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길잡이

호세아 예언서 입문

마리아 아나빔 2013. 3. 3. 14:17

 

 

      호세아 예언서 입문

 

 

I. 입문

 

 

1. 책의 이름

 

열두 소예언서의 첫 번째 책은 예언자 호세아가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선포한 말씀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을 따서 ‘호세아서’라고 정했다. ‘호세아’란 이름에는 ‘구원하다’라는 뜻이 들어 있다.

ex) 호세아서는 성경에서 욥기 다음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책이다. 왜냐하면 이 책을 비평할 수 있는 다른 양식이 없기 때문이다.

 

2. 저자

 

예레미야가 남유다와 운명을 함께 한 예언자라면,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쇠퇴와 멸망을 함께 겪어야 했던 예언자이다. 북 이스라엘의 출신으로 아시리아의 3차 공격 때, 페카왕 직전까지 즉 사마리아 함락 직전까지 예언활동을 한다. 그는 자신의 결혼생활에 비추어 하느님의 말씀을 애절하게 전하고 있다.

 

3. 시대배경

 

예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이스라엘 왕국은 번영과 평화를 누렸다. 그의 체세 말기(기원전 750년경)에 예언 활동을 시작한 호세아는 이 평화를, 마치 태풍의 눈처럼 곧 다가올 처참한 상황을 예고하는 평온함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예로보암 2세가 죽자(기원전 746) 호세아의 예언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안으로 암살과 음모가 난무하여, 22년 동안 임금이 여섯 명이나 교체되었다. 밖으로는 강대국 아시리아가 근동의 통치권자로 세력을 확장하며 압박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호세아는 무엇보다 이스라엘 백성의 걷잡을 수 없는 종교적, 도덕적 타락(4, 1-2;6,7-10)이 쇠락과 멸망의 원인이라고 비판하면서, 종교와 사회의 지도층을 집중 고발한다. 호세아서는 기원전 722년 사마리아가 멸망한 후 호세아의 제자들이 스승의 예언 신탁 말씀을 수집하여 유다 왕국으로 가지고 와서 편집 완성하였다고 본다.

 

4. 구분

 

1-3장: 불충실한 아내와 충실한 남편(1,1-3,5) 호세아의 체험이 담긴 부분으로 결혼 생활이 라는 상징을 통해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 관계를 드러낸다.

4-14장: 불충실한 국가와 충실하신 하느님

4,1-9,9 - 예로보암 2세의 재위 말기에 쇠퇴기로 접어든 정치상황

9,10-14,9-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애절한 사랑

 

 

II. 예언자 호세아

 

호세아는 아모스와 함께 저술 예언자이다. 자신이 직접 쓰지 않았어도 그가 예언한 내용이 책으로 집대성된 예언자를 저술예언자라고 부른다. 호세아는 기원전 8세기 후반기에 ‘에프라임’(또는 이스라엘)이라고도 불리는 북이스라엘 왕국에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사회 비판적 성격이 강한 아모스에 비해,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정치, 사회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경신례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호세아는 말씀만이 아니라 그의 삶 전제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의 결혼 생활 자제가 예언자로서 받은 소명이었다. 그는 그듭 불륜에 빠지는 죄 많은 여인을 계속 받아들이는 자신의 결혼생활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전한다. 하느님이 처지에서 하느님께서 느끼시는 감정을 자기 것으로 삼아 표출하는 호세아의 선포는 열정적이고 호소력이 있으며 힘이 넘친다.

 

 

 

III. 내용

 

1. 호세아의 결혼(1-3장)

호세아의 초기 예언은 그의 사생활에 관한 것이다. 그의 결혼 생활 자체가 하느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즉 하느님 사랑의 포기와 회복의 상징이다. 호세아는 세 자녀를 낳는데 그 이름과 뜻은 아래와 같다.

 

1) 첫째 아들(이즈르엘): 예후가 무자비한 피의 숙청을 벌인 장소 이름(1열왕 21장) 을 빌어서 이즈르엘이라고 지었는데, 이는 야훼께서 예후 집안을 처벌하시겠다는 상징으로 북왕조의 운명을 암시한다.

