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빈센트의 향기를 성경 안에서

성 빈센트 드 폴의 영적 여정과 영성의 특징

마리아 아나빔 2013. 3. 15. 17:00

  

 

 

                                     성 빈센트 드 폴의 영적 여정과 영성의 특징

 

17세기 프랑스는 가난한 자들, 농촌 사람들, 빈자들로 구성된 2천만의 인구로서 대부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에 빈센트는 전쟁, 기아, 내란 그리고 불평등의 신분사회의 혼란한 시대상황 안에서 온갖 비참함과 싸우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랑과 헌신의 삶을 살게 된다. 그는 더 나아가 교회의 기강을 확립하고 복음화 하는데 수많은 업적을 이룩한다.

빈센트는 80년이라는 긴 일생동안 매우 혼란한 시대를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 겪었던 사건, 예기치 않은 많은 일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섭리를 조금씩 깨달으면서 회심의 삶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삶으로 자신의 일생을 헌신하며 하느님께 봉헌한다.

따라서 우리가 빈센트의 영성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영적 삶의 여정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생활규범 104조는 빈센트 영성의 특징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빈센트 영적여정 안에서 생겨난 그의 영성의 특징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영정 여정도 함께 숙고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고 그분이 사셨던 삶을 성령께서는 빈센트라는 역사상의 인물을 통해 자비의 수녀들에게 사명으로 주었고, 우리는 그의 영성에 기초하여 우리의 수도 삶의 양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1. 빈센트의 영적 여정

 

1) 초기여정 (1581년-1610년)

 

빈센트는 프랑스 전역에 걸쳐 혼란한 시기였던 1581년 4월 24일 프랑스 남서부 랑드 지방의 닥스시 뿌이에서 평범한 농가의 가정에서 태어난다. 그는 아버지 장 드 폴(Jean de Paul)과 어머니 베르트랑드 드 모라(Bertrande de Moras) 사이의 6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나 돼지, 소, 양 등의 가축을 돌보며 가난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알면서 성장한다. 특히 신심이 깊었던 어머니의 모습을 통하여 소박한 시골 처녀들의 삶의 정신을 배운다. 또한 그는 가난한 시골의 삶의 자리를 통하여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며, 단순함으로 일관된 성실한 삶의 자세도 터득한다. 특히 자연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기다리는 법과 자연의 결실에 의존하는 존재로서 겸손함과 보이지 않는 것에 투신할 수 있는 식별력 등 대지가 주는 선함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 이러한 그의 삶은 농촌 출신으로서의 지혜와 인내 현실적인 감각과 대담한 결단력으로 훗날 그로 하여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 사업을 효과적으로 실천하게 하는데 있어 밑바탕이 된다.

 

빈센트는 12살 때 닥스에 있는 코르들리에(Cordeliers)회 수도원에서 공부를 한다. 한 때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그 지방의 유지인 드 코메(M. de Comet)의 도움으로 가정교사를 하면서 학업을 계속한다. 그리고 1596년 12월 20일 비다슈(Bidache)교회에서 타르브(Tarbes)교구의 주교로부터 삭발례를 받고 하급 성직자의 성품을 받는다. 그 후 툴루즈 대학에서 신학을 더 깊이 공부한 다음 1600년 9월 23일 생줄리앙 성의 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된다. 그리고 며칠 후 뷔제(Buzet) 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숲속의 작은 성당에서 첫 미사를 올린다. 이 무렵 그는 아버지를 여의게 된다.

서품을 받은 후, 드 코메는 빈센트를 튈(Tulle) 본당의 주임 신부로 임명되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미 로마 성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사람이 있었기에 툴루즈로 돌아와 신학공부를 계속하여 1604년 신학사가 된다. 그리하여 페트루스 롬바르두스(Petrus Lombardus)의「명제집(Sententiae)」을 강의 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1605년에서 1607년 사이에 그의 행적은 불분명하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터어키 포로가 되어 모로코 근처에서 노예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역사적인 신빙성은 적다. 노예생활에서 풀러난 그는 로마로 갔다가 프랑스왕 앙리 4세(Henri Ⅳ)의 밀사가 되어 파리로 돌아오게 된다. 파리에 돌아온 빈센트는 동향인 랑드 지방의 소르의 판사인 베르트랑 뒬루와 함께 방을 같이 쓰게 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게 된다. 그러나 그는 누명이 밝혀질 6개월 동안 침묵으로 인내롭게 잘 참아 견디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는 굳은 신앙심을 보여주는 하느님 체험이 된다. 훗날 그는 이 사건을 두고 가장 무서운 불과 같은 시련이라고 고백한다.

