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나눔

시편99(98): 거룩한 왕이신 하느님

마리아 아나빔 2012. 9. 2. 15:51

 

 

 

                                                            시편99(98): 거룩한 왕이신 하느님

 

들어가면서

 

1. 이 시편은 거룩하신 왕께 대한 찬미의 시편으로 특히 그분의 성성에 터전을 둔다.

 

성경은 구약시대로부터 이 거룩하심은 하느님께서 하신 모든 일에 나타나시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절대적으로 피조물과 구별되어 있다. 하느님의 거룩하심이란 하느님께서는 깨끗하심과 절대적 선이시라는 뜻이다.

하느님과 그분의 거룩하심을 생각할 때,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비참을 인정하고 떨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그분의 깨끗하심에 대한 소망을 강하게 느낀다. 그렇다고 하면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느님과 일치하고 그 깨끗하심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깊은 그리움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그분의 거룩하심을 요구하시는 하느님 앞에 서서, 부패한 사람의 마음에는 분개와 반역의 감정도 생길 수가 있다. 사실 모든 죄에는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일종의 반역이 있는 것이다.

 

이 시편은 되풀이하여 성궤와 시온산 위에 성전에 빛나는 위대하신 왕의 성성을 예배하라고 초청을 되풀이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성성의 어떤 면과 계시를 비추어 낸다. 하느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왕권이 나타나면 백성은 떤다. 지성소에서, 주님께서 거룹 위에 앉으시자 대지는 떤다. 하느님께서 백성들 위에 우뚝 솟아 서계시다. 주님께서는 거룩한 분이시다(1-3). 하느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정의와 공정을 사랑하시고, 정의에 따라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지도하신다(4-5).

그러므로 모세, 아론, 사무엘같은 거룩한 인물을 택하시고, 그들이 거룩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간청을 들어 주셨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구름에서 그들에게 당신의 계명을 주시고, 그들의 순종에는 상을 주시고, 그의 죄에 대하여는 벌을 주셨던 것이다(6-9).

 

이 시편은 성궤(5)와 시온의 거룩한 산에 현존하시는(9) 주님을 예배하라고 권하지만, 이것은 하느님의 왕권을 기리는 시편이, 성전의 전례행사에 얼마나 중요했던가를 나타낸다. 왜냐하면 예배에서는 하느님의 왕권이, 백성위에다 새롭게 주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에, 의식에 의하여 지금껏 나타내고 있던 하느님이 드러나고, 그 전망이 차차로 넓게 열렸던 것이다. 한편 무엇보다도 전례에서는 하느님의 이 성성이, 만질 수도 없는 위대함과 깨끗함, 영광과 위엄의 분위기로 나타나고, 그것이 더욱 더 예배를 끌어 들였다.

 

이리하여 하느님의 성성의 계시는 하느님 왕권의 바른 의미를 더욱 더 깊이 이해시켰던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께서는 절대적, 초월적인 분이어서 그분의 왕권은 정치적으로 변천하기 쉬운 사정이나 이스라엘의 좁은 국가적 야심과 혼동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무엇보다도 세속적인 어떠한 야심보다도, 마음속으로부터 주님의 손안에 자신을 맡겨야만 한다. 실제로 하느님의 성성의 계시는, 사람에게 벌써 외부적일 뿐만 아니라 내부가 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사람들은 항상 이 내부적 깨끗함에 대하여 깊은 동경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그리고 사람에게 하느님 자신의 성성을 주심으로써 이 요구를 채워 주시는 이는 그리스도의 은총뿐이다. 이 세상 야심에 대하여 규모가 큰 내부적 깨끗함을 선언한 것은 특히 예언자 이사야와 예레미야였다.

 

2. 말씀의 강생으로써 하느님의 성성은 사람들 사이에 나타나셨다.

 

“성부와 성령과 더불어 ‘홀로 거룩하시다’고 칭송받으시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선언되어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다. 그분은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당신의 몸을 교회를 위해서 바쳤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지도계급에 속한 사람이거나 지도받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모두 성덕에 부르심을 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세례로써 하느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고 하느님 본성에 참여하기에 참으로 거룩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옛날엔 계약의 궤에 있어서 후에는 성전에 나타나셨는데, 호되게 치시기도 하였으며 모세, 아론, 사무엘, 예언자들 같은 일부 택한 사람들에게 나타나시고, 그리고 구름 속에서 말씀하셨던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지금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의 마음에 부어지고, 모두를 하느님과의 밀접한 일치로, 하느님의 같은 성명에 참여하도록 부르시는 것이다.

 

존엄하시고 또 두려워할 하느님의 성성은 지금 우리에게 자비와 사랑의 얼굴을 지니시며 나타나시고, 그분의 사랑을 가지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며, 그리고 사랑을 명령하시고,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시듯 완전하라고 타이르신다. 새로운 율법으로 명령되고 있는 사랑은 모든 성화 수단을 지배하고 힘 있게 하며, 목적을 달성케 한다. 하지만 그래도 하느님과의 일치는 정의와 심판을 제외하지 않는 것과 같이, 구율법의 두려움을 제외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하느님의 이름은 위대하신 분, 두려운 분이시며, 지금도 새삼 말할 나위 없이, 사람의 마음에 열매를 맺는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신다.

 

교회는 승천의 이 시편의 메시아적, 종말론적 의미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은 위대하고 두려워할 이름이시다. 예수께서는 사도들 안에서 지금, 당신의 사제로 택하시고, 그들이 지킨 명령을 그들에게 주시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광은 당신의 성성에 참여하는 교회에 사시는 것이다.

 

3. 이 시편은 이스라엘의 백성과 성인들을 통하여, 교회와 그 목자들에게 있어서 지극히 높고 영광스런 참으로 거룩하신 하느님의 나타나심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총은 하느님의 성성과 영광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빛나게 하시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은 하느님의 영광과 성성의 나타나심이 된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이 성덕과 자기 신분의 완덕을 추구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앞에 열려 있는 성덕의 길이시다. 지금 우리의 모세, 아론, 사무엘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우리에게 아버지의 뜻을 나타내신다.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신다. 그분은 우리를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친히 제물이 되셨다.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이 되셨다.

 

 

※ 참고문헌 : 시편,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240-241.

                시편,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기념, 크리스찬 출판사, P. 579-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