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빈센트의 향기를 성경 안에서

주님과의 만남: “하느님 현존 속에 거닐음”

마리아 아나빔 2013. 3. 31. 20:27

 

 

주님과의 만남: “하느님 현존 속에 거닐음”

 

 

I. 기도와 영성생활

 

많은 영성가들과 기도하는 이들은 기도에 대해서 다양하게 설명한다. 교회의 전통 안에서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이며, 하느님께 은혜를 청하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인격적인 대화이다. 따라서 기도는 하느님의 행위이며 인간의 행위이다. 즉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더욱 개인적인 관계를 세우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항상 우리를 생각하고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적인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과의 성덕 및 일치를 추구함에 있어서 기도가 모든 측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확신을 변함없이 가진다. 이러한 기도는 영성생활의 핵심인 향주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그리스도인들을 하느님과 일치시킨다. 즉 기도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생활은 모든 삶의 순간과 행위와 사건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기억하고 도움을 청하며 그분 사랑 안에 머무는 삶이다. 이러한 기도생활은 매우 실천적이고 관상적인 생활로써 관상과 활동이 일치와 통합을 이루는 기도생활을 뜻한다. 이러한 일상생활을 통한 그리스도와 일치의 삶은 매순간 하느님의 현존 속에 살아가게 하는 관상생활로 이끌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하느님과 결합되어 살아갈 수 있는 각자의 영적인 길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영성생활, 특히 기도생활은 성령의 이끄심 안에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한 영혼을 이끌어가는 방법은 그분께서 베푸시는 은총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래서 각자 자신에게 맞는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방법을 찾는 것 또한 영성생활이다. 그러므로 주님과 일치하기위해 공적인 기도뿐만 아니라 개인적 기도 역시 중요하며 각자 그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도생활을 위해서 ‘침묵’은 기도의 전제조건이다. 기도를 위해 외적. 내적 침묵으로 외부의 소음과 자신 안의 소음을 떠나야 비로소 하느님께 주의를 기울이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모아 그 분 안에 깊이 들어 갈 수 있다. 또한 침묵은 ‘기도 자체’이다. 순수하고 참된 영이신 하느님과 만나고 교류하기 위해 모든 물질적, 감각적, 현세적인 것을 넘어서 정신적, 내적, 신앙적, 영적 차원으로 들어가는 것이 침묵이다. 또한 침묵은 ‘기도의 결과’이다. 기도가 순수해지고 심화되고 영이 될수록 일상의 생활에서 침묵을 살고 세상의 모든 소음과 근심 걱정을 떠나 내적 고요와 평화 속에 살게 된다. 그리하여 하느님께 완전히 의지하여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받아들임의 침묵’과 ‘수동성의 침묵’, ‘순종의 침묵’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기도 안에서의 침묵은 하느님 현존을 찾는 하나의 방법으로 하느님과 인간과의 단절된 대화가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 대화하는 마음, 하느님의 뜻을 찾는 마음 등은 침묵을 통해서 올바르게 이루어진다. 또한 우리는 내면에서부터 하느님 사랑을 위해서 침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단지 소음과 말을 삼가는 침묵이 아닌 하느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전인(全人)적 침묵’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안의 고요함을 조성하며 지킨다.

 

빈센트 역시 가난한 사람들의 봉사를 위한 힘은 기도라고 가르친다. “우리 주님은 무엇보다 기도하는 분이셨습니다(SV IX, 415). 따라서 매일 묵상을 하고 하느님께 기도하며 온밤을 지새우셨던 그리스도를 우리가 완벽하게 닮을 수는 없다 해도, 우리는 할 수 있는데 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CR X, 7).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점을 둔 빈센트는 그의 수녀들에게 기도의 주제, 기도방법, 기도자질에 대해서도 자상하게 말한다. 먼저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기도에 빠지지 않으며, 묵상은 모든 신심의 터전이기 때문에 온 정신을 쏟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에 필요한 은총을 청하기를 권고한다.

 

그리고 기도는 하느님께서 이 땅에서 하시는 모든 활동에 개방되어 있는 것이다. 즉 기도와 명상은 피조물을 통해 다양하게 드러나는 하느님의 현존을 오래도록, 사랑의 눈길로, 때로는 약점을 지닌 채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도를 이 넓은 세상과 별개의 것이라 생각하면 그것은 연기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기도는 영성생활 안에서 영혼의 호흡과 같다. 따라서 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의 순간까지 거듭되어야 할 정성과 노력이며,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께 다시 익히고 배워야 하는 것이다(루카 11,1).

 

 

 

II. 빈센트의 하느님 현존속의 거닐음

성 빈센트는 기도와 활동을 참으로 잘 조화시킨 성인으로서 ‘활동속의 관상가’로 잘 알려졌다. 그는 그가 세운 많은 평신도 단체와 수도회와 전교회에게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 안에서 기도와 활동이 상호 연관관계를 가진 것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는 이 기도와 활동이 조화롭게 통합된 삶을 ‘하느님 현존속의 거닐음’이라 말하였다.