 

1610년 빈센트는 파리 궁전의 전속 사제로서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Marguerite de Valois) 여왕의 빈민 구제 담당 사제로 일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애덕 사업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어려웠던 몇 년의 경험으로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깨닫고 가난한 이들의 궁핍을 몸소 체험하고 그들의 소외감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 사업을 통하여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는 영적이고 물적인 아버지로 알려지게 된다.

 

 

2) 마음의 변화와 회심의 여정 (1611-1624)

 

이 시기는 빈센트가 자신의 꿈과 하느님의 계획이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되는 중요한 시기이다. 1612년 5월 2일 클리쉬의 첫 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한 후, 빈센트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하느님 사업에로 완전한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1613년 2월 20일, 필립 엠마누엘 드 공디(Philippe-Emmanuel de Gondi) 가문에 있을 때 시작된다. 그리고 1617년 8월 1일 파견된 그의 첫 본당 사띠용 레 동브(Câtillon-les-Dombes)의 본당 신부로 사목하면서 현실적으로 구체화 된다.

그것은 ‘애덕 동지회’라는 남자 평신도들의 단체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도와주기 위하여 만들어진다. 따라서 이 단체는 본당을 중심으로 긴급하게 요청되는 가난한 이들을 영적 육적으로 돌보아 주게 된다. 그리고 이 단체는 평신도 여성들로 구성된 ‘애덕 부인회’라는 단체와 함께 활동하게 되며, 사랑의 딸회를 창설하게 되는 기원이다. 또한 19세기 앙토안느-프레드릭 오자남(Antonie-Fredric Ozanam)이 세운 ‘빈첸시오 아 바울로회’의 평신도 활동 단체의 출발점이 된다.

 

빈센트는 샤띠용 레 동브에서 시작된 애덕회가 여러 곳에 설립됨에 따라서 이들에 대한 재교육과 제반 사항을 전달해 줄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루이즈 드 마리약(St. Louise de Marillac 1591-1660)과 함께 활동하게 된다. 특히 애덕 부인들은 그들의 사회적 신분 때문에 봉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병자들을 간호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 할 수 있는 시골 처녀들로 이루어진 ‘사랑의 딸회’가 1633년 11월 29일 창설된다. 이들은 오로지 주님을 공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가난한 자의 종이 그들의 신분이었다.

1625년 4월 17일 빈센트는 가난한 이들의 영혼을 돌보아 주는 ‘전교회’를 창설한다. 전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후계자들을 조직적으로 양성하고 교육하며 규칙적으로 전교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이들은 시골의 가난한 이들에게 설교를 하며 병원이나 감옥, 군선이나 누추한 집을 찾아가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한다.

 

무엇보다도 빈센트는 성직자들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성화하기 위한 성직자 개혁에 큰 관심을 갖는다. 이것은 그가 영혼들의 구원과 성화를 위하여 성직자들의 역할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 것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것은 젊은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절감하였기에, 성직에 필요한 목자로서의 영성과 성찬예식의 기초에 관한 학습과정을 위한 신학교를 창설한다. 또한 생 나자르에는 서품자들을 위한 묵상회, 화요회, 성직자들을 위한 피정연수회와 평생교육 프로그램과 같은 피정사업을 일으켜 성직자들의 성화와 심신 수련을 통한 많은 영혼들을 구하는 일에 헌신한다.