 

2) 둘째 딸(로 루하마: no mercy): ‘천더기’라는 뜻, ‘사랑과 자비를 받지 못하는 여자’ 즉 이스라엘을 의미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야훼의 인내가 한계를 넘었다는 상징이다.

 

3) 셋째 아들(로 암미: not my people): ‘나의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버린 자식, 극도로 타락한 이스라엘을 상징하며, 이는 야훼께서 계약 관계를 끊고 당신 백성을 버렸다는 표시이다.

 

세 남매와 호세아를 버리고 정부들을 따라가 고메르처럼, 이스라엘도 하느님과 계약을 저버리고 잡신들을 섬기는 우상 숭배를 하여 간음행위를 저질렀다고 지적한다. 주님께 돌아와 주님의 백성(암미: 나의 백성)이 되고 주님의 자비를 입는 아내(루하마) 가 되라고 우리를 초대한다.

 

ex 1) 고메르는 누구인가?

1) 풍요다산과 연관 있는 신전의 창녀(예전의 학설)

2) 가나안의 바알 신을 숭배하는 종교혼합주의적인 이스라엘을 풍자한 상징(현대 학설)

즉 하느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풍자하는 것으로 하느님과 이스라엘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로써 호세아는 자신의 삶으로써 어떻게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대하시는지 예언한다.

 

ex 2) 1장7절:활이나 칼, 군마나 기병으로 구원해주지 않으리라” 라는 말씀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뜻이 다름을 알아들을 수 있다. 하느님은 우리가 기대하지 않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응답해 오신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이 어떻게 일상 안에서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지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이러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진보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ex 3) 2,8 “내가 이제 가시나무로 그 여자의 길을 막고 담을 둘러쳐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라” 이 안에서 우리는 ‘식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일이 나에게 그리고 공동체에 좋지 않게 일어날 때는 1) 나에게 좋지 않기에 하느님이 막을 수 있다. 2) 하느님께서 인내를 심어주시기 위해서이다. 등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ex 4) 2장 16절“그러나 이제 그 영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광야는 하느님과의 첫 사랑의 장소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생각한다. 시나이 산에서의 계약 그것이 사랑의 표징이다. 이러한 광야는 사실 힘들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그리고 사람들과 고립된 고독한 장소이다. 그 안에서 하느님이 홀로 한 인간에게 전부로 다가온다.

 

ex 5) 2장 18절 “내가 더 이상 나를 ‘내 바알(비를 관장하는 신’이라 부르지 않고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 양다리를 걸친 이스라엘(가나안 신과 야훼 하느님)은 오직 하느님만이 용서와 회복이 가능하다. 여기서는 단지 남자와 여자로 돌아가는 것을 넘어 모든 피조물들과의 관계도 회복됨을 의미한다.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피조물의 관계도 회복된다. 그런 만약 광야생활로 돌아가지 않으면 이스라엘에게 고난이 예고된다.

 

ex 6) 2장 18절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인간의 이상적인 혼인에는 상호성, 항구성, 배타성(only you)을 전제조건으로 맺어진다. 이처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안에서도 이 조건이 요구되는데 바로 정의와 공정 그리고 신의(emeth/ amen: 계약)와 자비(hesed: 충실한 사랑)이다.

 

