “야훼께 복”과 “구원”(5)을 받으리라고 기대하며 거기에 들어갈 수 있다. 순례자는 또 대답한다. “ 이런 사람이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며, 야곱의 하느님 앞에 나갈 사람이다”(6)라고.
이 시편의 두 번째 부분은 다윗이 예루살렘에 세운 계약의 장막에 성궤가 처음으로 엄숙하게 입장하는 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라고 생각된다(2사무 6, 12-17). 이 시편은 성궤의 장엄한 이동에 반주하기 위하여, 후에는 성전의 헌당 축제와 적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장막입구에 서서 사제들은 일종의 호소로써 노래한다. “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오래 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왕께서 드신다.”(7)고.
장막 안에서 다른 일행이 묻는다. “영광의 왕이 누구이신가?”(8) 하고. 앞의 일행이 응답한다. “힘세고 용맹하신 야훼이시다. 싸움터에서 그 용맹 떨치신 야훼이시다”(8)고.
대화는 이어진다. 다시 한번 문을 열라고 하는 부르짖음이 되풀이 되고, 그리고 또 장막 안의 일행은 물음을 되풀이 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10).하고. 밖에 있는 일행은 “만군의 야훼”, 곧 장막의 성궤 안에서 이스라엘을 성지 점령으로 이끄신 “영광의 왕”이라고 대답한다(10). 이 때가 되면 문이 열리고, 그리고 주께서는 당신 백성의 선두에 서 계신 승리의 지휘관처럼 엄숙하게 입장하신다.
Text 안에서
1) 교회의 전례는 시편 24의 두 번째 부분을 강생의 신비의 예언적 고지로 보고, 이 노래에 의해서 하느님의 아들의 이 세상 입장을 축하한다.
전례는 인간에게 만물의 주님, 영광의 왕을 맞이하도록 부른다. 그리고 이 같은 시편 제1부에서 이 왕을 맞아들이는 데 필요한 준비는 죄가 없는 생활, 마음의 깨끗함이라고 설명한다. 대림절과 성탄축일 전날의 전례에 나타나듯, 교회는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첫 강림을 축하하는 동시에 그분의 재림도 생각하고 있다.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으로서 당신의 모든 세력과 영광을 나타내시기 때문이다.
또 이 시편을 가지고 교회는 성지주일,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그리스도의 개선적 입성을 축하한다. 그리고 구세주의 깊은 고통의 수난동안, 교회는 이 시를 가지고 만군의 주님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견디고 참으신 싸움의 영광에 대한 신비를 나타낸다.
옛날, 거룩한 도성에 성궤의 입성으로 이미 전표 되었던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예수님의 입성은, 주님의 부활과 교회를 가지고 만민을 품고 건설될 하느님의 나라와 역사의 마지막 날의 그 결정적 승리에 대한 예고이며 전표이다.
한편 주님께서는 승리자로서 당신의 수난을 시작하셔도 좋다. 왜냐하면 인류의 적인 당신의 적에 대하여 패배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존재하는 모든 좋은 것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사제로 일하시는 성전은 더 크고 더 완전한 것이며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당신 자신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히 속죄 받을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히브9,11-12).
교회는 성 토요일의 아침 기도에 이 시편을 노래함으로써 주께서 승리를 얻으시고 하늘의 영원한 문에 가까이 가셨음을 보고 있다. 그 때, 그 문은 주님과 주님에 의해 구속된 인류를 맞이하고, 하늘의 영원한 성소의 영광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교회의 전통은 이 시편의 제2부를 그리스도 승천의 신비에 대한 예언으로서 해석한 일도 있다. 이 신비적 해석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기 위하여 하늘의 문을 넘으려 할 때 지상에서 하늘 쪽으로 그리스도를 따라온 천사들이 하늘에 있는 다른 천사들을 향하여 영광의 왕이 들어가니 하늘 문의 머리를 들도록 말을 건다. 그러자 하늘의 천사들은 한 사람이 자기네 위로 올라온다고 듣고 놀라서 묻는다.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하고 그리스도를 따라 온 천사들이 대답한다. “힘세고 용맹하신 야훼이시다. 싸움터에서 그 용맹 떨치신 야훼이시다”고. 그리고 이 대화는 천사들 위에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시기까지 되풀이 된다.