 

3) 자비의 씨앗(1651-1660)

 

빈센트는 애덕동지회, 애덕부인회와 사랑의 딸 그리고 전교회 회원들을 프랑스 너머의 해외에 보내게 된다. 1648년 마다가스카르에 처음으로 선교사를 보내게 되고 이후에는 이탈리아, 로마, 중국 등에까지 보낸다. 그 당시 이러한 선교 사명을 시작할 때는 어려움이 많았다. 특별히 마다가스카르와 중국에 회원을 보낼 때에는 많은 선교사들이 가는 도중에 사망한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보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사랑의 사업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빈센트는 고아구제사업, 죄수들과 노예들을 위한 사업, 질병과 전쟁으로 인한 부랑자들의 구제사업 등 수 많은 업적을 이룩한다. 마침내 온 생애를 다 바쳐 가난한 이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응답했던 그는 1660년 9월 27일 일흔 아홉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나라로 떠난다. 그리고 그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씨앗은 오늘날 우리에게 자라고 있으며 또한 세상 끝 날까지 커갈 것이다.

 

 

2. 그리스도 중심의 빈센트 영성의 특징들

 

빈센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파스카 사랑을 관상하는데서 흘러나온다. 특히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육화의 신비와 ‘십자가’를 통한 파스카 신비는 인간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드러내는 커다란 두 축이다. 따라서 빈센트의 삶은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육화 시킨 그분의 강생에서 시작하여 말씀과 업적으로 일생에 걸쳐 아버지의 뜻과 그 분의 일을 행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 삶을 이웃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자신의 삶 속에 내면화시켜 그리스도의 사랑에 다가간 것이 된다. 이렇듯 빈센트는 일생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관상함으로써, 그분의 삶 전체를 자신의 전 인격체로 응답하며 통합된 삶을 완성한다.

 

빈센트가 이러한 육화 하신 그리스도의 인격을 더 깊이 관상하고 심화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당대의 위대한 영성가인 삐에르 드 베륄(Pierre de Bérulle)주교와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빈센트는 베륄의 영성에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독자적인 영성의 길로 나간다. 즉 빈센트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존재는 추상적이고, 사변적으로 흠숭하며, 덕으로서만 현존하는 분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존재는 현실세계 안에 육화되어 함께 계시는 분, 가난한 이웃 안에 현존하시는 분이다. 냉철한 현실적 감각을 지닌 빈센트는 이것을 아주 잘 이해했다. 왜냐하면 빈센트는 그의 삶 자체가 농민의 아들로서 대지의 영성에 깊이 뿌리 내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빈센트에게 있어서 육화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자비로운 사랑이 그분으로 하여금 자신의 모든 것을 비워 인간이 되신 사랑 그 자체이신 그분의 인격과 사명에 있다. 또한 그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로 자신을 바치기로 맹세한 것도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삶의 대전환은 두 차례에 걸친 신앙 체험에 따른 회심과 당대의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으로 그의 삶이 그리스도 중심에로 전환이 이루어진 것에 있다. 그리하여 빈센트는 그의 삶이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로 불리워진 그의 소명을 알아듣게 된다.

 

그러므로 빈센트의 영성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예수 그리스도’ 의 인격과 그분의 사명 그리고 그분의 삶을 본받는 것으로 그리스도 중심의 영성이다. 이러한 그리스도 중심의 영성은 특히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을 주님으로 섬기는 것에 있다. 이것이 구체적인 빈센트 영성의 원천이 되며, 그의 삶의 원동력이 된다. 빈센트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자신의 최고의 규범으로 삼고 그리스도께 집중된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인 그의 영성과 삶에 몇 가지 두드러진 영성적인 특징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생활규범 104조에서 언급하고 있는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이다. 그 밖에 ‘가난한 사람들 안에 계신 우리의 주님’(생활규범 204조), ‘관상과 활동의 조화’(304조), ‘정감적이고 효과적인 사랑의 통합성’(생활규범 202조), ‘하느님 자비의 보편성’(생활규범 203조/ 205조) 그리고 많은 이들과 함께 하느님의 사업을 하는 연대성(생활규범 207)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빈센트의 영성적 요소들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셨던 그분의 삶과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산 빈센트의 삶이 서로 깊은 상호 관련성을 지니며 또한 그의 독창적 영적 특징들로 자리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빈센트 영성의 특징들은 바로 빈센트 영성의 창조성을 동시에 말해준다.

 

1)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

 

빈센트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는 그의 영적 삶에 있어서 하느님 뜻의 식별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언제나 아버지의 이끄심에 당신의 삶을 전적으로 의탁하셨고, 또한 우리에게도 어린이의 마음으로 아버지께 신뢰를 두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신 것에 모범을 두고 있다(SV VI, 308). 무엇보다도 이것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시라는 신뢰에 기인된다.