 

‘하느님 현존 속에 거닐음’이란 하느님의 현존 의식에 대한 기도의 한 방법으로 사랑이신 하느님을 잠심 중에 만남으로써 일상생활의 매 순간 안에서 잠시 머물러 하느님을 향하고, 지성과 의지로써 마음을 하느님의 현존께 집중하여 흠숭과 사랑, 뉘우침과 청원 등 여러 가지 기도를 드리는 행위이다. 이 기도는 기도문이나 화살기도를 외우지 않아도 계속적으로 기도 할 수 있다. 주님과의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나, 말을 하지 않고 무언으로 심정을 표명하고 친교를 나누면서 계속적으로 기도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몸과 마음, 지성과 의지로써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연습을 통하여 하느님 현존 속에 살아 갈 수 있다.

 

빈센트는 그의 영적 삶 속에서 언제나 하느님 현존에 대한 민감한 영적 감각을 가졌다. 그리고 그것을 그의 회의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더 나아가 바쁜 사도적 자선 봉사 안에서 부족한 기도 시간으로 고민하는 그의 수녀들에게 어떻게 하느님께로 향하는 그들의 봉사활동이 동시에 하느님께로 향한 기도가 되는 고안 장치로 ‘하느님 현존의식’에 대한 기도 방법을 사도적 봉사의 삶에 적용하여 사도적 활동에서 오는 기도 결핍의 염려와 그 중요성을 함께 보충한다.

 

빈센트가 말한 ‘하느님 현존 속의 거닐음’이란 삶속에서 기도와 활동이 서로 교차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바오로 사도는 말씀 안에서 기도하는 자세로 일하고 섬기라고 설명한다. 즉 우리의 활동은 기도의 연장선장이고 활동을 잘하기 위해서 기도 안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할 때 우리의 활동의 모든 행위가 바로 기도의 표현이 된다. 이러한 정신 때문에 빈센트는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잠시 기도를 멈추고 하느님 애덕활동 행위를 수락한다. 그는 이것을 일컬어 ‘하느님을 위해서 하느님을 떠나는 것(Leaving God for God)’이라 하였다(SV IX, 319).

 

여기서 활동이라고 말 할 때는 하느님 나라를 위한 노력들의 총체들을 의미한다. 이 노력은 흘러넘치는 은총, 즉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자유로운 응답을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활동은 단순한 활동과는 분명히 대조되는 것이다. 기도가 없는 단순한 활동은 열정같이 보이지만 무척 충동적이며 뿌리가 없기 때문에 분주한 활동의 요구라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는 말라버린다.

 

하느님의 현존에 뿌리를 두지 않는 기도는 물질이 없는 형태와 같다. 그러므로 기도와 활동은 서로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하느님께서 안내하시고 우리의 활동에 은혜를 베푸실 때, 그 활동은 하나의 기도 그리고 명상의 근원이 된다. 우리의 기도와 명상이 이 세속에 서 겪는 고통과 기쁨, 위험과 축복 속에 하느님이 현존하신다는 현실을 정확하게 음미하게 된다면 그것들은 활발한 사랑의 활동으로 꽃피울 수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 관상과 활동의 균형을 이루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범을 빈센트가 본받은 것이 된다.

 

빈센트는 그의 하느님 애덕사업을 위해 많은 단체를 세우고 그 활동을 잘하기 위해서 충분히 숙고한다. 그래서 그는 묵상과 기도를 위한 연구와 계획을 많이 세운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나면서, 기도가 활동을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곧 예수님을 만나는 것임을 빈센트는 점점 더 명백히 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과 자비로운 행동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의 상호성을 말하게 된다.

 

빈센트의 이러한 관상과 활동에 대한 숙고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 안에서 생겨난 그의 사도적 자선봉사에 대한 경험의 열매이다. 왜냐하면 그가 시작한 많은 애덕 사업의 형태는 빈센트 시대 당시 처음으로 시도된 자선 봉사이다. 따라서 빈센트는 하느님의 인도하심 이외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하느님의 성령의 이끄심 안에 행한다. 따라서 빈센트가 그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를 강조한 이유는 이에 대한 당연한 귀결이다. 이러한 연유에서 후대의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관상과 활동을 균형 있게 잘 이룬 영적 삶을 살아낸 성인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의 일 속에서 찾음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일속에서 하느님을 찾기 위해 우리의 일을 합니다.”(SV XII, 132). 또한 그는 활동 안에서 기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한다. “ 기도하는 사람을 나에게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그는 무엇이라도 할 것입니다. 그는 사도들과 함께 ‘나의 능력을 주시는 분에게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SV XI, 83).

 

이것은 빈센트가 말한 매순간 하느님 현존 안에 살아가려는 노력들로써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의 경배에서도 또 반성의 짧은 순간들에서도 그리고 분주한 활동 안에서우리의 지향과 의식을 하느님께로 향하는 하느님 현존의 표현이다. 이러할 때 우리의 자선활동은 빈센트가 말한 하느님 현존 속에 거니는 삶이다. 그것만이 우리의 활동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승화될 수 있고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와 봉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