이리하여 성궤가 예루살렘의 성전에 안치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 인간성이 아버지의 영광 안에 안치된다고 하는데 대한 예언으로서 나타난다. 곧 지상의 전례는 하늘의 전례를 상징적으로 이루고, 그리고 인간의 구원에 대한 신비를 찬미한다. 승리자로서 아버지의 오른편에 오른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과, 그 위에 사는 모든 것”의 주님이시다. 그분은 우주의 창조주의 말씀이시며, 당신의 피로써 교회를 기워 갚고 전하는 현세의 변천 위에 안정된 터전을 놓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또 하느님의 거룩한 산에 오르실 수가 있는 단 한분의 사람이시다. 그분이야말로 손과 마음이 깨끗하시고, 그리고 주님의 축복과 하느님의 구원을 가져다주는 분이시다. “그리고 내려 가셨던 바로 그분이 모든 것을 완성하시려고 하늘 위로 올라 가셨습니다.(에페 4,10)
2) 성당 축성식 처음에, 주교는 그 성당 밖을 돌면서 바깥에서 성당의 벽에 성수를 뿌리고 나서 입구의 문에 가까이 가 목장 끝으로 세 번 두드리고 나서 큰소리로 말한다.
“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오래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왕께서 드신다.”(7)
안에서 부제가 묻는다.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
주교와 성직자 일동이 대답한다. “힘세고 용맹하신 야훼이시다. 싸움터에 그 용맹 떨치신 야훼이시다”고. 그리고 모두 “들어라”고 외친다.
주교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당에 들어가고 그것을 점유하는 것은 물질적인 장소를 점유할 뿐 아니라 성당의 건물이 상징하는 집단까지 점유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까닭은 교회의 성당의 헌당식은 신앙인의 집단에 오시는 왕이신 그리스도의 즉위를 축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는 영광의 왕을 맞이하기 위하여 마음을 열어야 한다.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권리로서 그리스도께 속하는 땅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이에 초자연적 생명의 확고한 기초를 주셨던 것이다.(1-2) 교회는 또 하느님의 거룩한 산이며, 지금 이 산으로 향하여 지상의 백성들이 합류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혈 안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고, 하늘 쪽에 오르는 나그네의 집단이기도 하다(3-4). 그리스도께서 개선자로서 하늘에 입성할 때, 우리를 거기에 데려 가시고(에페 2, 6), 천사들의 놀라움 속에 우리를 위해서도 하느님의 장막의 영원한 문이 열린다.
시편24편의 노래는 마지막 부활 뒤에 하느님의 모든 백성이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그 때 웅장한 입장의 반주가 될 것이다. 그 때에는 땅에서 하늘로 옮겨가는 사람들의 멀고 먼 나그네길이 끝난다. “ 그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위와 세력과 능력의 천신들을 물리치시고 그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실 것입니다... 그 때에는 하느님께서 만물을 완전히 지배하시게 될 것입니다(1고린 15,24, 28).
전례는 또 같은 이 시편을 처녀 마리아에게도 응용하고 있다.
마리아는 주님의 축복과 자신의 구원이신 하느님의 자비를 받았다. 마리아는 또 영광의 왕이 이 세상에 들어 온 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를 당신의 승리에 참여시키시고, 그리고 마리아의 피승천으로 그리스도의 승천의 신비를 새롭게 하셨던 것이다. 사람 가운데는 아무리 마리아와 같이 하느님의 거룩한 산에 오르는데 필요한 깨끗함을 가지지 못하였다.
3) 이 시편은 초자연적인 신비를 풍부하게 포함할 뿐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귀중한 가르침을 준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향한 말씀이시다.
이 시편은 교회 안에서 전례의 집회를 통하여 또 자신의 마음의 성전으로써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를 지정한다.
성직자로서 하느님께 봉사하려는 사람에게는 특히 깨끗한 생활이 요구된다. 그래서 교회는 신품성사 때에 이 시편을 노래한다. 또한 교회 안에서 살고 하느님께 가까이 가고, 그리고 축복을 얻고 싶어 하는 신자에게는 모두, 생활과 마음의 깨끗함, 이웃사랑이 요구되고 있다(3-5.) 이 시편은 또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 방벽을 세우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왕이 되시기 위하여 우리 마음에 왕좌를 마련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자기의 마음을 연다면 주께서는 언젠가 영원한 나라의 장막의 문을 열어 주실 것이다.
※ 참고문헌: 시편,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73-74.
시편,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기념, 크리스찬 출판사, P.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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