따라서 빈센트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섭리란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나 사건들 안에서 조차도 항상 하느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하느님의 보호’에 대하여 신뢰를 두는 마음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빈센트는 모든 일에는 하느님 은총의 때가 있기에 앞서 나가거나 과도하게 걱정하지 않기를 권고 한다(SV II 456). 이렇듯 빈센트의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에는 ‘하느님의 뜻’ 과 ‘시대적 징표’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 그의 삶에 식별기준이 된다. 또한 그는 이에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 것을 ‘기도’라고 여겼다. 이것은 빈센트가 모든 순간에 언제나 기도하셨던 그리스도를 관상한 것에서 비롯된다.

 

하느님의 뜻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오직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빈센트의 삶 역시 하느님 섭리를 따라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을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이러한 하느님의 뜻은 빈센트에게 모든 것을 ‘하느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자신의 뜻에 대한 ‘전적인 포기’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한 가장 일차적 요소이다. 또한 그는 이것을 그리스도인이 거룩해질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라 믿는다. 그래서 그는 전교회 신부들과 애덕의 딸들에게 우리는 자신을 하느님께 바쳐야 하고 하느님을 위해 우리 자신을 닮아 소진할 때까지 봉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SV II, 36). 또한 그는 비록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하느님의 뜻이 분명히 나타나기 전에는 아무 것도 결코 결정하려 들지 않았으며. 어떤 결정을 할 때 상당히 신중하게 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뛰어난 식별력으로 말미암아,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원하시는 부르심의 징표들을 민감하게 알아듣고 응답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실현하고자 할 때, 언제나 우선적으로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식별하였던 빈센트의 비전을 시도하여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 식별은 공동체 차원뿐만 아니라 개인 차원의 식별도 가능할 것이다.

 

시대의 징표

 

빈센트가 17세기 프랑스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고, 많은 하느님의 사업을 할 수 있었던 일들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특히 폴빌과 샤티용 레 동브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하느님이 그에게 원하신 뜻이 바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물적으로 도움을 주며 봉사하는 삶임을 그가 잘 알아들은 경우가 된다. 그리고 그가 하느님의 뜻을 찾는 방법은 언제나 하느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빈센트는 삶속에서 ‘하느님의 뜻’과 ‘시대의 징표’를 식별기준으로 삼는다.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시대의 징표’에 대한 예리한 지성과 통찰로 현대의 가치, 위기, 요청을 분명히 인식해야하며, 시대의 ‘징표’에 관해서 열린 마음을 지니고 유연한 자세로 하느님의 섭리에 협력해야 한다.

 

2) 가난한 사람들 안에 계신 우리의 주님

 

빈센트의 생애를 살펴보면, 젊은 날은 자신의 생활의 안정을 위하여 노력하며 하느님의 뜻과 자신의 뜻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인간의 모습이다. 이러한 그가 세속적 명예와 욕구를 추구하던 처음의 자세를 버리고 그 대신에 열정적이고 단호한 마음으로 거룩함을 추구하는 회심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것은 특히 빈센트가 두 차례의 신앙 체험과 회심을 통하여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에 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연민을 지니시고 돌보아 주신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일생을 바치기로 맹세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날 빈센트는 공디(Gondi)부인의 권유로 폴빌(Folleville)의 간스라는 곳에 살고 있는 가난한 농부의 임종을 지켜보게 된다. 이 농부는 빈센트의 권유로 죽음을 앞두고 총고해를 한다. 그런데 이 폴빌에서 가난한 영혼을 위한 방문은 빈센트에게 하느님 사업의 구체적인 사명감을 불어넣어 주는 계기가 된다. 그리하여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자신의 소명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하느님 사랑의 결정체인 ‘인간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게 되는 체험이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인격’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에 대한 발견과 깨달음이다. 또한 그것은 하느님 모상을 지닌 존엄한 인간으로 ‘영혼 구원’과 ‘인간 존엄성의 품위’를 돌보는 것으로 바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가 된다.