ex 7) 2장 22절 “그러면 너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을 아는 예지(knowledge of God)이다. 백성들에 대한 호세아의 비난은 그들이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는데 집중되어 있다. 그는 '알다'라는 단어를 매우 자주 쓰는데 '다앗 엘로힘(daath elohim)이라는 말과 함께 쓴다. 다앗 엘로힘이란 '하느님을 앎'이라고 옮길 수 있는 단어다. '야다'(yada)라는 동사는 그냥 '안다'는 뜻이 아니라 ' 더불어 정을 통한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셈어에서는 그 말이 정신적인 관계와 더불어 성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앎이란 내적인 귀속, 느낌, 영혼 속으로 받아들임을 다 내포한다. 그것은 지적 행위와 감성적 행위를 둘 다 의미한다. 즉 적극적인 관심, 내적인 결혼, 헌신 혹은 한 인간과의 결합을 의미하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또한 누군가를 동정하는 것, 불쌍하게 여기는 것 또는 사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다앗 엘로힘이란 말은 하느님과 공감 혹은 동정(sympathy for God)한다는 뜻이다. 사랑과 지식으로 전인격적으로 성경의 사람은 생각과 감정이 서로 나뉘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전체 인간을 전체 인간으로 본다.  따라서 다앗 엘로힘은 하느님가 이스라엘의 관계를 약혼, 결혼, 배신, 재결합으로 생각하는 호세아의 사고의 틀속에서 이해애햐 한다. 이는 '음탕한 바람'의 반대로서의  '하느님을 앎'은 하느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 또는 하느님과 동정을 나누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의 전인격적 관계 맺음을 의미한다.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알아듣는 예지를 알 때, 그러할 때 모든 것이 회복되고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ex 8) 성경 안에 아가서가 들어올 수 있음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그린 호세아의 영향이 커다. 이러한 남녀의 사랑을 그린 연애시들은 이집트에서 많이 유행했다.

 

2. 지도자와 백성의 죄와 불성실한 회개(4, 1-7,2)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겉으로는 하느님을 아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하느님을 모른다고 지적한다(4, 1-2, 5, 1-4 참조). 그 책임은 백성을 올바르게 인도해야 할 사제들과 지도자들에게 있다고 추궁하는 가운데, 호된 심판을 받으리라는 경고와 함께 백성의 탄식(6, 1-3)을 전한다. 그러나 그들의 회개가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것에 그치므로(6,4) 그들의 행실은(6, 7-7,2) 심판의 재앙을 부를 뿐이라고 밝힌다.

 

ex 1) 호세아의 예언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고발하는 법정고발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 고발의 원천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단절에 있다. 이 단절의 회복을 위해서 바오로 사도는 모든 피조물들까지 신음하며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음을 표현한다. 만약 나를 지지해주는 존재(하느님)이 없으면 나의 모든 것은 파괴되고 의미를 상실한다.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이 없이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바로 이러한 단절의 상태에 있는 것이 된다.

 

ex 2) 호세아가 말하는 사회의 죄는 하느님의 예지를 백성에게 가르쳐주지 않은 죄이다. 이로써 불륜의 영인 우상숭배가 들어온 것에 있다.

 

 

3. 국가적인 배신과 우상 숭배(7,3-9,9)

 

예로보암 2세 이후 반복되는 왕위 찬탈로 이스라엘은 무법천지가 되었다. 불의와 부패는 고위층에만 있지 않았다. 호세아는 반란에 가담한 자들의 가슴이 음모와 술책으로 뜨거워 화덕처럼 달아올랐을 뿐 아니라(7,7), 대신들이 부정직하고 사기를 치며 개인의 이기심에 눈이 어두워 하느님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하느님께 의지하고 않고 세상 것에 빠져 살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유지하는 데만 몰두하였다. 친 이집트파와 친 아시리아파로 나뉜 정치적 파당은 자신의 위치를 든든하게 하려고 저마다 외세의 힘을 빌리는 데 급급하다가, 결국 온 나라를 강대국에게 제물로 바치고 말았다.

 

ex) 지도자들의 죄는 정의와 공정을 세우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하느님으로 가득찰 때 우리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4) 계약의 파기(9,10-13,15)

 

호세아서는 이스라엘의 출애급 사건을 중심으로 한 광야 여정을 본보기로 제시하며, 그곳에서 이루어진 선택과 계약 관계를 근본 사상으로 삼는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신 야훼의 사랑이 이스라엘 역사의 모든 사건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한다.

 

호세아는 하느님의 사랑과 약속을 저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충성을 바치며 이방인들의 생활방식을 좇아 사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간음과 같은 것이라고 본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파기한 것이다. 계약 파기는 하느님의 심판을 자초하기 마련이다. 당대 이스라엘의 모든 문제가 바로 이 계약의 파기에서 생겨났다는 것이 호세아의 견해이다.