 

이렇듯 빈센트는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인간에 대해 연민과 측은지심의 마음을 보았기에 불우한 사람들을 이웃으로만 보지 않고 그들 안에서 ‘우리의 주님’까지도 발견한다. 따라서 빈센트에게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는 단순한 사회적 동정심이나 의무감이 아니라 그것은 그리스도의 인간에 대한 연민 어린 사랑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그는 가장 비참하고 소외되고, 영적 육적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삶으로 자신이 불림을 받았음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연민, 온유, 진심어린 사랑과 존경과 헌신이 요구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빈센트 역시 철저하게 인간을 위해서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이해했듯이, 그분의 사명을 자신의 사명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므로 이 사건의 체험은 빈센트로 하여금 가난한 이들 안에 현존(現存)하시면서 그들에게 봉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인간에 대한 사랑’에 대한 그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발견한 것은 육화하신 그분의 인격자체가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증거 하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모습을 깨달아 갔다.

빈센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서 그 시대의 가장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인 죄수들, 정신 질환자들, 노인들, 집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 버림받은 아이들 질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만나며 그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에 참여 하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인간의 행복과 구원을 위한 동참으로써, 여러 형태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의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구원과 해방을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자비의 수녀들은 교회와 함께 오늘의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온갖 고통 받는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에 참여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동을 받아 우리는 곤경 중에 있는 이웃을 바라보며 도와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봉사는 단순한 사회적 동정심의 표현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불우한 사람들 안에서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일, 곧 그들의 물질적이며 정신적인 곤궁 속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섭리로 우리에게 보내 주시는 모든 사람들 안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라고 빈센트는 말한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내게 마시게 해 주었다, ...진실히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너희가 이 작은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주었을 때마다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35-40). 이처럼 가난한 이들 가운데 숨어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분을 섬기듯이 자비의 수녀회의 정신도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데 그 목적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참조: 마르셀 오끌레르, 앞의 책, 27쪽;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인간의 길』, 장익옮김, 분도출판사, 1977, 41쪽; 다케노 게이사쿠, 앞의 책, 48-49, 55. 68-69. 98, 153쪽; 한경희,「성 빈센트 드뽈의 영성에 나타난 해방의 의미 고찰」,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학위논문, 2000, 13쪽; 로버트 P. 멀로니,『성 빈센트 드뽈의 길』, 박문수 옮김, 가톨릭출판사, 2000, 39-40쪽;『빈체시오 아 바울로의 훈화집Ⅰ』,「소명에 대한 사랑과 가난한 이들을 도움에 대하여」, 178-179쪽; 『빈첸시오 아 바울로의 훈화집Ⅲ』,「병자들에 대한 봉사」, 988쪽; 안미경,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신학과, 2004 졸업논문 25-27;

Robert P. Maloney, Seasons in Spirituality, op, cit., pp. 58-59, 88; SV Ⅺ, 77; SV IX, 119; X 332; SV Ⅹ, 331; 353; 727; Frank M, Vargas, op. cit., p. 54.Robert P. Maloney, He hears the cry of the poor, op. cit., p. 21. 163)

 

3) 정감적이고 효과적인 사랑의 통합성

 

빈센트가 사띠용 레 동브 본당으로 갈 것을 결정한 행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삶’을 살고자 한 것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빈센트가 영적 회심을 거쳐 자신의 의지를 하느님께 온전히 바치며 더 나아가 이제 그리스도 십자가의 사랑을 자신의 삶 안에서 실천적으로 옮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로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고, 하느님을 위한 우리의 사랑임을 그가 깊이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빈센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완전한 자기봉헌인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가난하고, 버림받고, 힘없고 소외된 이들에게 그분의 참된 자유와 생명 그리고 구원을 되찾아 주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그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안에서 가난하고 소외되며 보잘 것 없는 이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시면서 까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만났기 때문이다.

 

빈센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자신의 인격 안에 내면화시켜 활동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데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영적 공헌이 매우 켰다. 빈센트가 베륄에게서 육화하신 예수 그리스도 인격의 모든 외적 업적에 따른 그분의 내적인 인격에 대한 비전을 보았다면,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에게서는 참으로 사람이 되신 참 인간으로서의 구체적인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다.

또한 빈센트가 베륄로부터 자신의 인격 안에 그리스도의 사제로서의 충만성을 복원할 수 있었다면,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에게는 그리스도 신비 전체를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통하여 모든 인간 안에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새롭게 발견한 것에 있다. 그리고 하느님의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사랑’으로 인간의 품위를 결정적으로 회복시켜 주는 하느님 사랑을 배우게 된다.

왜냐하면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인간학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에 접근하는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영적 감각을 지닌 분이다. 또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그 방법으로 이웃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수행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영성생활을 모범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빈센트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온유함의 표양을 통하여 다양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정감적인 사랑과 효과적인 사랑을 함께 잘 나눌 수 있는 통합된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

이점은 빈센트가 죄스러운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이시다. 또한 당신 외아들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까지 인간을 당신의 신성으로 이끌고자 하시는 ‘자비와 연민’으로 가득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다시 한번 더 자신의 인격 안에 심화시키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빈센트에게 있어서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이 사랑하셨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통하여 새롭게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정신이다. 따라서 사랑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전체의 원동력이 된다. 그 사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데 필요한 정감적인 동시에 효과적인 사랑이며, 영적인 돌봄과 동시에 육체적인 돌봄을 함께 해주는 것으로 구체화되고 실현된다. 즉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팔의 힘과 이마의 땀방울을 흘리며 어려운 일에 뛰어드는 사랑이다. 그 사랑은 매순간 사건과 각 각의 사람들에게 독창적이고 창조적으로 행해지는 사랑이며,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행하는 충실한 사랑이다. 이는 하느님 사랑이 영원하기 때문에 그 사랑의 덕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것이 되어야 하는 사랑이 된다.

 

(참조: 마르쎌 오끌레르, 앞의 책, 58쪽; 정배연, 앞의 글, 10, 15, 29쪽; 안미경, 앞의 글 29-31;

로버트 p. 멀로니, 앞의 책, 28-29쪽;『한국가톨릭대사전』, 567쪽; Wendy M. Wright and Josepph F. Power, O.S.F.S.,『살레시오와 제인의 영적지도 편지들』, 우경민 옮김, 돈보스코미디어, 2001, 37-38쪽; 창세 43,14; 30; 1열왕 8,50; 아모 1,11; 이사 47,6; 63,15; 느헤 1,11; 잠언 12,10; Robert P. Maloney, He hears the cry of the poor, op. cit., pp. 45-48, 162-167; 훈화집Ⅰ, 337-343쪽; Robert P. Maloney, Seasons in Spirituality, op. cit., pp. 89-90, 116-118; Andre Dodin, Dictionnaire De spiritualité, Beauchesne, Paris, 1992, p. 853; SV XI, 40)

 

4) 기도와 활동의 조화

 

빈센트는 기도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기도생활을 통해서 그분과 일치하려고 노력하였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관상하는 것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의 봉사를 위해 힘을 모으는 삶의 중심이었다. 즉 기도 안에서 그리스도께로 마음을 모아 하느님에 대한 ‘정감적인 사랑’을 키워, 이를 통하여 가난한 이들에 대한 실천적인 사랑으로 나아가는 영적생활의 구심력과 원심력의 중심축이었다. 이것은 후대의 사람들이 관상과 활동을 조화시켰던 그리스도처럼 빈센트를 ‘활동 속의 관상가’로 부르게 된 이유가 된다.

 

그러므로 빈센트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과 자비로운 행위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이 상호 보완적인 것임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예를 그는 ‘하느님을 위해서 하느님을 떠남’이라는 말로 자주 표현하였다. 따라서 그의 기도 안에서의 생활은 매순간 ‘하느님의 현존속의 거닐음’에 생활하는 삶으로 만들어 주었다.