 

 

5) 회개와 구원 - 주님의 충실한 사랑(14장)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배신한 죄에 대한 심판은 불가피하였다. 그러나 그 관계는 사마리아 함락으로 끝날 수 없었다. 아내에게 배신당한 남자가 그 아내와 다시 함께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실 수가 없었다. 호세아가 결혼 서약을 저버린 여인을 속량하기 기꺼이 데려오듯이, 하느님의 사랑은 죄 많은 이스라엘을 속량하시고 계약 관계를 바르게 다시 놓고자 한다(14, 5-9).

 

호세아의 사랑이 고메르의 죄보다도 훨씬 깊고 크듯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끝이 없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 돌아오라고 호소하시며, 당신께 돌아오는 자를 무조건 용서하시는 하느님이시다. 아픈 일은 그 죄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ex 1) 회개로 정의와 신의의 씨앗을 뿌리는 하느님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슨 씨앗을 뿌리고 있는가? 시련과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따뜻한 사랑을 뿌리고 살 수도 있다. (안나의 일기의 에틸렛처럼) 여기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고 이 위대함은 하느님에게서 나온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우리는 주님을 찾을 때이다.

 

ex 2) "나 밖에 너희를 구원할 이가 없다” 하느님의 예지가 필요하다. 그러할 때 황소가 아닌 우리의 입술로 하느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입술로 하느님을 바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는 행위 즉 우리의 의지를 바치는 것이다. 대 데레사의 6궁방에서 있는 영혼은 충분히 하느님의 사람으로 정화된 영혼이다. 그러나 그 영혼이 7궁방으로 하느님과의 일치에 이르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어둔 밤’을 거치게 되는 데 그것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바치는 것이다. 여기서 ‘어둔 밤’이란 그토록 사랑하는 하느님이 갑자기 사라질 때 영혼이 느끼는 고통이다. 이 안에서 영혼의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 의지를 태워버린다고 한다. 또한 자유의지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지은 원죄에 안에도 있다. 그 자유의지를 다시 하느님께 드림으로써 그 상태를 돌아간다. 즉 자유롭게 하느님과 에덴동산을 함께 거닐 수 있었던 상태로 회복되어 하느님과 함께 하게 된다.

 

ex 3) 14장 5-9절: 하느님이 한 영혼을 찾아올 때 우리는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며,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고 싱그럽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수도자로써 예언자적 증거란 하느님이 한 영혼 을 찾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있다.

 

 

IV. 가르침

 

호세아가 몰두하는 분은 한결같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이다. 그이 초점은 이스라엘의 죄상으 파헤치거나 죄목을 나열하는데 있지 않고, 이스라엘을 송두리째 받아 안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데 있다. 이 사랑은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다(1요한 4,10). 그 사랑을 외면하고는 다른 곳에서 위안과 기쁨을 찾을 수가 없다. 그분을 다시 알아보기 위해서는 회개가 유일한 길이다. 하느님을 알아본다는 것은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진정한 깨달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야훼를 안다는 말은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해서 가난하고 궁핍한 자도 도움을 갈구하는 사회에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자 주님께 돌아가자”(6,1)

 

ex 1) 예언자 호세아는 “나의 하느님을 위한 에프라임의 파수꾼” 그러나 그 길은 고난의 길이다. 이러한 예언자 호세아는 “하느님 사랑의 예언자”로서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임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즉 무엇보다 우리에게 하느님을 아는 예지가 필요함을 어필하다.

 

 

ex 2) 과거를 돌아보는 마당에 아모스는 하느님이 무엇을 하셨는가(2,9-10)를 보고 호세아는 하느님이 이스라엘에게 어떤 정을 베푸셨는가?(11,1-4)를 본다. 아모스의 말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세상 많은 민족들 가운데 하느님이 골라 낸 민족(3,2)이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에는 '사랑하는 (hesed)자도, 신실한(emeth) 자도 없고 하느님을 알아주는 자 또한 없는 것이다(4,1).

 

 

※ 참고문헌: 성경읽기 안내 구약2(성서사십주간), 성서와 함께, pp.104-109.

                예언자들, 아브라함 J. 헤셀지음. 이현주 옮김, 삼인, 2004, PP. 8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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