 

(참조: 요한 바오로 2세,「새천년기」, 2장; 마르쎌 오끌레르, 앞의 책, 59. 70. 100-101쪽; 성 빈센트 드뽈 자비의 수녀회,『생활규범』304조; 로보트 P. 멀로니, 앞의 책, 35쪽; 토마스 머케나, 앞의 책, 165-166쪽; 성 빈센트 드뽈 자비의 수녀회,『생활 규범』, 202조 1항; 안미경, 앞의 글, 35-36;

Robert P. Maloney, He hears the cry of the poor, op. cit., pp. 80-89; Frank M. Vargas, op. cit., p. 61; SV XII, 113; SV Ⅸ, 319; Ⅹ, 95, 226, 541, 542, 595, 693)

 

5) 협력자들과의 연대성

 

혼란한 시대에 살아야 했던 빈센트는 자신의 온 삶을 시대의 정신에 내어맡긴 사람으로 아주 서서히 하느님께로 향한 변화를 체험하였다. 여러 차례에 걸친 회심의 과정과 자신의 모든 인간적인 계획들의 철저한 포기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학문과 성덕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그 시대의 위대한 영성가들과 만나 영적 친교를 통하여 학문과 성덕을 닦았다.

또한, 빈센트는 하느님 사랑의 사업을 위하여 당신의 사도들과 제자들을 모으셨던 그리스도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봉사를 위해 남자나 여자, 부자나 가난한 이들, 유식한 이나 무식한이 등 모든 사람을 불러 모았고, 공동체들을 만들었다. 또한 그는 예수께서 공생활을 하실 때 부인들이 각별히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담 드공디, 루이즈, 마가릿 나조, 드 샹딸 등 많은 여성들을 하느님 사업에 참여시켰다. 특히 그는 협조자 루이즈와 함께 각 사람을 그 사람의 성향에 맞게 양성시켰다. 또한 각 개인의 고유한 인격을 발견해주는 인격교육으로 애덕의 수녀들과 함께 일함으로써 여성들과 일할 줄 아는 사제로서 여성의 지위 향상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이 때 무엇보다도 루이즈는 빈센트의 내면 속에 있는 좋은 자아를 발견하게 해주었다. 즉 그의 매우 차갑고 거친 성품을 여성적일 만큼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예민함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도왔다. 특히 그와 함께 일을 하면서 그로 하여금 타인의 감정을 읽을 줄 아는 심안과 자신의 감정을 부드럽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끔 해줌으로써 인간의 감정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게 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처럼 엄격하면서도 부드러움이 있는 감성적으로 성숙한 따뜻한 인간관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빈센트가 그 시대의 어려운 상황들 안에서 하느님 사랑의 증인과 협조자로서 거침없이 충실히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섭리가 자신과 관계되는 모든 것을 돌보아 줄 것이라고 믿는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느님께 신뢰를 둔 그의 삶에 있었다. 따라서 빈센트에게 있어서 섭리는 하느님이 베풀어주시는 은총의 선물로써 하느님의 일과 인간의 일을 위해 일하는데 있어서 추진력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모든 불행을 완화시키고 땅 끝까지 미칠 수 있는 애덕 활동의 광범위한 망을 구축하였다. 또한 이 회의 활동으로서 자원봉사자 조직 활동과 가정 방문 서비스(home visiting service)의 모태가 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빈센트는 여성에게서 여성의 무한한 힘과 헌신의 자원을 간파하였으며, 그의 계획의 실행뿐 아니라 훌륭하고 풍부한 발의(發議)를 얻음으로써 여성의 진정한 지위를 향상시켜 주었고, 또한 여성들 스스로 자율적으로 봉사하고 헌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그들과 함께 제자직을 수행해 나갔다.

 

이와 같이 하느님 사업을 시작하면서 공디 가문의 친구들이나 친척들, 백작 부인들 등 사회적으로 상당히 유력한 사람들과 친분관계도 가졌으며, 주님의 벗들인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소박한 삶을 나누었다. 특히 루이즈는 빈센트의 영적 동반자로서 하느님 사업의 유능한 협조자 일뿐 아니라 빈센트로 하여금 균형 잡힌 인격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난한 이들을 주님으로 돌보는 헌신적인 봉사의 삶은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인격에 다가서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과 추진력이었다.

 

그러므로 빈센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그 시대의 많은 협조자들과 그들로 이루어진 단체들을 통하여 “영혼들을 위한 열정”에 그리스도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에 불을 일으키게 하여 평생토록 헌신하게 한 것이 된다. 이것은 빈센트가 복음의 정신에 따라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이중 계명을 완성한 것이다.

 

(참조: 요한 13,34-35; 1요한 2,7; 3,11.16.18,23-24; 4,20-21; 5,1-2; 2요한 5-6; 『빈첸시오 아 바울로의 훈화집Ⅲ』,「섭리를 신뢰함에 대하여」, 865-868; 빈첸시오 아 바울로의 훈화집Ⅲ』,「기상, 묵상기도, 성찰, 그 밖의 행사」, 933쪽; 『빈첸시오 아 바울로의 훈화집Ⅰ』,「규칙설명(3)」, 227쪽; 마르쎌 오끌레르, 앞의 책, 100-101, 262, 259; 다게노 게이사쿠, 60, 129-130쪽; SV Ⅵ, 444; Ⅷ, 55, 256; SV XI, 135; 최병용, 대구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편), 사회복지사전, 경진사 1985, 174;

Robert P. Maloney, Seasons in Spirituality, op. cit., p. 153; 참조: 같은 책, 110쪽; Robert P. Maloney, Seasons in Spirituality, op. cit., pp. 90-91)

 

 6) 보편성

 

빈센트가 삶의 체험 안에 고유한 특성은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살고 있고, 그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 안에 예수님이 살고 계시기 때문에 인종, 신분, 또 그의 모든 사회적인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빈센트의 관점은 사회적, 국가적인 한계성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띄고 있다.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있어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정신으로 정감적인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열성은 불붙은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어디에든 가려는 기꺼운 마음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목숨이라도 바치고픈 마음의 의지가 된다. 특히 빈센트에게 있어서 열성은 하느님에 대한 정감적인 사랑을 이웃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려는 사랑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즉 평생토록 그리스도와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일에 투신하게 하는 충실하고 ‘지속적인 사랑’이 되며, 국가를 초월한 보편성을 띄게 된다.

빈센트가 보여 준 열성은 무엇보다 가난한 이들을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을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도적이고 보편적인 사랑은 다른 이들과 나누고 연대하게끔 하는 개방적으로 열려진 사랑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존재 그 자체로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의 육화이며, 인간의 구원자로서 그 시대에 가장 소외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영적, 육적으로 돌보며, 구원의 길로 이끌었다. 빈센트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마음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의 신비와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다. 그의 삶은 하느님 사랑의 결정체인 인간에 집중되었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처럼 그 시대에 가장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인간의 고유한 품위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었다. 즉 그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과 동일시하였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이웃사랑을 통하여 하느님 사랑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빈센트는 하느님의 은총과 그분의 섭리 안에 만난 가난한 사람들과 많은 그의 협조자들의 도움에 힘입어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개방성과 수용성, 자유와 창조성, 책임성과 자기 수용성으로 채워진 균형 잡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매순간의 삶을 하느님 섭리에 신뢰하며 기도 안에 힘을 모아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인격적으로 응답하는 영적 여정에 있다. 그 안에서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깊어져 갔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차적으로 그의 영혼과 마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빈센트의 삶은 그리스도의 생활양식과 그분의 인격의 덕목에 기초하여 세상 안에 자비로운 사랑을 육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인격을 자신의 삶으로 산 것에 있다. 또한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사랑’과 인간을 통한 하느님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고, 자신도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자신 안에 완성시키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친히 사람이 되어 오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당신의 삶 속으로 우리 모두를 초대하시고 계신다. 이에 우리는 진리와 사랑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빈센트와 함께 사비의 사명의 여정을 계속해야만 한다.

더 나아가 현대사회에서 빚어지고 있는 여러 비 복음적인 현상, 올바른 가치관의 상실, 사회문제 등이 교회와 수도자들의 무사 안일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인식을 갖고 수도회의 고유한 카리스마에 입각하여 관심을 갖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참으로 교회 안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 나가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하고 자비의 수녀회의 카리스마와 창립자의 영성이 삶의 유산으로 계속적으로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음으로써 미래사회를 복음화하고 풍요롭게 하는 데 앞장서 가야 할 것이다.

 

(참조: 2고린 5,14; SV XII, 204, 307-308; XII, 262; SV XI, 40; SV XI, 291; SV Ⅺ, 135-136;

로버트 P. 멀로니, 같은 책, 48쪽; 74-76쪽; 안미경, 앞의 글, 50-51; Robert P. Maloney, Seasons in Spirituality, op. cit., p. 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